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미술은 작가가 장인적 정성을 기울인 완성품을 일부러 외면하고 작가의 아이디어나 작품구상 과정을 작품화해버리는 반 미술적 취향의 장르를 일컫는 말이다.
한 마디로 머리 속 생각을 날것 그대로 글이나 거칠고 썰렁한 그림, 사진, 조형물 등으로 풀어내는 태도다. 60~70년대 서구에서 형식화한 미술제작풍토에 대한 반발로 유행했던 이 난해한 미술흐름이 우리 미술판에서는 30년이 지난 요즘 본격 조명을 받고 있다. 90년대 초중반부터 미술시장과는 동떨어진 대안공간 등에서 썰렁한 소품을 사용한 설치작업 등으로 미술판을 냉소해온 젊은 개념미술 작가들이 최근 평단과 국제미술전 등에서 잇따라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8일 발표된 제50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 참여작가의 명단은 개념미술이 본격적으로 미술계의 관심영역으로 부각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국가관인 한국관 참여작가로 설치작가 박이소씨와 조각가정서영씨가, 주최쪽이 직접 뽑는 본전시 출품작가로 주재환, 장영혜, 김홍석, 김소라씨 등 미술언어의 소통에 치중하는 비제도권 작가들이 대거 선정됐다. 그동안 한국관 개관 뒤 비엔날레 출품작가로 덩치 큰 설치작업을 해온 해외파 작가가 주로 낙점된 관행에 비추어 이번 인선은 주류 미술계와 시장에서 소외된 개념적 작업을 골랐다는 점이 새롭다.
지난 10월 상업화랑인 갤러리 현대에서 골판지와 각목,백열전구 등으로 이뤄진 박이소씨의 초라한 설치작품과 휑한 개념미술 그림들이 전시된 것도 이례적인 사건으로 기억된다. 근대화와 세계화가 혼재된 한국의 문화현실을 값싼 재료로 조소하는 듯한 그의 작품들은 에르메스 미술상 수상기념전이란 명분아래 화랑 공간을 빌린 것이었지만 개념미술의 약진이 예사롭지 않음을 드러낸 사례였다. 뿐만 아니라 1-2년 전부터 대학졸업전이나 젊은 신예작가전시 등에서는 일상 풍경이나 내면 세계를 싱거운 글귀나 `맹맹'한 묘사로 대체하는 개념적 작업흐름이 크게 유행하고 있기도 하다. 백지숙, 김선정씨 등의 전시 기획자들은 한국파 개념미술은 키치 같은 대중문화적 요소들을 폭넓게 차용하면서 색채나 구도,작업대상 등에서 기존 미술제도와 작업방식에 대한 반감을 은연중표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철학적 단상을 담은 스케치와 수작업 조형물을 만드는 안규철씨,70년대 댄스홀의 춤장면을 재현한 사진들로 순수예술의 가식을 꼬집는 정연두씨, 웹 공간에서 비아냥대는 문자이미지나 대중문화적 영상으로 삼성재벌을 까발린 웹 디자이너장영혜씨,스폰지·나무·유리 등의 일상적 사물들을 낯설은 형태로 다듬어 새로운 세상보기를 이끄는 정서영씨 등의 작업이 그런 범주에 들어간다.작가 황세준씨는 “패거리 다툼에만 골몰해 수십년째 낡은 작가의식과 작품제작 관행에 물든 제도권 미술에 대한 심한혐오감이야말로 서구보다 훨씬 늦은 시점에서 개념미술의 유행을 가져온 요인”이라고 단언한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미술시장과 담을쌓은 개인주의적 작가란 점에서 미술권에서의 실질적 영향력을 평가절하하기도 한다.비엔날레 등의 국제무대에서 이들의 색다른 정체성이얼마나 설득력을 발휘할 지도 검증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썰렁하면서도 유쾌함,사회적 비판의식을 뒤에 숨긴 개념미술가들의 냉소적작업은 여전히 우울한 미술판에 앞으로 눈길을 끌어모을 몇안되는주목대상임에는 분명하다.
한겨레 신문 노형석 기자
|
|
|
△ 썰렁한 개념미술이 우리 미술동네의 새로운 흐름으로 부각되고 있다. 2003년 9~11월 경주 선재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김범씨의 설치 조형물 〈무제(제조 #1)>_혼합재료_2002
Jan. 2003
Seoul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9000000/2003/01/009000000200301222250277.html
|
|
|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