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영의 사물들, “위대함은 그대들의 것이니까”

 

정서영(1964~)은 199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현대미술이 ‘동시대 미술’로서 새롭게 자리 잡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작가이다. 독일 유학 이후 귀국하여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한 그는 특히 한국 사회의 현실적인 구조가 빠르게 재편되면서 생겨난 잉여 생산물이자 ‘사회적 증거’로서의 사물을 조각적인 사유로 제안했다. 


“사물적인 것 외에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다. 사물을 사유하는 것은 진정코 금지되어 있기만 한 것일까? 객관적 진술 그 너머에 자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의 무의식적이면서도 필연적인 가치 부여를 허락하는 것이다. 목적한 바 없으나 지향하게 되는 것으로서의 투사를 행하는 것이다. … 모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유와 시선, 정신의 교조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 등이 바로 그것이다” 1)

사물을 바라보는 정서영의 낯설고 독특한 관점은 서울대학교 시절 그의 석사학위 논문에서도 발견되는데, 그는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사물이 지닌 낯섦과 혼돈 속으로 나아간다. 정서영은 사물을 사유하고, 더 나아가 조각가로서의 조형적 책무를 더하면서 ‘사물을 통해’ 당시 여전히 한국 미술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가부장적인 사유와 예술적 권력에 대해 비평적 관점을 제안했다. 그의 작업세계에서 ‘사물’은 조각의 주재료이자 주제일 뿐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들의 동등함에 대한 작가의 선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그는 한국의 산업 사회에서 생산된 사물 그 자체가 지닌 강력한 존재감을 인식하면서 이를 조각적인 방법론을 통해 해결해 나가고자 했다. 

먼저 그 시작점으로 정서영의 초기작 <-어>(1996)를 살펴본다. 이 작품은 돌과 철 같은 무겁고 단단한 재료를 만들고, 깎고, 붙이는 전통적인 조각의 방법론과는 다소 먼, 오히려 한없이 가벼운 재료로 만든 작품이다. <-어>는 1990년대 당시 작가가 자주 사용하던 재료 중 하나인 노란색 민속 비닐 장판 위에 궁서체로 ‘-어’를 쓰고 장판 주변을 나무 액자처럼 두른 것이다. 작가는 감탄사 ‘어’ 앞에 붙임표 ‘-’를 추가하는데, 이는 작가의 구체적인 생각을 모으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세계를 관찰하면서 모아진 정서영의 추상적인 생각이 어떠한 유형의 ‘조각’으로 변모되는 순간의 과정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작가의 모든 작업은 사물을 바라보는 오랜 사유에서 시작되는데, 이러한 시간을 통해 정서영은 사물이 본래 지시하던 객관적 지표와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시도하고, 사물을 향한 낯선 시선과 혼돈으로 나아갔다. 

또 다른 작품 <유령, 파도, 불>(1998)에서 정서영은 인간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회자되지만 정작 형체는 없는 ‘유령’ ‘파도’ ‘불’이라는 대상을 끌고 와 작가가 선택한 재료와 형태, 크기로 붙들어 놓았다. 널찍한 노란 비닐 민속 장판이 깔린 전시장 바닥 위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진 채 유토로 빚어놓은 파도와 불의 형상이 서로를 마주 보고, 전시장 벽에는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유령’ 형상의 조각이 벽에 걸린 채 ‘파도’와 ‘불’을 바라보고 있다. 그 옆 벽에는 이 세 작품의 드로잉이 걸려 있다. 정서영은 “정해진 형태도 크기도 없으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을 조각으로 만들고자 시도”함으로써 당시 한국 사회 곳곳에서 흔히 발견되던 리놀륨 장판, 스티로폼, 플라스틱, 스펀지, 합판과 같은 산업 재료들 자체를 조각의 재료로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면서 정서영은 사물과 그것의 안팎을 둘러싼 세계와의 변화된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사물의 사회적 조건을 예민하게 탐색했다.

