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순옥 한옥 프로젝트 – 어떤 은유들

3) 우순옥 전시평
     - 강태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아무것도 아닌' 작업하기

우순옥 한옥 프로젝트-어떤 은유들 2000.11.17-12.3 아트선재센터

 

'소리없이 날아가는 그림자'에 뜻깊은 눈길을 주고 연기를 드로잉해서 '아무것도 아닌

그림그리기'라 칭하며, 떨리는 무지개의 모습을 잡아 장자의 <나비의 꿈>이라는 제목으

로 잠깐동안 안도 타다오의 '빛의 교회'에 설치한 경력의 우순옥이 이번에 한옥을 주제

로 역시 꿈같은 작업을 펼쳤다.

아트선재센터로부터 삼청동 북촌마을에 있는 아담한 한옥 한채를 제공받아 원하는 대

로 개조해서 만든 이 프로젝트는 우선 탈미술관, 탈스튜디오 작업으로 서울에서 몇 남

지않은 한옥 밀집지역이라는 장소성(site-specific)이 중요한 시발점이 된다. 27평 만짓

한 이 집은 전형적인 개량 한옥으로 우리 대부분이 태어나서 자란 곳이자 편리한 아파

트 탄생과 더불어 잃어버린 추억의 공간이다. 그러나 이런 한옥을 작업 대상으로 삼을

때는 전통을 버리며 살아가는 우리의 죄의식과 향수가 자칫 복고취향과 맞물릴 위험 때

문에 작가와 관객모두에게 도전의 장이 된다. 이 한옥의 공간은 세 개의 방과 좁다란 마

루, 마당, 그리고 장독대에 해당하는 보일러실의 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방에는 기

존의 창문대신 통유리를 끼워서 경복궁과 북악산을 전망하게 만들었고, 창을 향해서 편

안히 선 자세에서 마치 토시를 끼듯이 두 손을 집어넣도록 만든 통로는 양모와 전구의

열과 함께 따뜻한 포인트가 된다. 이는 연전에 일본에서 제작된 <따뜻한 벽>의 연작으

로 시각과 촉각을 교감시켜 관조적인 감상조건에 신체성을 부가하는 장치로서 가벼운

놀라움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요소이다.

건넌방은 6폭의 병풍을 스크린 삼아 잠시 떠올랐다 사라지는 빛의 궤적들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이들은 가느다란 틈만 남기고 나머지 부분을 가린 160개의 슬라이드 필름을

두 대의 프로젝트에 시차를 두고 비추는 것으로 병풍이 꺽인 각도에 따라 빛살들은 굴

절되고 또 만나고 헤어지는 소박한 드라마를 연출한다. 한옥과 병풍 스크린과 그 위에

투사되는 빛들이 창호문에 어른거리며 은근한 빛을 연상하고 또 대조하게 만드는 부분

이다. 얕은 마루를 통과해 들어가게 되어 있는 뒷방은 전체 작업중에 작가의 손길이 가

장 두드러지고 또 물질화된 공간이다. 방의 형태도 대폭 개조한 이곳에는 오랫동안 규

칙적으로 물을 주어서 표면을 녹슬게 한 내후성 강판과 물이 담긴 용기가 있다. 이것은

과거 <연기 드로잉>을 신체화한 작업으로 용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달궈진 강판에

닿으면 순간적으로 기화하는 프로세스

아트이자 정적(靜的)인 다른 공간과 달리 변화와 경게의 차이와 그 사이의 덧없음을 가

시화한 작업이다. 이는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관심을 반영하며,

빛이나 대기 등 비물질적인 매체와는 달리 금속, 열, 물 등을 소재로 하여 변화하는 과정

을 신체화함으로써 우주와 자연의 생성과 운행의 원리를 은유하고 있는듯 하다.

