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품으로 엮은 세상…‘1000원 예술’ 한번 보소


‘주재환 : 어둠 속의 변신’전
깡통·페트병·녹슨 대못 등 작품화
분리수거 미술, 다이소 미술로 불려
“예술가는 ‘왜’ 진지하게 생각해야”

빨래 건조대에 주렁주렁 매달린 음료수 페트병, 깡통, 빈이 기괴하다. 재활용품 장으로 바로 실려 갈만한 온갖 쓰레기가 작품이 되었다. ‘물 vs 물의 사생아들’이란 제목은 우리 시대의 만평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는 오늘, 물과 인공물질과의 대결에서 누가 이길까를 그는 옆구리 찌르듯 묻고 있다.

“연 날리던 시대 사람을 불러내 드론 날리는 오늘 얘기를 하라면 어쩌나.” 그는 스스로 ‘후라이’라고 말하는 익살로 나이 값을 뛰어넘는 울림을 던진다. 주재환(75)씨는 남들이 내다 버린 싸구려 폐품을 주워 우리 인생의 풍경과 인간의 전설을 엮어낸다.

지난 4일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시작한 개인전 ‘주재환: 어둠 속의 변신’은 밤에 다리 밑에서 뒹굴던 한 작가의 회고담처럼 다가온다. 인생을 즐겁게만 산 사람들이 읽기엔 좀 그런 작품들이 그득하다. ‘미술관적인 교양’을 홀라당 벗겨 버린 작가는 이 희한한 그림과 설치물에 ‘1000원 예술’이란 절묘한 이름을 붙였다. ‘다이소(1000원 물품 판매점) 미술’ ‘분리수거 미술’이라고도 부른다. 작품 하나 만드는데 1000원도 들지 않는 초월적 경제성을 함축했다. 그는 “유토피아란 게 돈 없는 사회 아닐까. 내가 뭘 알겠어, 개코나 뭐나 진짜 몰라. 그저 그림만 붙들고 있는 거지”라고 눙쳤다.

그는 평생 화가였지만 나이 육십이 되던 2000년에서야 생애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 전시회 제목 ‘이 유쾌한 씨를 보라’는 주재환 선생을 아는 이들에게 만감을 불러일으켰다. 전혀 유쾌하지 못한 시대와 환경과 개인사를 뚫고 나온 그의 웃음과 만담은 말 그대로 ‘미스터 유쾌한’이란 별호를 지닐만한 풍자와 해학이기 때문이다.

‘광대형 작가’라 치부하는 그로서는 저자거리에서 누구나 어깨 겯고 ‘다 같이 차차차’를 부르고 싶은 그림을 지향해왔다. 1979년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참여하며 내놓은 ‘몬드리안 호텔’이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는 그 도저한 ‘현실 뒤집기’로 저주받은 걸작이 됐다. 한국형 ‘다다(DADA) 예술’의 속내를 그는 구수한 육자배기로 풀어낸다.

"해질녘 다리 밑 그림을 이해하려면 눈물 콧물도 흘리고, 삶에 덕지덕지 낀 때도 좀 긁어보고, 어깨도 축 늘어뜨려 보고, 맨발로 끈적끈적한 진흙탕도 기어봐야지.”

지난 30여 년 장노(장시간 노는 사람)를 자임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주물럭거린 작품 50여 점은 기존 미술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도사와 같은 경지를 보여준다. 산 위에 내리는 비는 거꾸로 솟구치고(‘괴산괴우’), 빈 액자에 묶인 뻘건 비닐 끈과 사탕 껍질은 빛나며(‘아침 햇살’), 동네 공사장에서 주워온 녹슨 대못은 노래 부른다(‘악보’).

“시대 추이 같기도 한데 지금은 다들 밀실에 숨어 있는 거 같아. 전부 다 자기 방언이나 연민에 빠져 있으니 참 문제야. 일상과 밀착된 게 없어요. 예술하는 사람들이 ‘나’보다는 ‘왜’를 좀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 ‘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것’에 더 투자하는 세월이 왔으면 좋겠고.”

브라질 빈민촌 어머니들이 저녁이면 배가 고파 보채는 아이들을 달래며 냄비에 돌을 넣고 물을 끓이며 애들이 잠들기를 기다리는 얘기에서 착안한 ‘다이아몬드 8601개 vs 돌밥’ 앞에서 그는 탄식하듯 말했다. “돌아보니까 80%는 후회고 5%쯤 즐겁고 그랬던 것 같아. 그러다 가는 거지 뭐, 신비해…인간들이.”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2016.03.10 
[출처: 중앙일보] 폐품으로 엮은 세상…‘1000원 예술’ 한번 보소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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