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돌아온 비디오 마녀

 2000.08.21 19:50

여자 백남준? 아니다. 백남준의 경쟁자였지만 백남준만큼의 행운이 따르지 않았던 제2의 백남준이다. 미술계에서 ‘마녀’ ‘무당’ 소리를 들어온 재불작가 김순기씨(54)가 23년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9월2일부터 10월22일까지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비디오 마녀 고향에 돌아오다-주식거래’전이다. 서울대 미대와 대학원을 나와 1971년 파리로 건너간 김씨는 28세인 74년 아시아계 여성으로는 최초로 프랑스에서 교수가 됐다. 마르세유 미술학교 교수. 사건이었다.

82년에는 프랑스문화성으로부터 멀티미디어 아트와 백남준 비디오 아트 연구를 위한 장학금을 받아 뉴욕으로 갔다. 그는 백남준을 소재로 ‘백남준씨 안녕’이라는 작업을 했다. 그때부터 백남준에게 “가장 좋아하는 젊은 비디오작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김순기”라고 했다. 그런데 김순기는 ‘스타’가 되기보다 작업에만 몰입했다. 세상과 타협하는 처세술은 딱 질색이었다.

95년이었다. 과천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을 내는 과정에서 미술관과 마찰을 겪자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제목은 ‘강아지’. 개집 안에 놓여있는 모니터에 강아지의 모습이 상영되는 설치작품인데 작가가 지은 제목은 ‘개새끼’였다. 그는 “반성할 줄 모르는 미술관제도는 하나의 거대한 개집이고 그 안에 기생하는 큐레이터, 그들과 타협하는 작가, 구경온 사람들도 모두 개새끼”라고 했다. 하지만 김순기 특유의 독설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개새끼’는 ‘강아지’로 제목이 바뀌었다.

이번 전시는 주식의 흐름과 별자리들의 움직임을 소재로 한다. 비디오작품 ‘주식거래’는 TV모니터로 이뤄진 4개의 높은 기둥에 신문 증권면으로 떡칠이 된 판잣집이 얹혀진 형상이다.

주식의 오르내림은 얼핏보면 사회변화를 반영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비정한 테크놀로지의 반영물로 진화한 인간의 변화무쌍한 삶을 은유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4개의 기둥에는 김씨가 촬영한 일상의 장면들이 상영되고 이미지가 녹아 울려퍼지는 음악은 무작위로 바뀌는 단순한 음악이다.

‘견우직녀’는 남북통일을 바라는 마음에서 제작한 시사성 강한 설치작. 태양열로 움직이며 교차하는 2대의 케이블카(폭 70㎝, 높이 60㎝)에 태극기와 인공기를 꽂았다.

‘복권동네’는 당첨 안된 복권들로 만든 작은 판잣집 모형들이다.

얼음설치작업 ‘비디오&0’도 있다. 삶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물’을 택했고 1년동안 얼음공장에서 배운 기술로 얼음을 만들었다. 그는 “얼리는 방법에 따라 며칠만에 녹을 수도 있고 몇시간안에 녹을 수도 있다. 혼자서 얼리기 방법을 연구했는데 나만의 비법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86년부터 물 얼리기 작업을 반복했다. 컴퓨터테크닉도 배웠다. 현대미술을 하려면 무엇이든 만능이어야 한다”.

스스로 성질이 고약하다고 밝힌 김씨는 “개인전 제의가 들어와도 내키지 않으면 거부했다. 그래서 개인전을 일곱번밖에 안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외에 관람객들이 프로젝트를 밀고다니며 직접 벽에 투사하는 ‘꽃밭’, 숫자대신 한글과 한문을 써 넣은 ‘표준시력검사표’, ‘표준마음검사표’도 선보인다. 

경향신문 유인화기자

https://m.khan.co.kr/culture/art-architecture/article/200008211950241#c2b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0/08/22/2000082270252.html

https://neolook.com/archives/2000090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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