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빚다

개념의 형상화… 조각가 정서영씨 전시 

조각가 정서영씨가 서울 신사동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서 자신의 작품‘거위’(왼쪽) 옆에 앉았다. 들어온 쪽 맞은 편으로 난 또 다른 흰 문을 열고 나가면, 유리벽을 통해 햇볕이 스며드는 나무 마루 위에 2m 짜리 인조 파초를 여러 개 꽂은 둥근 시멘트 덩어리가 놓여있다. ‘1년에 한번은 치워야 할 것’이라는 제목이 달려있다. “어려서 흙 장난 할 때, 흙 더미를 쌓아 무엇인가를 만들고, 나뭇가지를 꽂아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완성’한 것을 자축하고, 돌아서서 잊어버리던” 작가의 기억이 스며있는 작품이다. 그 옆엔 작가의 공책에 적힌 길이 4㎝ 짜리 의미 없는 낙서를 4.6m 크기로 확대한 뒤, 그 모양 그대로 반 뼘 높이 알루미늄 틀을 만들어 모래를 채운 ‘정오에서 자정까지’가 놓여있다. 한 평론가는 정씨를 두고 “구체적인 사물이 아니라, 인간의 머리 속에 존재하는 ‘개념’을 조각으로 만드는 작가”라고 말했다. 가령 ‘거위’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특정한 진짜 거위가 아니라, “우리들이 ‘거위’라고 생각하는 무엇인가의 표상”이라는 얘기다. 생전 눈(目) 싸움으로는 남과 겨뤄 져 본 일이 없을 듯한 눈동자로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정씨는 “무슨 뜻일까, 생각하며 보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작품이 무슨 뜻인지, 어떤 의미인지, 정답을 찾으려고 궁리하지 말아주세요. 사물 하나 하나가 무엇인가를 상징하고 은유한다고 지레 믿지 말아주세요. 그보다는 작가가 작품을 ‘어떻게’ 다뤘는지, ‘왜’ 그렇게 했는지 궁금해하면서 봐주시면 좋겠어요.” 정씨는 “가끔, 대중과 소통하는 능력이 내 세포엔 없나 봐, 싶다”고 말했다. “작가마다 집중하는 부분이 달라요. 내가 집중하는 부분,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느끼는 어떤 영역이 다른 작가나 대중과 공유할 수 없는 영역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외롭냐”고 묻자 정씨는 “외롭죠, 그렇지만 외롭다고 쓰지 마세요” 했다. “왜요?” 하고 되묻자,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쿨한 척 하려구요” 했다. 
 글·사진=김수혜 기자 조선일보 2007.03.27

경기도 미술관 소장품 

정오에서 자정까지

정서영(1964-)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와 동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하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미술대학 연구과정을 졸업했다. 정서영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사소하고 볼품없는 사물들이나 행위에서 출발하여 최소한의 개념적 변형을 가하는 작업들을 발표해 왔다.

2007
알루미늄, 모래, 시멘트, 인조식물, 베이클라이트, 조명기구
가변크기

정서영의 작품은 이질적인 오브제들의 구성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 오브제들은 조용하고도 개인적인, 혹은 별개의 작품들로, 개별 작품들로서도 각각 설득력 있는 작품이지만 그 전체 구성을 통하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작가는 이미 알려진 이미지나 오브제를 사용하거나 복제할 뿐 아니라 자신의 작품끼리도 서로를 밀접하게 참조하면서 작가의 언어체계 이전에 내면의 눈으로 포착된 사물, 상황, 사건, 즉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비언어적인 것을 조형적으로 구현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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