2000년 아트선재센터에서의 개인전 《전망대》에서 선보인 <전망대>(2000), <수위실>(1999), <꽃>(1999)은 <유령, 파도, 불>과 같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아파트 ‘수위실’, 수영장의 ‘전망대’ 그리고 빨간 고딕체로 ‘꽃’이라 쓰인 거리 간판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유령, 파도, 불>이 비가시적 존재를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면, <전망대>, <수위실>, <꽃>은 실재하는 사물과 작가와의 물리적 거리를 조정하는 가운데 발생한 형이라고 할 수 있다. 친구가 보내 준 엽서에 등장하는 엄지손가락 크기만한 수영장의 ‘전망대’와 건축물도 조형물도 아닌 애매한 크기의 아파트 ‘수위실’ 그리고 길거리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빨간 고딕체로 쓰인 꽃집 간판 ‘꽃’을 어느 정도의 규모로 키울 것인지의 문제였다. 이는 단순히 시각적인 대상으로서의 규모가 아닌 작가의 기억 또는 상상이라는 지극히 내밀하고 사적인 공간과 실제 자신 앞에 놓인 물리적 조각 사이 손에 잡히지 않는 새로운 공간을 예민하게 인식한 것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정서영의 1990년대 조각들은 재료의 직설적인 상태를 드러내면서도, 형태는 매우 함축적으로 제시되어 급진적이고 강력한 힘을 갖게 되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 정서영은 사물에 내재한 비물질적 요소를 드러내는 데 집중하여 조각, 설치, 드로잉뿐만 아니라 퍼포먼스, 영상, 사운드로 작업 세계를 확장해 나갔다. <괴물의 지도, 15분>(2008)은 작가가 전 세계에 분포된 괴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한 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괴물 역시 유령, 파도, 불처럼 신화에 자주 등장하지만 그 형태는 끊임없이 변한다. 정서영은 시대를 거듭하면서 괴물과 같은 생명체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 인간의 심리를 그의 사유 작용을 통해 풀어내 보고 싶은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행하고자 작업실 근처를 15분간 땅바닥만 보며 돌아다녔다. 이 후 작업실로 돌아와 15분간의 시간을 잘게 나누고 그 시간 동안 마치 무언가를 본 것처럼 픽션을 쓰게 된다. 이 텍스트를 바탕으로 작가는 <괴물의 지도, 15분>이라는 드로잉 작업을 완성했다. 

<괴물의 지도, 15분>은 알 수 없는 이미지의 조합이나 부조리극과 같은 텍스트로 구성된 25점의 드로잉이다. 드로잉은 작가가 자를 지지대 삼아 종이 위에 대고 잉크로 그렸기 때문에 작품 위에는 자의 이동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작품이 이상하고 낯선 단어나 문장, 이미지의 조합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어지지 않는 단어와 단어 또는 상황 묘사 사이의 빈 간극을 메우기 위해 우리는 허구의 공간을 생성하게 된다. 바로 이 수행적 순간, 구체적으로 이해되거나 파악되지 않지만 우리의 인지 작용을 자극하거나, 어떤 상황이 발생하도록 하는 이 지점이 바로 작가가 추구하는 “평범한 사물에서 조각으로 변하는 비범한 순간”이다. 

언어와 사물의 관계, 조각이 발생하는 경로 혹은 사물이 조각으로 변모하는 비범한 순간을 사유하며 매체 확장을 시도한 정서영은 2010년 <괴물의 지도, 15분> 드로잉 연작 일부를 독립적인 작업으로 발전시킨 영상 <미스터 김과 미스터 리의 모험>을 제작한다. 이 작품은 LIG 아트홀의 공연장, 분장실, 대기실을 가로지르며 펼쳐진다. 본래 두 시간의 공연으로 출발한 이 작품에는 9명의 퍼포머와 한 마리의 개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할머니 분장을 한 젊은 여자, 모나미 볼펜을 돌리는 젊은 남자, 요괴 분장을 한 남자 등 하나의 정체성으로 고정되지 않는 인물들이다. 공연으로 초연될 당시, 개를 산책 시키는 퍼포머 외 다른 퍼포머들은 두 시간 동안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멈춰 있도록 지시를 받았으며, 이들과 달리 관람객들은 무대, 분장실, 대기실을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마치 사물처럼 그 자리에 멈춰 있는 인물들 사이로 여전히 흐르는 시간을 통해 정서영은 단단한 ‘조각’ 매체를 넘어 그의 사물/조각이 세계에 등장하기 위한 전후의 모든 시간과 공간을 모으길 시도한다. 

최근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의 전시 《공기를 두드려서》(2020)는 사물과 조각의 관계를 탐구하면서도, 조각 자체의 자율적인 미학 언어가 활성화되는 점이 두드러졌다. 이를 위해 정서영은 언뜻 관련이 없거나, 기존 의미 체계로 접근할 수 없는 사물들의 조합 가운데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온 미지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가시화했다. 그는 사회란 결국 헐거운 언어로 세워진 공통의 신화임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조각적 사물이 현실 세계의 이해 가능한 논리적 언어에 함몰되지 않도록 힘써왔다. 2)

