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정서영

via http://magazyn.co.kr/9829
Mar. 2012
Seoul


정서영은 조각과 설치, 드로잉을 근간으로 하여 사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긴장 관계나 불합리한 상황들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랭보가 시인을 ‘불을 훔친 사람’에 비유했듯이, 예술가란 본디 타고난 생래적 감각을 통해 현실에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고 인간의 가능 의식을 확장하는 사람이다. 정서영 역시 그러한 태도로 이전에 한 번도 문자나 시각 언어로 표현된 적이 없지만 작가의 예민한 감각을 통해 실재로서 경험된 불합리한 상황들의 내적 논리와 모순들을 보여주려는 모험을 지속하고 있다. 시인이 골라낸 시어처럼 섬세하고 지적인 태도로 선택된 정서영의 사물들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며 보는 이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렇지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 긴장감 속에서 슬며시 드러나는 유머러스한 감정을 통해 우리는 이 모호하고 불안한 상황과 부조리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으니 말이다. 최근에는 공연과 영상으로까지 작업 영역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는 작가 정서영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 작품 제목이 작품만큼이나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들면서 무언가를 환기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사과 vs. 바나나>, <모닥불을 그냥 거기 내려 놓으시오>, <책상 윗면에는 머리가 작은 일반 못을 사용하도록 주의하십시오. 나사못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괴물의 지도, 15분> 등 제목이 독특합니다. 2006년의 에르메스 인터뷰 기사를 보면 제목 자체가 “다른 작업들처럼 독자적이면서도 언어로서 같은 태도를 보여줬으면 한다”고 하셨습니다. 작품이나 전시의 제목을 짓는 특별한 기준이나 방법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 제가 제목을 정하는 데는 대략 두 가지 태도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그냥 보이는 대로 말하는 것. 예를 들어 작업이 탑이면 제목도 탑, 얼룩이면 그냥 얼룩으로 말이죠.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보이는 것과 말을 똑같이 하는 거죠. 또 하나의 경우는 그 작업 자체를 아무 것도 지시하지는 않지만 ‘세포 조직이 같은 말’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작업을 직접적으로 상징하거나 표현하지는 않지만, 그 작업이 나올 때의 정신적인 배경이라든가 경험이 제목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생각한 것, 영향 받은 것, 기술적인 문제로 고생하거나 스스로가 바보 같아서 화나거나 뭐 좀 잘 한 것 같아서 흐뭇해 하는 등 작업을 하면서 경험한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그 중에서 언어가 되었을 때 작품과 같은 성질이면서 작품을 가둬 놓지 않을 수 있는 상태의 제목을 찾습니다.

2. 선생님의 작업에서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어떤 기이한 느낌과 인상을 전달해줍니다. 작업의 시적인 분위기나 부조리한 느낌들 때문에 누보 로망이나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20세기 초의 부조리극과 철학적, 미학적인 유사성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사실 영향이야 너무 많은 것들에서 받았죠. 어떤 예술가로부터나 혹은 사회적 사건이나 겪어온 일로부터 받은 것일 수도 있죠. 그런데 전 제 작업이 다루는 주제가 무엇이라고 알리기 위해 “주제 이거, 그리고 밑줄 긋고 해당 레퍼런스는 이거”라고 밝히는 것이 아주 불편해요.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결벽적으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으려고 빙빙 돌렸어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제 작업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가 ‘낯설게 하기’, ‘일상을 비일상으로 전환하기’, ‘오묘한 분위기’, ‘애매함’ 이런 식으로 정의하면서 제 작업을 둘러싼 분위기만 언급하다 말더군요. 그런데 사실 그런 말들은 내 작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작가들의 작업에도 적용이 가능하잖아요. 더군다나 ‘낯설게 하기’ 같은 말은 이제는 매우 무딘 예술 언어라서 가능하면 쓰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시적, 부조리, 기이함과 같은 말이 생각나는 이유는 오랫동안 제 관심이 향해 있는 곳에서 제가 움직이는 방식이 자아내는 분위기 때문일 텐데요. 분명 현실로서 존재하고 느껴지는데 알 수 없는 것, 그러니까 신비하고 비밀스러워서 알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과장됐거나, 비논리적이거나, 두터운 속임수거나, 잊어버렸거나, 억압된 것과 같은, 이런저런 이유로 알 수 없는 상태로 침묵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궁금해하면서 제 작업 자체가 그것들을 감당하고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시적인 느낌은 아마도 그 침묵의 무게에 눌리지 않기 위해 ‘시적 정확성’이 필요하기 때문이겠지요.

