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우리를 바라본다


사진은 우리를 바라본다;1999 서울사진대전(서울시립미술관,1999.8.27-9.15,140쪽

공성훈의 추억
1999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사진은 우리를 바라본다>를 기획했을 때 목표 중의 하나는 사진작가가 아니면서 사진의 문제를 다루는 작가들을 초대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서울산업대 전자공학과를 나온 공성훈이 머리도 잘 돌아가고 손재주가 좋아서 재미 있는 설치작업들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가 카메라 옵스쿠라를 만들 수 있다길래 한번 해보자고 했다. 카메라 옵스쿠라의 원리는 간단하다. 어두운 방의 한쪽 벽에 작은 구멍을 내면 그 구멍을 통해 들어온 빛은 반대편 벽에 맺힌다. 구멍은 작을수록 상은 또렷히 맺히나 빛이 약해서 어두워진다. 빛을 많이 받아들이면서 또렷한 상을 맺히게 하고 싶으면 렌즈를 쓰면 된다. 카메라 옵스쿠라(어두운 방)에서 오늘날의 카메라라는 말이 나왔다. 공성훈은 지극히 평범한 재료를 가지고 카메라 옵스쿠라를 만들었다. 렌즈는 편의점에서 감시용으로 쓰는 거울 중 코팅이 안 되어 투명한 것 두 개를 구해서 속에 물을 채워서 만들었다. 그것부터가 기가 막힌 발상이었다. 그런데 빛이 얼마나 들어와야 좋은지는 설치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으므로 조리개를 만들어 붙였다. 조리개는 도화지를 원형으로 오리고 가운데 구멍을 뚫었는데 구멍의 크기가 다른 것 몇 개를 준비하여 가장 알맞은 구경의 조리개를 붙였다. 공성훈의 카메라 옵스쿠라가 설치된 곳은 지금은 없어진 서울시립미술관 구관이었는데, 옛날 서울고등학교 교사를 개조한 건물은 미술관 공간으로 쓰기에는 최악의 장소였다. 긴 복도에 같은 크기의 교실들이 쭉쭉 있는 거지 같은 구조였으니.... 그런데 공성훈은 이 공간을 정말 잘 활용했다. 복도에 난 창문을 가려 빛의 일부만 들어오게 했고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은 복도 벽에 맺히도록 했다. 그 빛은 신기한 영상을 만들어냈다. 19세기가 연상될 만큼 희미한 상이 맺히는데, 바깥 풍경 속의 요소들이 움직이니까 영상 속의 요소들도 같이 움직였다. 동영상은 동영상인데 어떤 기록매체도 통하지 않고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이 실시간으로 어두운 방에 비춰지는 신기하고 신비스런 동영상이었다. 그게 내가 <사진은 우리를 바라본다>에서 가장 좋아했던 작업이었다. 공성훈은 최근 회화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그런 설치작업을 같이 기획해 보고 싶었다. 슬라이드 찍어둔 게 있었는데 스캔을 안 해둬서 못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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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021

1999 서울사진대전 '사진은 우리를 바라본다' 를 다녀와서 - '보는 것' 과  '보여지는 것'

1999. 9. 20 중대신문

매일 아침 대하는 신문의 보도사진. 잡지나 카다로그에서 볼 수 있는 패션사진.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찍는 기념사진. 이렇듯 사진은 우리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대중적이고 친숙한 예술이다. 하지만 이런 사진들을 찍는 사람들의 시선은 어떠할까 생각해보자. 보도사진은 데스크의 지침에 따라 몇십 장의 사진 중에 선택되고, 패션사진은 세련되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피사체의 이면을 숨기고 우리들의 물욕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형상화된다. 그렇다면 혹시 이런 사진들을 찍는데 있어서 어떤 정형화된 틀이나 질서가 이들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8월 27일부터 9월 1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1999서울사진대전 ‘사진은 우리를 바라본다’는 이러한 사진의 특성에 대한 기존관념을 부수기 위한 국내 최고 사진작가와 실험성 있는 신예작가들이 펼친 장이었다. △’너무나 멀리, 가까이 있는 카메라들’ △’매력은 당신을 주체로 호명한다’ △’가장 친한 사람이 너를 배반할 것이다’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인테리어와 익스테리어’ △’여기서 살아나갈 자는 누구인가’라는 5가지 주제아래 열린 이번 전시회는 사진에서 보여지는 ‘타자성’에 대한 논의를 대중에게 쉽게 설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서 말하는 사진의 타자성이란 ‘자기의 신체가 타인의 신체를 통해 그 정체성이 확인되는 것’, 즉 내가 무엇을 보고 있을 때 나 자신도 항상 보여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감시카메라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카메라를 통해 사람이 ‘보지만’ 사실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카메라’일 따름이다. 단지 사람은 카메라가 잘 작동되는지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바라보는’ 주체가 동시에 ‘바라보여지는’ 객체가 되는 셈이다. 결국 전시회의 주제처럼 ‘사진이 우리를 바라본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와 같은 사진에 대한 서로 다른 가능성들은 우리가 사진에 대해 가진 생각들에 대해 다른 측면에서 사고할 것을 요구한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여러 함의와 관점의 다양성. 이처럼 사진은 우리에게 ‘바라 보여지는 개체’인 것이다.

http://news.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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