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 J씨의 몽유도원도: 강홍구와 주재환 인터뷰

주재환은 젊다. 한군데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인생이 자유롭고, 관습화된 틀을 거부하는 그의 사고가 신선하다. 이 때문인지 그의 작업 역시 다양하다. 요즘 주재환은 분리수거를 위해 버려진 폐품들을 재료로 사용하여, 드로잉·만화·사진·오브제·유화·인쇄물 콜라주·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시도한다. 자신의 삶과 작업만큼이나 열려 있는 영원한 청년 주재환의 생각을 들어본다.

여섯번째 작가 릴레이의 작가로 누구를 추천하겠냐는 질문에 강홍구(43)는 주저없이 ‘주재환(59) 선생’이라고 답했다. “작품이나 인품이 워낙 재미있는 분이잖아요. 궁금해요, 어떤 말씀을 하실지.” 강홍구의 얘기대로 주재환의 재담 덕에 작가 릴레이를 진행하는 내내 즐거웠다. 그날의 안주는 오겹살이나 고등어가 아니라 주재환의 유쾌한 웃음소리였다. 모처럼 서울 행차에 나선 그를 만나기 위해 몇 명의 손님이 자리를 함께했다.

강홍구│선생님, 얼마 전에 캄보디아에 다녀오셨다면서요?

주재환│신세계갤러리에서 간다고 하길래 작업 좀 해보려고 따라갔습니다. 조그만 카메라로 비행기 창문부터 찍기 시작했죠. 앙코르 와트 사원 같은 캄보디아의 유적지를 다니다가 적당한 곳에 노가리를 놓고 찍기도 했구요. 출발할 때 노가리 한 마리를 갖고 갔죠. ‘노가리 선생, 캄보디아 가다’이런 작품명을 붙이면 어떨까 싶어서….

강│노가리가 일종의 상징성을 띠고 있는 것인가요? 혹시 선생님의 분신은 아닌지요.

주│왜 그걸 갖고 갔는지는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귤과 같은 과일을 생각했는데, 노가리가 보관하기 편하고 잃어버려도 괜찮을 것 같아서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강│주 선생님은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거나 전시를 많이 개최한 작가는 아니시죠. 아는 사람들만 많이 아는 작가라고나 할까. 간단하게 이력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주│1960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 서양화과에 들어갔는데 그때는 사회가 불안하고 복잡했죠. 차라리 학교 등록금으로 작업하는게 더 작가답지 않은가라는 객기로 학교를 한 학기만 다니고 그만뒀어요. 미술은 휘문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 시작했어요. 그때 권영우 선생님이 미술 선생님이셨지요.

강│젊은 작가들이 주 선생님에 대해서 연세는 노장급이신데 젊은 감각과 반짝이는 재기를 갖고 계신 분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주│그건 사람마다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자기 안경을 쓰고 평가하는 것이니 뭐라고 얘기할 수는 없죠. 제가 그렇게 얘기해 달라고 말한 적도 없고.

강│학교를 그만두신 후에도 작업을 계속하셨나요?

주│작업에 매진하지는 않았어요. 고궁에서 아이스크림도 파는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죠. 농담이 아니라 50대에 처음으로 유채 물감을 써봤어요. 제 나이쯤 되면 마음에 이런저런 지저분한 때가 끼게 마련이죠. 이런 마음의 때를 씻어내는데 찐득한 유채 물감이 어울리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유채 물감을 가래침으로 여기고 캔버스에 내뱉는다고나 할까.

강│1980년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참가하신 것을 계기로 <태풍 아방가르드의 시말(始末)>과 같은 선생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전혀 작업을 안 하셨나요?

주│70년대 초에 사진 콜라주 작업을 했어요. 친구의 도움으로 작품을 50점 정도 제작해서 술집에서 전시를 열었죠. 그때는 변변한 전시장이 없었거든요. 전시가 끝난 후에 친구들에게 작품을 나눠줘서 지금은 모두 행방불명된 상태입니다. 저도 그때 제가 어떻게 작업했는지 궁금해요.

강│본격적으로 작업활동을 하시지 않았는데 어떻게 현실과 발언에 참가하시게 됐나요?

주│그 무렵, 삼성출판사에서 발간되던 《독서생활》을 거쳐 윤범모 씨가 편집장을 맡고 성완경 씨가 편집위원으로 있던 《미술과 생활》의 기자로 재직중이었어요. 화단과의 접촉은 그렇게 시작됐죠. 그 이후 현실과 발언으로 발전된 것이고.

강│그때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와 <태풍 아방가르드의 시말> 등의 작품을 제작하셨죠? 지금 다시 봐도 신선한 작품들입니다. 어떤 생각으로 작업하셨나요?

