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문화에술회관 제2관
2025. 8 26 - 9. 1
[C컷] 공장을 장엄한 풍경으로 찍는 사진가
창작의 순간 34. 산업사진가 조춘만의 ‘철의 서사시’
포항제철소를 가본 적이 있다. 30여 년 전 일이다. 그곳을 처음 가면 거대한 기계들에 누구든지 압도된다. 그 후 사진기자로 일하며 여러 현장을 다니며 공장의 거대한 기계를 만들고 기계 앞에서 땀 흘리는 노동자들을 보면 한없는 존경심이 들었다. 사실 이건 눈으로 봐야 안다. 그런데 이런 공장들을 오롯이 사진으로 찍는 사진가가 있다.
사진가 조춘만(69)은 엄청난 크기의 공장이나 철제 구조물을 20년 넘게 사진으로 기록해서 보여주고 있다. 공장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굴뚝 연기나 뿜으며 지구에 도움 안 되거나 위험한 일터로 알지만 그의 사진은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거대한 배를 만드는 조선소, 석유화학 공단, 시추선 등 수많은 산업 구조물을 장엄한 풍경으로 보여준다. 독보적인 산업사진가로 알려지기 전에 조춘만은 20년 넘게 철을 용접하던 조선소의 용접사였다.
오늘부터 울산광역시 울산문화예술회관 제2전시장에선 사진가 조춘만의 사진전 ‘철의 서사시, 생성과 항해’가 열린다. 조씨는 이번 전시에서 그동안 촬영한 사진 중 조선소 현장과 바다에 세워진 산업구조물 등 30여 점의 사진들을 보여준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 정부와의 대미 관세 협상에서 ‘마스가(MASGA)’라는 이름으로 협상의 돌파구를 삼은 것이 바로 대한민국 조선업이었다. 울산 현대 조선소에서 용접사로 일했던 사진가에게 이번 전시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용접 보조원에서 배관 용접사로, 다시 사진가로
경북 달성에서 태어나 농사를 거들며 초등학교 졸업도 어렵게 마친 조춘만은 18세가 되던 1974년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 들어가서 선체 건조부 용접 보조원으로 취업했다. 조씨는 열심히 선배들에게 용접을 배워 철판은 물론 까다롭다는 배관 용접까지 해냈다. 1970년대 중반부터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가 늘면서 조씨는 사우디아라비아 공장 건설 현장으로 가는 해외 파견 근무를 2년간 하고 귀국했다. 수도 리야드에서 차로 5시간 이상 걸리는 사막 한가운데 있던 건설 현장은 하루 평균 16시간씩 일하며 사막의 무더위와 외로움까지 더한 고된 노동이었다. 한강의 기적은 진짜 기적이 아니라 이렇게 가족을 위해 버티고 일했던 아버지들의 땀과 눈물을 모은 성과였다.
2년 근무를 마치고 귀국 길에 니콘 FM 카메라 하나를 샀다. 카메라는 1970년대 해외에서 일하고 귀국하는 사람들이 선물로 사오는 게 유행이었지만 값비싼 귀중품이었다. 하지만 조씨는 돌아와서 카메라를 집 안 어딘가에 보관했지 뭘 열심히 찍으러 다니진 않았다고 했다. ‘92년부터 ’93년까지 쿠웨이트에서 다시 파견 근로를 하고 돌아왔다. 두 번의 해외 파견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아내는 어렵게 번 돈을 착실히 저축해서 집을 샀다. 그리고 용접 일을 그만두고 함께 울산에 작은 수퍼마켓을 차렸다.
휴일도 없이 열심히 일했던 그는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되자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마치고 수능을 치른 조씨의 나이는 40대 중반. 조춘만은 “어렵게 태어난 인생, 어떻게 하면 가장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언젠가 청소년복지회관 3개월 과정으로 배운 사진이 생각났다”고 했다. ”내 카메라로 찍은 이미지가 흰 종이 위에 다시 보이는 게 너무 즐거웠다”며 주저 없이 대학은 사진학과로 입학했다.