작가는 존재하는 사물에 쉽사리 이름을 붙이거나 그것을 의미의 망 안에 넣으려 하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이 이 세계에 무수한 타자들을 만들어냈다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그는 “사물에 대한 추측과 오해, 그리고 발견을 일삼으며 그것이 세상의 모든 다른 것과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것임을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기존 의미 체계로는 포획할 수 없으나 하나의 고유한 현실로서 그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작업 세계를 펼치고 있다. 이로써 정서영의 사물은 사회와 역사의 공식적 공간 안에 수렴되지 않고 유령처럼 그 사이의 공간을 떠돌아다니며 말한다. “위대함은 그대들의 것이니까” 3)

김민정(1985~),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바라캇 컨템포러리 큐레이터
1)   정서영, 『事物에의 加擔과 投射에 의한 조각작품 제작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89. 김정란, 「사물들과의 조금 까끌까끌한, 움직이는 관계–조심스럽고 사랑스러운 불안」, 금호갤러리 도록, 1995, p. 2에서 재인용
2)  《정서영: 공기를 두드려서》, 전시 서문, 2020, 바라캇 컨템포러리
3)  김정란, 앞의 도록, 1995, p. 6.
http://www.daljin.com/column/19540

Soun-Gui Kim: Lazy Clouds

 

The exhibition »Soun-Gui Kim: Lazy Clouds« at ZKM | Karlsruhe is the first solo exhibition in Germany of Korean-French artist Soun-Gui Kim. 

Starting with works from the 1970s, the presentation will give a comprehensive overview of the artist’s work up to the present-day, ranging from the deconstruction of painting and photography to video and multimedia art. Her works are frequently characterized by their highly participatory nature and are influenced by comparative studies of Eastern and Western culture and philosophy as well as the exploration of language. 

Soun-Gui Kim was born in Buyeo, Korea, in 1946. She graduated from the Department of Art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in 1971. Even back then, she was interested in the deconstruction of painting, in large-scale performances and video works in public space. After completing her studies, Soun-Gui Kim was awarded a scholarship by the French government, which enabled her to go to France and work there. A few years later, in 1974, she accepted a professorship at the École Supérieure des Beaux-Arts in Marseille. In 1982, Soun-Gui Kim’s travels to various countries around the world led to her intensive engagement with the culture and art of the East and West. While in New York, she associated with renowned video artists such as Nam June Paik, Ko Nakajima, Ira Schneider, and Frank Gillette. With her deepening interest in video and multimedia, she organized »Video & Multimedia: Soun-Gui Kim and her invitees« (1986), with the participation of Nam June Paik, John Cage and others. Since the late 1980s, issues related to the spread of global capitalism and structural changes in society caused by the Internet have become particularly important for her. Today, the artist lives and works in the French countryside near Paris, where in harmony with nature and her surroundings she devotes herself to her art projects that combine philosophy, art and technology.

The title of the exhibition »Soun-Gui Kim: Lazy Clouds« refers to a specific poem and a book of poetry by the artist which was published in France. At the same time, however, it also exemplifies her personal life plan: completely contrary to capitalist-oriented productivity and performance regime, it is based on the concept of idleness as an artistic, creative, and philosophical principle. Like the clouds that are completely free to find ever new forms in the sky, Soun-Gui Kim devotes herself to her art, playfully, far away from predefined patterns and formalities.

The exhibition at ZKM | Karlsruhe is realized in collaboration with the Arario Gallery in Seoul and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MMCA) in Seoul, where it was shown under the same title in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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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Minja Gu


for ‘Tempeh days & Sleepless nights’ online workshop by Minja Gu

Sep. 2020

Seojong


조형상황Ⅰ - Ⅲ, 1971 - 1974

 <조형상황 Ⅰ>은 김순기가 미대 시절 발표했던 <소리>(1970)를 빌라 아르손에서 발전시킨 것으로, 염색한 천을 나무와 나무 사이에 끈을 연결하여 걸거나 나무에 걸쳐 놓는 야외 설치를 촬영한 작품이다. <조형상황 Ⅱ>(1972-1974)부터는 야외에서 여러 사람들의 참여 속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까뉴 쉬르 메르(Cagnes-sur-Mer), 니스(Nice), 그라스(Grasse), 모나코(Monaco) 등에서 진행한 《조형상황Ⅱ》(1971-1973) 전시에서는 직접 한국에서 공수한 천과 작가가 직접 대나무를 깎아 만든 살로 수백 개의 연을 만들어서 참여자들과 함께 날렸다. 이때의 영상은 기승전결이 없고 초점이나 각도도 제각각인데, 카메라를 빌려서 여러 참여자들이 돌려가면서 찍었기 때문이다. 김순기는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참여하는 보르도(Bordeaux)의 10월 축제에 초대받아 <조형상황 Ⅲ>(1973)을 발표하였다. 작가는 흰 풍선 아래에 천을 늘어뜨려 그 밑 부분에 돌을 매달고, 일정한 시간 후에 돌을 잘라냈다. 해방된 풍선들은 하늘로 향해 날아올라 사라졌다. <조형상황 Ⅱ>와 <조형상황 Ⅲ>는 개방된 장소에서 날씨와 풍향 등 통제할 수 없는 조건에 맡기는 작업이다. 김순기는 <조형상황 Ⅰ>을 발표한 후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Surface)* 작가들과 교류하기 시작하며 당시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추구하던 프랑스 미술계의 흐름과 함께했다.

