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호경윤(월간 아트인컬처 수석기자)
작 가 성낙영, 성낙희의 2인전
킴킴갤러리는 작가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가 공동 운영하는 ‘곳’이지만, 장소(place)가 아닌 일종의 비정형적인 제도(institution)에 가깝다. 프로젝트에 기반하여 필요와 상황에 따라 외형(전시장 및 전시 형식)을 바꿔 가면서 갤러리의 고정관념을 탈피해 온 킴킴갤러리. 작가들이 직접 운영하는 곳인 만큼 작가들의 입장에 서서 운영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일 것이다. 미술작품이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는가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고자 했다는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갤러리는 작가를 방호하고 자율권을 주어야 한다. 전시는 우리가 속한 시대, 사회의 대중적인 취향에 도전하며, 상업화된 대중문화의 일부가 되기 어려운 고객을 끌어들이는 기능을 한다.
킴킴갤러리는 작품이 이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을 모색하며, 갤러리와 작가는 전시 공간을 함께 구현한다.”
킴킴 갤러리는 2008년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국내외 작가들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각기 다른 장소에서 개최해 왔고, 심지어 지난해에는 아트페어에도 참가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최근에는 전시기획자 배은아도 프로젝트/비즈니스 매니저로 합류해, 보다 활발한 활동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킴킴갤러리와 작업하기를 원하는 작가들과 기관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킴킴갤러리의 기동성 있는 기획력과 실용적인 접근 방식에서 그 이유를 얻을 수 있을 듯하다. 이에 킴킴갤러리 측은 “구체적인 아이디어 비전을 발전시키는 프로젝트를 다양한 조건에 적용해 실현해 나가려고 한다”고 단순, 명료하게 답한다.
"Stuffs!"전을 보기 위해 낯선 동네에서 약도를 따라 전시장을 찾아 나섰다.
목적지에 다다르니 1층은 타이 음식점, 2층은 인도 음식점이 들어서 있었고, 전시장은 3층에 있다. 올라가는 계단에서는 온갖 음식 냄새가 ‘짬뽕’되어 후각을 마비시켰고, 정확한 메뉴를 떠올릴 수는 없지만 무엇이든지 먹어치울 수 있을 것만큼 미각을 자극시켰다. 전시장 안의 상황도 비슷했다. 청각과 시각 등 모든 감각으로부터 거친 욕망이 솟아오른다. 전시장의 벽면과 바닥 등에 그려진 성낙영의 벽화는 어느 한 군데로 시선이 안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공간의 구석구석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그리고 그 벽화 위로 성낙희와 성낙영의 그림이 걸려 있다. 작품의 명제도 붙어 있지 않은 채, 두 작가의 작품이 뒤섞여 빼곡히 걸려 있다. 그야말로 온갖 비주얼 매터들이 짬뽕된 이미지의 향연이다.
게다가 작가들의 개입과 상관없이 공간 자체에서 뿜어내는 힘도 강렬했다.
지난해 작가 정서영의 개인전 <사과 vs. 바나나>가 강북,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한 20년 전에 건립된 아파트 모델 하우스에서 열렸다면, 이번
(물론 이 전시가 끝나면 이 공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새 세입자의 취향과 쓰임에 맞춰 제 모습을 갖추겠지만 말이다.)
“ 뼈대를 채 감추지 못하고 벌거벗은 공간에 이미지 음악이 스며들었다.(…)음악적인 감성을 공유하며 끊임없이 어떤 이야기를 쏟아내는 이들의 대화는 마치 가사 없는 연주음악을 드는 것과 같다. 벽에 그려진 드로잉은 현악기나 전자음과 같은 소리를 내는 듯 곡의 중심이 되는 선율을 만들면서, 관악기처럼 굵직굵직한 목소리의 회화작품들과 함께 묘한 화음을 이룬다.” 이번 전시의 서문을 쓴 큐레이터 맹지영의 언급처럼 "Stuffs!"전은 음악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어쩌면 그 이유는 미술가치고는 특이한 성낙영의 활동 성향 때문일 수도 있겠다. 성낙영은 대학에서 시각예술을 전공했지만, 꾸준히 미술과 음악 등의 다양한 장르를 가로지르며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다. ‘나키온’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2003년부터 독자적으로 음반을 발매해 온 성낙영은 2011년 파리의 레이블 타이거스시에서 음반을 출시했으며, 2010년 뉴욕의 WNYU Beats in Space 라디오에서도 공연을 한 바 있다.
성낙영의 그림은 미국이나 어쩌면 산업화 이후의 모든 곳의 뒷골목 감성을 담고 있는 듯하다.
소위 ‘하위문화’라고 불리는 청년 세대가 향유하는 대중음악, 패션 등은 물론 그들 속에 내재된 불안, 또한 그 자체로 힘이 되는 젊음의 에너지말이다. 또한 성낙영의 그림을 더욱 주목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소재에 걸맞은 표현 방식이다. 만화처럼 그려진 왜곡된 인물, 리믹스하듯 이것저것 오려 붙인 콜라주 등의 자유로운 기법은 빠른 비트의 클럽음악처럼 속도감 있게 제작되었다. 반면 성낙희의 그림은 상당히 정제된 추상회화 양식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우연’과 ‘즉흥’에 의한 다양한 조형 요소들의 변형과 전개로 인해 또 다른 스타일의 리드미컬한 악상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성낙희의 기존 작품을 보면, 그녀 역시 벽화를 곧잘 그리기도 했는데 이번 전시
닮은 듯하지만, 실은 매우 다른 두 작가의 작품이 한 공간에 뒤섞여 전시하는 시도는 자칫 불협화음만 난무하는 실패작이 될 수도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시각과 청각을 아우르는 모든 감각들의 공명이 꽤 순조롭게 이루어졌던 것은 전시의 제작 과정에 더욱 기인할 것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 성낙희와 성낙영은 일주일간에 걸쳐, 전시장에서 설치 및 작업했다. 공사 중인 환경, 즉 진행형의 공간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된 작가들은 화이트 큐브에서보다 훨씬 자유롭게 그들의 그림을 변주할 수 있었다. 킴킴갤러리는
사실 킴킴 갤러리의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는 부부다. 또한 이번에 전시를 여는 성낙영, 성낙희는 자매다. 킴킴갤러리 역시 이번 전시에서 “자매인 두 작가의 특수한 관계와 상황에 주목한다”고 밝힌 바 있다. ‘대안적 미술제도’라는 다소 거창하게 들리는 아젠다와 ‘가족’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 관계망의 병치. 이들의 ‘친족 연대’는 오히려 마피아같이 몰려다니는 몇몇 큐레이터와 작가들 무리보다 순수해 보인다. 심지어 이러한 ‘병치’라는 형식은 앞서 킴킴갤러리가 말했던 ‘우리가 속한 시대에 대한 도전’으로도 보인다. 그렇다고 킴킴갤러리의 모든 활동들에 주도면밀한 전략이 계획적으로 깔려 있는 것은 아니다. 실은 그들의 진정한 전략은 비장하기보다는 아무렇지 않게 (철면피로) 지나쳐 버리는 듯한 특정한 제스처에 있다.
[기사입력 : 2012.02.27]
http://www.arko.or.kr/webzine_new/sub3/content_4222.jsp
Feb. 2012
Seoul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