3. 선생님의 작업에는 작업을 관통하는 일관된 태도와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제 작업에서 일관성을 찾아내셨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저의 예술가로서의 체질이지 않을까 합니다. 원래 예술가는 기본적으로 ‘아직은 없는 것’에 대한 실체를 계속 느끼는 사람들이고, 어떤 특수한 기관을 갖고 있어서 자꾸 그걸 찾아내어 현실 속에 구현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죠. 저 역시 작가로서 그런 생리적인 체질에 충실히 부응하려고,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애써왔던 것 같아요. 제가 요즘 소설가 최인훈씨의 글들을 새로 엮은 『바다의 편지』를 열심히 읽고 있어요. 그 책은 최근에 보기 드문 유려한 한국어로 예술의 아주 어려운 문제를 분명하고 깊게 다루고 있어서 여러 사람에게 권하고 있어요. 무식한 내가 이해하지 못했거나 언어화하지 못했던 것들을 꺼내들 수 있게 해주더군요. 그중에 “이해한 사람들에게는 실체지만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어요. 예술이 그렇고 사유, 학문이 그렇고, 삶의 한계가 그렇잖아요. 그 말이 굉장히 공감되었습니다. 제가 예전 인터뷰에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실제로 꿈을 꿨고 꿈속에서 분명히 무언가 생전 알 수 없었던 매우 낯선 것을 느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는 거에요. 하지만 나에게 있어 그것은 분명히 실체인 듯 아주 강력한 느낌이어서 꿈에서 깨어나서도 한동안 그 느낌을 기억할 정도였지요. 무엇으로도 형태화할 수 없지만 너무도 강한 존재감이었습니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강력한 의문과 한계에 시달릴 때라 그런 꿈을 꿨던 것 같은데 최인훈씨의 글을 읽으면서 그때 꿈에서 제가 느낀 것을 이렇게 말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렇게 예술가는 없었던 실체를 자꾸 생산해내고자 하는 한심한 동물이기 때문에, 저도 그런 예술을 생산해내는 조직 자체에 굉장히 충실하면서 작업을 해왔던 것 같아요. 제 작품에 어떤 일관된 분위기가 있다면 그런 태도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에서의 삶은 굉장히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상태를 계속 극복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투쟁을 끊임없이 해야 어렵사리 제정신을 차리고 살 수 있어요. 그런 상황과 사회적 구조 속에 살면서, 이 불합리한 상태를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 어떻게 내가 인간으로서 존재를 계속 유지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더 그런 꿈을 꾸지 않았나 싶어요.

4. 2010년 LIG 아트홀에서 있었던 공연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 이 공연의 시발점은 2008년 광주 비엔날레에서 전시했던 <괴물의 지도, 15분>이었어요. 그 프로젝트는 세 번에 걸쳐서 완성되었는데, 그 중 마지막이 공연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김장언(전시기획자)씨가 이 작업을 광주 비엔날레에서 처음 본 후 연극적으로 풀면 재미있겠다고 혼자 생각을 하다가 공연을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작업 중에 Mr. Kim과 Mr. Lee의 대화가 있는 드로잉이 있는데, 그게 사실은 이어지는 대화가 아니에요. 겉으로 보기에는 논리적으로 이상한데, 그 내부를 보면 주고 받는 대화가 만들어놓은 매우 필연적인 공간이 있거든요. 대화로는 전혀 연결되지 않지만 주고받는 말들을 읽다 보면 그 언어 아래로 교환하고 있는 내용을 이해하게 돼버리는 거에요. 내러티브를 만들지 않아도 공연을 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가장 두려운 점이 한 번도 다루어 본 적 없는 실제 시간의 문제였는데 늘 하듯 뻔뻔하게 하기로 하고 시작했습니다.

