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은 대를 이어 한국의 시각문화판을 휘젓고 다닌다.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별종 예술인 부자로 소문이 자자한 두 사람의 나이 차는 무려 40살. 그런데도 둘의 작품에서 세대 간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는 건, 신기함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아버지의 팝아트 키치 작품이 아들의 진중한 캐릭터 작화보다 더 튀고 발랄하다는 느낌을 준다. 아버지 나이가 지금 80살인데!
2층 들머리에서 관객과 만나는 두 사람의 캐릭터 이미지부터 예사롭지 않다. 주재환 작가는 장난감 안경과 아이스크림콘 모형 오브제로 아들 얼굴을 개구쟁이처럼 묘사했고, 주호민 작가는 단순한 선 몇개로 꼬장꼬장하면서도 익살스러운 아버지의 상을 담아냈다. 개막 다음날인 19일 낮 전시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뜻밖에도 작업 여정에서 직접 마주하거나 같이 해온 적이 거의 없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2018년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작가아카이빙 작업이 끝난 뒤 지인들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제안을 받았어요. 호민이가 다른 분야 일을 하지만, 사실 제 나이가 많이 드니 이젠 가족의 흔적을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에 응했지요.”(주재환)
“부친과는 나이 차가 많이 나 어렵기도 하고, 거의 작업을 함께 한 적이 없었어요. 아버지 서재에 들어가 재미있는 책을 많이 보고, 작업 심부름을 한 적은 있지만요. 함께 전시한다는 게 낯설어 망설였지만, 처음 같이 예술가로 교감하는 자리여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주호민)전시장은 두 부자 작가의 예인적 기질을 보여주는 회화, 설치작품, 영상, 웹툰 등 130여점을 다양한 형식으로 내놓는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2층 전관을 구성한 주재환 작가의 회고전 공간이다. 네덜란드 색채추상 거장 피트 몬드리안의 구성 작품을 패러디한 그의 대표작 <몬드리안 호텔>(1980)의 화폭 평면을 그대로 내려 앉히는 형식으로 구성한 전시장 한가운데에 부친에게 헌정한 주호민의 <계단에서 뭐 하는 거지>가 설치작품으로 나왔다. 권력과 위계질서를 풍자한 주재환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1987)를 아들이 색다르게 재해석한 신작이다.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 자체가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1912)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가로 220㎝, 세로 740㎝ 크기의 화폭을 통해 오줌이 흘러 내려오는 계단에서 주호민 웹툰 캐릭터들이 서로 끌어주고 드론도 타면서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 빈 음료수병과 캔을 빨래건조대에 매달아 인공음료를 즐겨 마시는 지금의 세태를 꼬집은 주재환의 설치작품 <물 vs 물의 사생아들> 등이 겹쳐진다. 주호민 작가는 “40여년 작업해오신 결과물인데, 80년대 것이든 지금 것이든 세월의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시간을 초월해 인간 삶의 보편적인 모습을 다룬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사실 두 사람이 기자를 처음 이끈 곳은 주재환 작품에 대해 부자가 이야기 나누는 걸 유튜브 스타일로 담은 <주재환 월드컵 16강> 영상실이었다. 주재환이 백화점 쇼핑백으로 만든 사람 형상의 <쇼핑맨>은 주호민 몸체를 본떠 작품 치수를 만들었던 내력이 있는 작품인데, 둘의 코믹한 대화로 공개된 당시 제작 일화가 관객들을 웃게 만들었다. “부친의 주요 작품들로 꾸린 월드컵 대진표에서, 화면에 온통 ‘내 돈’이란 글씨를 뒤덮은 <내 돈>이란 작품을 우승작으로 꼽았어요. 평소 몰랐던 아버지의 창작 배경과 내면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유튜브 방송을 하는데 관련 영상을 별도로 상영할 계획입니다.”3층엔 한국 전통 불화와 신화에 기반해 삶과 죽음의 세계와 이승의 사회적 현실과 욕망 등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주호민 작가의 출세작 <신과 함께>의 작화 자료들과 주요 장면을 대형 발광패널 등에 전시했다. 여기에 주재환 작가의 1980~90년대 무속적 심령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짜장면 배달> 등 반추상 구도의 유화가 아들의 현대판 불화의 지옥도 등과 어우러진 공간 배치가 눈에 들어왔다. 두 작가는 “큐레이터(방소연 연구사)가 오랜 시간 치밀하게 분석해 우리 작품이 서로 어울리게 공간 연출을 잘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부자가 이번 전시 최고 대표작으로 입을 모은 작품은 15분 간격으로 40초간 호랑이 울음을 되풀이해 들려주는 <호랑이 소리>였다. 1960년대 창경원 일대에서 야경꾼 방범대원으로 일했던 주재환 작가가 심야에 들었던 동물원 호랑이의 포효를 기억하며 만들었다고 한다. “인생 모든 것은 다 사소한 것들이란 게 제 좌우명입니다. 하지만 50여년 전 들었던 그 생생한 포효의 기억, 그 야생의 소리를 지금 현실에 순치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어요. 꼭 들어보시기 바랍니다.”글·사진 노형석 기자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996041.html#csidx693c19fc3947aedb3aad0e0d2feedba https://www.facebook.com/photo?fbid=10219710747427860&set=pcb.10219710748027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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