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환 작가와의 인터뷰 @경기창작센터
현시원(이하 현) : 제가 선생님 작업을 보면서 특별하게 생각했던 것은 '웃음'이었어요. 1980년대 다른 민중미술 작업들에 비해서 '웃음'이 느껴진다는 게 너무 좋았거든요.
주재환(이하 주) : 무거운 걸 가볍게 한다든가 쓴 맛을 단 맛으로 바꾼다든가 그런 성향이 내게 많은데, 유화 같은 건 무거운 것도 많이 있어. 그러니까 한 가지로 규정하기 좀 힘든 거 같애.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에서 나오니까 양쪽으로 왔다 갔다 하는 널뛰기 같아. 나 자신도 모르게.
주재환(이하 주) : 무거운 걸 가볍게 한다든가 쓴 맛을 단 맛으로 바꾼다든가 그런 성향이 내게 많은데, 유화 같은 건 무거운 것도 많이 있어. 그러니까 한 가지로 규정하기 좀 힘든 거 같애.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에서 나오니까 양쪽으로 왔다 갔다 하는 널뛰기 같아. 나 자신도 모르게.
현 : '웃음'의 이면에는 선생님의 작품 '웃음소리'나 '밀항자의 웃음'처럼 안에 녹아든 분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 : 작가마다 인생 역정이 다 다르잖아. 내 경우는 이제 나이가 70대 초반이야. 유아기 때면 1940년대라고, 유아기 시절은 일제 강점기란 말이야. 일본 경찰들이 칼 차고 말 타고 다니는 기억들이 가끔 나. 다섯 살 때 해방 됐잖어. 그때 내 기억에는 안방에서 어른들이 쭉 모여 앉으셔서 옛 라디오를 경청하시더라고. 일본 천황이 항복하는 육성을 듣고 있는 거야. 해방 후에 국민학교 들어가서 4학년 때 6.25 전쟁 터졌잖어. 창경궁 거기 종로 4가 쪽에 우리 집이 있었어. 그 때 기억은 북한 탱크가 들어와서 대포를 쐈는데 그 대포알이 우리 집에 박혔어. 우리 집이 길가에서 철물 가게를 했거든. 20살이 안된 큰 형님 벌의 인민군이 북한말로 "할머니~ 물 한 잔 주세요" 하니까 할머니가 물에다 설탕 타서 준 기억도 나고 그래. 인민군 치하에서 석 달 동안 있었잖아. 그때 미군 비행기들 와서 폭격 엄청 했어. 석 달 후에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이 수복됐고, 몇 달 있다가 1.4 후퇴, 중공군이 개입해서 피난을 가게 되었지. 대전 아래 옥천 외갓집에 가서 학교도 못 다니고 버스 정거장 가서 행상을 했어. 계란 사세요. 뭐 이렇게 지내다가 9.18 수복이라잖아. 그때 다시 서울로 올라왔지.
주 : 작가마다 인생 역정이 다 다르잖아. 내 경우는 이제 나이가 70대 초반이야. 유아기 때면 1940년대라고, 유아기 시절은 일제 강점기란 말이야. 일본 경찰들이 칼 차고 말 타고 다니는 기억들이 가끔 나. 다섯 살 때 해방 됐잖어. 그때 내 기억에는 안방에서 어른들이 쭉 모여 앉으셔서 옛 라디오를 경청하시더라고. 일본 천황이 항복하는 육성을 듣고 있는 거야. 해방 후에 국민학교 들어가서 4학년 때 6.25 전쟁 터졌잖어. 창경궁 거기 종로 4가 쪽에 우리 집이 있었어. 그 때 기억은 북한 탱크가 들어와서 대포를 쐈는데 그 대포알이 우리 집에 박혔어. 우리 집이 길가에서 철물 가게를 했거든. 20살이 안된 큰 형님 벌의 인민군이 북한말로 "할머니~ 물 한 잔 주세요" 하니까 할머니가 물에다 설탕 타서 준 기억도 나고 그래. 인민군 치하에서 석 달 동안 있었잖아. 그때 미군 비행기들 와서 폭격 엄청 했어. 석 달 후에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이 수복됐고, 몇 달 있다가 1.4 후퇴, 중공군이 개입해서 피난을 가게 되었지. 대전 아래 옥천 외갓집에 가서 학교도 못 다니고 버스 정거장 가서 행상을 했어. 계란 사세요. 뭐 이렇게 지내다가 9.18 수복이라잖아. 그때 다시 서울로 올라왔지.
현 : 직접 계란을 파신 거예요?