5. 공연 스틸컷을 보면서 등장인물들이 선생님의 다른 조각 작품들과 매우 흡사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조금씩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는 정적인 등장인물들은 살아있는 생명체인데도 불구하고 사물화된 조각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공연의 형식을 빌려 온 이 작업에서 중점적으로 의도한 것은 무엇인가요?

: 이 공연은 극장의 일반적 요소들을 재편집하기로 하고 작업을 시작했어요. 관객이 돌아다녔지 배우들은 안 움직였어요. 관객석은 완전히 비어있었고 소리는 관객들이 각자 이어폰을 끼고 혼자만 들었어요.
출구도 다 바뀌었고 동선도 완전히 바뀌어서 분장실로 들어와서 출구로 나가게 되어 있었죠. 극장 안에 사람이 붐비면 안 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들어오는 사람 수도 제한해서 욕 많이 먹었죠. (웃음) 관람 인원을 제한해서 다 보고 나가면 다시 한정된 인원이 들어오도록 했기 때문에 장사 잘 되는 식당처럼 사람들이 줄을 쫙 서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배우들이 가만히 앉아있게 되고 배우의 몸에 의해 완성되는 오브제들이 들어가서 조각 같은 형태가 되었죠.
등장인물들은 모두 완성된 형태가 아니었어요. 할머니와 젊은 여자, 요괴와 사람이 섞여 있고, 여자가 되다 만 남자인지 남자가 되다 만 여자인지, 서양 남자인지 동양 남자인지 알 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했어요. 딱 반씩 정체성이 왔다갔다하는 그런 상황. 재미있게 혼자 맘대로 돌아다니는 것은 개밖에 없고… (웃음)
극장 구조 역시 새롭게 했습니다. 극장의 무대 뒤쪽이 무대 도구들을 쉽게 내릴 수 있도록 주차장으로 난 길과 연결되어 있었어요. 이번 공연에서는 그쪽까지 무대로 다 연결을 해서 문을 활짝 열어 놓았었어요. 그러면 공연 중에 차가 홱 지나가고, 불이 번쩍하면서 웽 소리를 내면서 공연과 뒤섞이고 그랬어요. 이 공연은 그렇게 극장이 갖고 있는 모든 요소들을 한 상자에 집어넣어 뒤섞는 작업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공연을 보면서 내 조각 작업 같다고 하는 것은 배우가 가만히 있으면 굉장히 오브제처럼 분위기가 다듬어져 있기 때문에 내가 사람 조각을 한 거 아니냐고 하는 거죠. 그것 역시 굉장히 중요한 요소에요. 왜
냐하면 조각은 사람을 가까이 불러들여 잠시 거기 머물러 독자적인 시간을 갖게 하지요. 각 배우가 독자작인 사건으로 강하게 인지되어야 하기에 조용히 안으로 힘이 집중된 조각과 유사한 성질을 가져야 했어요. 극장 여기저기 따로 등장해 있는 배우들은 서로 분절된 개별적 사건이고 이들이 덤덤하게 한 공간에서 이어져 비현실적 시, 공간이 만들어 집니다. 이 공연을 본 지인이 “하이 코미디”라고 했다는 데 마음에 드는 표현입니다.

6. 선생님의 작업은 작품 못지 않게 공간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전시 공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제안을 거절한 경우는 없으셨나요?

: 제 작업이라는 것이 결국은 사물의 형태로 나오기 때문에 공간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것이 혼자 홀로그램으로 떠있는 것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상태로 현실 공간 속에 등장하고 보여집니다. 작품이 등장하면서 엮어지는 모든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하나도 차이가 없고 이러나 저러나 다 똑같다고 하는 걸 가지고 저는 계속 밀고 당기면서 생각하게 되요. 인지되지 않고 버려지는 차이를 끊임없이 불러내는 거지요.
공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거절한 적은 없어요. 솔직히 어떤 공간이건 작품을 설치하는데 불가능할 정도의 문제를 느끼지는 않지만, 좋아하지 않는 공간이야 있지요.