  • *쉬포르 쉬르파스는 1970년대 프랑스에서 회화의 방식을 실험하는 전위적 예술그룹으로 전통적 기법을 벗어나서 캔버스의 나무 지지체를 없애고 화포를 펼쳐놓거나 접어놓는 등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였다.


  • 조형상황Ⅰ- Ⅲ
  • 1971 - 1974

    Ⅰ: 단채널 영상, 컬러, 무음 Ⅱ: 3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Ⅲ: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https://www.mmca.go.kr/collections/collectionsDetailPage.do?wrkinfoSeqno=9454&artistnm=%EA%B9%80%EC%88%9C%EA%B8%B0

    김순기, '조형상황 III – 보르도의 10월', 1973,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4:3), 마스터 필름 16mm, 13분 45초 

어린 시절부터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파리로 가겠다는 꿈을 키웠던 김순기는 1971년 니스에 위치한 국제예술교류센터(Centre Artistique de Rencontre International) 의 초청작가로 선발되어 도불했고, 국제예술센터(빌라 아르손Villa Arson)에서 서울대 미대 시절 발표한 '소리'를 발전시킨 야외 설치 작품 '조형상황 Ⅰ'을 발표했다. 
니스 국립장식미술학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4학년으로 편입했으며, 1972년 전국 미술대학 우수졸업생 36인 중 한 명으로 선발되어 파리에서 전시에 참여했다.

1970년대 초반 프랑스 문화부는 68혁명의 영향으로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해 장학생으로 선발하고 졸업 후 교수로 임용하는 정책을 시행했는데, 김순기도 이 정책에 따라 1974년 마르세유 고등미술학교에 임용되었으며, 니스 국립장식미술학교, 디종 국립고등미술학교 등에서 교수로 재임했다. 
보수적인 파리 미술계와 달리 니스, 앙티브, 카뉴 쉬르 메르, 깐느 등과 마르세유, 엑상 프로방스와 같은 지역에서는 자유로운 분위기로 새롭고 실험적인 미술 실험이 적극 장려되었다. 
'조형상황 Ⅱ'와 '조형상황 Ⅲ'에서 김순기는 미대 학생, 작가, 일반인과 함께 대형 풍선을 만들어 해변에서 바람에 날리고 영상으로 그 장면을 담았다.

작품에 사용된 카메라는 방송용 고가 장비로, 김순기는 직접 촬영하지 않고 참여하는 일반인들과 작가들에게 카메라를 맡겨 자유롭게 촬영하도록 하였다. 
롤랑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을 말하며 독자의 참여를 통해 텍스트의 의미가 완성된다고 했듯이 김순기도 예술이 열린 시공간에서 만들어진다고 해석했다..

출처 : 아시아에이(http://www.asiaa.co.kr)

그림에 기댄 글, 글에 기댄 그림

 그림에 기댄 글, 글에 기댄 그림
글 맹지영
  

월간미술 2020년 4월호 Vol.423

26 Untitled Drawings, 1995

 

종이에 연필과 색연필, 30×23cm

빵산별 원정대 bread_mountain_star expedition, 2020


예술
X과학 = 상상력+유머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에는교감 Correspodances’이라는 시가 실려 있다. 시에서 보들레르는 인간과 사물의 교감, 감각과 감각의 교감에 대해  쓰고 있다.


자연은 하나의 신전, 거기 살아 있는 기둥들에서 이따금씩 어렴풋한 말소리 새어나오고,

인간이 그곳 상징의 숲을 지나가면, 숲은 정다운 시선으로 그를 지켜본다.
밤처럼 그리고 빛처럼 끝없이 넓고 어둡고 깊은 통합 속에  메아리 멀리서 어우러지듯, 향기와 색채와 소리 서로 화답한다.

