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준이 <비평 마라톤>을 열었다. 의뢰인이 요청하는 무엇이든 비평해주는 행사다. / 이 영 준
일시 │ 2020년 1월 6일 ~ 10일
장소 │ 빌라 해밀톤 Villa Hamilton, Seoul
<비평 마라톤: 무엇이든 비평해드립니다>에서 비평을 진행 중인 이영준
<비평 마라톤>은 5일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사람들이 들고 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비평해준다는 무모한 프로젝트였다. 이런 무모한 계획의 근저에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이미지비평’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 모든 이미지와, 나아가 모든 현상에는 의미가 있고 그 의미들은 비평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나의 생각이 깔려 있었다. 또한 2006년 이후로는 ‘기계비평’이라는 직함을 만들어 이 세상 모든 기계들의 의미를 비평적으로 해석해보자는 의도도 같이 섞여 있다. 결국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총 90명을 위한 비평을 해줬는데 그들이 들고 온 것들은 예술작품에서부터 일상적 사물, 기계 사물 등 실로 다양했다.
사실 그간 수많은 평론 요청을 거절해온 나로서는 시간을 정해놓고 그 사이에 가져오는 것이면 무엇이든 비평해준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간 평론 요청을 거절한 가장 큰 이유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것이었는데 이번의 <비평 마라톤>에서 한 사람당 30분씩 이야기를 나눈 다음 글을 써줬다는 것은 더 앞뒤가 안 맞는 일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간 내가 거절한 원고 요청은 다 재미없고 비생산적인 틀 속에 갇힌 것들이었다. 잡지에 매달 형식적으로 나가는 전시 리뷰,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의례적인 작가-비평가 매칭 프로그램, 전시 도록에 실릴 주례사 같은 글들이 그런 재미없는 비평의 형태였고, 그런 형식을 답습하기는 싫었다. 나는 식어빠진 음식에 올릴 고명 같은 평론을 쓰고 싶지 않다. 비평가로서 내가 제일 신경 쓰는 것이 새로운 비평의 형식과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비평 마라톤>은 어떤 제도적인 틀과도 상관없이 나와 상대가 아무런 선입견 없이 1대1로 만나는 자리였다. 누가 무엇을 들고 올 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예측 불가능의 생생함을 마주 대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내가 기대한 바였다. 비평을 부탁받은 사물은 머리카락, 당근, 마들렌 과자, 봉제 인형 등 다양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기계 사물이 제일 적었다는 것이다. 옛날 핸드폰과 1953년산 초창기 트랜지스터, 장난감 핫휠 미니카 정도였다. 아직 ‘기계비평’이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평의 대상 영역에는 아무런 한정도 두지 않았지만 제발 작품만은 들고 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작품에는 창작자의 많은 고민과 노력이 들어가 있고, 그것을 비평하려면 고민과 노력 사이의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을 따라 들어가야 하는데 그 많은 사람들의 골목을 다 따라 들어갔다가 나온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겨운 일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지비평의 방법을 따라, 예술작품에 따라다니는 아우라나 권위 같은 것은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사물이나 이미지로만 다뤘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많은 예술가들이 비평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들이 생각하는 비평의 효능이나 힘이 비평가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는 있으나, 그럼에도 비평을 받는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새로운 대화의 형식으로서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평 마라톤>의 성과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비평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짧고 작으나마 비평의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머지 하나는, 평소에 나 자신에게도 예상치 못한 물건을 접하면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음의 글이 그런 경우다. “토미는 선반에 놓인 채 일주일에 한두 번만 눈길을 받는 외로운 장난감 기차다. 실제의 철도 차량은 정비를 위해서건 승객을 위해서건 많은 눈길을 받는다. 세밀하고 비싼 모형 기차도 엄청난 구경거리가 되어 많은 눈길을 받는다. 그러나 저급하고 조야하게 만들어진 싸구려 장난감 기차 토미는 주인의 눈길을 거의 받지 못한다. 토미는 버림받은 기차지만 기계와 인간의 눈길이라는 것이 꽤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음을 알려주는 매우 의미 있는 기차이다.”
http://www.artinculture.kr/online/3174
기계 비평가 이영준이 ‘비평 마라톤’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기획한 전시가 막을 올렸다. 오는 10일까지 이태원로 복합 전시공간 빌라 해밀톤에서 열리는 전시는 매일 6시간씩 관객이 가져온 어떤 소재든 비평해주는 형태로 진행된다.
