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x 240 mm / 264쪽/ 사철 소프트커버 / 2014년 7월 1일 발행 / 값 30,000원
ISBN 978-89-94207-38-4 03660
ISBN 978-89-94207-38-4 03660
발췌“조춘만의 작업을 제대로 보려면 많은 것이 설명돼야 한다. 도대체 왜 그는 공장 등 산업 시설을 찍기 위해 고군분투하는지, 왜 강철과 콘크리트로 된 산업 경관을 아름답다고 보는지, 사진을 어떻게 다루어 그 아름다움을 포착하는지, 혹은 꾸며내는지 알려면 우리는 사진의 역사 전체와 산업의 역사, 한국에서 산업이 표상해온 역사 등 여러 겹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조춘만이라는 개인은 그만큼 많은 것을 응축하고 있다. 사실 그는 그런 모든 역사를 생각하면서 작업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찍고 싶은 산업 경관을 좇아서 충동적으로 작업한다. 하지만 그 충동은 역사적인 것이다.”
“(산업이라는) 괴물을 어떻게 해야 할까? 쳐부수든지 어떤 식으로든 다뤄야 한다. 창 하나 들고 풍차가 괴물이라며 달려든 돈키호테처럼, 사진가 조춘만은 카메라 하나 들고 괴물에 맞선다. 아니, 살살 접근하기 시작한다. 괴물의 정체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미지의 정체성이 괴물의 정체성이다. 그런데 인간은 미지의 정체성을 계속 상대하고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괴물에 표상을 부여해야 한다. 하다못해 ‘괴물’이라는 딱지라도 붙여야 한다. 그러면 위험하다느니, 이질적이라느니, 없애버려야 한다느니 하는 처방들이 나오고, 이어서 다뤄나갈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조춘만은 괴물 같은 울산의 경관을 사진으로 찍어서 다룰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바꾼다. 즉 하나의 표상으로 만들어버린다.”
“결국 한국에는 필요에 의해서 찍은 공장 사진은 있었지만 그것을 멋지고 의미 있는 경관으로 찍은 사진은 없었다. 한국 사람들은 근대화를 위해 산업이라는 괴물을 끼고 살아야 했지만 그것을 표상으로 만들어서 다스리는 법을 배우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공장이 포토제닉한 것으로 비치려면 21세기까지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1917년 알버트 칸이 설계한 포드 자동차 공장을 1927년 찰스 쉴러가 사진 찍는 식의 표상의 계보는 한국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소비하면서 생산으로부터 소외돼 있다. 우리들이 쓰는 소비품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지도 못하고 볼 수도 없다. 게다가 생산에 참여한다는 것도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참여는커녕 피드백도 불가능하다. ‘요즘 쓰는 전동 칫솔의 손잡이 원료인 폴리머의 탄소분자 배열에 좀 문제가 있는데 해결해주세요’라는 식의 피드백은 소비자로서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소비자란 구조들을 닫힌 것으로만 체험할 뿐 그것을 열어서 속을 들여다보거나 구조를 바꿀 관심도 능력도 자격도 부여돼 있지 않은 불쌍한 사람이다. 그래서 소비자는 사물의 객체로만 남는다. 자신의 의지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기계비평적 관심이란 사물의 닫힌 구조 속으로 파고 들어감으로써 소비자의 처지를 극복하고 사물의 주체가 되고 싶어 하는 욕구이다.”
http://workroompress.kr/wp/?p=749
Published by Workroom Press, Seoul
July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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