주 : 그럼. 알바한 거지. 하하. 내 작품이 왜 이렇게 나왔는지 배경을 설명하려면 유년기부터 일제 식민지 소년기 때에 동족상잔을 겪었잖아. 그리고 홍대 서양화과에 들어간 60년도에는 4.19 혁명이 터졌잖아. 그때 광화문 일대를 헤매고 다녔어, 구경하느라고. 그러다가 5.16 쿠데타 터지고 박정희 18년 집권한 거 아니야. 경제발전에 노력했지만 민주화를 파괴해서, 인혁당 사건 등 끔찍한 사건들이 많잖아. 그런 와중에 또 전두환이가 80년에 집권해 광주학살을 자행했잖아. 우리 미술동료들이 현실 비판하자고 미술회관에서(현 아르코 미술관) '현실과 발언' 창립전 할 때 불온하다고 해서 결국에는 조명을 다 꺼버려서 촛불 나눠주고 전시한 거 아니야. 우리나라 전시 사상 촛불 전시는 처음 일거야. 그러니까 정상적인 길이 아니라 지그재그하는, 더러운 골목길을 유년기·청년기·장년기를 걸어온 거 같애. 그리고 내 성격이 명랑한 편이야. 뭐가 닥치더라도 뭐 골방에 들어가지 않고 소화하고 하다보니까 풍자적인 작품이 나오는 것 같고. 일부 유화 같은 거는 어둡고 묵직하게 나오는 거 아닌가 생각하는 거지.
주 : 그럼. 알바한 거지. 하하. 내 작품이 왜 이렇게 나왔는지 배경을 설명하려면 유년기부터 일제 식민지 소년기 때에 동족상잔을 겪었잖아. 그리고 홍대 서양화과에 들어간 60년도에는 4.19 혁명이 터졌잖아. 그때 광화문 일대를 헤매고 다녔어, 구경하느라고. 그러다가 5.16 쿠데타 터지고 박정희 18년 집권한 거 아니야. 경제발전에 노력했지만 민주화를 파괴해서, 인혁당 사건 등 끔찍한 사건들이 많잖아. 그런 와중에 또 전두환이가 80년에 집권해 광주학살을 자행했잖아. 우리 미술동료들이 현실 비판하자고 미술회관에서(현 아르코 미술관) '현실과 발언' 창립전 할 때 불온하다고 해서 결국에는 조명을 다 꺼버려서 촛불 나눠주고 전시한 거 아니야. 우리나라 전시 사상 촛불 전시는 처음 일거야. 그러니까 정상적인 길이 아니라 지그재그하는, 더러운 골목길을 유년기·청년기·장년기를 걸어온 거 같애. 그리고 내 성격이 명랑한 편이야. 뭐가 닥치더라도 뭐 골방에 들어가지 않고 소화하고 하다보니까 풍자적인 작품이 나오는 것 같고. 일부 유화 같은 거는 어둡고 묵직하게 나오는 거 아닌가 생각하는 거지.
현 : 홍대 서양화과 1년 다니시고 그만두셨지요?
주 : 난 한 학기. 그 당시에는 서민층이 상당히 빈곤했잖아. 등록금 마련하기가 힘들어서 중퇴한 거지. 그때 생각에는 등록금이 있으면 그걸로 물감 사서 그리는 게 낫지 뭐 학교 가서 배우느냐 그런 객기도 있었지. 그러니까 가정 형편 반 객기 반 이렇게 섞인 거 같아.
주 : 난 한 학기. 그 당시에는 서민층이 상당히 빈곤했잖아. 등록금 마련하기가 힘들어서 중퇴한 거지. 그때 생각에는 등록금이 있으면 그걸로 물감 사서 그리는 게 낫지 뭐 학교 가서 배우느냐 그런 객기도 있었지. 그러니까 가정 형편 반 객기 반 이렇게 섞인 거 같아.
현 : 어린 시절에 꿈이 신문기자 아니면 천문학자 되고 싶다고 말씀하셨었지요?
주 : 대학진학 할 때 진로에 대한 고민은 지금도 마찬가지 아니야. 신문기자 되면 어떨까 또 한 편으로는 천문학 이런 거 어떤가. 또 하나는 이제 화가. 지금 반추해보면 내가 신문기자가 변형이 되어서 출판계에 오래 있었잖아. 천문학 꿈꾸었던 게 그런 우주에 대한 그림이 나오잖아. 소년기에 꿈꿨던 것이 간혹 형상화되는 거 같아. 그런 느낌이 들어.