숲은 정다운  시선으로 그를 지켜본다 것은 사물이 인간에게 말소리와 시선을 보내 교감하는 것을 상징한다. “끝없이 넓고 어둡고 깊은 통합 아득한 수준에서 일어나는 온갖 감각들과 사물들의 통합이다. 시의 내용을 마디로 요약하면모든 것은 서로 통한다 말이다. 사물이든 감각이든 사람이든 말이다. 통섭이니 융합이니 온갖 매끄러운 말들이 판치는 요즘에도 이런 식의 통합이 가능할까 ?




 
보들레르는 <악의 > 1857년에 발표했다. 지금에 비해 모든 것들이 암흑에 싸여 있던 옛날이니까 이런 통합이 가능했다고 수도 있다. 하지만 19세기는 암흑의 시기가 아니었다. 거꾸로, 수많은 발명과 발견을 통해 인류가 눈을 뜨던 시기였다. 1859 다윈은 <종의 기원> 발표하여 유전의 법칙을 세상에 알렸다. 1861년에 루이 파스퇴르는 《자연발생설 비판》에서 발효가 미생물의 증식 때문이란 사실을 밝혔다. 1822년에 찰스 베비지는 최초의 기계식 컴퓨터를 발명했고 1831년에 마이클 패러데이는 전자기유도법을 발명하여 인류가 전기를 있는 기초를 놓았다. 이런 식으로 19세기의 발명과 발견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지식은 통합과는 정반대로 점점 세분화되고 전문화되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보들레르의교감 아마도 역설적으로 세상 모든 것이 서로 통하던 마지막 불꽃에 대한 증언이었는지도 모른다

 
예술과 과학 사이에 이런 통합이 일어나려면 볼트와 너트 조이듯이 강제로 결합해서는 되고 용접하듯이 고열로 무리스럽게도 되고 윤활제와 접착제가 필요하다. 그것들의 이름은 상상력과 유머다. 상상력은 필요 하냐면 예술과 과학에 숨어 있는 틈을 발견하는데 필요하다. 흔히 예술과 과학을 통합하려는 사람들은 양자의 강한 면을 최대한 강하게 하고 극대화하고 엄청 뾰족하고 무시무시하게 갈아서 맞부딛히게 하려고 한다. 상대방의 목에 창을 들이대고 있는 사람이 친해질 리가 없다. 기운을 빼고 허술한 면을 보여야 친해질 있다. 상상력은 예술과 과학의 허술한 면을 보아버리는  관찰력을 키워준다. 심오하고 난해하기만한 예술과 과학의 나이를 낮춰서 순진하게 만날 있게 해주는 것이 상상력이다. 상상력으로 양자의 허술한 점을 찾아냈다 치자. 다음에는 둘을 적당히 붙여야 한다야구선수와 수영선수가 만나서 같이 있는 운동이 하나도 없지만 농담은 나눌 있듯이, 예술과 과학도 농담을 통해서 만날 있다. 그게 유머의 역할이다. 유머란 어설프게 웃기는 치기가 아니라 켜켜이 쌓여 있는 의미의 무게를 살짝 비틀어 다른 면을 보게 해주는 여유 혹은 재주의 감각이다.


 
작가 안데스는 바로 그런 상상력과 유머를 통해 지질학이라는 어려운 과학에 다가간다. 시작은 안정란이라는 사람의 남미여행이다. 아르헨티나의 살타 부근을 여행하던 안정란은 막막하게 넓은 평원에 우뚝 솟은 눈을 이고 있던  안데스산을 보게 되고, 광경에 감동을 받아 이름을 안데스로 바꿔 버렸다. 그게 바로 위에서 설명한 보들레르의 교감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안정란이라는 사람과 안데스라는 산이 교감을 일으켜 안정란이 안데스가 됐다. 아마 안데스 산에도 뭔가는 바뀌었을 것이다. 이제 안데스가 안정란은 생각하기 시작했다. 태고 적에 어떻게 저런 높은 산이 생기게 됐을까? 그것은 지질학의 영역이다. 지질학은 암석학, 광물학, 퇴적학, 고생물학, 광상학으로 나뉘는데 화학과 물리학이 바탕이라서 그것들을 해야 지질학도 있다. 야구선수나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아주 어릴 적부터 혹독하게 훈련해야 하듯이, 지질학이나 화학, 물리학도 어릴 적부터 잘해야 어른이 돼서 있다. 대학에서 과학이 아니라 미술을 배운 작가 안데스로서는 그런 과학들을 갑자기 하는 재주는 없었다. 대신 그가 택한 방법은 자기만의 지질학을 만드는 것이었다.

