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 미래… '3545'세대 이들을 보아라

월간미술', 이불·김영진·김범씨 등 선정

35세에서 45세 사이의 미술인들은 우리 미술판의 허리 세대라 할 수 있으며, 당대를 가장 힘차게 뛰고 있는 현역들이다.

미술 전문지 '월간 미술' 1월호는 '3545' 미술평론가 44명에게 추천을 받아 '우리가 주목해야 할 3545 작가' 1백90명과 6개 그룹을 뽑았다. 이들 얼굴에 2003년 한국 미술의 빛이 모인다.

15명으로부터 최다 중복 추천을 받은 이는 설치미술가 이불(39)씨였다. 1999년 제48회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 작가로 참가해 특별상을 받은 이씨는 미래사회를 예견케 하는 인간상인 '사이보그'로 눈길을 끌었다. 최근 비디오.노래방 설치작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국제적인 지명도를 지닌 해외형 작가로 커가고 있다.


11명이 표를 던진 김영진(42)씨와 10명이 추천한 김범(43).최정화(42)씨 모두 설치미술가여서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경쟁력을 키운 장르가 설치였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최정화씨는 "유머와 아이러니, 가벼움과 무거움"이 깃든 그의 작업이 "일찍부터 우리 문화 속에 내장되어 있던 건설적 체육주의와 일종의 관광주의라 할 만한 특정한 태도"를 지닌 작가에게서 태어났다는 평을 들었다.

드물게도 수묵화가로 10표를 받은 유근택(38)씨는 "전통 수묵이 현대 미술에 있어서도 여전히 효과적인 매체로 자리할 수 있는가 하는 집요한 실험 정신"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영상과 음향의 전자적 합성 등을 두루 동원하는 이용백(37)씨, 사진 속 인물과 공간, 상상과 현실을 뒤섞어 문화 혼성의 특수지대를 만드는 정연두(34)씨, 현대인을 사진과 비닐 그림을 써 명화 속 고전적 인간상으로 둔갑시키는 배준성(36)씨, 2001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로 참여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세계적인 보편성으로 풀어내 주목 받았던 서도호(41)씨 등이 7표를 얻어 비평계가 시선을 보내는 작품세계가 다양함을 증명했다.

이밖에 김소라.구본주.구정아.김종구.마이클 주.문경원.박이소.오인환.이강우.장영혜.정서영.정수진씨 등이 나란히 5표씩을 받았다.

이번 설문조사는 개인 작가들에 대한 선호도를 뛰어넘어 21세기 한국 미술계 판도가 크게 변하고 있음을 실증하고 있어 흥미롭다. 추천받은 개인작가 1백90명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78명이 외국 유학파여서 국내외를 넘나드는 이들의 활동력을 입증했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42명으로 절반을 넘어 현재 국제 미술계가 미국의 영향력 아래 움직이고 있음을 반영했다. 또 형식상 장르의 구분이 무너지면서 사진이나 비디오와 같은 영상매체를 혼합하는 '뉴미디어' 경향의 작가가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는 상대적으로 전통 회화와 조각 영역이 움츠러들고 있는 현상을 증거한다.

하지만 이 '뽑기'에서도 아쉬움은 남는다. 추천작업에 참여했던 미술평론가 박영택씨는 선정된 작가들이 "중요 기획전시, 비엔날레를 통해 집중적으로 선보이고 조명 받는 이가 대부분"이라며 "세련된 연출력과 함께 엘리트 작가들이 선호되는 흐름인데, 젊은 비평가와 큐레이터들은 왜 그런 작가들만 편향적일 정도로 선호할까"라고 되물었다.


이영준 계원조형예술대 교수는 "예술의 담론이 다른 영역의 담론과 뒤섞이고, 한쪽으로는 엔터테인먼트에 밀리고, 또 한쪽으로는 산업과 기술에 밀리면서 예술의 자리는 좁아지는 듯 보이며, 따라서 작가의 존재도 불안해 보일 때 도대체 어떤 정체성의 자리에 자신의 진지를 구축할까" 하는 고민 많은 세대가 '3545'라고 결론지었다.

정재숙 기자

[출처: 중앙일보] 
2003.01.07
http://news.joins.com/article/98398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