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자른 머리, 어린아이
같은 표정, 여성적 취향과는 거리가
먼 품새. 작가 정서영의 외모
어느 구석에서도 40세
여성의 전형 같은 것은 찾아 볼
수 없다. 나이나 성별 혹은
성격이 드러나지 않는 ‘독자적’인 모습이라고 할까? 그의
작품 또한 작가를 닮아서 기시감과
낯설음, 사물과 조각, 현실과 비현실 어디 쯤엔가에
위치하는 존재들처럼 모호하다.
그것은 우리를
어느 다른 차원에로 인도해갈 듯 잔뜩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궁극적으로 목적지를 제시하지
않는 이상한 초대장과도 같다.
‘소통’이
화두가 되다시피 한 오늘날의
문화 상황에서 강렬하고 명료한
의미 전달을 거부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 읽기를
중도에서 포기하게 할지도 모를 모호함의 길을
선택한 작가가 있다. 이 작가 정서영의 궁리는 무엇일까?
서울대에서
정통 조각을 공부하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미술 대학에서 수학한 정서영은 1990년대 초반부터 독보적 조형 세계로 주목받아
온 작가다. 그는 재료를 완벽하게 다루어 기념비적 조각을 만드는
대신, 스폰지나 스티로폼,
유리, 심지어는 모노륨 장판지나 박하사탕처럼 견고함과는
거리가 먼 재료를 가지고 실물로 존재하는 물건들과 엇비슷한 오브제를 만들어 왔다.
비닐 장판지 위에 서예체를
열심히 ‘따라서
그린’ 글씨라든지, 신부의 드레스처럼 풍성하게
주름 잡은 스폰지를 삼발이 위에 걸쳐
놓은 조각, 혹은 어정쩡한 규모로 구축한 전망대나 수위실, 꽃꽂이용 스티로폼으로 깎아
만든 선인장 화분 등, 그가 만든 이상한 물건들은
상식적 질서를 거스르듯 크기의 비례가 전도된 상태로 나열되곤 했다.
익숙해진다는 것에 회의적이라는
그는 특정한 재료를 편애하거나 형태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조각품을 만드는 일에는 애당초 흥미가
없다. 익숙한
형태, 뻔히 아는 촉감, 상식적인 크기로 관객의
이해에 부응하는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사람과 사물 혹은 상황 사이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리고 사물과 사물 사이의, 상황과 상황 사이의 잊혀진
관계”에
다가서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인식의 사각지대를 조명하려 하는 것이다.
그는 재료의 촉각적 평면성과
이미지의 시각적 깊이, 그리고 작품의 의미가 단일한
차원에서 하나로 결합되는 순간을
애써 유보한다. 그것은
작품 앞에선 관객들을 난감하게 하지만,
대신 대상을 여러 통로로 만나는 경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작가인 나 자신과 보는 사람이 자부하고 있던 믿음 혹은 논리만으로 작품 앞에 섰다가는 불안해지는 상황에 재미를 느껴요.” 주체의 불안을 조장하려는 그의 생각과 말 속에는, 우리의 삶에 만연한 시각중심주의와 물신주의의 폭력을 되돌아보라는 조용한 권고가 깃들어 있다. 미술계에서 적잖은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정서영은 올해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미술 행사인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그는 6월 중순으로 다가온 전시 개막을 앞두고 베니스의 현장에서 한참 작업을 하고 있다.
“저는 지금 공용공간에 있는 기둥을 이용한 작품 <기둥>과, 폭이 각각 5m 넓이의 방 하나에 <새로운 삶>이라는 제목의 설치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먼 베니스에서 작가 정서영은 이번에 전도해야 하는 사물과 상황에 대한 설명을 그렇게 시작했다.
<기둥>은 한국관 내에 이미 있던 기둥을 부풀려서 새 기둥을 만드는 작업이다. 스티로폼과 콘트리트를 이용해 만든 새 기둥은 불합리하리만큼 비대한데다 바닥에서 약간 떠있다. 주어진 실내 공간의 크기에 맞지 않는 대형 기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는 ‘비엔날레’라는 대형 축제가 갖고 있는 ‘대형’의 속성에 주목했으며, 동시에 한국관의 건축적 오류를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전시장 한편을 잠식하는 난처한 기둥의 존재를 역설적으로 부각하는 방법으로 말이죠.” <새로운 삶> 역시 기존의 벽 안에 숨어 있던 문을 드러내 바깥으로 통하는 출구를 만듦으로서, 전시장의 환경을 역설적으로 전도해 제작한 작품이다. 문 안팎으로 걸쳐져 있는 삼륜 오토바이 위에 고속도로가 얹혀져 있다는 뒤바뀐 설정이 낯설었다.
