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한 쇳덩이의 합창 … 경외감에 떨며 셔터를 눌렀다


산업현장 찍기 20여 년 조춘만씨

26만t급 유조선 숫자까지 못잊어
사람 하나 없는 풍경만 앵글에
“살아있는 생명체 공장·철 사랑” 

조춘만의 ‘석유화학’(2014, 110×165㎝). 

그는 “24시간 쉬지 않고 가동되는 공장이 종종 생명체처럼 보인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은 ‘기술자’였다. 1956년 소작농 집안의 여섯째로 태어난 소년이 꿈꿀 수 있는 최대치였다. 초등학교만 마치고 농사일을 돕다가 74년 열여덟 나이로 공장에 취직했다. 울산 현대중공업의 소조립 하청업체였다. 처음 한 일은 철판 자르기. 어깨 너머로 용접도 배웠다. 완성된 배를 넉 달 뒤 봤다. 그동안 자르고 옮긴 철판이 어디 들어갔는지 가늠할 수도 없는 거대한 규모였다.

“26만t급 유조선으로, 폭이 53m였어요. 이 수치가 머릿속에 박혀 안 빠질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산업사진가 조춘만(59·사진)씨는 그때의 경외감을 잊지 못한다. 그 경외감을 동력 삼아 지난 20여 년 간 공장 사진을,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강철의 장대한 풍경을 찍었다. 그동안 산업현장을 찍은 사진들이 대개 용광로의 쇳물이나 노동자의 미소 같은 전형적 이미지였던 것과 다르다. ‘다큐먼트’(서울시립미술관, 2004), ‘근대성의 새 발견’(문화역서울 284, 2013) 등 여러 전시에 그의 사진이 소개됐다. 최근 개막한 ‘우주생활’(일민미술관, 기획 이영준, 5월 17일까지) 전에도 출품했다. ‘우주’만큼이나 ‘생활’에 방점이 찍힌 전시다. 70년대 우주 개발 시대의 아날로그적 실험을 담은 NASA(미항공우주국) 기록사진과 관련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그중 조씨의 공장 사진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우주적’으로 보인다. 8일 그를 일민미술관에서 만났다.

 
- 공장이 어떻게 아름다운가. 지지리 고생했던 일터인데.

“산업에 대한 애착이자 경외감이랄까. 산업 시설은 정직하다. 기계는 인간이 조종하는 대로 계속 무언가를 생산한다. 나는 철을 사랑한다.”

젊은 시절 그는 용접사로 중동까지 일하러 갔다. 아들이 태어난 날, 먼저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했다. 거기서 위궤양·십이지장궤양을 얻었다. 한 차례 집에 돌아왔다 다시 쿠웨이트로 향했다. 거기선 용접 불똥이 귀에 박혀 청력에 문제가 생겼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80년대 중반 수퍼마켓을 열었다. 장사 틈틈이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40대 중반에 대구 경일대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93년 처음 카메라에 담은 건 용접사 시절 살던 울산 부곡동이다. 마을이 철거된 곳에 공장이 들어서자 그것도 찍었다. 그는 “ 죽어라고 배관 용접만 할 때는 산업 시설물의 위용과 자태가 보이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그게 미학적 광경으로 보였다”고 돌이켰다.

- 공장에서 일하며 몸도 많이 상했다. 공장 촬영이 환대받는 일도 아닌데.

“산업 현장에 그런 일은 다반사다. 중동에선 월 700시간 넘게 일한 적도 있다. 그렇게들 일했다. 최선을 다하다 보니 또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고, 그렇게 삶이 흘러왔다.”

미술평론가 이영준 계원예술대 교수는 “과거 공장사진이란 미래의 풍요를 약속하는 프로파간다였다. 이와 달리 조춘만의 카메라는 기계의 직선미, 금속성 질감의 밀도를 직시하며 이를 기억할 만한 산업유산으로 남긴다”고 평했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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