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사진미술관 부산 프로젝트 2019 조춘만_인더스트리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GoEun Museum of Photography, Busan
2019_0518 ▶︎ 2019_0807 

지난 7년 동안 한국의 대표적 중견 사진작가들이 부산의 다양한 면모를 담아 전시해온 고은사진미술관 연례기획의 명칭이 바뀌었다. 새 이름은 보다 의미의 폭이 넓고 유연한 〈부산 프로젝트〉이다. 〈부산 프로젝트〉는 부산의 여러 면모를 다시 새로운 시선으로 보려는 시도이며, 그 첫 결과물이 조춘만의 〈인더스트리 부산〉이다. 조춘만은 그 동안 우리나라의 중요한 공업 시설, 조선소를 비롯한 거대한 산업 구조물들을 촬영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가 바라본 부산의 산업시설들, 〈부산 프로젝트 2019〉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도시 전체는 일종의 거대한 기계이자 공장이다. 늘 지니고 다니는 휴대전화도 기계이고, 평소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아파트를 비롯한 집 조차도 르 코르뷔지에 말처럼 일종의 거주를 위한 기계이다. 그 기계에 공급되는 동력이 멈추거나 무엇인가 고장 나면 우리의 삶 전체가 흔들리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계 자체가 정보와 자본이 잘 흘러 다니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조직된 거대한 단일화 된 기계이자 공장을 지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산의 제조업은 고무, 신발, 철강, 조선, 화학, 자동차, 의류 등 다양하다. 역사 또한 깊지만 제조업 생산지를 사진으로 이미지화 한 경우는 거의 없다. 있더라도 개별적인 회사들의 필요에 따른 것이거나 공공 기관에서 요구되는 것이었다. 조춘만은 그 부산에 사진기를 들이댄다. 사진기 역시 이미지 포착 기계이니, 기계가 기계를 찍는 셈이고 조춘만 역시 사진 기계의 일종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이처럼 부산의 산업시설을 집중적으로 찍은 것은 아마도 조춘만이 처음일 것이다.
조춘만의 카메라에 담긴 부산의 산업시설은 일부는 공장 전체의 풍경이고 다른 하나는 제품이나 제품을 생산하는 도구 또는 물류시설들이다. 거대한 크레인, 롤러에 감긴 고무 벨트, 해독하기 어려운 언어처럼 얽혀 있는 크고 작은 파이프, 큐브처럼 쌓인 컨테이너, 무엇이 담겨 있는지 모르는 화려한 색감의 드럼통, 이빨을 차갑게 드러낸 금속 치차들, 단정하게 줄지어선 선박들과 조정장치, 시뻘겋게 달아오른 철봉과 거대한 단조 프레스 등등이 그가 찍은 대상들이다.
부산이라는 거대 기계는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공장과 그 결과물인 상품과 그걸 운송하는 물류 시스템들로 되어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는데, 조춘만은 지금까지 대개 공장의 외부를 제법 먼 거리에서 찍었다. 그 이유는 물론 거대 중공업 시설들을 대상으로 했고, 이것들은 거리가 적절히 떨어져야만 전체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밤에 찍은 사진들이 많은 이유도 다른 것들이 모두 어둠에 잠긴 시간에야 비로소 눈부신 공장의 불빛이 대상의 존재를 잘 드러내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조춘만이 공장의 내부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의 시선의 위치와 대상과 거리가 바뀐 것이다. 용접공 출신으로 공장의 내부에 익숙한 조춘만은 다양한 현장의 모습에 압도당하기도 하고, 공장의 디테일에 사로잡히기도 하면서 다른 도시와는 구분되는 부산의 산업적 특징을 포착한다. 그가 찍은 공장 내부는 작은 규모의 공장부터 대규모 공장까지 포함된다. 그래서 전시는 크게 산업 외부와 산업 내부, 디테일, 그리고 항구와 선박이라는 4개의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부산 산업의 안과 밖을 모두 조명한다.