볼리비아 포토시, 2017


  여기서 보들레르의 교감이 부활한다. 지질학 자체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지식을 함부로 아무 현상에나 갖다 대기가 어려우니 자기가 있는 지식으로 탈바꿈 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만들기이다. 여기서 안데스는 자신 만의 과학을 만들어낸다. 겹겹이 쌓인 안데스산의 지층들을 보고는  케익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후로는 산의 다양한 면모들이 빵으로 보이는 착시현상까지 경험하게 된다.

, 오븐, 밀가루, 이스트로 빵을 만드는 베이킹의 원리를 알면 , , , 바람으로 구성된 지구의 형성과정을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베이킹과 지질학을 공부해 나갔다. 산이 어떤 근원적 힘에 의해 밀려 올라가는지를 공부하다가 지질학에서 물리학으로 수학으로 천문학으로 연구분야가 넓어지면서 결국 우주의 기원을 베이킹으로 추적하게 되었다케익은 퇴적하지만 빵은  우주처럼 팽창하는 것이므로!” (팩토리2 홈페이지에서 발췌여기서 안데스는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지난한 과학의 과정 속으로 들어간다. 산을 빵과 연결한 것은 시적으로 말하면 사물과 사물, 생각과 생각의 교감이라 있고, 달리 쉽게 말하면 지질학과 빵굽기를 연결한 유머 넘치는 상상력의 발휘라 있다.




  여기서 안데스는 매우 중요한 과학의 절차를 따르는데, 그것은 자신의 생각을 가설로 세우고 그것을 실험을 통해 검증한다는 것이다. 과학과 예술을 결합했네, 실험을 하네 하는 작가들이 많지만 가설을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절차를 밟은 사람을 적이 없다. 왜냐면 그들이 과학의 논리가 얼마나 엄밀하고 객관적이며 냉정한지 모르기 때문이다. 베이킹의 원리를 통해 지구의 형성과정을 있다는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안데스는 일단 실제로 다양한 빵을 구웠다. 달걀우주론, 십자공갈론분자 샌드위치 등의  빵을 구워서 과정을 하나의 열역학적 과정이라 있는 지구의 형성과정과 비교했다. 지구의 내부에서는 오늘도  열과 압력의 오르내림, 부피의 팽창과 수축, 물성의 변화, 에너지 대사 일이 벌어지는데, 이는 빵을 굽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흡사하다.



무지한베이킹


어떤 작업을 해도 혼신의 힘을 다해 창의력의 에너지를 짜내는 안데스의 정성에 화답이라도 하듯 친절한 지질학자들과  연락이 닿았고 분들은 안데스와 다른 일반인들의 지질학 관련 질문에 진지하게 답변해 줬다. 사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일반인의 질문이란 넌센스인 경우가 많다. 과학이란 체계적인 지식으로 차근차근 배워야 하는 것인데 일반인들은 대개 과학을 감각으로 대한다. “ 바위는 많이 딱딱합니다라는 진술은 과학적인 진술이 아니다. 바위의 단단함을 과학적으로 나타내려면모스 굳기계 따라 표현해야 한다모스 굳기계란 주위에서 구할 있는 10가지 광물들을 서로 긁어 보아서 어느 쪽이 흠집이 나는지 보고 매긴 '상대적인' 굳기이다. 가장 연한 광물인 활석을 1 매기고 2 석고, 3 방해석, 4 형석, 5 인회석, 6 정장석, 7 석영, 8 황옥, 9 강옥, 10 금강석의 순으로 매긴 것이다. 따라서 바위는 석영에 긁어보니 흠집이 생긴 걸로 봐서는 굳기가 7이상인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해야 과학적인 표현이다.




모스굳기계


 안데스는 항상 진지했던 그의 습관대로 지질학을 나름대로 교과서를 보며 공부하고, 학자들에게도 최대한 누가 되지 않게 체계적으로 질문하여 상당한 전문적인 지식을 쌓았다. 만일 지질학에 대한 유식함 정도를 숫자로 나타내어 1=완전 무식 ..... 10=박사급이라고 한다면 안데스는 그래도 5 6 것이다. 산과 빵을 비교한 것은 안데스산에서 시작됐지만 안데스산은 워낙 거대해서 어찌 연구해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안데스는 2019년에 지질학적 베이커리라는 주제로 팩토리2에서 렉처 퍼포먼스 형식의 전시를 열고는 2020년이 돼서는 지질학의 현장으로 달려들어 연구해야겠다고 느낀다. 그래서 <빵산별 원정대> 조직하여 서울의 산들을 대상으로 지질학적 연구를 하기로 하고 1주일에 한번씩 개의 산을 골라 지질학적 현상들을 관찰하고 해석해 보는 산행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빵과 산은 앞서 말한대로 합쳤는데 별이 들어간 이유는 결국 지질학은 천문학과 닿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멀리 떨어진 별도 결국 성분은 다를지 몰라도 바위와 흙으로 있고 산과 빵이 열과 압력에 의해 변하듯이 별도 그렇게 변할 것이라는 것이 안데스의 생각이다.