전시에서는 일상 사물과 동식물, 날씨, 속마음, 내러티브 등 말 그대로 관객이 들고 온 모든 소재를 상담하고 인증서를 출력까지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단, 관객은 이영준이 비평할 대상을 하나씩 제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이영준은 가보로 전해진 유물이 나와도 재미있을 것이라며 이색적인 전시에 걸맞은 독특한 기대를 내비쳤다.
이영준은 이미지 비평가, 사진비평가 등 다양한 소재의 비판을 아우르지만 스스로 기계비평가라고 칭하며 배, 비행기 등 일반적인 예술 비평과는 구분되는 비평 활동을 서슴지 않는다. 미술이나 음악뿐 아니라 기계도 비평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어떤 소재가 나올지 예상하기 어렵다며 이번 전시가 스스로의 비평 역량을 테스트하는 자리기도 하다고 밝혔다. ‘비평’을 전시에 활용한 사례는 국내외에서 전례 없는 시도다. 국내 기계 평론을 개척해온 이영준의 비평을 받아보고 싶다면 주저 말고 이태원으로 향하자.
https://visla.kr/news/event/109962/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비평해드립니다
기계비평가 이영준씨 ‘비평 마라톤’ 기획
이태원 전시장서 6~10일 매일 6시간씩
어떤 소재든 내면 비평해서 인증서 출력
‘무엇이든 가져오세요. 몽땅 비평해드립니다!’새해 벽두부터 이런 구호를 내걸고 한 미술 비평가가 알쏭달쏭한 퍼포먼스 판을 꾸린다. 6~10일 서울 이태원로 55가 길에 자리한 복합전시공간 빌라 해밀톤(한남동 예술연립빌라)에서 ‘비평 마라톤’이란 제목 아래 이영준(58) 계원예술대 융합예술학과 교수가 펼치는 단독 난장이다.이 교수는 이 기간 동안 매일 오전 10시~오후 6시까지 출근해 작업한다. 일상 사물과 동식물, 날씨, 속마음, ‘조국’ 사태 등 관객이 들고 온 세상 모든 소재에 관해 상담한 뒤 ‘닥치는 대로’, ‘신속하게’ 비평해주는 것이 뼈대다. 그냥 말뿐 아니라, 글을 써서 인증서에 출력까지 해주는 총체적인 ‘비평 서비스’를 제공한다. 단, 관객들은 비평할 대상을 하나씩 내야 한다.“동료 교수들과 십시일반 월세를 모아 마련한 전시장에서 새해부터 번갈아 기획을 하기로 했는데, 제가 먼저 시작하게 됐어요. 어떤 소재가 나올지 예상하기 어렵네요. 가보로 전해진 유물이 나오면 재밌을 것 같아요. 생전 처음 보는 소재들을 내가 순발력 있게 비평할 수 있을지, 제 비평 역량을 테스트하는 자리기도 합니다.”
이 교수는 스스로를 ‘기계 비평가’라 부른다. 2000년대 초부터 대형 선박과 고속철, 발전소 등 기계와 도시 구조물 따위를 인문학적 사유로 성찰하며 분석 글을 써왔다. 학부와 유학 시절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졸업 뒤 사진사와 사진작가를 대상으로 사진비평을 주로 했지만, 20~21세기 기계문명의 모던한 이미지에 빠졌다. 그는 기계의 외양과 작동원리, 사회적 의미에 천착한 국내 기계 평론을 개척했다. “비평가가 일주일 내내 관객이 들고 온 소재들을 비평해주는 시도는 전례가 없을 겁니다. 작가들이 작품 들고 와서 평해달라 하면 곤란할 것 같긴 하네요(웃음).”
노형석 기자
『기계비평』에 삽입된 이영준의 어린 시절 모습. 그는 처음 경험한 육중한 비행기의 위용과 굉음에 동경과 공포를 함께 느꼈다고 회고한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