정서영 작업에 대한 해석 1

나는 소위 깡패학교를 다녔다. 2학년땐가 갑자기 키 크고 얼굴이 시커먼 선배 두엇이 노는 시간 교실에 들어오더니 군기를 잡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뽑기로 들어왔기 때문에 시험 봐서 들어온 자기들은 우리를 후배로 생각하지 않는다나? 나중에 생각해 보니 진짜 병신 같은 소린데 당시에는 무서워서 그런가부다 했다. 그때 선배들이 기세가 너무 살벌해서 선생의 수업시간에는 떠들고 장난 치는 애들이 아무도 숨 조차 쉬지 못했다. 그 선배들은 우리를 다루는 법을 완벽하게 알고 있었다. 뭐라 떠들다가 갑자기 “거기 너 나와”해서 어떤 애를 앞으로 불러내서는 대걸레 자루로 빳따를 때렸다. 한 대 때리니까 대걸레 자루가 부러졌는데 그 광경은 우리에게 최고의 공포였다. 당시에 우리는 대걸레 자루가 얼마나 허접한 나무로 돼 있는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 부러졌다는 것은 선배들이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보였고 우리들 60명 전체는 얼어붙었다. 사실 그 선배들은 대걸레 자루가 약하다는 것을 미리 알고 다 계획 해서 한 놈을 팬 거였고 그 새끼들은 나중에 보니 다 술 쳐먹고 담배 피는 양아치들이었다.
정서영의 작업 <1> (2020, 알루미늄 주물)은 그 경험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작업은 당시 대걸레 자루의 부러진 부위와 형태를 완벽히 재현해냈다. 대걸레 자루를 허접한 나무 대신 알루미늄 주물로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저열한 쌩양아치들의 존재를 고상한 재료와 기법으로 고양한다는 높은 뜻이 담겨있다. 즉 양아치 선배들이 우리를 협박할 때 쓴 허접한 나무때기를 금속재료 중 비교적 가격이 높고 아무데나 쓰이지 않는 알루미늄 주물로 만듦으로써 그들의 저열함을 비웃어주고 있다. 내가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때 선배들은 인간 쓰레기들이다”라고 말하는 대신 알루미늄이라는 물체를 말 없이 갖다놓아 물질 스스로 말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물질은 자신의 존재감을 말 없이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그 소리 없는 드러냄이 내 선배들의 저열한 말 너머로 가볍게 빗껴나가며 허구성을 무시하고 있다. 이 작업은 은유도 아니고 환유도 아니며 야유는 더욱 아니다. 손자병법에서는 싸움의 최고단계를 ‘싸우지 않고 이기는 자’라고 했는데 정서영은 이 세상의 저열함에 맞서 싸우지 않고, 손대지 않고 업어매쳐버렸다. 옛날에는 알루미늄은 싸고 가벼운 재료의 대명사였다. 1970년대만 해도 알루미늄 샤시가 창틀의 주조를 이뤘는데 그 이유는 알루미늄이 가볍고 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요즘은 고급감을 나타낼 때 알루미늄을 쓴다. 고급 승용차는 내장재에 알루미늄 재질을 쓰는데 사실 진짜 알루미늄은 아니고 알루미늄 질감을 내는 플라스틱이지만 무광택의 알루미늄 재질은 과거의 번쩍이는 크롬보다 훨씬 고급스럽게 보인다. 알루미늄은 맥북 케이스에서부터 KTX의 문손잡이, 자동차 엔진블럭, K9 자주포 장갑, 항공기의 뼈대 및 스킨 등 가벼우면서도 튼튼해야 하는 첨단기계의 여러 부위에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런데 정서영과 내가 같은 학교를 다녔다?


글, 사진: 이영준
2020.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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