주 : 대학진학 할 때 진로에 대한 고민은 지금도 마찬가지 아니야. 신문기자 되면 어떨까 또 한 편으로는 천문학 이런 거 어떤가. 또 하나는 이제 화가. 지금 반추해보면 내가 신문기자가 변형이 되어서 출판계에 오래 있었잖아. 천문학 꿈꾸었던 게 그런 우주에 대한 그림이 나오잖아. 소년기에 꿈꿨던 것이 간혹 형상화되는 거 같아. 그런 느낌이 들어.
현 : 대학 그만 두시고 다양한 직업을 가지셨는데요. 60년대 야경꾼 일을 하셨던 거죠?
주 : 68년으로 기억나. 북에서 김신조 특공대가 내려왔을 때 내가 서울대학병원 정문 옆 파출소에서 야경꾼으로 일했지. 방범대원들 몽둥이를 나눠주고 긴장상태였지. 야경꾼은 경찰 보조야. 2인 1조가 되어 밤 12시부터 4시까지 순번제로 다니는데 내 기억에는 여섯 명 정도 된 거 같아. 딱딱 치면서 동네 한 바퀴를 돌아. 방범 효과도 있고 집주인들이 혹시 문단속을 안 했다든가 그런 경각심 주는 거. 아주 낭만적인 거지. 하하. 그때 기억나는 거는 창경궁에 동물원이 있었단 말이야. 봄 되면 밤 벚꽃놀이라 그래서 창경원에 벚꽃이 엄청 피었어. 그러면 인파에 막혀 전차가 못 다니는 거야. 거기 사람들이 엄청나게 오는 거야. 밤 12시 넘으면 인적이 끊어지잖니. 호랑이가 울어, 가끔. '어흥' 하고 우는 거야. 도심으로 퍼져나가는 거야. 상상을 해봐. 호랑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온다는 걸. 적막한 심야에. 지금 도심에서 호랑이 울음소리 울리면 어떻게 될 거 같애. 그리고 새벽이 되면 미아리 쪽에서 아줌마들이 냄비를 가지고 많이들 몰려와. 내가 사는 원남동 쪽으로. 왜 오냐면 거기에 두부공장이 있는데 극빈층에서 비지 사러 오는 거야, 아줌마들이. 또 시내 쪽에서는 남자애들이 새벽에 서울대병원으로 가. 왜 오는지 알아? 피 팔러 온 거야. 매혈자들이 너무 많으니까 번호표 받으려고. 한 쪽에서 피 팔러 오고 한쪽에는 비지 사러 오고 그게 60년대 풍경이야.
주 : 68년으로 기억나. 북에서 김신조 특공대가 내려왔을 때 내가 서울대학병원 정문 옆 파출소에서 야경꾼으로 일했지. 방범대원들 몽둥이를 나눠주고 긴장상태였지. 야경꾼은 경찰 보조야. 2인 1조가 되어 밤 12시부터 4시까지 순번제로 다니는데 내 기억에는 여섯 명 정도 된 거 같아. 딱딱 치면서 동네 한 바퀴를 돌아. 방범 효과도 있고 집주인들이 혹시 문단속을 안 했다든가 그런 경각심 주는 거. 아주 낭만적인 거지. 하하. 그때 기억나는 거는 창경궁에 동물원이 있었단 말이야. 봄 되면 밤 벚꽃놀이라 그래서 창경원에 벚꽃이 엄청 피었어. 그러면 인파에 막혀 전차가 못 다니는 거야. 거기 사람들이 엄청나게 오는 거야. 밤 12시 넘으면 인적이 끊어지잖니. 호랑이가 울어, 가끔. '어흥' 하고 우는 거야. 도심으로 퍼져나가는 거야. 상상을 해봐. 호랑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온다는 걸. 적막한 심야에. 지금 도심에서 호랑이 울음소리 울리면 어떻게 될 거 같애. 그리고 새벽이 되면 미아리 쪽에서 아줌마들이 냄비를 가지고 많이들 몰려와. 내가 사는 원남동 쪽으로. 왜 오냐면 거기에 두부공장이 있는데 극빈층에서 비지 사러 오는 거야, 아줌마들이. 또 시내 쪽에서는 남자애들이 새벽에 서울대병원으로 가. 왜 오는지 알아? 피 팔러 온 거야. 매혈자들이 너무 많으니까 번호표 받으려고. 한 쪽에서 피 팔러 오고 한쪽에는 비지 사러 오고 그게 60년대 풍경이야.
현 : 두부와 피네요.
