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앞 재탕 버전으로 보는 최정화 – 정서영 2인전

1999. 4.19 – 4.30
대안공간 루프


아, 이 안일한 재탕 ~! 최정화/정서영 전 “정신차려라 LOOP!!”
– 루팡에게
안개가 자욱한 새벽 골목, 집 앞의 그 비좁은 골목을 꽉 막고 서 있던 생선 장사 트럭. 그 트럭 옆을 지날 때면 으레 코를 찌르며 온 몸으로 스며들던 비린내…
나는 오늘 자네의 안일한 음모 속에서 오랜만에 그 냄새를 맡았네.
최정화 말일세. 그 십원짜리 동전냄새가 물씬 풍기는 접시기둥, 똥배 나온 아줌마의 스커트 위에서 맥없이 늘어져 있을 법한 구슬줄이란… 나는 정말 그의 가벼움을 참을 수가 없었네. 대만 재래시장에서 수입한 플라스틱 향접시 수 십개와 남대문 시장의 쇠구슬 수백개가 만들어내는 유치찬란함, 소란스러움, 뻔뻔함은 나를 짜증나게 만든다네. 작품 제작과정에 대한 불미스러운 소문에 의하면, 그의 작가적 책임이 의심스럽더군. 소위 최정화 표 생산라인이라는 것이 시장바닥에서 아무거나 누구에 의해서든 주워 올려 최정화 이름으로 전시장에만 들어가면 된다는 식이니 말일세. 그렇게 해서 생산된 작품을 늘어놓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말하지 않고 있다니. 관객이 보고 생각하는 데로 즐기라고…라? 작품을 완전히 관객에게 떠넘기고서 관객의 반응을 모니터하겠다는 그 맹랑한 의도가 관객을 조롱하는 의미가 아니라고 어찌 볼 수 있겠는가.
그리고 아직도 예술 작품이 최소한 무엇인가를 재현하거나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최정화 작품만큼 폭력적인 것은 없을 것이네. 그것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반응과 호기심에도 방관하기만 한다면 그게 어디 예술이고 예술가일 수 있겠는가. 아니, 혹시 최정화의 의도가 바로 그 예술가임을 포기하는 거였나? 그렇다면 더 이상 순진한 관객들을 미혹시키지 말고 확실한 가짜로 돌아가라고 전해주게. 
정서영은 장판 바닥에 글씨 연습하던 걸 들고 왔더군. 궁서체들을 싸구려 장판위에 늘어 놓고는 그것들을 조합해 만든 TV 이상의 그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획을 그었던 시간의 자취 덕분이겠지만, 그 언어가 내보이는 직접적인 사황가 그 이전의 자취간의 간극이 만들어내는 그 애매모호함 앞에서 내가 좀 답답했다고 해서 나의 안목을 과소평가하지는 말았으면 좋겠군. 흠… 어쨌든 그녀의 작품은 무엇인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거나 친근하기보다는 낯선 이방인의 정체처럼 불투명하게 나에게서 멀어진다네. 직접적이면서 친근해 보이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 시골 아줌마 패션을 한 도시의 커리어 우먼을 만났을 때의 그 상황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편하게 말 걸려다가 다시 긴장하게 되는… 그녀의 작품에서 내가 느끼는 이러한 긴장은 낯설음에 있다네. 내가 TV를 소리내어 읽을 때 사실 TV는 그 자리에 없는 그 상황 – 없는 것의 언어적 존재를 읽으면서 없는 것을 확인하는 그 상황이 특별한 낯설음을 만들지. 최정화의 작품보다는 소위 “예술”이라는 놀이터 안에 있다는 것 느낄 수 있었지. 최정화같은 RMRE의 냉소자는 아닌 듯하더군. 하지만, 이제 그녀의 방에 “깔끄미”를 깔으라고 권하게. 그러면 다시는 애매하고 무의미한 낙서들을 지울 수가 없어서 별게 걸 일은 없을 터이니.