주│그 당시 한참 단색주의·백색주의 같은 사조가 유행했는데 그 유행에 대한 비꼼이라고나 할까.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는 뒤샹의 작품을 패러디했다고 볼 수도 있죠.

강│처음 그 작품들을 발표하셨을 때 현실과 발언 동인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들었습니다.
주│심각한 것들을 웃음거리로 만들었기 때문에 모두들 즐거워했던 것 같아요.

강│그런데 그 작품들이 지금 유실되었잖아요. 다시 재작업하실 의향은 없으신지….

주│누가 사겠다고 예약하면 하지요.

강│현실과 발언·민미협 등의 일을 하시다가 98년에 집중적으로 작품을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주│나이가 50이 되니까 이제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전에는 전시가 잡히면 당일치기로 작업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1990년에 제기동의 옥탑방 하나를 화실로 얻었어요. 유화도 그때 처음으로 해봤죠. 친구들이 많은 도움을 줬어요. 손장섭이 봉고차에 물감과 캔버스 몇십 개를 싣고 와서 전해주고, 유양옥이 커다란 이젤을 갖다줬어요. 심정수도 물감과 스케치 북을 가져왔죠. 작가에게는 그런 것들이 힘이 되고 격려가 되죠. 그 친구들 은혜는 지금도 못 잊어요.

강│저는 그런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주│50이 돼서 그림을 시작했잖아요. 신통해서 선물을 줬겠죠.

강│선생님 작품에는 굉장히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그림의 원형을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회화성이라고 할까. 일종의 정보를 주면서도 문자로 남아 있고, 즉 정보와 문자가 모두 뭉친 느낌이 듭니다. 원래 이런 의도로 작업하셨나요?

주│중요한 질문인데, 물론 의도 없이 작업하는 작가는 없겠지요. 작가라면 누구나 강 선생이 얘기하는 A급 작가를 꿈꾸며 작업을 하잖아요. 하지만 작업을 하다보면 이러한 의도가 없어져요. 그대신 응축된 자기 삶의 응어리가 작품에 풀려나가게 되죠.

강│선생님 작품 중에 자장면 배달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 있던데, 어떤 동기를 갖고 제작하셨는지요? 날리는 자장면 면발이 인상적이었어요.

주│동네에 보면 피자나 자장면 배달하는 애들이 쌩 하고 지나가잖아요.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달리는 그 모습이 얼마나 신나게 보이든지…. 그 모습이 각인되고 쌓여서 뭔가 작용한 것 같아요. 의도적으로 그린 작품은 아닙니다. 요즘에도 서민들은 자장면을 좋아하잖아요. 그래서인지 그림 보는 사람들이 그 작품을 좋아해요. 쉬우니까 그런 것도 있을테고.

강│선생님은 문방구에서 파는 초등학생들이 사용하는 재료같이 값싸고 예술적 폼이 안 나는 재료로 <쇼핑맨>이나 <싼%> 같은 작업도 하셨죠?

주│수요일마다 우리 동네에서 분리수거를 하는데 제가 쓰레기를 버리다보면 눈에 찔리는 것들이 있어요. 왜 버리나 싶은 물건들이죠. 그 아까운 물건들을 주워다가 적당히 조합을 시키는 거죠. 특별한 철학이 있는 건 아닙니다. <쇼핑맨>은 백화점 쇼핑백을 활용한 것이죠. 즉흥적으로 생각한 작품이에요. 저는 학교도 그렇게 즉흥적으로 그만둔 것 같아요. 생각이 모자란 것이겠죠. 그래서 제 키도 작잖아요.
강│말씀을 듣고 보니 선생님의 삶과 예술이 일치되는 것 같네요.

주│어려운 얘기 같은데, 내게 특별한 철학은 없어요. 폐품을 이용하면 작품이 망가져도 다시 주워다가 하면 되니까 편해요. 저는 이런 작품을 ‘1천원 미술’이라고 하지요. 요즘 일부 작가들은 재료에 너무 과잉 투자를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면 그런 것에 대한 반발심이 있지 않았나 싶군요.

강│값싼 재료로 만든 작품들이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어요. 예술적·형식적 형태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주│뭐든지 의도적으로 하는 것은 별로 없어요. 그냥 제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서 하는 거죠. 이런 거 하나는 배운 게 있어요. 제 작품을 걸어놓고 시간이 오래 지난 뒤에 다시 봐요. 그때도 작품이 괜찮으면 그냥 두고,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했다가 정 안 되면 찢어버리죠. 금방 튕겨져 나오는 것보다 시간이 좀 걸린 작품이 낫다는 거 하나는 배웠어요.

강│선생님 작품 중에 <볼펜의 수명>은 여러가지로 읽히더군요.
 