주 : 아 그렇지. 두부는 비싸서 못 사고. 비지가 싸니까. 그렇게 빈곤기를 거친 거야. 비지와 피야.
주 : 아 그렇지. 두부는 비싸서 못 사고. 비지가 싸니까. 그렇게 빈곤기를 거친 거야. 비지와 피야.
현 : 야경꾼은 1년 정도 하신 건가요?
주 : 한 2년 정도 한 거 같애. 그때 기억나는 거는 통금 위반자들을 파출소에 데려오고 하는데 통금위반해서 잘못했다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다 변명을 해. 어쩌구 저쩌구 변명이 대다수야. 자기 합리화야. 하하하. 그리고 또 하나는 광인들 있었지. 특히 여성 광인들. 심야의 귀신처럼 말이야.
주 : 한 2년 정도 한 거 같애. 그때 기억나는 거는 통금 위반자들을 파출소에 데려오고 하는데 통금위반해서 잘못했다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다 변명을 해. 어쩌구 저쩌구 변명이 대다수야. 자기 합리화야. 하하하. 그리고 또 하나는 광인들 있었지. 특히 여성 광인들. 심야의 귀신처럼 말이야.
현 : 야경꾼 하시고 그밖에 다른 일 하시면서 계속 작가가 될 거라 생각하셨어요?
주 : 그때는 못 했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학력이 없으면 발붙일 데가 없잖아. 그러니까 자녀들 대학에 넣으려고 어릴 때부터 입시 감방에 수감시켜 고문하잖아. 요즘 비정규직 얼마나 많아. 뭐 줄도 없는 사람이 야경꾼도 감지덕지해야지 어떻게. 거기서 뭐 그림을 생각을 해? 허허. 생존이 문제인데. 미술 뭐 그런 거 생각할 여유도 없었고.
주 : 그때는 못 했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학력이 없으면 발붙일 데가 없잖아. 그러니까 자녀들 대학에 넣으려고 어릴 때부터 입시 감방에 수감시켜 고문하잖아. 요즘 비정규직 얼마나 많아. 뭐 줄도 없는 사람이 야경꾼도 감지덕지해야지 어떻게. 거기서 뭐 그림을 생각을 해? 허허. 생존이 문제인데. 미술 뭐 그런 거 생각할 여유도 없었고.
현 : 그럼 언제부터 미술 작업을 하신 거예요?
주 : 그러면서 70년 초에, 거 이상한 게 있더라고. 몸속에 창작력이 쌓이다보면 이게 자연히 배설되는 것 같애. 몸속에 노폐물이 쌓이면 오줌, 똥으로 빼듯이. 그러니까 창작 욕구도 자연스럽게 발효가 되는 거 같애. 백수로 살 때였는데 갑자기 뭐가 하고 싶어. 그때 내가 왕십리 산동네 살았어. 골방 요만한 데 할머니와 둘이서. 내가 돈이 없잖아. 쪼금 유복한 동창을 찾아갔어. “야! 인마 내가 작품하고 싶은데 니들이 미리 좀 사라. 전시 끝나면 그림으로 주겠다” 지금 돈으로 일인당 한 5만원 같애. 지금 돈으로 한 50만원 모은 거 같아. 하하하. 작품 값을 미리 받은 거야. 청계천 고서방 있지. 거기 돌아다니면서 잡지들 타임지라든가 여성지 있잖아. 화보들. 그런 것들 쭉 싸게 사서 콜라주를 한 거야. 내 기억에는 한 30, 40점 된 거 같애. 4호 정도 크기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에 옛날식 술집 '쪽샘'이라고 있었어. 초가지붕의 막걸리 파는 곳이 많이 유행을 했었어. 미술평론가 김인환 형이 전시를 주선해주었어. '쪽샘'에다 걸고 동창 불러서 술 먹고, 그리고서 하나씩 다 줬거든. 거의 40여 년 전 얘기야. 준 놈들보고 한 번 보고 싶기도 해서 찾아보라 했더니 갖고 있는 놈이 하나도 없어 하하. 다 버렸어. 그러니까 너무 아쉬운 거야. 40년 전에 뭘 했는지.
