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가지 마세요Ⅲ : 동숭구경(東崇九景) Don’t emigrate 3: Dong-soong 9 scene

기획_김학량 2006_08_11 ▶︎ 27 
이경민 최원준(사진)_정재호, 노충현(회화)_정직성+슈크림(회화+이야기)구민자(드로잉, 설치)_이원정(비디오)
갤러리 정미소 Jungmiso, Seoul
 지필묵을 중심으로 수행되어온 전통회화의 패러다임, 이념, 양식 등을 동시대 삶의 문맥에 맞추어 해체 · 변용 · 전유하려는 비평적, 실험적 시도로서 진행되어 온「이민 가지 마세요!」연작의 세 번째 전시이다. 전시를 일관하는 문제의식은, 20세기 이후 지필묵 화단이 과거 언어의 형이상학적 늪에 빠져있는 채 회화적 스타일과 방법론은 전혀 현재적 정합성과 생기를 얻지 못해왔음을 비판하고, 어쨌든 생생한 현재로부터 도주하지 말고 정직하게 대면해야 한다는 것. 연작의 마지막 기획인 이번 '동숭구경(東崇九景)'은, 조선 문인들이 자연과 인생을 전유하는 문학적, 회화적 형식으로서 즐기던 '관동팔경'이나 '벽계구곡'류의 장르를 차용하여, 동숭동 일대에서 벌어지는 살림살이의 꼴과 멋, 앞과 뒤, 위와 아래를, 다양한 매체와 언어를 가지고 더듬고 훑고 기록하고 비평하고 좌시하고 노출하고 은폐하려는 계기적 시도이다. 풍경은 어디든 비릿한 살림살이 내음이 배어있게 마련이므로 모든 그곳은 사건 현장이다. 이 전시는 동숭동에 대한 옴니버스 다큐먼트가 될 것이다. 마땅하게도 작가들에게 동숭동은 동일한 장소이면서도 서로 이질적인 장소이다; 동숭동이라는 드라마는 다양한 사건의 네트웍이다. 그러므로 이 전시는 작가 각자의 시점과 관점에 따라 분열되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게 될 것이다.
■ 김학량https://neolook.com/archives/20060812b

<이민 가지 마세요3-동숭구경>展 
- 2006년 9월호 전시리뷰

글|이대범*미술평론가

   김학량이 돌아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민 가지 마세요>라는 알쏭달쏭한 전시제목을 가지고 말이다. 2004년부터 계속되어온 <이민 가지 마세요>는 그가 전시 소개 글에서 밝히고 있듯이 “지필묵을 중심으로 수행되어온 전통회화의 패러다임, 이념, 양식 등을 동시대 삶의 문맥에 맞추어 해체*변용*전유하려는 비평적, 실험적 시도”이다. <이민 가지 마세요>는 2000년 2월 《월간미술》에  그가 기고한 <지필묵 다시 읽기>의 전시적 변형이라 할 수 있다. (<지필묵 다시 읽기>는 편집자가 밝히고 있듯이 ‘지상기획전’이었다. 그러기에 <이민 가지 마세요>가 <지필묵 다시 읽기>의 전시적 변형이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지필묵 다시 읽기>, 또 하나의<이민 가지 마세요>인 셈이다.) 그는 그 글에서 “‘한국화는 갔다거나 한국화는 안된다’는 식으로 폐기처분하자는 의사를 짐짓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을 차갑고 솔직하게 밝혀보자”는 뜻을 밝히고 있다. 그러기에 그는 <지필묵 다시 읽기>가 “최종적 탈고”가 아니라 “어떤 질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2004년 첫 번째 전시 <이민가지 마세요1-한국현대동양화3인전>에서는 전시작가 ‘고정민+오동권+김학량’이었다. 이곳에 첫 번째 전시의 성격을 담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참여 작가들 사이사이에 놓인 ‘+’이다. 그가 밝히고 있듯이 <이민 가지 마세요1-한국현대동양화3인전>은 “전시공간을 분할하지 않고서 서로 뒤섞이게 하거나 거의 합작에 가깝게 해체모여 하기도 해서, 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풍경을 이루도록”했다. 2005년 두 번째 전시 <이민 가지 마세요2-한국현대서예8인전>에서는 ‘서예’라기 보다는 ‘문자’를 소재로하는(김영은은 국수로, 서희화는 오브제로, 김미형은 나뭇잎으로, 최소연은 보이지 않는 필기도구로, 어느 슈퍼 아저씨의 생활정보지에 쓰여진 글씨로) 작업들로 한국현대서예의 면모를 점검했다. 그리고 2006년 <이민 가지 마세요3-東崇九景>으로 또 다시 돌아왔다. ‘東崇九景’이라는 전시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전시는 조선 문인들이 자연과 인생을 전유하는 문학적, 회화적 형식으로서 즐기던 장르의 차용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르를 도구로 그가 매번 돌아오던 ‘동숭동’ 일대를 기록한다.   

