푈클링엔-산업의 자연사

푈클링엔-산업의 자연사
조춘만 사진, 이영준 글
사월의눈 발간
정가: 4만원




늙은 제철소의 강직한 아름다움
울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조선소 취부사(철판 조각을 도면에 맞게 제작하는 일을 하는 노동자)로 취직했다. 사우디 건설현장에서 일할 때 사온 카메라에 취미를 붙였고, 결국 마흔살 넘어 대학 사진학과에 입학해 전문 작가가 됐다. 그래서 그에겐 이런 설명이 따라붙는다. “몸 속에 공장이 체화된 사람, 그 체화된 상태를 사진으로 남기는 몸짓이 체화된 사람”. 다소 생소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산업사진가’ 조춘만이다. 그는 압도적인 규모의 공장 구조물에서 강직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기계가 움직이며 뿜어내는 에너지를 사랑한다. 이른바 ‘산업미’에 충실한 사진을 찍어온 조춘만이 30여년 전 숨을 멈춘 공장, 독일 남부의 자를란트 푈클링엔 제철소(1873~1986)를 찍은 사진집을 내놨다. 사진비평가이자 ‘기계비평가’인 이영준이 용광로의 구조, 철의 종류(선철·주철·강철 등)와 만드는 방법, 조춘만 사진의 의미 등을 담은 해설을 붙여 완성도를 더했다.
2013년 프랑스 예술가의 소개로 우연히 푈클링엔을 만난 조춘만은 그뒤 5년 동안 20번 넘게 카메라를 메고 제철소를 방문했다. 독일이 영국 등 산업선진국을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던 19세기 중반 문을 연 푈클링엔 제철소는 이후 전쟁 특수를 타고(독일군 철모의 90%를 이곳에서 만들었다) 호황을 누리다 1970년대 이후 일본·한국 등과의 경쟁에서 밀려 문을 닫았다.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는 푈클링엔 제철소의 모습은 매력적이다. 녹슨 파이프 사이에 자작나무의 흰 어깨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이끼가 푸른 침대처럼 돋아나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그러나 나무의 뿌리는 공장 구조물을 파고들고 이끼의 습기는 콘크리트를 부식시키기에, 이곳에서 자연은 “산업유산의 적”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인공과 자연은 강렬한 대비를 이루지만, 따지고보면 철 또한 자연의 일부다. 철광석을 제련해 철(Fe)을 만들 때 쓰는 필수 재료인 석탄(정확히 말하면 코크스)은 식물에서 비롯됐다. 고생대에 퇴적된 식물 잔해가 석탄이 됐고 이 화석연료로 강철이 만들어졌으며 강철은 산업문명을 일궜다. 하지만 푈클링엔에서 보듯 산업문명의 정수인 제철소 또한 경쟁력이 다하면 어쩔 수 없이 자연에 몸을 맡긴다. ‘자연사(死)’를 맞은 산업의 역사가 ‘자연사(史)’가 되는 까닭이다.
이영준은 현재 울산 등 한국의 산업단지들이 ‘장년기’에 이르렀음을 짚으며 “산업의 증조할아버지에 해당하는 푈클링엔에서 산업의 노년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산업의 역사에 대한 예습으로.”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등록 :2019-01-18
http://www.hani.co.kr/arti/PRINT/878898.html

이영준, 조춘만 사진에서 ‘산업의 자연사'라는 개념을 추출하다

푈클링엔 제철소에서 적으로 간주되고 있는 자연을 바라보니 나의 시선은 착잡하기만 했다. 그래서 이 책의 주제를 ‘산업의 자연사'라고 잡았다. 즉 산업이 자연의 역사로 되돌아간다는 말이다. 조춘만의 사진은 그 긴 역사를 함축하고 있다. 그 역사 속에서 자연의 생명력은 기계의 생명을 죽이고 있었다. 이쯤 되면 자연이니 생명이니 하는 개념은 우리가 알던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역사와 개념들이 뒤엉킨 복잡한 것이다.
- 이영준, “머리말” 중