주 : 그러면서 70년 초에, 거 이상한 게 있더라고. 몸속에 창작력이 쌓이다보면 이게 자연히 배설되는 것 같애. 몸속에 노폐물이 쌓이면 오줌, 똥으로 빼듯이. 그러니까 창작 욕구도 자연스럽게 발효가 되는 거 같애. 백수로 살 때였는데 갑자기 뭐가 하고 싶어. 그때 내가 왕십리 산동네 살았어. 골방 요만한 데 할머니와 둘이서. 내가 돈이 없잖아. 쪼금 유복한 동창을 찾아갔어. “야! 인마 내가 작품하고 싶은데 니들이 미리 좀 사라. 전시 끝나면 그림으로 주겠다” 지금 돈으로 일인당 한 5만원 같애. 지금 돈으로 한 50만원 모은 거 같아. 하하하. 작품 값을 미리 받은 거야. 청계천 고서방 있지. 거기 돌아다니면서 잡지들 타임지라든가 여성지 있잖아. 화보들. 그런 것들 쭉 싸게 사서 콜라주를 한 거야. 내 기억에는 한 30, 40점 된 거 같애. 4호 정도 크기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에 옛날식 술집 '쪽샘'이라고 있었어. 초가지붕의 막걸리 파는 곳이 많이 유행을 했었어. 미술평론가 김인환 형이 전시를 주선해주었어. '쪽샘'에다 걸고 동창 불러서 술 먹고, 그리고서 하나씩 다 줬거든. 거의 40여 년 전 얘기야. 준 놈들보고 한 번 보고 싶기도 해서 찾아보라 했더니 갖고 있는 놈이 하나도 없어 하하. 다 버렸어. 그러니까 너무 아쉬운 거야. 40년 전에 뭘 했는지.
현 : 콜라주하고 글자도 붙이고 하신 거예요?
주 : 아쉬운 게 하나 있어. 이상 시하고, 흑백 이미지로 작업한 게 있는데 지금도 그건 보고 싶어. 소장자를 못 찾겠어.
주 : 아쉬운 게 하나 있어. 이상 시하고, 흑백 이미지로 작업한 게 있는데 지금도 그건 보고 싶어. 소장자를 못 찾겠어.
현 : 70년 초 첫 개인전 하시고 '현실과 발언' 창립전시가 80년도니까 한참 후네요.
주 : 그러니까 생업 전선에 다니다가 고등학교 선배인데, 심우성 씨가 한국민속극연구소를 냈어. 내가 조수로 들어간 거지. 거기서 내가 민속학 자료를 많이 조사했어. 도서관에 가서도 하고, 또 문고판을 좀 냈어. 『민학총서』라고 선학들의 저서들, 음악부터 문학, 동학혁명 등 그런 책들을 만들었고. 거기에 문화인들이 많이 드나들잖아. 심우성 선배 동료들 중 출판인이 [독서생활]이라는 월간지 주간을 맡게 되어 나를 쓰게 된 거야. 그래서 출판계에 입문하게 된 거지. 교양지야. 그런데 독자가 별로였고 오래 버티지 못했지. 교열을 보는 게 굉장히 지루한 거야. 외국어니 일본어니 외국어를 많이 알아야해. 나는 꽝이니까 부담스럽잖아. 그래서 이제 옮겨야겠다 하던 때에 [미술과 생활]이라는 월간지가 마포에서 창간이 됐어. 열 권 정도 낸 것 같아. 임영방 박사가 주간이고 편집위원이 성완경, 편집실무가 윤범모. 그리고 편집실장이 황명걸 시인이야. 거기 사람을 하나 뽑는다 그래서 내가 77년도에 취재 기자로 들어간 거야. 그런데 경영난으로 한두 달 만에 문을 닫았어. 그때 미술인들을 다수 알게 된 거야. 자주 만나게 되니까 우리나라 미술계에 불만이 많잖아. 그래서 이제 '현실과 발언'이 만들어지게 된 거지. 성완경 교수와 원동석, 최민, 윤범모, 담론 생산자들의 역할도 컸지.
주 : 그러니까 생업 전선에 다니다가 고등학교 선배인데, 심우성 씨가 한국민속극연구소를 냈어. 내가 조수로 들어간 거지. 거기서 내가 민속학 자료를 많이 조사했어. 도서관에 가서도 하고, 또 문고판을 좀 냈어. 『민학총서』라고 선학들의 저서들, 음악부터 문학, 동학혁명 등 그런 책들을 만들었고. 거기에 문화인들이 많이 드나들잖아. 심우성 선배 동료들 중 출판인이 [독서생활]이라는 월간지 주간을 맡게 되어 나를 쓰게 된 거야. 그래서 출판계에 입문하게 된 거지. 교양지야. 그런데 독자가 별로였고 오래 버티지 못했지. 교열을 보는 게 굉장히 지루한 거야. 외국어니 일본어니 외국어를 많이 알아야해. 나는 꽝이니까 부담스럽잖아. 그래서 이제 옮겨야겠다 하던 때에 [미술과 생활]이라는 월간지가 마포에서 창간이 됐어. 열 권 정도 낸 것 같아. 임영방 박사가 주간이고 편집위원이 성완경, 편집실무가 윤범모. 그리고 편집실장이 황명걸 시인이야. 거기 사람을 하나 뽑는다 그래서 내가 77년도에 취재 기자로 들어간 거야. 그런데 경영난으로 한두 달 만에 문을 닫았어. 그때 미술인들을 다수 알게 된 거야. 자주 만나게 되니까 우리나라 미술계에 불만이 많잖아. 그래서 이제 '현실과 발언'이 만들어지게 된 거지. 성완경 교수와 원동석, 최민, 윤범모, 담론 생산자들의 역할도 컸지.