   1930년대 소설가 구보씨가 천변풍경을 기록하듯, 김학량은 2006년 사진가(아키비스트) 구보씨를 대동하고 ‘東崇九景’을 찾아 나선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7명이다. 그중에서 대표로 구보씨 즉, 이경민의 <동숭4제(東崇四題)_사진가 구보씨의 역사 공간 만보기>를 택한 것은 “동숭동 일대에서 벌어지는 살림살이의 꼴과 멋, 앞과 뒤, 위와 아래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사진가 구보씨는 몇 장의 사진을 보여준다. 그곳에는 1910년부터 2005년까지의 동숭동의 모습이 있다. 그는 그곳에서 조선 후기까지 풍경이 수려하기로 소문난 명산이었던 낙산의 현재의 초라한(?) 모습을 찾아내기도 하며, 그곳에서 “전근대성의 원시림 속에서 새롭게 쏟아난 근대성(공업과 과학으로 대표되는)의 빛”을 찾아내기도 하며, 그곳에서 대학가의 시위 문화를 불식시키려 했던 전두환 군사정권의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조성된 차 없는 거리에서 반대급부로 군중집회의 최적의 장소가 된 대학로를 찾아내기도 하며, 70년대 서울시장 김현옥이 세운 허울뿐인 ‘시민아파트’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낙산아파트의 현재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위에서 기술한 것처럼 구보씨는 동숭동이라는 현재적 공간에 내재되어 있는 역사적 사건을 현재적 시점으로, 우리의 삶의 일부로 보여주고 있다. 

   다른 6명의 작가들은 동숭동에 관한 수평적 또는 수직적 의미망을 자신의 시선으로 구축한다. 구민자, 정직성+슈크림, 정재호는 대체로(필자가 보기에 ‘수직적 의미망’과 ‘수평적 의미망’을 조화롭게 드러내고 있는 것은 이경민의 작업뿐이다. 나머지 작업은 다른 한 부분으로 치우쳐 있다. 그러기에 나머지 작가들에게는 ‘대체로’라는 부사를 사용하고자 한다.) 동숭동의 ‘수직적 의미망’을 구축한다. 그간 ‘오래된 아파트’ 즉 사라져가는 시민아파트에 주목했던 정재호는 같은 맥락에서 낙산의 낡은 주택 담벼락과 철제 대문 등을 그렸다. 대량생산 될 수밖에 없는 스펙타클한 현대사회에서 걷기를 통해 공간의 내적 자율성에 주목했던 정직성은 동숭동 골목에서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의 구조를 보여준다. 더 나아가 이번 전시에는 간판의 표제를 이용한 글을 함께 제시하여, 그동안 추구하던 내적 자율성을 더욱 구체화했다. 구민자는 산업화의 표상인 아스팔트에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기 위해 그는 흙과 낡은 의자로 새로운 쉼터를 구축했다. 그곳에는 끊임없이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것은 동숭동의 과거를 구축하는 것이며,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은 이질적인 각자의 시선을 바탕으로 작업하고 있지만, 산업화된 현대사회 속에서 동숭동의 수직적 의미망을 점검한다. 

