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t's Right, ART!

호경윤월간 아트인컬처 수석기자

미술기자로서 대중들에게 종종 받는 질문이 있다. 
“이게 작품이에요?” 혹은 “예술 작품과 아닌 것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심지어는 “점 하나 찍어 두고, 현대사회의 외로움을 의미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식의 불신도 받고 있다. 
소위 ‘현대미술’로 불리는, 즉 소재나 주제 면에서 무엇이든 가능한 듯 전개되는 요즘 예술의 양태로 볼 때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예술가 대부분은 이러한 대중들의 질문에 친절하게 설명해 줄 의향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필자처럼 작가와 대중 사이에 끼어 있는 ‘매개자’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그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자 애를 쓰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최근 국내외 미술 현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쳐 보이는 미술가 듀오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작품을 보면, 일종의 ‘선문답’ 같은 제목들로 관객을 교란시킨다. 
미술을 배운 전문가층은 이들의 작업은 네오 다다, 플럭서스, 팝아트,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등의 미술사조를 참조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공사 중’인 전시장 놓인 주변에서 가져온 물건, 심지어 허섭스레기로 보일 수도 있다. 
현대미술 작품에서 제목은 관객이 작품을 이해하고자 할 때 최소한의 힌트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가 작명한 제목들은 더욱 알쏭달쏭하게 만들 뿐이다. 
얼마 전 아트클럽1563에서 개최한 전시의 제목은 <하와이에는 맥주가 없다>. 
이 제목은 1963년 폴 쿤(Paul Kuhn)이 부른 독일 가요 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노래 가사의 내용은 사랑하는 사람이 맥주가 없는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결혼할 수 없다며 애통해 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2010년의 공간해밀톤에서 열었던 전시의 제목은 속담을 <일찍 일어난 벌레가 새를 잡는다>였다. 이들이 관객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 걸까?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 역시 현대미술이라는 면죄부를 이용해 ‘아무거나’ 하는 작가로 비칠 수도 있지만, 사실 이들이 오랜 시간 동안 가장 고민해 온 문제는 바로 필자가 서두에 언급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미술이 어떻게 기능하는가?’ ‘미술이 어떻게 표현되는가?’ ‘작가와 작업이 어떻게 독립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는 2008년부터 본인들의 작품 활동 외에 또 다른 부업을 하고 있다. 바로 킴킴갤러리다. 킴킴갤러리는 2008년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국내외 작가들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각기 다른 장소에서 개최해 왔고, 심지어 지난해에는 아트페어에도 참가하기에 이르렀다.
킴킴갤러리는 전시장이 아니다. 작품 역시 상품 가치로 치환시켜 이윤을 내는 상업 화랑은 더더욱 아니다. 
킴킴갤러리는 작가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가 공동 운영하는 ‘곳’이지만, 장소(place)가 아닌 일종의 비정형적인 제도(institution)에 가깝다. “전시는 우리가 속한 시대, 사회의 대중적인 취향에 도전하며, 상업화된 대중문화의 일부가 되기 어려운 고객을 끌어들이는 기능을 한다. 
킴킴갤러리는 작품이 이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을 모색하며, 갤러리와 작가는 전시 공간을 함께 구현한다.” 킴킴갤러리의 디렉터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말이다.

2011년 킴킴갤러리가 주최한 작가 정서영의 개인전 <사과 vs. 바나나>가 강북,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한 20년 전에 건립된 아파트 모델 하우스에서 열렸다면, 2012년 열린 성낙희와 성낙영의 2인전 전은 상업적인 인식이 강하게 드리워져 있는 강남 신사동의 한 건물에서 열렸다. 
전시와 함께 킴킴갤러리는 흥미로운 이벤트를 마련하기도 했다. 
아트라운지 비하이브에서 베를린에 거주하는 독립기획자 클레멘스 크뤼멜의 강연이 온라인 화상채팅 ‘스카이프’로 진행됐고, 뒤이어 아티스트 토크도 진행됐다. 
또한 클로징파티로 성낙영과 재미교포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애론 최(Aaron Choe)의 디제잉 파티 를 개최하기도 했다. 
새하얀 정방형의 미술관에서 고고하게 앉아 있는 작품이 아니라, 관객들과 숨 쉬고 즐길 수 있는 유연한 형태가 바로 그들이 꿈꾸는 예술의 모습이다.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에게 있어 킴킴갤러리는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생각한다”는 기획자 배은아의 말처럼 킴킴갤러리는 이들의 본업인 작품 활동의 또 다른 모습이라 말할 수 있겠다.

