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2년여간 북한산에서 찍은 들개 사진 연작을 묶은 사진책이다. 총 61점의 흑백사진과 함께 작가가 쓴 단편 관찰기가 수록되어 있다. 시각문화 연구자 윤원화와 기계비평가 이영준이 에세이를 보탰다.
권도연은 2017년도부터 야생초목에 대한 관심에서 북한산을 관찰하던 중 인근에서 서식하는 들개 무리를 만나게 된다. 북한산 사진과 함께 여러 다양한 들개 초상 사진들이 포착된 '북한산' 시리즈의 출발 배경이다. 이후 작가는 2년간 매일 북한산을 오르내리며 들개들을 관찰하고, 이를 카메라에 담았다.
빼어난 조형의 사진에는 여러 개들의 모습이 포착되었지만, 그 과정은 여러 들개 무리와 사진가간의 대칭적 관계가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교감이었다. 시각문화연구자 윤원화가 썼듯이 이 개들은 “자연 또는 문화가 아니라 그 두 범주가 혼성되고 관리되는 어딘가에 위치”한다. 기계비평가 이영준 또한 “들개의 뒤에서는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치환이 일어난다.”라고 썼다.
■ 작가노트 - 권도연
2015년 결혼을 하고 일산에 신혼 집을 얻었다. 나는 새 작업을 위해 집 근처의 북한산에서 장기간에 걸쳐 야생초목을 관찰했다. 생태학자가 된 것처럼 일주일에 4~5일 산으로 들어가 풀과 나무의 동태를 살폈다.
자연 종의 변화는 상당히 단조롭고 느리게 일어났다.
어느 날 우연히 북한산 근처에서 돌아다니던 들개 무리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들을 조용히 그리고 자세히 관찰하였다. 점차 시간이 지나며 개들은 나를 나무 보듯, 자신을 해치지 않을 산속의 또 다른 친구를 보듯 받아들여 주었다. 비봉의 흰다리, 족두리봉의 검은입, 숨은벽의 뾰족귀. 이 무리는 지금도 북한산을 오르며 저들끼리 으르렁거리다가 쫓고 쫓기다가 바위 위 낭떠러지 비탈에 서 있다.
도시의 들개 문제는 주로 재개발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주택가의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이주하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개들이 골목을 가득 채웠고, 순식간에 반려견에서 유기견이 된 개들은 거리를 떠돌았다. 이 중 많은 수가 개장수에게 잡혀가고, 가까스로 개장수를 피한 개들도 굶어 죽거나 질병으로 죽고, 추위를 견디지 못해 동사하거나 차에 치여 죽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남은 개들이 생존을 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긴 산으로 들어갔다.
들개는 생태학적으로 뉴트리아나, 황소개구리, 배스와 같이 외래종으로 분류된다. 외래종이 들어와서 고유종을 잡아먹고 고유종의 개체 수를 감소시키기 때문에 생태계 교란종으로 취급해 배스나 블루길을 잡아내는 것과 같다.
포획된 들개를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다. 암묵적이지만 잡힌 들개는 눈앞에서 죽이지 않을 뿐 대부분 죽는다. 북한산의 개들은 인간과 함께 한 공간에 살고 있지만 사실상 함께 살지 못한다. 관찰을 하면 할수록 이 산의 풍경은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풍경은 기만적일 수 있다. 종종 풍경은 거기서 살고 있는 생명의 풍경이 펼쳐지는 무대라기보다는 하나의 커튼처럼 보인다. 그 뒤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 성취 그리고 그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커튼.
권도연 사진전 ‘북한산’
누크갤러리
2019. 12. 05 - 12. 19
인간과 함께 살고 있지만 사실상 함께 살지 못하고 아웃사이드로 숨어든 들개들의 풍경이 작가에게 포착되어 낯설지만은 않은 영화 속 장면처럼 인화됐다.
북한산’전시를 통해 권도연은 북한산에 남아있는 들개들을 관찰하며 기록한 23점의 사진들을 보여준다.
출처 : 아시아에이(http://www.asia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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