   이원정, 최원준, 노충현의 작업은 동숭동에 관한 ‘수평적 의미망’을 구축하고 있다. 이원정은 많은 건물이 없어지고 다시 생겨나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우리네 기억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길에 주목한다. 그는 자신의 신체를 길바닥과 마주하게 함으로 자신의 기억과 이웃의 기억들을 되새긴다. 최원준은 카메라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의 한계를 카메라를 통해 극복하여 새로운 원근법(동양화의 원근법에 가까운)으로 동숭동 골목을 조망한다. 노충현은 동숭동하면 떠오르는 연극에 주목한다. 그러나 그는 무대를 택한 것이 아니라 객석을 그리고 관객을 무대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노충현이 그린 객석에는 의자가 없다. 그곳은 무대이기도 객석이기도 한 공간처럼 보인다. 

   ‘東崇九景’이라고 했지만, 여기까지가 7경이다. 나머지 한 경은 아마 기획자 김학량이 전시장 벽면에 그려 놓은 ‘동숭구경 개념도’일 것이다. 이곳에는 이번 전시뿐만 아니라 그간 해왔던 <이민 가지 마세요>연작을 마치는 입장에서 그린 것일 테다. 그렇다해도 하나가 빈다.   ‘九景’. ‘구경’ 잘했으니 바로 당신이 ‘九景’이라고 말하는 것같다. <지필묵 다시 읽기>로 시작해 세 번의 <이민 가지 마세요>로 이어지는 김학량의 질문은 답을 찾은 것 같기도 하면서 그렇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그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지며 돌아올 것이다. 그런 그를 ‘九景’의 자리에 놓고 싶다. ‘구경’ 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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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

글/ 문혜진 미술이론(갤러리 사간 큐레이터)

  전통 동양회화의 이념을 동시대적 삶의 맥락에서 전유하고 변용하자는 취지로 시작된 <이민가지 마세요>는 2004년 ‘한국현대동양화 3인전’, 2005년 ‘한국현대서예8인전’을 거쳐 2006년 ‘동숭구경’이라는 이름으로 연작의 마지막 고리를 이었다. 동숭구경이란 기획개념은 ‘관동팔경’, ‘벽계구곡’을 차용한 것으로 자연과 인생을 문학적, 회화적으로 읊던 조선 기행문학과 기유도를 전시가 열리는 장소인 2006년 동숭동에 대입해보자는 전유적 제스춰다.

  우선 연작전의 완결로서 ‘동숭구경’이란 컨셉은 꽤 합당한 선택으로 모인다. 그림(동양화)를 대상으로 했던 1회전과 글(서예)이 주제였던 2회전을 그림+글이라고 할 수 있는 기유도 장르로 마무리 지은 점도 그렇고, 연작전 3회의 공간적 구현을 가능하게 한 정미소의 지리적, 심리적 모태인 동숭동을 주목한 것도 마무리로서 설득력 있는 제안이다.

