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렇게 즐거운 음모론, 킴킴 갤러리가 벌인 Stuffs!


이영준 <대강평론가>

내가 영원히 사랑할 거 같던 미술에서 멀어지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갤러리들의 악취미도 있다. 물론 여우가 신 포도를 탓 하며 저 포도는 맛 없다고 눈을 흘길 때 여우의 간교함이 큰 문제지만 포도가 시어서 맛이 없는 것도 문제긴 하다. 미술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온갖 악취미의 대행진은 언젠가는 멈춰져야 하겠지만 누가 그것을 멈출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리라. 평론가가 악취미를 고발하는 글을 쓰던가 작가가 악취미를 날려 버릴 수 있는 좋은 작업을 보여주던가 수집가, 손님들이 악취미에 침을 뱉던지 해야 할 거 같은데 세상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으니.... (여기서 구축이란 쌓는다는 뜻이 아니라 몰아낸다는 뜻이다). 악취미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좋은 취미를 쌓아 악취미가 저절로 녹아 없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꼭 그렇게 쉽게 되기야 하겠냐만은)
킴킴갤러리는 일단 아무런 주장이 없어서 좋다. ‘000을 함으로써 000을 00하게 하고‘류의 장황한 선언적 주장이 달린 행동들은 대개 말에 비해 실효성이 적다. 즉 텅 빈 기표들이다. 이와는 달리, 킴킴갤러리는 국내외의 상큼한 예술가들의 콜렉숀을 다량 보유하고 있다. 그것들은 맛깔스럽고 솔직한 기표들이다. 그것은 마치 중병을 앓아 입맛을 싹 잃은 환자의 입에 생전 먹어본 적이 없는 희한한 과즙을 한 숟깔 떠넣었을 때 정신이 번쩍 드는 그런 느낌이다. 즉 킴킴갤러리는 보여준다. 좋은 취향을 잘 꾸며보여준다. 국내에 이런 갤러리가 몇군데나 되었던가? www.kimkimgallery.com를 가보면 킴킴갤러리의 콜렉숀들을 다 볼 수 있으니 내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독자들 스스로 판별해 보시기 바란다. 그런데 이 리뷰는 지극히 편파적이다. 내가 킴킴갤러리의 취향에 대해 100% 찬성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신사동에서 열린 ’Stuffs!'전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성낙영, 성낙희의 그림에 매료되고 말았는데, (사실은 성낙희 그림에 조금 더 매료됨) 평면에 새겨진 이미지라고는 사진과 서예밖에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좀 이례적인 일이었다. 왜 그런가 하고 자기성찰하듯이 좀 더 가깝게 들여다 보고는 그 비밀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디스플레이에 있었다. 그들의 그림은 일견 아무렇게나 걸려 있는 듯 했다. 그런데 입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려는 순간 왼쪽 벽의 그림과 오른쪽 벽의 그림이 나를 가운데 두고 팽팽한 자기장의 대결을 펼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머리칼은 그 자기장의 충만 속에서 쭈뼛 서고 말았는데, 다행인 것은 두 사람의 그림이 그런 나에게 진정제가 되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층 마음을 놓고 실눈을 뜨고 그림과 벽을 자세히 관찰해 보니 빠루를 이용해 벽을 떼어낼 때 생기는 뜯긴 자국, 물감이 흗뿌려진 자국, 천장에서 낡은 장식물을 떼고 남은 먼지자국 등 무엇 하나 그림과 신경전을 펴고 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물론 두 자매화가들의 그림도 그런 사정을 염두에 두고 그린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이런 긴장은 전시장의 모든 벽과 바닥을 다 훑어 볼 때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 모든 정황을 종합해 볼 때 킴킴갤러리가 벌인 ’Stuffs!'전은 하나의 음모론으로 압축될 수 있겠다. 즉 악취미에 지친 눈에 콜라겐을 부어넣어 팽팽하게 만들고 어지러운 긴장감의 놀이로 시민들을 즐겁게 하자는 음모이다. 이런 음모라면 얼마든지 놀아날 수 있겠다.

in Art in Culture 아트 인 컬쳐
Mar. 2012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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