이 책에서 기계비평가 이영준은 조춘만의 사진에 여러 층위의 해제를 담당한다. 0장 머리말을 시작으로 1장에서는 푈클링엔 제철소에 대한 배경지식을 위해 제철 관련 전문용어와 역사적 배경을 소개한다. 2장에서는 페커 바케스가 제공한 과거 푈클링엔 사진에 짧은 사진 설명을 달았다. 3장에서는 1장에서 논의된 과정 일부를 사진으로 풀어냈는데, 조춘만이 촬영한 제철 관련 여러 사진들에 제철 과정을 단계적으로 설명하는 자세한 문장들을 덧붙였다. 이와 같은 사실 기반의 내용을 관통한 후 비평적 정점은 5장 “자석처럼 제철소에 붙어 버린 시선 - 조춘만의 푈클링엔 제철소 사진”에서 찍는다. 이영준은 철학자이자 과학기술자로서 독특한 사유를 전개하는 프랑스의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이론을 사진 비평에 도입한다. 이것은 국내에선 최초로 시도되는 사진 비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영준은 라투르의 하이브리드 개념을 통해 자연 대 산업이라는 이분법을 넘는 성찰을 조춘만의 푈클링엔 제철소 사진을 통해 전개한다. 그는 우리가 그간 ‘자연’이라고 이해한 개념이 산업의 반대가 아닌, 산업의 요소들이 이미 혼재되어 있는 하이브리드의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푈클링엔 제철소를 뒤덮고 있는 자연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도 관리책임자 페터 바케스의 말대로 “자연은 산업유산의 적이다!”라고 규정해야 할까? 아니면 자연은 어디나 소중하고 보존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둘 다 아니다. 그것은 브뤼노 라투르가 말한 하이브리드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즉 그냥 자연이 아니라 다른 것들과 여러 가지 네트워크를 맺고 있는 자연이다.
- 이영준, “자석처럼 제철소에 붙어 버린 시선 - 조춘만의 푈클링엔 제철소 사진” 중
https://www.instagram.com/p/Brmy-wRDTMU/






<Völklingen: 산업의 자연사>
조선소, 중화학공장, 항만 등 거대한 기계가 움직이는 중공업의 현장을 사진 찍어온 조춘만이 최근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독일 푈클링엔 제철소를 5년 동안 스무번 방문하여 집중적으로 찍었다. 그간 사진 찍어온 국내의 중공업 현장도 대부분 강철이 지배하는 풍경이라는 점에서 푈클링엔 제철소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최근의 작업은 초점이 살짝 다르다. 조춘만이 그간 찍은 중공업의 현장은 막강한 기계의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었다면, 푈클링엔 제철소는 이제는 작동이 멈춰 더 이상 기계의 생명력이 없는 곳이다. 기계의 생명력을 대신해 들어선 것은 마구 자란 나무와 풀이 이루는 자연의 생명력이다. 조춘만은 이런 모습을 사진 찍으며 중공업과 기계의 세계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그간 중공업의 현장을 찍으면서 나무와 풀 같은 자연의 모습을 적극 배제해온 조춘만으로서는 흥미로운 철학적 변화이다. 이 책은 그런 생각을 사진과 글로 펼쳐내어, 중공업과 자연과 사진과 비평의 만남이라는 4자 관계를 탐색한다.
https://www.instagram.com/p/CBkNekdloWn/

[INSPER AWARDS WINNER]
200x265x16mm, 사철 하드커버, UV인쇄(CMYK, 금별색), 인스퍼M 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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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진과 글을 엮은 비주얼 에세이다. 작동이 멈춘 제철소, 기계의 생명력을 대신해 자란 나무와 풀에서 자연의 생명력을 발견한 조춘만은 사진을 찍었고, 이영준은 비평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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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춘만의 사진이 가지는 스펙타클한 특징을 살리기 위해 화면을 꽉 채우는 레이아웃을 적용했다. 한편 이영준의 설명 글 및 비평 글에서 조춘만의 사진은 친절히 설명하는 캡션으로 기능한다.
거대한 제철소, 녹슨 철과 폐허가 된 콘크리트 건물들, 그 틈에서 자라는 초록색 나무와 풀의 이미지를 인쇄하기 위해서 금별색과 녹색을 잘 구현할 수 있는 종이가 필요했다. 텍스트 양이 적지 않기 때문에 보는 사진 책임과 동시에 읽는 책이 되어야 했다. 광택이 심하지 않는 러프그로스 용지 중에서 적절한 종이를 선택해야만 했다. 인스퍼M 러프는 합리적인 가격과 종이의 품질을 고려했을 때, 내린 결론이었다.
한때, 자연을 정복했던 산업시설, 그리고 이제는 산업시설에서 발견된 자연의 회복능력. 앞 표지의 초록색 사각형과 뒷 표지의 갈색 사각형은 서로 대응하고 있다.
디자인 정재완
https://www.instagram.com/p/BwENVE0nuKV/

북토크
산업사진가 조춘만과 기계비평가 이영준의 신간 북토크
기획 배경과 제작 과정 그리고 그 의미를 짚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
산업사진가 조춘만과 기계비평가 이영준이 말하는 '기계의 죽음, 자연의 생명 그리고 울산의 미래'
.-장소 과학책방 갈다
- 날짜: 2019년 1월 19일 토요일 오후 5시 30분
- 참가비: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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