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선미술상 수상작가 김범 작품展

선화랑 · 선 아트센터 Sun Gallery - Sun Art Center 

www.sungallery.co.kr

 2007 July 20 ▶ August 04

잠자는 통닭 (브로컬리를 곁들인)_왁스, 도자접시_27×21×8cm_2006
유쾌한 상상과 해석 
 흔한 일은 아니지만 필자가 망치를 써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다. 만삭의 모습을 한 망치이다. 작가 김범이 97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보여준 대표작으로, 그 넓은 전시장에 달랑 망치 오브제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손잡이가 볼록한 것이 이름 하여 '임신한 망치'였던 것이다. 전시장의 많은 관객들이 보면서 발칙하고도 기발한 상상력과 해학에 하나같이 즐거워했던 것을 지금도 필자는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는 사물에 어떤 영혼이나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정도의 상상을 해본 적은 있지만, 무기체 사물이 임신을 하는 따위의 생물학적 상상을 가져본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관객들에게는 즐거운 체험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제 일반인들에게 작가 김범은 '임신한 망치'의 작가로 기억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많은 블로그 같은 데서도 그 작품의 이미지들이 자주 회자되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대개 비엔날레와 같은 대형 전시에서는 야심적이고 의욕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작가는 싱겁고도 허무한(?) 제스츄어로써 관객들의 허를 찌르며 김을 다 빼놓고 만다. 게다가 그의 오브제는 일상과 범속함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사물과 사태의 것이니, 그러한 역사적 공간에서는 허무감이 더할 법도 하다. 아무튼 바로 이 기념비적 작품은 오래도록 우리 기억 속에서 반추되고 있다. 그런데 도구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망치가 만삭인 장면이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만을 주면서도 어떤 생각과 상상의 세계로 몰아간다. 작가의 이러한 물활론적 해석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볼 때 감성적으로는 보다 유연하고 예민하게, 그리고 사유에 있어서는 현상과 실체에 대해 자유롭고 진지하게 넘나들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의 작업 전체는 평범한 사물 앞에서도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기발하며, 예의 해학과 풍자가 어떻게 돌출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문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기도하는 통닭'의 경우도 임신한 망치 못지않게 사물에 대한 기발한 해석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된다. 
빗자루 손잡이에 온갖 불결한 이미지들이 조각되고, 그 끝이 정화와 열반의 상징인 연꽃으로 표현되고 있는 '지평선 위의 업무' 경우에는 섬세함과 몰입을 즐기는 장인적인 면모까지 목격되고 있다.
무제 (지평선 위의 업무)_빗자루_21×17×164cm_2005
작가의 작업은 대체로 해학적인 내용으로 웃음을 자아내지만, 더욱 근본적인 것은 도발적인 상상력과 경쾌한 순발력, 재치와 재능이 번득이는 기발한 해석 능력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삭의 '임신한 망치' 외에도 그의 많은 작업들이 상상력과 순발력, 해석 능력이 결합되어 창출되어진 산물들이다. 작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공학적 상상을 많이 펼친다. 어떤 사회적 권력과 관련되는 시설물들에 대해 폭로하고 있는 것 같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연작으로 선보이고도 있다. 국경검문소, 등대, 구름 모양의 첩보 비행선 등에 대한 설계도에서 기우(杞憂)와도 같은 권력의 음모에 대한 불안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작가에게 흔하지 않은 비디오 영상작업 가운데 '무제(뉴스)'(2002)가 있다. 약 1분 40초간의 뉴스로서 전달되는 뉴스 내용은 어떤 특정 날짜, 특정 시간대의 기의(記意)이지만, 기표적(記標的)으로는 한 자 한 자를 각기 다른 뉴스에서 차용, 채집하여 모자이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기표와 기의 혼동, 진실과 조작(편집)의 혼동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기발한 발상조차도 김범다운 것이지만, 그 작품이 암시하고 있는 의미야말로 오싹한 무언가가 암시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탁월한 해석능력도 그렇다. 그밖에도 지극히 단조로운 시지각적 전도나 착시의 예들이 소박하게 그려져 있는 작품들이 있다. '누드', '자동차 열쇠', '현관열쇠' 등이 그것이다. 생활 속에서 경험적으로 채집한 것들을 다시 부분적으로 혹은 단조로운 실루엣으로 변환시켰을 때, 우리의 시지각은 아주 왜곡된 정보를 생산하거나 해석해내곤 한다. 누워 있는 누드의 경우 다리 방향에서 본 실루엣 형태지만 그것은 다른 사물을 연상시키는 아이콘으로 인지되고 있으며, 열쇠 연작의 경우도 자물쇠의 개폐 단서가 되는 날 부분의 꼴들이 험준한 산의 공제선을 읽게 하는 실루엣으로 인지되고 있다. 지극히 단조롭고도 사소한 이미지이나, 그것에 내재된 메시지는 무언가 진지한 내용의 담화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눈, 특히 망막을 통한 사물의 인지와 해석이 가지는 독재적 권위에 대해 모종의 냉소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광욕하는 여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5.5×51cm_2007

 백자청화스피노사우르스문호_지점토에 볼펜과 투명락카_28×39cm_2004

백조_스치로플, 모터, 스크루, 무선수신기, 목재, 등_70×75×30cm_2004 

첩보선_청사진_56.5×80.5cm_2004

 첩보선 (조감도)_종이에 색연필_39×52.5cm_2004

작가의 작업이 이렇게 해학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철조망, 칼, 안구수집기 등과 같이 섬뜩한 소재의 블랙코미디 같은 문맥의 작품들도 적지 않다. 보통의 사물이 흉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탐구에서도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이 대중들에게 그렇게 어렵거나 무겁지 않고 친근하게 접근되는 장점이 있다. 어딘지 모르게 신랄하고 긴장이 팽팽할 것 같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복싱에서의 잽과 같이 가볍고 경쾌한 풋웍으로, 그리고 반드시 한번은 웃게 하는 부드러운 방식의 접근을 함으로써 공격의 날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그의 작업은 치밀하고 진지한 아이디어나 컨셉트에 비해 드로잉이나 오브제의 설정과 조작이 단순하고 다소 엉성한 듯하게 이루어진다. 이렇게 보면 그의 작품들이 즐겁게 웃으면서 접근할 수 있는 세계이기에 대중들에게도 널리 사랑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우리의 현대미술이 대중과의 친화를 절대명제로 삼고 있지만 요원한 과제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작가와 같은 방식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대중들에게 흡입되고 교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작품은 오브제든, 드로잉이든, 비디오든 웃음을 금하는 작품은 없다. 즐겁게 교감하고, 또한 무언가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것, 바로 그거면 대단한 성취 아닌가? 허무 개그 비슷하게 다가오지만 무언가 우리의 생각을 깊이 끌고 가는 매력, 그것이 바로 김범의 예술이다. 
■ 이재언
http://www.neolook.net/archives/20070723e 



Catalogue of solo exhibition by Kim Beom
Sun Gallery - Sun Art Center, Seoul in 2007.
http://www.aaa.org.hk/Collection/Details/20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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