통밀우주본
, 2019

  <빵산별 원정대> 안산, 인왕산, 북한산, 도봉산 네군데 산을 고르기는 했는데 서울 전체의 암질이 비슷비슷한 화강암이라 과연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의아해 하면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사실 산들은 멀리서 보기에도 비슷해 보이는 희멀건 화강암으로 있기 때문이다. 산의 지질학에 대한 질문을 구체화하고 질문의 상상력을 펼치기 위해 안데스는 일반인 참가자들을 모집했다. 그들은 같이 산행하면서 바위에 나타나는 지질학적 현상들을 관찰하고 긁어보고 그려보고 사진 찍어보면서 질문을 만들어나갔다. 그들의 지질학 유식함 정도는 위의 스케일에서 1-2수준이었다. 어떤 이는 북한산에 가서화강암이 뭐에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은 마치 양계장에 가서 닭이 뭐냐고 묻는 것만큼 어처구니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은 중요하다. 아인슈타인과 리차드 파인만 같은 최고 학자들도 연구가 막히거나 풀리지 않으면 대학교 1학년이나 일반 시민을 위한 강좌에서 완전 초보의 시점에서 질문을 받고 전문용어 없이 설명 해보면서 통찰력을 넓히고 자신의 언어를 바꿀 있었다고 한다. 지질학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뭔가 창의적인 생각이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안데스는 상상력을 독점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질학자는 산행에 동행시키지 않았다. 지질학자가 현장에서 질문에 대답해 버리면 질문의 빵은 아무리 상상력의 이스트를 넣어도 부풀어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지질학에 대한 질문들 혹은 통찰들을 속에 꾹꾹 담아서 집에 가져왔다. 그것은 빵반죽을 해서 하루 재워두는 것과 같았다그것은 빵반죽을 해서 하루 재워두는 것과 같았다. 하루 자고 일어나자 질문은 숙성했고 마침내 지질학자에게 물어볼 만한 것이 됐다.


빵산별원정대 도봉산 탐사, 2020


사실 서울의 산들은 비슷한 화강암들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번째 탐사에서 해발 290미터 밖에 안되는 안산을 고른 것은 신의 한수였다. 안산은 의외로 흥미로운 곳이었다. 참가자들이 안산에서 가져온 돌들을 지질학자는 재미난 얘기를 해줬다. “홍제동 쪽은 18천만년전 공룡이 살던 쥬라기에 형성된 화강암이에요. 그리고 연희동쪽은 굉장히 오래된 18억년 변성작용에 의해 생긴 편마암이에요. 안산 정상에서 등산로를 따라 내려온 것은 젊은 돌과 오래 돌의 경계를 따라 내려온 것입니다빵으로 치면 빵의 겉껍질면을 따라 내려온 것이죠. 여러분들은 연희동의 빵과 홍제동의 빵의 경계를 따라내려온 것입니다.” 지질학자의 대답은 과학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쥬라기에 형성된 돌이면 거기 공룡 발자국이 찍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백운산 토르, 사진 이영준, 2020


바위를 관찰할 일반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무래도 특이한 형상들이다. 중에서도 특히 화강암에 다른 암석들이 길게 맥을 이루듯 틈입한 모양이 많은 질문을 불러일으켰다. 참가자가석영맥이 어떻게 생겨나죠? 예전에는 액체였나요? 어떻게 들어오죠?”하고 다그치듯 묻자 지질학자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한다. “액체였습니다. 뜨거운 열수였는데 처음에는 내부에서부터 결정화가 되면서 겉표면에 잔류맥이 남는데 그것들이 석영맥을 만든다든가 여러 가지 맥들을 만듭니다. 석영은 모스 경도계 7 단단한 편에 속합니다.” 다른 참가자가 묻는다. “석영이랑 수정이 같은 거에요?” 지질학적으로 보면 우문이다. 왜냐면 너무 당연한 것을 묻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일반인이 따로 과학을 과외공부 하듯이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는 과학에 대해 알기 힘들다. 지질학자는 참을성 있게 대답해 준다. “, 석영이 수정이죠. 화학적 성분은 산화규소 SiO2입니다. 순수한 SiO2 투명한데 불순물이 들어가면 보라색이라든가 색을 띠게 됩니다.”


