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이 아닌 외국에서 이방인으로서
작가 생활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작품 활동을 하는 공간의 차이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각기 색깔이 다른 여러 도시에서의 경험이
넉넉한 예술적 자극 제가 되고, 익숙한 일상의 조각이라 현지인의
관심 밖에 있던 대상을 찾아내는 즐거움이 있다.
작가이면서 동시에 교수란 직업을
갖고 있다. 한국 학생들은 어떤
특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가장 큰 특징은 독일에 비해
3~4년 정도 빨리 예술을 전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의 경우, 군대를 제대한 뒤 그림을 시작 했고,
다른 친구들 역시 본격적인 학업을 시작하기 전에 다른 직업을 갖거나 여행 등을 통해 많은 경험을 하고 미술에 입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한국
학생들은 보편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고, 어떤 학생들의 경우엔 탁월한 재능이 있다. 하지만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학생임에도 정작 삶의 목적이나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의 지향점이 불 분명해, 중도에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를 보았다. 재능이 오히려 덫이 된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당장은 2월 27일부터 3월 25일까지 한미갤러리 서울에서한국인은 유럽의 고색창연한 건축물에 동경을 갖는
반면, 우리의 건축물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우리 건축물은 어떤 점에서 아름다운가? 유럽의 고건축물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그 역사성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의 건축물은 급속도로 근대화에 다가가려 했던 지난 시대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었다는
측면에서 유럽의 건축물과 성격이 다르다. 개인적으로 학교 근처에서 집을 구하기 위해 많은 건물들을 둘러 봤다. 그때 보았던
고층 아파트 등 최근의 건축물은 도대체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1970~90년대에 지어진 마당을 낀 단독주택들을 보곤
기뻐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당시의 집들을 보며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영향을 받기도 했음을 확인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한 가지 안타까운 건 기후에 강한 테크닉을 가진 전통 한옥의 유전자가 이어지지 않고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확실한 건 한국의
주택들은 내가 목격한 일본이나 대만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는 보지 못한 유니크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그런 아름다운 주택들이 길가의
큰 건물들에 가려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안타깝다.
작품 속 오브제인 개인주택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작가로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주택의 장식적 스타일은
당시의 건축가나 건축주가 중요하게 생각한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것은 전통과 새로운그는 우리 입장에선 지우고 싶은 개발 시대의 상징인
‘1980년대 한국 건축물’을 캔버스에 끌어들였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작품 속에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만 사람이 짓고 깃든 공간만이 존재한다. 그 시대, 정작 우리가 놓친 그 무언가를 소재로 말을 건네고 있는
그의 화법이 새롭다.
프랑스,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건축물을 핵심적인 오브제로 삼고 있다. 25년 이상 하나의 오브제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건축물은 단순한 무생물이 아니라 엔지니어링과 디자인 혹은 미학이 집약된 대상이란
점에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인간의 일상과 문화 그리고 사회라는 공동체의 정서에 관심을 갖고 있고, 그것이 집약된 것이 건축물이라고 믿으며, 그런 관심을
회화란 장르로 표현하고 있다. 도시의 건축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개인이자 집단이고 문화이며, 난 그것이 생산하는 풍경에 매료당한 작가이다.
우리의 일상에 주목하고 있는데, 어떤 이유로 작품 속에서 사람이
배제된 것인가?
예를 들어, 어떤 할머니의 초상화를 그렸다고 치자.
그건 너무 개인적인 메시지이고 직접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건축물을 보여준다는 건 일반적이지만 상당히 포괄적인 메시지를 전달 할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은 골목의 풍경을 이루고 있는 건축물을 일상속에서 항상 마주치지만 미학적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내가 발견한 미학적
디테일을 그들에게 전달하려는 것이 의도이고,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건축물을 중요한 오브제로 삼는 데는 3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건축미학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건축에 대한 개인적 관심도가 높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한시적 생명력을 가진 건축물에 대한 기록적 의미가
두루 내포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가능성인 근대화에 뿌리를 둔 한국의 비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주택들이 가졌던 넉넉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다. 테라스나 발코니 같은 외부 공간은 가용성을 높이기 위해 실내 공간으로
흡수되었고, 단일 가구를 위한 주거 공간은 새로운 소유자에 의해 여러 가구로 쪼개어지고 있다. 마당이
주차장이 되고, 급기야 빠르게 철거돼, 단순한 디자인의 상업용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물론 다양한 기술적 경제적 이유가 있다는
걸 알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한국 건축의 특별한 양식이 사라지는 건 아쉬운 일이다.
열리는 개인전 준비에 전념할 계획이다.
7년 전부터 거주해온 한국에서 만난 건축물들이 이방인인 나의 시선을 통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엿볼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로 인해 관객들이 내 작품 속에 등장하는 건축물을 자신의 일상 속에서 다르게 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작가로서 큰 행복이 될 것이다. 크고 작은 화분들과 그의 손때 가득한 도구들, 그리고 문 위까지 빼곡히 걸려 있는 작품들이 어우러진 작업실 풍경.글과 진행 최태원, 사진 전재호http://www.sulwhasoo.com/kr/ko/experience/magazine/vol66/p00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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