작가 정서영은 “베니스엔 고속도로도, 그 위를 달릴 오토바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세요.” 라고 이야기한다. 물건의 구체성이 주는 현실성과 물건의 쓸모 없는 조건이 주는 비현실성 모두가 그녀의 작업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작가인 나 자신과 보는 사람이 자부하고 있던 믿음 혹은 논리만으로 작품 앞에 섰다가는 불안해지는 상황에 재미를 느껴요.” 주체의 불안을 조장하려는 그의 생각과 말 속에는, 우리의 삶에 만연한 시각중심주의와 물신주의의 폭력을 되돌아보라는 조용한 권고가 깃들어 있다. 미술계에서 적잖은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정서영은 올해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미술 행사인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그는 6월 중순으로 다가온 전시 개막을 앞두고 베니스의 현장에서 한참 작업을 하고 있다.
“저는 지금 공용공간에 있는 기둥을 이용한 작품 <기둥>과, 폭이 각각 5m 넓이의 방 하나에 <새로운 삶>이라는 제목의 설치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먼 베니스에서 작가 정서영은 이번에 전도해야 하는 사물과 상황에 대한 설명을 그렇게 시작했다.
<기둥>은 한국관 내에 이미 있던 기둥을 부풀려서 새 기둥을 만드는 작업이다. 스티로폼과 콘트리트를 이용해 만든 새 기둥은 불합리하리만큼 비대한데다 바닥에서 약간 떠있다. 주어진 실내 공간의 크기에 맞지 않는 대형 기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는 ‘비엔날레’라는 대형 축제가 갖고 있는 ‘대형’의 속성에 주목했으며, 동시에 한국관의 건축적 오류를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전시장 한편을 잠식하는 난처한 기둥의 존재를 역설적으로 부각하는 방법으로 말이죠.” <새로운 삶> 역시 기존의 벽 안에 숨어 있던 문을 드러내 바깥으로 통하는 출구를 만듦으로서, 전시장의 환경을 역설적으로 전도해 제작한 작품이다. 문 안팎으로 걸쳐져 있는 삼륜 오토바이 위에 고속도로가 얹혀져 있다는 뒤바뀐 설정이 낯설었다.
작가 정서영은 “베니스엔 고속도로도, 그 위를 달릴 오토바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세요.” 라고 이야기한다. 물건의 구체성이 주는 현실성과 물건의 쓸모 없는 조건이 주는 비현실성 모두가 그녀의 작업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고속도로를 이고 있는 오토바이는 물의 도시 베니스를 위한 정서영 식의 ‘새로운
삶’의
제안이 되는 것이다. 가공하지
않은 나무를 깔아 바닥에서 소리가 나게 한 까닭은 소리로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서였다고. 한국관에는 정서영 외에도
두명의 작가가 더 참여하여 공간을 나누어 쓰고 있기 때문이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뿌듯한 일이다. 그러나 작가로서 더 뿌듯하고 의미 깊은 때는 바로 작가 내면과 외면을 향해 새로움을 열어 주는 작업을 얻어내는 순간일 것이다. 그는 바로 지금, 베니스에서 그 의미를 낚아 올리고 있는 듯하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뿌듯한 일이다. 그러나 작가로서 더 뿌듯하고 의미 깊은 때는 바로 작가 내면과 외면을 향해 새로움을 열어 주는 작업을 얻어내는 순간일 것이다. 그는 바로 지금, 베니스에서 그 의미를 낚아 올리고 있는 듯하다.
“저는 세상의 일들에 항상 심리적으로 괴리를
느껴요. 그런데
그 일들을 조각내고 다시 맞추는 놀이를 하다보면,
괴로운 마음도 진정되고 어느덧 그 일들로부터 거리를 취하면서 새로운
조망을 하게 됩니다. 이번 베니스의 작업도 그런 과정의 결과물입니다.”
글: 안소연 수석 큐레이터
문화와 나 , 2003 여름호
http://www.samsungfoundation.org/html/cni1/cultureni/2003/02/cal_05.html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