최정화와 정서영 그 둘은 마치 같은 생선 트럭에서 장을 보고 나서 비슷한 재료들로 너무 다른 음식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더군. 최정화의 분식집 전략과 정서영의 일식집 철학이 오뎅과 초밥을 요리하는 방법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
그러나 그것 양극의 방법-뻔뻔함과 애매함-이 만난 이유가 사실은 궁금해지네. 도대체, 이 두사람을 한 울타리 안에 모아 놓는 저ㅢ가 무엇이냐는 말일세. 며칠 전 인사동에 있는 수영장에서도 둘이서 물장난 치고 있는 것을 목격했는데, 그 장면과 이 장면의 차이가 장소 차이뿐이라면 대단히 실망일세. 나의 유일한 맞수로서 그래도 자네의 행적들에 나름대로 지지를 보내는 바였건만, 이번 같은 유치한 절도-알잖나. 안일한 재탕!-에 대해서 대도 루팡의 최소한의 양심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군. 그리고 자네가 표방하는 그 대안공간(alternative space Loop)이라는 게 무언가. 내가 아무리 요즘 애들 문화는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미술판이 뒤집어지거나 이들이 입산수도의 길을 택하지 않는 한 최짜가가 뉴욕의 앤디와홀 마냥 서울의 인기스타라는 것 쯤은, 그리고 정내숭도 곧 그리될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을진데, 어찌 이들이 어떻게 대안공간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 자리에 초대되어야 할 사람들은 막 배란되어, 건강한 정자를 기다리는 난자이어야 할 것일세. 결코 생산적으로 착상될 수 없는 자네의 공간 Loop=알잖나. 피임기구!-속에서 밀레니엄 베이비를 꿈꾸는 어린 예술은 유산될 수 밖에 없지. 자네의 사기행각과 경솔함은 이제 만인 앞에서 심판을 받을 걸세. 이번 시도는 자네의 실수였다는 것을 인정하시지 그래. 흐하하.
-의기양양한 예술 애호가 * 홈즈로부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홈즈에게
그대의 도전적인 편지에 다시 한 번 동료애를 느끼며 고마움을 표하지. 또한 최정화의 작품과 정서영의 작품을 풀어내는 자네의 변함없는 예리함에 경의(?)를 표하는 바일세. 사실, 자네가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한 바들을 크게 반박할 생각은 없네. 어차피 작품이란 최정화식으로 말하면 “너 맘대로 생각해라”란 말이지. 그런데, 이보게 홈즈. 자네가 무언가 음모를 느꼈다길래, 이번엔 혹시 자네가 날 잡을 수 있을까 기대했네만, 역시 나보다 한 수 아래라는 걸 깨닫고 적잖이 실망했다네. 자네가 수학 정석Ⅰ을 풀며 사소한 것에 목숨걸면서 재수하는 사이에, 자네가 사이비라고 여기는 나 루팡은 스타크래프트로 이름을 날려 특기생으로 자넵다 먼저 대학에 들어간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자네에게 다시 한 번 미안함을 느끼네. 핫핫. 
각설하고, 최정화와 정서영의 작품을, 그것도 한 번 다른 곳에서 했던 전시를 다시 Loop에서 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겠다? 그들의 작품은 알다시피, 한 마디로 말하면 이미 조리해서 익어버린 음식이네. 1차적으로 이 전시는 최정화가 가르쳐준 뻔뻔함 – “배째라” 정신의 산물이지. 시장의 모든 물건에 최정화 표를 붙여서 최정화 상품을 만드는 바로 그 최정화식 마법을 그대로 재현한 전시가 바로 이것이며, 자네가 말했듯이 뻔한 것으로부터, 애매하고 낯설어지면서 불편해지는 정서영식의 어법이 바로 자네를 의아하게 만드는 이 전시의 전략일세. 대안이 작가에게만 있을 이유 있는가? 이 전시는 최정화, 정서영의 2인전이 아닌 최정화 정서영을 재료로 한 Loop의 1인전 일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마시게나.
그리고, 전시의 저의라! 그것은 바로 ‘가짜’와 ‘내숭’이 만나는 지점이지, 구구절절 설명하기를 꺼리는 두 작가의 냉소와 만날 수 있는 바로 그 지점! 아, 황홀하지 않은가? 그리고, 자네가 전시를 보고 안일하다든지, 썰렁하다고 느꼈을 지도 모르겠네만, 많은 작품을 한 공간에 그러모아 무엇인가 잔뜩 말하려 하는 식의 전시보다는 짧고 강한 맛이 있지. 꽉꽉 눌러 담은 도시락은 너무 구구절절하고 가슴 아프지 않나?
범생이의 비애는 한눈팔지 않음에 있고, 그것은 바로 상투적임이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보는 바로 자네의 비애일세. 부디 이 글을 통해 자네의 부족함을 깨달아 하루 빨리 나의 적수가 되어주길 간청하며, 범생이 홈즈의 열렬한 복습을 기대하는 바이네. 
그럼 이만 총총.
– *루팡(Looping)
* 객원 글쓴이 홈즈에게 감사드립니다.
* 루팡(Looping)은 대안공간 루프(alternative space Loop)의 필명입니다.
http://galleryloop.com/blog/?p=2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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