7. 말씀하신 것처럼 공간을 전혀 무시하고 작업을 만들어낼 수 없으니까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작업과 공간을 조율하실 거 아니에요. 어떻게 공간과 작품 사이의 균형을 맞추시는지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 전시를 준비할 때 공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어떤 매뉴얼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매번 새로운 공간과 만나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새로 만난 공간의 물리적 성격, 형태, 크기, 이 공간을 사용할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겁니다. 이 공간에 와서 전시를 보게 될 관람객도 고려하지만 공간을 사용하는 나의 신체적인 반응도 함께 살펴봅니다.
저는 작업을 공간에 설치할 때 가능하면 조화롭지 않은 방향으로 가려는 것 같아요. 제 작업의 구조와 작업을 경험하게 하는 방식이 편안한 것은 아니잖아요. 어쩔 수 없이 슬슬 갈등을 겪으면서 경험하게 되기 때문에,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도 제 작업과 비슷합니다. 어떻게 하면 가만히 있는 공간에 갈등을 일으킬 수 있을까 생각하는 편입니다. 문젯거리를 일부러 찾아내어 그 문제를 해결해가면서 공간의 생동감을 찾아내는 거죠. 이 공간에서는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이고, 사건이 일어날 때에는 당연히 충돌이 있으니 그 충돌을 흥미롭게 또 진지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공간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작업에 진입하게 될 때 좀 더 긴장된 마음을 갖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작품이 놓이는 위치를 미세하게 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mm의 차이에 쟁점이 나타났다 사라질 수 있으니까요.

8. 이번 ‘포럼&포럼’에 연사로 참석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건축과 그것의 역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건축이라고 하면 보통은 뭔가를 짓는 것만을 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사회적으로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미술보다 훨씬 민감하고 첨예하게 사회와 실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거리를 두기가 굉장히 어려운 분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구체적이고 통합적인 사회적 역할이 큰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모양의 집을 짓는다는 문제를 넘어 ‘한 사회와 인간의 삶에 얼마만큼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라는 문제 있잖아요. 건축물은 아무튼 땅 위에 큰 면적을 차지하면서 나타나 피할 수 없는 위치에서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 머무릅니다. 어떤 건축적인 해결책이 사회적인, 심리적인 영향력을 크게 가질 수밖에 없는 거지요. 건축의 실제 영향력을 사람들이 많이 알고 이해하게 된다면, 뜬금없이 전개되는 서울의 무자비한 건축물들에 대해서도 저항할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소비자 입장에서 본 좁은 식견입니다만….

9. 올해 계획하고 계신 작업이나 전시가 있는지요?

: 우선 공연 영상을 하나의 독립적인 작업으로 만들 계획에 있습니다. 공연 기간 중 도큐멘테이션이 아닌 하나의 독립적인 영상 작업으로 만들려고 따로 촬영을 했어요. 배우의 미세한 (거의 보이지 않는) 변화를 중심에 놓고 찍은 거에요. 그 영상을 작업으로 만들어 전시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기획 전시에 참가하는데요, 덕수궁 안에 정관헌이라는, 옛날에 러시아 사람이 자기가 아는 아시아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만든 재미난 건축물이 있어요. 그 건물에는 한국,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적인 여러 형태들이 전부 모여 있지요. 거기에 제 작업을 설치할 계획입니다. 그밖에 제 모노그라프와 늦게나마 관련 소책자도 만들려고 합니다.

정서영; 조각, 드로잉, 퍼포먼스를 하는 작가이다. 《전망대》, 《모닥불을 그냥 거기 내려 놓으시오》, 《책상 윗면에는 머리가 작은 일반 못을 사용하도록 주의하십시오. 나사못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괴물의 지도, 15분》, 《사과 vs 바나나》 등의 개인전과 광주비엔날레,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등 다수의 전시를 통해 활동하고 있다.

박지혜; 성균관대학교에서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했다. 인사미술공간과 아르코미술관을 거쳐 현재 갤러리현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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