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민자는 노동, 시간, 사랑 등 모든 인간의 공통되고 근원적인 경험과 관련된 관념들에 대해 생각하는 퍼포먼스와 영상 작품에 전념해왔다. 플라톤의 <향연>에서처럼 젊은이들이 밤새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한국인의 시간 사용에 대한 통계에 따른 ‘평균적 삶’을 퍼포먼스로 수행해내고, 조리예에 나온 결코 포장 속 재료로 만들 수 없는 요리를 정성껏 완성해내면서 우리가 사회 속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하게 받아들인 관념들을 불편하고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여러 도시의 레지던시, 특히 서머타임제를 실시하고 시차가 존재하는 도시를 경험해왔던 작가는 시간이라는 자연스럽고 천부적인 요소에 개입된 문명의 작위성에 관심을 두었다. 하절기의 긴 낮을 저축해서 쓴다는 ‘서머타임’처럼,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가 0도의 기준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경도 180도에는 한 장소의 동쪽과 서쪽이 각각 다른 날이 되는 ‘날짜변경선’이 만들어진다. 구민자는 피지 타베우니 섬의 날짜 변경선을 오가는 퍼포먼스를 통해 “하루를 두 번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불가역적인 시간의 흐름과 삶의 의미를 묻는다. 작가는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믿는 많은 것들이 사실 만들어진 것일 수 있고, 다른 문화권에서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살 수 있다는 인식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의문을 탐구한다.
http://koreaartistprize.org/project/구민자/
세상을 열린 눈으로
박수진(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올해의 작가상 2018> 후보로 구민자를 추천한다. 구민자 작가의 삶과 작업은 동일선상에 위치한다. 특정한 브랜드의 완성된 작품을 제시하기 보다는 세상의 틀 안에 존재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았던 1cm의 지점을 포착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 틈을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세상을 열린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작가이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져 온 집단 구성원들이 공유하는(혹은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는) 어떠한 틀, 그러니까 우리가 사회를 이해하는 특정한 방식, 합의된 시스템, 관념 등이 개인 삶의 틀로서도 작용을 하고 그것이 일상적 생각과 행동에 어떤 방식으로든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좀 두려워질 때가 있는 데 아마도 그것이 작업의 시작이 되는 것 같다” 1 그는 노동의 가치, 사회 제도의 기능과 역할, 평균화된 인식 등 거대한 담론을 지극히 일상적으로 접근하며 기존의 관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겨우살이>(2011)는 작가가 경기도 안산 선감도에서 주민들의 일손을 돕고 품앗이로 김장과 쌀을 얻는 과정을 TV로 상영하며 관객들과 김장 김치와 밥을 나누었던 작업이다. 노동의 과정을 작업으로 대체하면서 노동의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직업의 세계>(2008)에서는 대만에서 직업을 구하기 힘들었다는 이주민의 얘기를 듣고 직접 길거리에서 구인광고를 내고 직업소개소를 찾아가며 직업을 구하고 노동하는 과정을 기록한 사진 작업으로 작가가 외국인 노동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42 .195="">(2006)에서는 작가가 실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몇 시간 안에 그 거리를 완주하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식사하고 다시 걸으면서 이틀에 걸쳐 혼자만의 주행을 완성한다. 속도전이라는 경쟁의 개념을 무력화하게 하는 작가의 저항을 보여주고 있다. <정통의 맛>(2014)에서는 상품 표지에 있는 음식의 이미지를 작가가 직접 재현하여 그 음식을 관객에게 제공하는 작업이다. 작가는 이것을 위해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는 등 이 프로젝트를 실현하는데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상품 이미지를 재현하기 위해 같은 그릇을 주문하고 자로 잰 듯한 동일한 색과 형태를 추구함으로써 디자인된, 의도된 이미지를 다시 실제화하는 과정을 통해 실제와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고 있다. <23:59:60>(2016)는 3년에 한 번씩 발생한다는 윤초의 시간에 세계의 다양한 표정을 담아낸 프로젝트이다. 2015년 6월 30일 23시 59분 59초와 7월 1일 00시 00분 00초 사이에 윤초 1초가 더해졌다. 작가는 세계 각지에 위치해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하여 작가의 일정 요구사항에 따라 찍혀진 사진들을 모아 작업으로 제시하고 있다. 가상의 상황을 설정한 <예술가-공무원 임용을 위한 공청회>(2013)에서는 예술가를 공무원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자격조건, 업무 범위, 조직의 위치, 급여수준 등을 논의하기 위해 공무원, 예술가, 교수, 잡지사 기자, 큐레이터, 문화평론가 등이 모여 두 차례에 걸쳐 공청회를 열었다. 예술의 기능과 역할, 국가 조직, 젊은이의 취업과 연봉 등 사회 구조를 생각하게 하는 프로젝트이다.23:59:60>42>
이렇듯 작가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날카롭게 각을 세우기 보다는 그 의도와 과정에 중점을 둔 작업들을 덤덤하게 수행하며 사진, 영상, 출판 등의 방식으로 퍼포먼스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단지 관찰자의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스스로 실행하고 체험하며 관객과 나누는 과정을 통해 공유한다. 그는 예술이 사회에 기여하는 기능,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하는 힘을 작업과 삶 속에서 실천하고 있다. 그의 사고는 인간을 중심에 둔 인문학을 바탕에 두고 있다. ‘평균’이라는 인식에 사람을 재단하기 보다는 그 인식과 가치를 재사고하게 하는 것이 구민자 작업의 특징이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SNS가 소통의 수단이 되고 있는 오늘날 단지 새롭다거나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미술에서 하나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요즘 작가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경험하며 그 과정 속에서 작업을 완성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권위적인 진실, 고정된 의미가 아니라 예기치 못한 우연이 발생하며 상황에 따른 가변적인 의미가 생성된다. 작가는 이를 좋고 나쁨의 잣대로 판단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작품을 복합적이면서도 다층적인 구도로 엮어나간다.2 구민자 작가는 이러한 담론을 창출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작가로써 동시대 미술계에 실질적인 미술 후원제도인 올해의 작가상 의미에 부합되는 작가로 추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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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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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2018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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