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_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자라면서 부모에 대한 시선이 전환될 때가 있다. 부모가 나와의 관계를 넘어선 사회적 관계망 속에 존재한다는 걸 인지하게 되는 순간이다. 부모가 가정 밖 사회에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걸 지켜볼 때가 그렇고, 나의 우주였던 부모가 남에게 치이는 초라한 사람 어른인 걸 보게 될 때도 그렇다. 나의 부모 이전에 한 사람이구나를 알게 되는 순간들이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그들이 노인이구나를 마주하는 순간이 있다. 늘 나보다는 큰 존재라고 생각한 그들이 물리적으로 나이가 들어버린 것을 갑자기 인지하는 순간, 나는 부모와 나를 동시에 보게 된다. 나의 부모의 자리에 내가 서 있고, 나의 부모는 나의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나의 부모가 되어 지금은 노인이 되었음을 마주하는 것이다. 객관화가 어려운 관계에서 불쑥 객관화가 일어날 때 시선과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우리는 자라는 것인 지도 모르겠다. 부모가 서 있던 그 자리에 서서 비로소 부모의 인생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물방울 화가’로 유명한 古 김창열 화백의 삶을 다룬다. 그러나 영화는 김창열 화백의 전성기나 삶을 연대기적으로 풀어내기 보다는, 이제는 나이 든 한 노인의 모습을 가만히 쫓아간다. 영화는 화가의 아들이자 감독인 오안킴의 시선으로 ‘아버지’ ‘늙은 남자’ ‘고집스런’ ‘어린아이’ 그렇게 감독이자 아들의 목소리로 아버지인 김창열 화백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알아가고자 한다.

스핑크스와 달마대사
영화는 시종일관 산타클로스 같은 외모를 가진 老 김창열 화가의 모습을 담는다. 은백의 노인은 느린 리듬으로 천천히 작업실과 집 공간을 오간다. 영화는 정면에서 측면에서 뒷모습의 김창열 화백을 위에서 아래에서 또는 가까이에서 멀리서 김창열 화백을 담는다. 그는 아들의 물음에 답하기도 하고 작업실에서 멍하게 앉아있기도 하고, 때론 실내복 차림으로 느리게 운동하기도 하고 어린 손주들과 어울리기도 한다. 노인이 된 아버지를 새삼 가만히 들여다보듯이 영화는 나이든 신체를 가진 그를 담는다.
영화는 그런 그를 “산타클로스가 아닌 스핑크스”로 호명한다. 아들의 기억 속 아버지는 잠자리에서 어머니가 돼지 삼형제를 읽어줄 때, 잠들지 않기 위해 눈꺼풀을 자르고 9년간 수련한 달마대사의 이야기를 반복해 들려준 ‘기묘한’ 사람이었다. 지금의 백발의 평화로운 노인 김 화백의 이면에는 깨달음의 과정 속 혹독함과 폭력성에 대한 매혹이 있었고, 어린 아들의 눈에 ‘기묘한’ 그는 수수께끼를 내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신화적 괴물 스핑크스와 닿아있는 것이다. 그렇게 어린 아들이 어른이 되어 아버지 김화백의 인생에 다가간다.
김창열 화백은 15살에 혼자 휴전선을 넘어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고 운좋게 살아남은 자로, 그의 심연에는 죽음의 공포와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 자리잡고 있다. 영화는 그런 그를 스스로 드러내거나 말하게 하지 않고, 그 주변의 사물과 사람들을 경유해 아들인 자신의 시선과 교차한다. 마치 우리가 한 인간을 이해하고자 주변에게 그에 대해 물어보는 것처럼, 영화는 김창열 화백의 현재 지금 모습 위로 그를 둘러싼 과거와 현재 그리고 주변인의 목소리를 담는다. 아들은 아버지를 기억하고, 아버지에게 묻고, 아버지에 대해 자료를 모으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알려낸다. 그렇다고 아버지에 매몰되지도 아버지를 신화하지는 않는다. 그저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가까이서 경험하거나 들은 인간 김창열이자 화가 김창열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수영하는 남자
영화는 여러 이미지를 통해 김창열 화백을 담아낸다. 주로 물의 이미지로 그를 담는 영화는 김 화백이 수영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포착한다. 그러면서 간혹 질문을 던지고 김 화백은 자기만의 답을 한다. 영화 후반부에 감독은 김 화백에게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였는가를 묻고, 그는 자신이 겪은 전쟁이나 죽음이나 생존을 말하는 대신 수영 처음 배울 때라고 말한다. 영화는 김창열 화백과 그의 작품 세계를 ‘물’ 이미지로 형상화하되 추상성을 살려낸다. 안개, 눈, 비, 홍수, 눈물, 나아가 고통의 비명으로 까지 확장가능한 김 화백의 물방울은 공포의 극한으로서 침묵이자 기억을 지우는 행위이고 죽은 자를 위로하는 행위임으로 잔잔한 물 위에 누워 수영하는 그의 현재 모습으로 시각화한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김창열 화백은 물 위를 부유하는 남자이기도 한 것이다.
공포와 불안, 침묵과 균열, 죽음과 죄책감을 모두 응축한 채 영화는 평화롭게 물 위에 떠서 부유하는 김 화백을 자유롭게도 경지에 이른 그러나 동시에 가장 힘들게 이루어낸 작업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는 김 화백이 누워 수영하며 바라보는 하늘에 멈춰선다. 영화는 그렇게 시종일관 김 화백의 현재 모습과 행위들을 가만히 담아내면서 물방울을 그리면서 물방울로만 말하는 그를 물방울로 보여준다.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세계적 작가의 삶을 정리하고 추모하는 작업이지만 이 영화의 진짜 매혹은 나이든 아버지를 보며 그런 아버지를 가장 아버지답게 이해하고자 하는 아들의 복합적인 시선이다.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가 보는 것을 보고 그런 아버지의 자리에서 아들의 시선으로 풀어낸 인간 김창열이자 화가 김창열을 다룬 작업이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나이든 김창열 화백의 모습을 보면 볼수록 카메라 뒤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리고 나의 부모님과 내가 보인다. 가깝고 친밀한 관계일수록 더 이상 바라보지 않는 나에게, 너무 늦지 않게 바라보라는 메시지 같기도 하다.

글·이승민: 영화 연구자, 평론가, 기획자, 강연자로 활동,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출처 : 르몽드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 2022.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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