마당으로 나와서 좁고 아슬아슬한 계단을 올라가면 옥상에는 잘 자란 오죽화분들 옆에

열선을 간 묵직한 시멘트 의자가 놓여 있다. 여기서는 댓잎에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으

면서 하늘을 바라보고, 옹기종기 이마를 맞대고 모여 있는 지붕과 기왓장들, 그리고 네

모난 앞마당과 처마끝을 볼 수 있다. 그 어느 것이나 바쁜 요즘 사람들로서는 만나기 어

려운 공경이자 누리기 어려운 호사가 아닐 수 없다. 제한되고 닫힌 앞의 세 방과는 달리

끝없이 트인 공간에서 대기와 빛과 소음을 흡수하고 또 여과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

져보라는 작가의 권유다. 사간동 화랑 길을 뻔질나게 드나들면서도 바로 옆에 어여쁜

우리 옛집들과 정다운 골목길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우리에게 이 프로젝

트는 소중한 깨달음의 계기가 된다. 또 집을 찾아가는 꼬불꼬불한 고갯길에서 마주친

북악산의 파노라마 역시 옆을 돌아볼 틈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하

는 작업의 중요한 구성요소다. 이런 환경에서는 오브제로서의 미술은 당연히 필요하지

않으며 공간 자체를 작업의 대상으로 삼는 작가에게 이 한옥과 주변환경은 행복한 만남

의 장이 되고 있다.

이 한옥은 우리에게 추억과 향수와 즐거움과 놀라움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작업의 진

정한 의미는 이런 일차적인 반응 뒤에 있는 삶에 대한 투명한 인식과 미술의 의미에 대

한 진지한 질문일 수 밖에 없다. 작품이 없는 미술관은 서성일 필요가 없지만 이 텅 빈

곳에서는 오래 머룰면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공을 체험해야 작가의 의도가 제대로 전

달될 것이다.

우순옥은 의미없는 공간에서 형식적인 전시는 결코 하지 않는다는 고집을 지켜온 지조

와 집념을 가진 드문 작가이다. 또 작품은 곧 삶에 대한 질문의 구체화요, 작업은 그 수

행 과정이라는 원칙에 이토록 정직하게 매진하는 작가도 드물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가 수다와는 거리가 먼 과작(寡作)의 작가라는 사실이며, 따라서 존재보

다는 부재가, 과시보다는 침묵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작업의 의미를 그 내

공의 깊이로 증명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은 작가다. 이번 작업에서 그는 요란스럽지 않

은 음성으로 강요하지 않으면서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아무것도 아닌'

작업으로 그가 이룬 것은 커다랗다.


월간미술: 2000.12월호


(4) 우순옥 韓屋 프로젝트 - 어떤 은유들

    우순옥

작은 한옥, 삼청동 35-26

그 집은 선재 미술관 건너 작은 골목 우측을 따라 올라가다 두어번 모퉁이를 돌아 북악

산과 경복궁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삼청동 언덕 위에 있다. 삼청동은 주변의 가회동, 화

동...등 옛 동네들과 함께 북촌 마을이란 이름으로도 불려지고 있고 우리 전동 한옥들이

어느 정도 보존되고 있는 그곳은 다시금 한옥 살리기 운동을 전반적으로 펼쳐나가고 있

는 곳이기도 하다. 선재 미술관과 그 집을 찾게 되기까지는 여러 가지 우회가 있었지만

그 집을 처음 보게 되었던 지난 여름, 대문을 지나 집안에 들어서자 마주쳐진 작은 마당

의 정적이 어느새 나를 친근한 마음새로 안내하였고, 그 뒤 차례로 안방의 창을 통한 북

악산의 수려한 청취, 좁은 계단을 거쳐 올라가 본 옥상의 툭 터진 의외의 풍경은 용마루

선이 아름답게 펼쳐진 수많은 옛 기와 지붕의 파노라마와 함께 손을 뻗으면 마치 하늘

가까이 가 닿을 듯 내 영혼의 정수리를 시원하게, 그리고 먼 알 수 없는 상념으로 아득하

게 이끌었다. 순간 잠시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나는 한옥 집에서 태어나 유년기는 물론 청소년기를 줄곧 한옥 집에서 성장하였다. 한

