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으로서 지금 ‘풍경’에 대해 생각해 볼 때, 2011년3월11일에 일어난 동일본대지진의 영향은 차마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것은 풍경이 지닌 냉혹하고 복잡한 측면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쇼킹한 사건이었다. 매스미디어가 보도한 쓰나미에 의한 생생한 피해 영상과 지진 후 동북해안부의 완전히 변해버린 풍경은, 자연의 경이와 그 앞에서 어쩌지 못하는 인간의 존재를 잔혹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진과 함께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사고는 더욱 심각한 것으로 방사능이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서 지금도 풍경은 병들어가고 있다.
스러져간 많은 생명, 파괴된 마을의 기능, 방사능에 의한 토지의 오염. 절망과 불안이 소용돌이치는 중에서 그 반대편에서 ‘긍정’적인 자세로 외치고 있는 것은 ‘부흥’과 ‘재생’이라는 단어이다. 그 이미지는,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초토화된 일본과 어딘가 오버랩된다. 잃어버린 마을을 다시 세우고 새로운 풍경을 만드는 것. 그것은 인간이 항상 반복적으로 행해왔던 일이다.
(Im)Possible Landscape展에서도, 파괴와 부흥은 여러 작가들이 다루는 테마이지만, 거기에는 항상 ‘전진’하는 개발자의 자세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있다.
강홍구_ 그집-암벽(The House-Rock Wall)_ Pigment print , ink, acrylic_ 200 x 105cm _ 2010
강홍구는, 재개발을 위해 허물어지는 집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화되어, 채색이 더해진 그 표정은, 꿈 속의 일과 같이 애매하게 비춰진다.
김동연_ 성스러운 도시 12 _ The Holy City_ plywood, cloth, acrylic_ 57x293x262cm_ 2012 / 김동연 _ Interchange 12_ plywood_ 2012
김동연은 얇은 합판을 사용하여 [성스러운 마을]과 [인터체인지](Interchange) 등으로 명명된 작품을 제작했다. 전쟁의 파괴와 도시 개발, 그리고 과거의 공업지대를 동시에 나타내는 듯한 공사현장의 역사(?考)를 의식하여 제작된 이 섬세한 설치 작품은 폐허처럼도, 도시의 개발현장처럼도 보인다.
이세현_비트윈 레드-141_oil on linen_ 300 x 300cm_ 2012
이세현도 잃어버린 풍경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극적일 정도로 인상적이고 또한 불온한 무드로 붉은 색만을 사용한 회화에는, 사업화와 개발에 의해 사라져간 한국의 농촌풍경의 기억이 그려져 있다. 집요하게 반복되는 전통적인 산의 묘사가 기묘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켜, ‘적색’이 상징하는 이미지와 함께, 분단된 국가의 비애를 느끼게 한다.
김범_ 현관열쇠_ 2001 / 김범_ 풍경 #1_marker on canvas_ 82 x 57cm_ 1995
반면, 김범이 그리는 산세(山勢)의 모습은, 보다 재기발랄하다. 미니멀한 회화의 제목은 [현관 열쇠] 나 [자동차 열쇠](바로 수수께끼를 풀 ‘열쇠’라고 할 수 있겠지만)로, ‘열쇠’와 ‘산의 형상’과의 관계를 유희적으로 보여준다. 김범의 다른 작품 [Landscape #1] 에는 ‘이 푸른 하늘을 보라’ (Look at this blue sky)、‘이 나무들을 잘 보라’ (Stare at this trees)、‘여기 흐르는 강을 보라’ (Look at the flowing river here)라는 문자를 캔버스에 퉁명스럽게 남겨놓았다. 풍경이란 보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 즉 콘셉셜한 존재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지지만, 동시에, 너무 오래 사용하여 낡아 버린 ‘풍경화’라는 개념을 야유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김소라_ 풍경 한 지점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멀어지는 확산운동_ sound, installation in collaboration with Jang Younggyu_ dimensions variable_ 2012
김소라(Sora Kim)도 보이지 않는 풍경을 표현한다. 미술관 입구 홀의 높은 천장에서 늘어진 무수의 은색 테이프 설치작품과 소리의 조합은, 보는 이를 압도하여 시적인 상상의 세계로 유혹한다. [Landscape: A diffusing movement gradually distancing from a single point] 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사냥’을 테마로 사냥하는 이와 사냥 당하는 대상과의 거리에 의해 항상 변화되는 시점에 착안한 작가는, 풍경을 소멸하는 존재로서 포착하고 있다.
오용석_ 끝없이_ 2012
사냥꾼의 손을 빠져나가는 풍경은, 오영석의[끝없이]에서 영원히 반복되게 된다. 영화의 엔딩신을 모아서 반복시킨 이 영상은, 그 ‘나쁜 농담’이 처음에는 웃음을 유발하지만, 잠시 동안 보고 있자면 말할 수 없는 기분나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줌 아웃(zoom out)된, 있을 법한 풍경과 극적인 음악으로 이루어진 ‘끝남’의 의식은 영화라고 하는 예정조화(우주의 질서는 신의 예정조화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 라이프니츠의 학설로, 그에 따르면 이 세계는 무수한 단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들은 저마다 독립적이고 상호간에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이 우주에 질서가 있는 것은 신(神)이 미리 모든 단자들의 본성이 서로 조화할 수 있도록 창조하였기 때문이다.-필자주) 의 틀을 일탈하여 영원히 계속된다.
이기봉_ Hole of Solaris_steel, glass, styloform, white sand, monitor, natural branch, artificial fog, paper_ dimensions variable_ 2012
이 기분나쁨은, 이기봉(Kibong Rhee)의 안개에 싸인 풍경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흐린 유리창의 건너 보이는 쌓인 눈과 책, 불타오르는 서적 등의 이미지는, 시대와 장소, 스토리 등의 배경을 모두 애매하게 하여 망상의 안에 불길한 그림자를 느끼게 한다.
이 전시회에서 작가들이 그린 풍경이란 결국 무엇인가. 그것은 잃어버린 마을, 과거와도 미래와도 연결되지 않는 건설현장, 풍경이라고 하는 공허한 개념, 계속 변화하는 비전, 끝없는 여행, 해결되지 않는 수수께끼. 즉, 표현할 수 없는, ‘불가능한 풍경’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리는 이미지가 극히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 인가. 그것은 그들이 현실세계를 파괴하지 않고 관찰하여, 미화된 ‘풍경’의 기만을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흥’과 ‘재생’의 프로파간다를 가지고 있어도 되돌릴 수 없는, 영구히 잃어버린 것의 존재,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보이지 않는 공포. 절대로 간단하지 않은 이 현실에, 우리들은 직면해야 한다. 그것이 잃어버린 것에의 예의이며 미래에의 진정한 제1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빠르게 ‘재생’을 끝내고 새로운 풍경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인간은 항상 품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조금 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Nayoungim & Gregory Maass)가 비아냥거리듯이, ‘완벽한’ 풍경(“perfect” landscape) 따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나영+그레고리 마스_ Acceptance_ neon lights, steel_ 780 x 570 x 200cm_ 2012
글: 나츠미 아라키 Natsumi Araki, 모리미술관 Mori Art Museum 큐레이터
http://www.theartro.kr/arttalk/arttalk.asp?idx=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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