현 : 편집자나 기자로 일하시다가 즉석에서 작업하시기도 했나요?
주 : 그렇지. 그런데 거의 다 없어졌어. 잃어버린 것도 많고 또 고양이가 물어서 없어진 것도 있고 다 찢어지고. 난 관리를 잘 못 해. 그러다 내가 오십 대 되어서 화실을 처음 얻은 거야. 청소년기에 화가 꿈을 꿨는데 50을 넘어서 얼마나 하겠냐. 작가는 생활환경에 따라 작품 성향도 각기 달라지는 것 같아. 내가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면 이런 거 못 그린다구. 뭔가 억울하고 울분 같은 게 당의정으로 포장되어서 나올 수도 있고, 날 것으로 나올 수도 있고, 그런 게 아닌가 싶어. 살아온 환경이 일제 강점기부터 그렇고 또 가족사가 복잡한 게 있어. 영어로 트라우마인가? 깊이 살점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야. 그걸 청소하는 작업이 아닌가 싶어. 그 물감 찍는 게 가래침 같은 게 아닌가 싶어. 몸의 균형, 마음의 균형을 잡기 위한 일종의 반사작용 같은 느낌. 난 미학이니 이론이니 이런 거하고 체질이 맞지가 않는 거 같아. '현실과 발언'에 들어와서 미술활동을 한 거지. 50대에 들어와서 작업장을 마련했으니 자연히 개인전이 늦어질 수밖에 없잖아. 일산 지하 작업실에서 하고 있는데 대안공간 풀의 황세준, 백지숙, 박찬경이 드나들면서 2000년도에 아트선재에서 개인전을 하게 된 거지. 후배들 덕에 한 거지.
주 : 그렇지. 그런데 거의 다 없어졌어. 잃어버린 것도 많고 또 고양이가 물어서 없어진 것도 있고 다 찢어지고. 난 관리를 잘 못 해. 그러다 내가 오십 대 되어서 화실을 처음 얻은 거야. 청소년기에 화가 꿈을 꿨는데 50을 넘어서 얼마나 하겠냐. 작가는 생활환경에 따라 작품 성향도 각기 달라지는 것 같아. 내가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면 이런 거 못 그린다구. 뭔가 억울하고 울분 같은 게 당의정으로 포장되어서 나올 수도 있고, 날 것으로 나올 수도 있고, 그런 게 아닌가 싶어. 살아온 환경이 일제 강점기부터 그렇고 또 가족사가 복잡한 게 있어. 영어로 트라우마인가? 깊이 살점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야. 그걸 청소하는 작업이 아닌가 싶어. 그 물감 찍는 게 가래침 같은 게 아닌가 싶어. 몸의 균형, 마음의 균형을 잡기 위한 일종의 반사작용 같은 느낌. 난 미학이니 이론이니 이런 거하고 체질이 맞지가 않는 거 같아. '현실과 발언'에 들어와서 미술활동을 한 거지. 50대에 들어와서 작업장을 마련했으니 자연히 개인전이 늦어질 수밖에 없잖아. 일산 지하 작업실에서 하고 있는데 대안공간 풀의 황세준, 백지숙, 박찬경이 드나들면서 2000년도에 아트선재에서 개인전을 하게 된 거지. 후배들 덕에 한 거지.
현 : 첫 작업실을 일산에 마련하신 후에 줄곧 일산에 계시다가 2011년 11월부터 경기창작센터에 계신 거죠.
