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작가들이 가장무도회를 열기로 했다. 이불은 무도회복장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가장무도회 복장을 하고 온 사람은 이불 혼자였다.”
“평소 조용조용 공부 잘한 김범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집에서 병아리를 키웠다. 공부하다 잘 안되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마당에 풀어놓고 활로 쏘기 위해서였다.”
김나영(34)의 ‘전설’이라는 작품속에 등장하는 일화들이다. ‘전설’속에는 이밖에 유재학 김순기 등 여러명의 인물이 등장해 다소 엉뚱한 에피소드들을 남긴다. 김나영은 이같은 일화들 묶음 뒤에 “이같은 내용은 허구”라고 적었다. 그렇다면 김나영의 작품은 ‘소설’일까. 아니다. 이같은 내용을 담은 책자, 탁상과 의자, 관객들의 책읽기가 한데 어울리도록 한 ‘설치미술’이다. 등장인물은 모두 미술인이다. 김나영은 미술인의 취향과 성격에 대한 상상을 유도하는 내용을 담은 소책자를 미술관에 전시하는 형태를 취했다.
이 작품은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계속되는 ‘99 한국현대미술 신세대 흐름전’에 전시되고 있다.
참가작가는 김나영, 김수진(28) 김현수(30) 박성환(27) 배영환(33) 이원희(24) 이진경(33) 임민욱(32) 임정규(25) 정수진(31) 정연두(31) 정혜승(27) 함경아(34) 함양아(32) 함진(22) 등 15명.
20, 30대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미술감각을 살펴보자는 취지로 기획된 이번 전시에는 김나영의 작품처럼 ‘글’또는 ‘문장’을 이용한 미술작품이 많다.
그러나 문자를 소재로 한 미술작품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같은 점에서 기존 미술의 흐름을 뒤엎는 ‘파격’은 없었다. 이밖에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린 정수진, 입을 닮은 형상위에 피를 흘리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작품을 내놓은 함양아, 안방처럼 만든 공간에 작은 추상조각작품을 가득 채운 함진 등이 눈길을 끈다.
동아일보 이원홍기자 1999-08-16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19990816/7462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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