조춘만의 카메라가 공장 내부로 들어가면서 두 가지가 우선 달라진다. 하나는 대상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공장의 디테일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볼트, 쇳밥 등의 작은 것들부터 거대한 철물의 단조 장면과 고무 제품 제조 시설까지 모두 다 들어온다. 또 하나는 제품을 생산하는 소규모 공장들 속에 노동자의 모습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작은 규모의 공장도 대상에 넣다 보니 일어난 일이다. 조춘만이 촬영한 공장을 채운 사물들의 용도, 목적, 작동방식은 모르지만, 우선 일종의 인위적 장엄함이 느껴진다. 이 느낌은 머리로 온다기보다는 몸으로 온다. 이는 사진이라는 이미지의 힘이자 대상 자체가 가지는 힘이다. 조춘만이 찍은 공장들은 서로 다르지만 물질들을 특정한 목적에 맞춰 새롭게 변형, 제조한다는 점은 같다. 4차 산업혁명이 오고 5G 시대가 왔다고 해도 공업이라고 불리는 2차 산업은 여전히 중요하다. 아무리 정보의 생산, 소비가 산업의 주류가 되더라도 인간은 신체적 조건 때문에 물건들을 필요로 하고 그것을 생산하는 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조춘만의 사진은 일종의 유형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결코 거기에 국한 되지않는다. 그의 호기심은 현재 왕성히 활동중인 공장들부터 운영이 멈춘 오래된 공장들에 이른다. 그는 압도적인 산업의 경관을 통해 인간과 함께 살아 숨쉬는 기계와 공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인간이 운영하는 공장뿐 아니라, 어떤 무엇이라도 언젠가는 무너지고, 사라지고 그 위에 풀과 나무가 자란다는 것을 독일의 폐공장인 푈클링엔 제철소 사진으로 드러냈다. 이는 일종의 공장의 미래에 대한 예언이며 현실이자, 그의 사진이 갖는 묵시록적 스펙트럼이 얼마나 폭 넓은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이다. 이번 전시 도록에서 이전 작업을 부록으로 넣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전시 도록을 통해 우리는 조춘만 사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다.
조춘만의 사진은 공장에 대한 예찬도 단순한 감탄도 아니다. 어느 지점에서는 냉정한 기록이면서 한편으로는 우리가 사는 삶의 기저에 있는 미지의 거대 괴물에 대한 응시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는 공장에서 생산한 엄청나게 많은 물건들을 소비하고, 버리면서도 그것의 근원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외면하기조차 한다. 공장들은 세계 이곳 저곳을 이윤을 찾아 떠돌고 옮겨 다니고, 그 결과 도시 하나가 망가지는 일이 순식간에 벌어진다. 왜냐하면 공장이란 단순한 기계의 집합이 아니라 자본과, 인력과, 기술 등등 인간이 만들었다고 자랑하는 모든 것이 결합된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이 구조물은 사실 아무리 거대해도 생산성과 자본의 이익에 의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허약한 토대를 갖고 있다. 어쩌면 조춘만의 사진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공장과 기계의 강력한 이미지가 그것을 생산하고 건설한 인간이 구축한 근본적 토대인 자본과 금융이라는 모래 위에 서 있다는 깨달음일 수도 있다.
조춘만의 사진은 사물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그것들에 질서를 부여하고 통제하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동시에 묻는다. 공업적 지식은 전문 영역에 들어간지 오래고 그 생산품의 비밀을 우리는 거의 알지 못한다. 즉 비밀을 보면서도 읽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춘만의 사진은 읽지 못하는 비밀의 간략한 해설서가 아니라 오래 두고 읽어 볼 수 있는 시각적 증거로서 지속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부산은 한국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겪어낸 도시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사진을 받아들인 곳이자 세계로 열려있는 관문으로서 여러 문화가 어우러진 다채롭고 활기찬 도시이다. 고은사진미술관의 연례 기획 〈부산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중견사진가들이 찾아낸 다양한 부산의 모습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한국 사진계의 성과로 남을 것이며, 또한 부산 지역의 역사, 문화적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http://koreaartguide.com/26/?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2006157&t=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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