주 : 장소도 이런 거 처음 써 보고 조용하고 공기도 좋고 젊은 작가도 많이 만나고 교류하고 상당히 잘 온 거 같애. 그리고 90년대부터 바뀐 거 같은데 전시 기획자 위주로 전시가 이뤄지잖아. 기획자들을 보면 거의 30대, 40대 미술인들이 많이 있는 거 같아. 그 사람들이 같은 동료들이나 후배들에 주목하게 될 거란 말이야. 작가 나이가 50대 넘어가면 기획자들 시야에 들어오기 힘들 거 같아. 상대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소수를 빼놓고는 상당히 소외되지 않나 싶어. 소외되면 의기소침해지고 상당히 우울해지고, 창작의욕도 감퇴되잖아. 그게 필연적인 흐름 같은데 '실버 갤러리' 같은 것도 하나 국가에서 운영을 하든 미술관 부속으로 하든지 해서 노년층들도 주목 좀 해주고 평생 작업한 사람들 위로도 해주고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야. 미술관에서 너무 젊은이 위주로 하지 말고 고령자들도 창작 의지를 주자 이거지.
주 : 장소도 이런 거 처음 써 보고 조용하고 공기도 좋고 젊은 작가도 많이 만나고 교류하고 상당히 잘 온 거 같애. 그리고 90년대부터 바뀐 거 같은데 전시 기획자 위주로 전시가 이뤄지잖아. 기획자들을 보면 거의 30대, 40대 미술인들이 많이 있는 거 같아. 그 사람들이 같은 동료들이나 후배들에 주목하게 될 거란 말이야. 작가 나이가 50대 넘어가면 기획자들 시야에 들어오기 힘들 거 같아. 상대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소수를 빼놓고는 상당히 소외되지 않나 싶어. 소외되면 의기소침해지고 상당히 우울해지고, 창작의욕도 감퇴되잖아. 그게 필연적인 흐름 같은데 '실버 갤러리' 같은 것도 하나 국가에서 운영을 하든 미술관 부속으로 하든지 해서 노년층들도 주목 좀 해주고 평생 작업한 사람들 위로도 해주고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야. 미술관에서 너무 젊은이 위주로 하지 말고 고령자들도 창작 의지를 주자 이거지.
현 : 선생님이 관장하시면 어떨까요.
주 : 어 좋지! 하하. 좋지.
주 : 어 좋지! 하하. 좋지.
현 : 예전에 의인 공원도 생각하셨잖아요?
주 : 어 그거 무슨 이야기냐면 지식인 사회 일각에서 어린이들에게 위인전 읽지 말기 운동이 있었어. 아무나 아인슈타인, 뉴턴이 될 수 없잖아. 광화문에 이순신, 세종대왕 있잖아. 그 기념상 보는 행인들 거의 없다고 봐야지. 보통 사람들이야 먹고 살기 바쁜데. 예를 들면 갑자기 전철에서 떨어진 사람들 구해내잖아. 또 평생 의료봉사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니까 서민 영웅, 서민 의인, 평생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봉사하는 이도 있고, 평생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주는 이도 있고, 그런 공원을 하나 만들어서 거기에서 서민 위인들을 보게 하자는 거지. 친근감이 생기고 그게 입력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산 교육이 되지 않냐 싶은 거지. 그런 잔잔한 파문을 가진 공원이 필요하다. 지금은 너무 승자 독식의 1등주의 아니야. 그런 걸 순화시키는 그런 공원을 만들자는 거지.
주 : 어 그거 무슨 이야기냐면 지식인 사회 일각에서 어린이들에게 위인전 읽지 말기 운동이 있었어. 아무나 아인슈타인, 뉴턴이 될 수 없잖아. 광화문에 이순신, 세종대왕 있잖아. 그 기념상 보는 행인들 거의 없다고 봐야지. 보통 사람들이야 먹고 살기 바쁜데. 예를 들면 갑자기 전철에서 떨어진 사람들 구해내잖아. 또 평생 의료봉사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니까 서민 영웅, 서민 의인, 평생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봉사하는 이도 있고, 평생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주는 이도 있고, 그런 공원을 하나 만들어서 거기에서 서민 위인들을 보게 하자는 거지. 친근감이 생기고 그게 입력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산 교육이 되지 않냐 싶은 거지. 그런 잔잔한 파문을 가진 공원이 필요하다. 지금은 너무 승자 독식의 1등주의 아니야. 그런 걸 순화시키는 그런 공원을 만들자는 거지.
현 : 선생님 그런 아이디어 많으시죠?
