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소의 삶과 예술 Talk


-일시: 2014년 5월 23일 (금) 오후 6시
-장소: 아트선재센터 1F 세미나실
-발제자: 박찬경(작가), 이인범(상명대학교 교수), 정서영(작가), 조해준(작가)
-모더레이터: 김선정
-주최: 아트선재센터
-기획: 사무소



아트선재센터는 박이소 개인전《Something for Nothing(아무 것도 아닌 것을 위한 어떤 것)》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그의 친구, 동료, 선후배, 제자가 함께 모여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박이소는 전시장이나 강의실에서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같이 영화를 보거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상 생활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예술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곤 했다. “우정은 나눔이며 나눔은 곧 존재, 삶 자체”라는 조르조 아감벤의 말처럼, 친구, 동료, 선후배, 제자와의 관계성은 곧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했던 박이소의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 프로그램을 통해 박이소 작가와 함께 했던 경험이나 그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박이소의 삶과 예술을 보다 친밀하게 이해하고, 나아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의 그의 역할과 의의를 되짚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http://artsonje.org/asc/kor/main.asp


 정서영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 첫 개인전 때 박이소 처음 만났다. 
박이소와 나는 작업 동료로서 90년대를 함께 보낸 사이이다. 
1990년대는 미술의 문제를 활발히 함께 도모하고 싶었던 때이다. 
쉽게 말해 새로운 일을 벌리고 싶었던 욕구가 있었다. 아트선재센터는 훌륭한 놀이터였다. 

박이소를 내가 알고 지낸 것은 1996-2004 까지 10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다.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는 않다. 
1990년대 중반은 큰 의미가 있는 시기이다. 
예술이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때로, 활력이 넘쳤고, 모험을 원하는 분위기였다. 
작가, 비평가, 큐레이터 모두 서로에게 관심이 많았고, 그 가운데 박이소가 있었다. 
짧은 시간이 강력한 시간으로 남아있다.

그는 엄격하고 개방적이고 유머있고 인내심이 있으며 마음약하고 잔인하고 이기적이며 무자비하고 친절하며 무심한 또한 섬세한 사람이다. 
그는 매우 진지했고 변덕은 없었다. 
오랜시간 통증과 싸우고, 세상과도 잘 지내지 못했고, 예상 외로 일찍 죽음을 맞았다. 
내가 기억하는 박이소는 스튜디오에서 모여서 놀고 춤추고 - 살사같은 춤을 배웠다 -밤새 놀던 모습이다. 가끔은 묵묵히 앉아서 작은 흑백티비를 바라보았다. 머리를 맞대로 뭔가 함께 만들기도, 쓸데없는 디자인을 하기도 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했다. 
그는 정성스러운 청취자, 조언자,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다. 
작품에 대한 조언 역시 집요하게 구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가 왜 다른 사람한테 물어가면서 작품을 하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그는 질문을 통해서 구체화하는 사람이었다. 
늘 분명한 언어을 사용했고, 모든 것을 정확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만든 미술교육 자료들도 큰 도움이 됐다.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면서 형용어 일색의 뭉뚱그려진 여타 자료들과는 달리, 그의 강의 자료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천가능한 것들이었다, 
그는 삶의 취약함을 잘 알던 사람이고, 취약한 구조를 자유로 바꾸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그는 완성된 작품에 몰려있던 시선을 작품을 하는 나를 드러내는 시선으로 진화시켜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가 만약 더 오래 살았다면 어떤 작품을 했을까?

http://jychoi282.blog.me/22000885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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