주│그 작품은 계기가 있어요. 9시 뉴스를 보면 매일 먹고 튀고 잡고 그런 뉴스가 나오잖아요. 그런 뉴스를 계속 보니 출구없는 벽 속에 갇힌 것 같더군요. 인간이 사는 게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절망감이 들기도 하고…. 또 IMF이후에는 노숙자들과 버림받은 아이들이 많잖아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볼펜을 돌려 원을 그렸어요. 인간의 삶을 정리해보면 무엇인가를 성취하거나 과시하는 것이 볼펜의 궤적처럼 허무하거나 소모적이란 생각이 든거죠.

강│선생님은 30년 이상을 재야도 아니면서 재야 작가로 살아오셨는데 예술에 대한 명예나 입신, 좋은 작품에 대한 욕망이 없으셨나요?

주│욕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다 거짓말이에요. 욕망이 없으면 예술을 할 수 없지요.

강│선생님의 작품 중에서 만화적 요소를 지닌 <태풍 아방가르드의 시말〉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만화를 하고 싶다든가 만화를 이용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으신가요?

주│예전에 만화 그리는 일을 한 적이 있어요. 주로 선을 그리는 작업을 했지요. 한동안 역사만화 시나리오 작업도 했고…. 만화적 요소를 작품에 사용하는 것은 아직 두고봐야 할 일 같군요.

강│작업을 하지 않을 때는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세요?

주│골프는 박세리가 잘하니까 내가 안 해도 되고, 보통 사람들처럼 먹고 지내다가 잠도 자고 걱정도 하고 그렇죠. 우리 나이는 어느 정도 품위 유지를 해야 하니까 가끔 돈 걱정도 하고…. 하긴, 모든 사람들이 돈 걱정을 하잖아요. 5퍼센트 정도는 너무 많아서, 나머지는 없어서 걱정을 하죠.
 <백미러> 캔버스에 유채 46×55cm, 1996  

강│올해 8월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인전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작품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실지 궁금합니다.

주│사진 공동작업을 할까 생각중입니다. 엘니뇨나 라니냐 같은 기후와 관련된 영상이나 천문학 또는 의학과 관련된 영상을, 사진이라는 방법론으로 풀어나갈 계획이죠. 도시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여러 영역이 함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경계 허물기 같은 작업도 하고 싶어요. 시대에 맞는 양식이라는 생각도 들고. 부분만 보는 것은 문제가 있잖아요. 어렵지만 전체를 보기 위한 시도를 해야겠죠.

강│요즘 젊은 친구들 작업이나 광주 비엔날레와 같은 국제전의 작업을 어떻게 보시나요?

주│작업 여건은 좋아졌지만 우리 때나 우리 선배들보다 불행한 것 같아요. 우리 때는 국전에 입선하면 사회적 지위를 얻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잖아요. 프랑스나 미국 등 해외의 경향에 따라서 정체성을 잃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외롭고 답답해 보이기도 하고…. 항상 우리는 변방에 위치했고 20세기 이전에는 중국, 선전 때는 일본, 그 이후로는 프랑스와 미국이 그림의 중심이었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게 행복할지도 몰라요.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을 적당히 쓰면 되니까요.

강│선생님은 기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낙관적이신 것 같아요.

주│저는 낙관적이나 비관적이 아닌, 중도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요. 가급적이면 어떤 대상이나 사상을 자신의 안경을 벗고 좀 떨어져서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문을 열면 찬바람도 들어오고 환기되서 좋잖아요. 저는 어떤 한 가지 일을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답답해요. 제 취향에 안 맞는 것이겠죠. 저는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볼 때 인습화된 틀을 깨고 의문을 갖고자 노력합니다. 왜 그런 것일까. 역사나 종교나 모든 분야에 대해서 늘상 ‘왜’라는 의문을 갖죠.

강│미술 이외에 영화나 문학도 좋아하시나요?

주│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본 코엔 형제의 <바톤 핑크>라는 영화가 마음에 들더군요. 시나리오도 탄탄하고 연기도 좋고. 문학작품 중에는 20대에 읽었던 올덕스 헉슬리의 《연애 대위법》이 생각나네요. 영화·문학·역사 등 저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 잡탕이에요.

강│밤에는 몇 시쯤 주무세요?

주│졸릴 때 잡니다. 요즘에는 잠이 적어져서 보통 밤 한 시 이후에 잠들고 아침 일찍 일어납니다.

강│컴퓨터는 다룰 줄 아세요?

주│못해요. 주로 아들을 시키지요. 요즘 사람들은 인간이 발명한 것 중에서 컴퓨터를 최고라고 여기는데, 누군가는 마침표를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후자쪽에 공감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계속해서 반복하면 지겹겠지요.
 
강│이제 선생님과의 대화에도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 마침표를 사용할 시간이 된 것 같군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줄 전시를 기대하겠습니다. 
정리 안경화 기자
2000. 3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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