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민 웹툰 보러갔다가 부친 주재환 작가 팬 됐어요


“얘것 보러왔다가 제거 덤으로 보고 가는 거지요.”

이렇게 말하며 아들을 추켜세우는 아버지는 기분 좋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는 ‘호민과 재환’전은 한국 현대사의 주요 이슈를 재치 있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조망해온 민중미술작가 주재환(81)과 한국의 신화를 기반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위트 있게 해석하는 웹툰작가 주호민(40) 부자의 2인전이다. 미술관에서 하는 전시인 만큼 현대미술 작가가 주인공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는 ‘무한동력’ ‘신과 함께’ 등으로 대중적 인기가 높은 주호민의 팬들이 전시장을 많이 찾으며 거꾸로 웹툰이 주연이 된 듯하다. 이런 분위기를 아버지가 눙치듯 얘기했다. 부자를 최근 전시장에서 만났다.
“2년 전에 전시 제의가 왔을 때 사실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웹툰이 벽에 걸려고 만든 미술 작품도 아니고, 아버지 작품이랑 나란히 전시장에 걸린다는 점도 부담스러웠는데….” 주호민은 자신이 더 인기를 끄는 분위기가 쑥스러운 듯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시에 웹툰 원화 자체를 소개하기도 하지만, 마치 미술 작품처럼 야간 간판으로 쓰는 라이트패널에 걸어 놓기도 했다. 그는 웹툰은 만화와 달리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 빛이 나오는 액정 화면 위에서 소비되는 점을 고려해 “웹툰 느낌이 나게” 전시했다고 설명했다.아버지 주재환의 대표작을 패러디한 신작도 눈길을 끈다. ‘계단에서 뭐 하는 거지’(2021)는 아버지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1987)를 비틀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는 프랑스 현대미술 작가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를 패러디한 것인데, 나부 대신에 오줌 줄기가 춤추듯 계단을 내려오며 갈수록 굵어진다. 이를 통해 사회의 권력과 위계질서를 풍자한다. 주호민은 거꾸로 계단을 올라가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신과 함께’의 변호사, ‘무한동력’의 취준생 등 웹툰 속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이들이 서로서로 계단 위로 끌어올려 준다. 사회 주변인들이 서로의 연대를 통해 계급 사다리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시각화한 것이다.
각각 장르가 다르고 세대가 다른 아버지와 아들을 공통적으로 묶는 전시 요소는 많다. 우선 텍스트다. 아들이 하는 웹툰은 기본적으로 그림과 말풍선으로 이뤄져 있다. 아버지 주재환도 텍스트를 그림 속에 유난히 즐겨 배치한다. 작품 ‘훔친 수건’은 실제 수건에 그 글자를 써넣음으로써 목욕탕 수건조차 훔쳐 쓰던 서민의 애환을 위트 있게 즉각적으로 보여준다. 만화 형식 자체를 차용한 작품도 있다. 아방가르드 미술이 갖는 무기력함을 소멸되는 태풍에 비유한 ‘태풍 아방가르드호의 시말’이 그런 예다.
두 사람 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다. 이를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감성으로 꼬집는다는 점도 닮아있다. 주호민의 ‘신과 함께-저승편’에서 '죽어서야 로열층’을 보자. 아파트 층수에 따라 로열층이 있는 것처럼 납골당도 층수 따라 로열층이 매겨진다. 이런 방식은 분노하거나 비장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현실 사회의 불평등을 환기시킨다. 주재환이 과거 삼성의 비자금 사건에 얽힌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패러디한 작품은 눈두덩을 삼성의 로고 형식으로 표현하고 리움미술관이 소장한 루이스 부르주아의 조각 ‘거미’의 다리 모양으로 머리 스타일을 했다. 그래선지 아버지도 아들도 창작에서 ‘재미’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입을 모았다.
부자의 작품 속에 교집합처럼 나타나는 위트는 MZ세대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주호민이 메인 게스트로 참여하는 유튜버 침착맨의 팬카페 ‘침투부’에는 “주호민 작가 때문에 전시장 왔다가 주재환 작가의 팬이 됐다”는 후기가 이어진다. 주재환은 “저 혼자 전시한다면 이렇게 관객이 몰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제 작품도 지루하지 않고 하품이 나오지 않으니 젊은 층의 시선을 끄는 거 같다”고 해석했다.
주재환은 한국미술계의 대표적인 원로작가로 주변에서 발견되는 버려진 일상의 사물을 재활용해 사회 풍자적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을 선보여 ‘유쾌한씨’라는 별칭을 얻었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중퇴한 후 외판원, 월간지 기자 등을 하다 1980년 민중미술의 시발이 된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 참여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주호민은 입원한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일상을 만화로 그려서 보여주는 등 초등학교 시절부터 낙서와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다. 아세아항공직업전문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에 입학했고 군대 생활을 그린 ‘짬’을 연재하며 전업 만화가가 됐다. 2010년 제주신화에서 영감을 얻어 연재한 웹툰 ‘신과 함께’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유튜버로도 활동하는 주호민은 아버지의 작품 세계를 유튜버 스타일로 알린다. ‘주재환 월드컵 16강’ 영상을 제작해 기존 미술계에선 볼 수 없었던 대중적인 소통 방식을 시도했다. 2021년 8월 1일까지.

국민일보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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