대학 사진학과나 사진동아리 학생들처럼 조 씨도 철거민 지역을 찾아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당시 울산 공단 주변 부곡동 마을을 찾아다니며 8년간 철거민들을 만나고 철거 지역을 르포 사진으로 담았다. 그런데 조춘만은 철거가 끝난 마을에 석유화학공단이 들어서는 모습을 목격했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한다고 했던가. 조 씨는 사진을 배우던 다른 학생들이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과도 달랐다. 강철로 만들어진 공장의 차가운 구조물들은 20년 넘게 파란 불꽃을 튀기며 용접을 하던 현장이고 익숙한 풍경이기에 조춘만의 파인더에 또렷이 들어왔다. 이후 조춘만은 자신이 일했던 여러 공장이나 현장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자신만의 사진을 찍었다.
압도적 풍경 뒤에 끝없는 노력이
만일 용접사로 계속 일하며 사진을 찍었다면 지금 같은 사진을 찍었을까? 조 씨는 “어림없다”며 만일 그랬다면 한 장도 못 찍었을 것이라 했다. 우선 일에 몰두하느라 바빴을 것이고, 공장이나 작업장, 조선소 안은 너무 크고 넓어서 자신이 일하는 곳만 보인다고 했다. 일을 그만두고 현장을 나와 한 발 물러나서 봤기에 거대한 풍경이 보였다고 했다.
조춘만의 사진들은 얼핏 보면 미니어처로 만들어 화려하게 찍은 광고사진이나 컴퓨터그래픽처럼 보인다. 혹은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의 사진처럼 거대한 풍경 사진을 수십 장 찍어 한 장으로 합성한 것은 아닐까도 생각했다. 높은 곳에서 드론으로 찍은 건 아닐까도 싶었다. 모두 어떻게 찍은 건지가 궁금했다. 사진가에게 물었더니 이런 어설픈 예상들은 모두 빗나갔다.
사진가는 그저 삼각대에 카메라를 놓고 그저 한 장씩 찍은 것이라고 했다. 드론 촬영이나 스티칭 같은 포토샵 합성 작업은 물론 색 보정도 없다고 했다. 거대한 풍광을 한 프레임에 담기 위해 더 높은 곳을 찾아 올라갔다. 촬영을 앞두고 날씨와 광선을 철저하게 따지는데 스모그가 없는 맑은 날 태양이 측광으로 비출 때만 한다. 하늘에 구름이나 노을, 단풍도 배제한다고 했다. 20년 전에는 린호프 같은 대형 필름 카메라로 찍다가 10년 전부터 라이카나 후지 중형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했다.
조춘만의 사진은 모두 ISO 100의 저감도로 단일 초점의 180mm에서 500mm까지 망원렌즈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까워도 100미터, 먼 곳은 500미터에서 1킬로미터가 넘기도 한다. 그는 셔터 속도가 2분에서 5분의 장노출에 조리개가 개방에 가까워도 사진 속 디테일이 촘촘히 보이는 것은 워낙 먼 곳에서 망원렌즈로 촬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망원렌즈는 떨어져 있는 사물을 압축해서 가깝게 보이는 효과가 있다.
초대형 선박을 망원렌즈로 한 프레임에 담기 위해 사진가는 먼 곳에서도 높은 곳을 찾았다. 산속 높은 나무를 오르거나 22층 아파트 옥상의 물탱크 위나 위험한 철탑까지 오른 적도 있었다. 날씨와 광선을 기다리고 사진을 위해 오로지 발로 찾아다닌 사진가의 우직한 노력으로 장엄한 중공업 사진들을 만들었다. 그런 노력으로 비평가들은 그의 이름 앞에 ‘산업사진가’라는 국내에서 독보적인 타이틀을 부여했다. 조춘만은 2001년 이후 국내와 프랑스 등 해외에서 20회가 넘는 사진전을 열었고, 4권의 사진책을 냈으며 올가을에도 새 책이 나올 예정이다.
작업 노트에 그는 이렇게 썼다.
“내가 흘렸던 굵은 땀방울, 동료들의 거친 숨소리까지 담아내어 그 시절 숭고한 노동을 기리고 싶었다. 잊혀져가는 산업 역사의 흔적을 기록하고 보존해서 미래 세대에게 유산으로 남기고 싶었다. 철이라는 차가운 소재와 인간의 뜨거운 열정이 만들어 내는 조화로운 미학적 아름다움을 표현하여 인간과 기술의 관계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성찰을 제시하고 싶었다. 나는 기술이 인간성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기술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이면에는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깃들어 있다는 것도 말하고 싶었다.”
조선일보 조인원 기자. 2025.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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