  외견상 ‘동숭구경’과 앞서의 전시와의 가장 큰 차이는 대안 동양화라는 주제가 표면상 즉각 노출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물론 전통화단의 지필묵에 대한 원론적 고수를 비판하는 이 전시의 취지 상, 1, 2회전 역시 지필묵의 즉각적 원용과는 거리가 멀지만, 작품명(산수인물도, 주가산수)이나 장르특수성(서예)에 의한 전통회화의 발언임이 무언중에 인지되는 이전의 두 전시와는 달리 ‘동숭구경’의 경우 전시제목을 빼면 외견상 도시와 기억에 대한 여타 현대미술전시와 그다지 구분 되지 않는다. 사진, 비디오, 설치같은 전통화에서 낯선 매체가 전시작의 상당수를 점유했고, 회화라 할지라도 소재나 제목에서 전통회화와의 유비를 연상시키는 것은 없다. 한지를 바탕면으로 한 정재호 정도가 전통화단과의 유일한 희미한 접점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동숭구경’이 여느 현대미술전시와 구분되는 것은 매체가 아니라 동숭구경이라는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동숭구경이라는 전시명에 이미 이중으로 함의되어 있다. 구경(九景)은 작가들이 소재로 삼은 동숭동의 아홉 장소를 의미하는 동시에 8명의 작가+1명의 기획자 겸 작가의 아홉 동인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사모임에 속한 동인들이 한 절경에 대해 돌아가며 시화를 짓고 화답하는 기유도의 방식은 동숭동을 대상으로 아홉 경치를 만들어내는 아홉 작가들에게 그대로 전유, 재현된다. 거시적으로는 성공적인 기획 취지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현되었는가는 미시적으로 개개의 작품이 기유도의 방법론을 어느 정도 잘 취합, 재창조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전시에 대한 다음 질문은 개별 작품의 기획 의도와의 부합 정도, 구체적으로는 문학과 회화가 긴밀히 조응하는 기유도의 방법론에 대한 재해석의 성공 여부가 된다.

  타 장르와 구분되는 기유도의 대표적 속성은 문학성과 회화성의 합치이다. 한 풍경을 두고 시와 그림이 동시에 만들어지고, 기행 문학 속 산수가 그림이 되며, 그림 속 정경을 보고 찬시가 만들어지는 시화일치의 구조에서 이야기(서사)는 기유도의 중요한 지점으로 부상된다. 이런 측면에서 기유도의 본질을 가장 충실히 재해석하고 있는 이는 이경민과 정직성+슈크림이다. 1912년부터 2006년에 이르기까지 동숭동의 역사적 서사의 변천을 글과 사진으로 만보하는 이경민은 역사의 동적 단면으로서 사진이 지니고 있는 이야기를 텍스트의 이야기와 교차시키며 100여년의 시공간 속을 노닌다. 정직성과 슈크림은 글과 그림의 대응뿐 아니라 창작 주체간 호응이라는 점에서도 기유도의 전통을 모범적으로 변용한다. 현대 동숭동의 화려하나 부박한 앞면과 비루하나 단단한 뒷면의 이질적 풍경은 각기 글과 그림으로 구현되며 대구를 이룬다. 한편, 직접 텍스트를 도입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미지 안에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것이 최원준과 정재호의 방식이다. 최원준은 파노라마 카메라를 이용해 전통회화의 중첩된 다시점으로 동숭동 재현을 시도하며, 정재호는 동숭동 속을 거닐다가 발견한 오래된 대문, 축대 등을 인공적 자연물로서 재구성한다. 그러나 이 둘의 이야기는 이미지와 완전한 정합체를 이룬다기보다 분절된 단편으로 머문다. 구민자, 이원정, 노충현의 경우 공간적 작업 대상이 동숭동이긴 하나 그것이 다른 곳이 아닌 동숭동 고유의 풍경일 필연적 정합성은 부족한 편이다.

  마지막은 언제나 처음을 호명한다. 연작의 마지막 기획으로서 ‘동숭구경’이 전통회화의 동시대적 전유라는 세 전시 전체의 기획취지에 얼마나 부합하는가를 묻는다면 대답은 2회전 때와 유사하다. 기획개념은 적절했지만 그것을 조형적으로 구현하는데 있어 취지와의 긴밀성이 1회전에 비해 아쉽다는 것이 그것이다. 가령 기왕 정미소와 동숭동이 주제라면, 동숭구경이 압축, 구현된 정미소 공간 자체를 고려한 작품이나 공간연출이 있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이제 완결된 <이민가지 마세요>를 뒤로 하며 남는 여운은 이미 낯설지 않은 실험적 동양화를 어떤 길로 풀어갈 것인가라는 가볍지 않은 화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기대와 미처 못 다한 이야기, 그것은 아직 끝낼 수 없는 ‘삶과 밀접한 동양화’라는 문제의식이고 그것에 대한 기획자의 끈질긴 모색일 것이다.

<미술세계> 200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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