세기전에 지어진 오래된 우리 집은 여름엔 서늘한 반면 겨울엔 웃풍에 늘 코가 시렸던

기억도 있지만 내 몸의 크기에 맞는 아담하고 편안한 방들, 넓고 시원한 대청마루, 뒤뜰

에 가득했던 소박한 들꽃들, 하얀 창호지 문으로 은은히 스며들던 낮의 부드러운 채광

과 밤의 푸른 달빛, 추녀 끝 툇마루에 언제나 비스듬히 비추던 한적하고 따스한 햇살과

늘 그 빛을 안고 있던 깊은 마당이 좋았고, 처마 밑에 해마다 찾아오던 제비들도 우리 가

족처럼 정겨웠다. 그렇게 안과 밖으로 열려진 자연 친화적 개방성 등이 내 기억 속 한옥

의 부분들이다. 그리고 자연 재료와 절제된 색이 단정하던 집 속의 흰빛 정서도 내 마음

에 들었던 부분 중에 하나다. 이러한 성장 환경이 나의 작업들 어느 구석에서든가 늘 동

양의 정취가 베어 나오게 하는 원인이 아닐까 한다.

선재 미술관과의 이번 작업 계획은 나에게 그리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공기에 대한

생각은 늘 작업과 함께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지고 있고, 작업은 잠시 머물게 되는 공간

에서 그들 스스로 살아 존재한다. 내가 숨쉬고 싶은 공간에 내 작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내가 적어도 나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공간에서의 형식적인 전시

를 피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간 오사까에 있는 안도 타다오의 빛의 교회의 간결

한 침묵의 공간과 작업을 하기도 했었고, 독일 홈브로이히의 둥근 원으로 된 투명한 파

빌리옹에서, 또 교또 료안지에서의 존재 방식은 기존의 화랑이 아닌, 내 느낌과 만났던

어느 특정한 공간에서의 대화를 나름대로 내 몸으로 직접 느껴보고 싶었던 작업들이다.

나는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완성된 작품 자체만이 아니라 그 작업이 있기까지의 모든

전과정에 철저히 존재, 또는 수행적 의미를 많이 두고 있고 또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다.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 예술을 한다는 것은 내가 진실로 어떻게 살고 있느냐와 다르

지 않기 때문이다.

선재 미술관에서 주어진 이번 한옥 공간은 일제 시대때 지어진 27평의 작은 한옥이다.

그곳은 여러 시대를 거치며 조금씩 개조되어오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을 터인데

세련되게 잘 다듬어져 근사하다거나, 아니면 원형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져 세월의 흐름

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운치 있는 그런 공간은 아니다. 그 집은 현대인이 오래된 한옥에

살아가면서 나름대로 형편에 맞고 편리하게 개조한, 소박하고 평범한 현재의 우리들의

초상과 비슷하다. 처음 만난 공간은 마치 풀리듯 풀리지 않는 까다로운 숙제처럼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내 머리 속을 선회하였으나, 그 집을 찾아가던 몇 번의 구부러진 소요 길

을 통해, 경복궁과 북악산이 내다보이는 내 어깨 너비의 창을 통해, 또 유구한 세월 동안

한결같이 무수히 변해 가는 빛을 안고 있었을 마당의 흰 벽을 무심히 바라보며, 그리고

옥상 위에서 태고 적부터 있었을 시간을 알 수 없는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며 이곳과 저

곳,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 시간의 공백들, 향기와 여운들, 그 사이들에 대한 실마리가

어렴풋이 잡혔다. 세상은 21세기라 하며 바쁘게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다. 이즈음 나는

잠시 느리고 조용한 산책으로 내 삶의 질서와 정서를 회복하고 싶다. 나의 그리기는 내

삶 그 자체와 등가를 이루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전시 도록

저자
우순옥
디자이너
우순옥
펴낸곳
아트선재센터
펴낸날
2000년
언어
국/영문 혼용
페이지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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