한편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는 말 그대로 ‘퍼포먼스’를 보여 주었다. 
<페스티벌봄>의 일환으로 지난 3월 국립극단 백승호장민호극장에서 공연 <라면 앙상블>을 선보인 것. 
이 작품은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 외에 평론가 이영준, 여성과학자그룹 뮤즈S가 참여해 진행된 ‘과학 쇼’였다. 
공연에는 뇌과학자, 생화학자, 행동생태학자가 등장, ‘라면에 대한 시각적인 정보를 받았을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나 ‘라면의 남성성’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다루면서 라면의 사회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라면-과학-예술. 참으로 어색한 조합이지만, 평균적으로 1인당 연간 80개의 라면을 소비하면서도, 화학적이고 인공적인 식품이라는 점 때문에 천대 받아온 라면의 지위를 격상시킨 것이다.

사실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는 2004년 결혼한 부부다. 
이들의 첫 공동 작업은 2004년 스위스 바덴에 있는 쿤스트라움 바덴에서 그룹전 에서 발표했던 목조 작업
프랑스 유학 중에 만난 이들은 자신들을 가리켜 ‘공생 관계’라고 부르는데, 그레고리 마스는 “나는 무거운 주제를 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이고, 김나영은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다. 자전거에 발전기를 달면 더 빨리 달릴 수 있듯이, 우리의 협업은 발전기 역할을 한다”라며 공동 작업의 장점을 강조한다. 
둘이 함께 함으로써 같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작품도 더욱 멀리 확장할 수 있다. 
게다가 작업 속도도 빠르다. ‘뚝딱 뚝딱’ 만들어진 작품은 제법 그럴싸하게 전시장에 자리를 잡는다.

특히 이들의 작업에 기폭제가 되어 주는 것은 장소다. 

특히 국제 커플인 이들은 문화권의 차이와 그 속에 내재한 다양성을 온몸으로 느낄 터.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는 한국과 독일, 그리고 여러 유럽 국가들을 돌면서 ‘기념품’처럼 모아 온 이질적인 오브제, 그리고 여러 문화권의 감성들을 재조합해서 작품을 만든다. 

심지어 같은 작품도 어떤 장소에서 전시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는 미술 작품의 주요한 특성으로 꼽히는 ‘Site-specific’의 한 발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작품 은 전시장이었던 문화역서울284의 장소성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공간 내부의 나무장식과 같은 색으로 채색된 여러 가지 가구, 오브제, 조각 등을 과거 ‘그릴’로 불렸던 구 서울역사 대식당 곳곳에 설치하여, 과거의 유물과 새로 추가된 오브제 사이의 간격을 해체함으로써 발견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작품이다. 구 서울역사 대식당과 비슷한 성격을 띠는 고성이나 타베른(taverne: 고풍스러운 레스토랑)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반에 여러 물건을 올려놓고 장식하는 행위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작품은 이렇듯 자신들의 주변 환경을 깊이 탐구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그것의 표현 매체 역시 일상에서 그대로 가져온다. 
그들의 전시장에는 조악한 도자 공예품부터 조립식 인형, 오래된 가구, 플라스틱 제품 등 싸구려 물건이 즐비하다. 
또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인용하기도 한다. 마치 어디서 본 듯 낯익으면서도, 그것들이 섞이면서 생경한 상황을 조성한다. 
싼 것과 비싼 것, 추함과 아름다움, 진짜와 가짜, 유명과 무명의 자유로운 충돌 속에서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미학은 무한히 증식한다. 
그리고 작품들의 행간에 깨알 같이 녹아들어 있는 작가의 패러디와 농담 속에서 관객들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림 속에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숨겨 둔 것처럼, 어쩌면 애초부터 작가들은 관객이 작품의 진의를 아는 것을 원치 않을 지도 모른다.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갈색 작품들은 마치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래 맞아, 이게 바로 예술이야!(That's Right,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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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12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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