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악보는 쓰여진 지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지나도 다시 연주되곤 한다. 그렇다고 매번 꼭같은 연주는 아니다. 연주자마다 새로운 해석을 더해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내곤 한다. 영화의 시나리오도 마찬가지다. 이런 개념을 만약 미술전시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이름난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20여년 전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실행에 옮겼다. 영감을 준 것은 1993년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에서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베르트랑 라비에르 같은 작가와 나눈 대화였다. 설치작품이 지닌 지시적 특성에 대한 작가들의 얘기를 듣고 오브리스트는 작가가 작품 대신 지시문을 만들고 이를 매번 다른 작가가 마치 악보처럼 해석해 새로이 작품을 구현하는 전시를 구상했다. 이른바 '열린 형태의 전시', '언제까지나 진행중인 전시'다. 먼저 그는 여러 나라 예술가가 쓴 12개의 지시문을 모아 출판물로 펴냈다. 이에 바탕한 첫 전시가 이듬해 호주에서 열렸다. 이후 이 전시는 'do it(두 잇)'이라는 제목으로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서울 세종대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do it 2017, 서울'은 이 독특한 전시의 한국판이다. 예술가, 과학자, 철학자 등 국제독립큐레이터협회(ICI)가 그동안 수집한 200여개의 지시문 가운데 40여개를 골라 국내에서 새로 해석해 만든 작품과 함께 이 전시에 담긴 정신을 선보인다. 지시문이 다양한만큼 작품의 면면도 다양하다. 예컨대 김동규 작가는 스스로 엄청나게 성공한 사람인 척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영상작품에 담았다. '당신보다 부유하고, 매력적이고, 섹시하고, 인기 많은 사람'의 전기를 읽고 일상에서 그 사람인양 살아보라는 지시문(사이몬 후지와라)을 그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결과다. 호상근 작가는 비밀번호에 얽힌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각자에게 그림으로 그려주는 프로젝트 '호상근 재현소'를 선보인다. 이메일이나 각종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의 비밀번호들로 연애편지를 써보라는 지시문(아드리안 빌라 로야스)에 대한 답변이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골라 그 사람을 색깔과 무늬로 기억하는 독특한 방식을 제시한 지시문(올라퍼 엘리아슨)도 있다. 이에 대해 홍승혜 작가는 단순한 형태의 도형이 움직이며 정서적 표현을 담아내는 영상작품을 선보인다.
이처럼 'do it' 전시는 새로운 해석, 그에 따른 우연과 더불어 전문작가만 아니라 전시가 열린 지역의 공동체가 작품의 구현에 참여하는 것을 특징으로 삼는다. 지시문을 제시한 작가가 직접 작품을 만들지 않는 것, 지시문에 바탕해 다른 작가가 만든 작품도 전시 이후 원칙적으로 폐기하도록 하는 것도 특징이다. '오리지널'에 대한 통념, 미술작품을 판매와 소유의 대상으로 삼는 통념을 무너뜨린다. 홍승혜 작가는 "체험으로서의 예술, 과정으로서의 예술을 강조하는 전시"라고 지적했다. 이름난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20여년 전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실행에 옮겼다. 영감을 준 것은 1993년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에서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베르트랑 라비에르 같은 작가와 나눈 대화였다. 설치작품이 지닌 지시적 특성에 대한 작가들의 얘기를 듣고 오브리스트는 작가가 작품 대신 지시문을 만들고 이를 매번 다른 작가가 마치 악보처럼 해석해 새로이 작품을 구현하는 전시를 구상했다. 이른바 '열린 형태의 전시', '언제까지나 진행중인 전시'다. 먼저 그는 여러 나라 예술가가 쓴 12개의 지시문을 모아 출판물로 펴냈다. 이에 바탕한 첫 전시가 이듬해 호주에서 열렸다. 이후 이 전시는 'do it(두 잇)'이라는 제목으로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전시장에는 그동안 가장 많이 다시 구현된 지시문을 비롯, 'do it' 전시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도 자리했다. 그 중 하나가 오노 요코의 '평화에 대한 기원'(1996), 즉 소원을 빌고 종이에 적어 '소원 나무' 가지에 묶도록 하는 지시문이다. 이번 전시는 온라인(ilmin.org/do-it-2017-Seoul)과 오프라인을 통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일반인이 참여하는 지시문 실행 관련 다양한 행사도 마련했다. 여러모로 예술을 전문가의 몫으로 치부하고 구경만 하는 대신 제목(do it)처럼 직접 해보라고 부추기는 전시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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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2017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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