주 : 있으면 뭐 하나. 아이디어 실현하려면 배경이 있어야 해. 자기 동창 선배들이 각 요직에 있어야 해. 나 같은 중퇴생이 아이디어 내면 '야 너 누구야' 하니 되지를 않어. 허허. 내가 아르코 미술관에 제안한 게 서울대 병원이랑 전시를 해라. 작가 위주 전시를 파괴하는 전시를 하면 좋겠어. 텔레비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는 많은 취미생활들, 성냥개비로 뭐 만들고 하는 거 있잖아. 그런 거 전시장에서 좀 하란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고급 담론이 얼마나 골 때려. 재미로 작품하는 그런 사람들 다 세금 내는 사람들인데 개방하라 그거야.
주 : 있으면 뭐 하나. 아이디어 실현하려면 배경이 있어야 해. 자기 동창 선배들이 각 요직에 있어야 해. 나 같은 중퇴생이 아이디어 내면 '야 너 누구야' 하니 되지를 않어. 허허. 내가 아르코 미술관에 제안한 게 서울대 병원이랑 전시를 해라. 작가 위주 전시를 파괴하는 전시를 하면 좋겠어. 텔레비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는 많은 취미생활들, 성냥개비로 뭐 만들고 하는 거 있잖아. 그런 거 전시장에서 좀 하란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고급 담론이 얼마나 골 때려. 재미로 작품하는 그런 사람들 다 세금 내는 사람들인데 개방하라 그거야.
현 : 선생님이 전시 기획하시면 좋겠네요.
주 : 어디 기회 되면 해봐야지. 공동 기획도 좋고. 좀 파격적이고 신나는 걸 해야 해. 그렇게 외연을 넓혀가야지. 개인전 몇 회, 수상 몇 회 그런 관행을 부셔라 이거지. 좁은 길로만 가서는 안 된다고 봐.
주 : 어디 기회 되면 해봐야지. 공동 기획도 좋고. 좀 파격적이고 신나는 걸 해야 해. 그렇게 외연을 넓혀가야지. 개인전 몇 회, 수상 몇 회 그런 관행을 부셔라 이거지. 좁은 길로만 가서는 안 된다고 봐.
현 : 곧 개인전을 하시는데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가요?
주 : 11월 30일부터 12월 25일까지 관훈갤러리에서 하는데 구작하고 신작을 망라해서 유화, 설치, 포토샵, 사진, 복합재료, 종이작품 이런 것들이 섞인 거지. 거기에 내가 초대한 작가가 있어. 경기창작센터에 있는 작가 4명. 어떤 거냐면 경기창작센터 건너편 선감도 소년원에서 오래 전에 억울하게 죽은 소년들의 넋을 기억하는 김태균 작가의 작품이 있어. 그리고 박은영 작가는 '죽음의 춤'으로 알려진 일본 무용 '부토'를 상영할거야. 중견시인 박시교의 '순혈에 부쳐'도 전시되지. 세 작품이 화음을 내어 일종의 진혼곡을 연출하게 되지. 설치작품에는 이대일 작가가 만든 사운드 아트가 들어갈 것 같아. 손민아 작가는 해외 옥션에서 거래되는 '미친 그림값'에 대한 작품을 낼 거야.
주 : 11월 30일부터 12월 25일까지 관훈갤러리에서 하는데 구작하고 신작을 망라해서 유화, 설치, 포토샵, 사진, 복합재료, 종이작품 이런 것들이 섞인 거지. 거기에 내가 초대한 작가가 있어. 경기창작센터에 있는 작가 4명. 어떤 거냐면 경기창작센터 건너편 선감도 소년원에서 오래 전에 억울하게 죽은 소년들의 넋을 기억하는 김태균 작가의 작품이 있어. 그리고 박은영 작가는 '죽음의 춤'으로 알려진 일본 무용 '부토'를 상영할거야. 중견시인 박시교의 '순혈에 부쳐'도 전시되지. 세 작품이 화음을 내어 일종의 진혼곡을 연출하게 되지. 설치작품에는 이대일 작가가 만든 사운드 아트가 들어갈 것 같아. 손민아 작가는 해외 옥션에서 거래되는 '미친 그림값'에 대한 작품을 낼 거야.
2012년 10월 25일 주재환 작가의 경기창작센터 작업실에는 '내가 자랑할 건 내가 버린 쓰레기뿐'이라는 신작도 놓여있었다. 신문지와 낙엽, 유화 물감과 각종 책들, 그리고 선생님의 벗이 등장하는 신문 한 페이지와 오늘의 메모들도. 몇 년 전부터 주재환 선생님이 하신 말들과 말투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 인터뷰를 쓰면서 이야기의 뒤에 꼼꼼한 각주를 달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https://www.facebook.com/talkingmisul/photos/pcb.1006780969346815/1006780416013537/?type=1&theater
Oct.2012
GCC, An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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