 그런데 지질학의 담론들은 도무지 초현실적이어서 이걸 어떻게 믿어야 하나 난감해 때가 많다. 사실 과학에서 다루는 것들은 눈에 보이고 인간의 감각으로 지각할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무슨 황당한 SF소설처럼 들릴 때가 많다. 분자, 원자, 전자, 양자 눈에 보이는 것들인데 과학자들은 손에 들고 있는 소보루빵 얘기 하듯이 하니 그들은 일반인의 감각세계와 다른 신선계에 살고 있음이 틀림 없다. 북한산의 화강암이 18천만년 전에 지하 20킬로미터에서 생성됐다고 하는데 옛날에 깊은 땅속을 어떻게 들어가 본단 말인가. 가뜩이나 궁금한 것이 많은데 지질학자는 황당한 얘기를 한다. “ 인간은 길어야 100 사니까 시간의 기본단위가 1년인데 지구의 나이는 45억년으로 굉장히 길기 때문에 지질학의 기본 단위는 백만년이에요. 그걸 1MA라고 하지요. 그래서 화강암의 연령이 18천만년이라면 우리는 180MA라고 하지요. 지질학에서는 천년은 찰라지요.” 세상에 천년이 찰라라니. 지질학자가 살까지 사나 두고 보자.

  그런데 과학자가 예술가의 프로젝트에 참가해서 얘기 하다 보니 과학이 예술에 오염되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마침내 지질학자도 빵맛에 취했는지 스스럼 없이 지질학적 현상을 빵만들기의 과정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 바게트빵이 딱딱하잖아요. 딱딱할 때는 곰팡이가 겉에만 생기거든요. 바게트를 부러트리면 안에가 상하거든요. 화강암도 과거에 지하 깊은데서 만들어지면 괜찮은데 지표로 올라와서 노출되면 풍화작용을 겪게 됩니다. 지표에 노출된 후에 바람과 풍상과 물과 융기현상 영향을 받아서 점점 둥글둥글하게 됩니다. 이러한 화강암을 지형학적으로 핵석이라고 하고 이를 풍수지리 하시는 분들은 봉황의 알이라고 부릅니다.” 참가자가 결정타를 날렸다. “작가가 지질학을 빵과 연결해서 보고 있는데 지질학 전문가께서 보시기에 빵이 발효되고 만들어지는 것과 지질학의 관찰을 연결시키는 것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어떤 의견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그러자 과학자는 자백하고 말았다. “ 프로젝트를 제안 받았을 처음에는 생뚱 맞았습니다. 빵과 지질학이 무슨 상관인데. 퇴적암의 경우는 암석을 만드는 지질학적 주요인이 물이거든요, 화성암의 경우는 온도고. 발효는 지질학적 현상과 쉽게 연결시키기는 어렵지만 물과 불은 연결시킬 있어서 상당히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효모의 온도, 압력에 따라 빵의 모양이 달라지는데 돌도 온도와 압력에 의해 많은 변화를 겪습니다. 화성암은 내부로부터 여러 가지 결정화가 이루어지면서 성분들이 미묘한 차이에 의해서 이동을 하거든요. 여러 가지 생성과정을 거치면서 광물들이 여러 가지 모양을 가지게 됩니다. 빵의 경우 안은 부드럽게 바깥은 딱딱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경우 안에서 빵의 성분들이 이동하거든요. 돌과 빵이 화학적으로, 생성학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아요작가가 제안하고 지질학자가 확인해 줬으니 지질학과 빵만들기의 연관짓기는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예술과 과학을 연결한다는 시도들은 대개 과학을 기술적 수단으로 삼아서 화려한 전자쇼 같은 것을 만들지만 속은 공허한 경우가 많다. 상상력과 유머가 결여되 있기 때문이다. 안데스의 상상력과 유머는 지질학자를 녹여버렸다. 그리고 마침내는 단단한 바위도 녹여서 빵처럼 만들어 버렸다. 바보 같은 질문은 녹여서 상상력의 촉발제로 만들었다. 이제 안데스는 녹일까.


비평이영준

https://bread-mountain-star.org



2021 빵산별 원정대는 관악산을 오릅니다.


등산 : 10 20 / 27 10AM-4PM

줌워크숍 : 당일 6:30PM-9PM

주최 : 지질학적베이커리 @geologic_bakery

후원 : 서울문화재단

http://bread-mountain-star.org

@bread_mountain_star가지게 됩니다. 빵의 경우 안은 부드럽게 바깥은 딱딱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경우 안에서 빵의 성분들이 이동하거든요. 돌과 빵이 화학적으로, 생성학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아요작가가 제안하고 지질학자가 확인해 줬으니 지질학과 빵만들기의 연관짓기는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