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지난 3일 만난 주재환 작가. 등 뒤로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 출품했던 ‘몬드리안 호텔’(왼쪽)과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를 패러디한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가 보인다. 서영희 기자
주재환은 회화와 오브제, 설치미술을 넘나들며 현실을 풍자하는 방식이 유쾌하다. 1980년대 시대의 고민으로 뜨거웠던 30대 청년들은 이제 칠순을 넘겼지만 시선은 여전히 현실에 닿아있다.
‘유쾌한씨’로 불릴 만큼 위트 있고 풍자적인 작품을 선보였던 서울토박이 민중미술 작가 주재환(76). 회고전 ‘어둠 속의 변신’전은 서울 종로구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은 민중미술의 진원지였지만 당시 그의 작품에선 악동의 장난기마저 느껴진다. ‘몬드리안 호텔’만 해도 그렇다. 몬드리안의 추상 작품인 빨강, 파랑 사각형 안에 나체 그림을 그리는 화가 등을 비꼬듯 그려 넣어 서양에 어퍼컷을 날렸다. 주먹 불끈 쥔 노동자, 대지 위에 몸을 구부린 농부 등 다른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에서 풍기는 결연함이나 비장감과는 차이가 있다.
‘유쾌한씨’로 불릴 만큼 위트 있고 풍자적인 작품을 선보였던 서울토박이 민중미술 작가 주재환(76). 회고전 ‘어둠 속의 변신’전은 서울 종로구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은 민중미술의 진원지였지만 당시 그의 작품에선 악동의 장난기마저 느껴진다. ‘몬드리안 호텔’만 해도 그렇다. 몬드리안의 추상 작품인 빨강, 파랑 사각형 안에 나체 그림을 그리는 화가 등을 비꼬듯 그려 넣어 서양에 어퍼컷을 날렸다. 주먹 불끈 쥔 노동자, 대지 위에 몸을 구부린 농부 등 다른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에서 풍기는 결연함이나 비장감과는 차이가 있다.
1990년대 동네 주변에서 주운 폐품을 활용해 내놓은 ‘쇼핑맨’ ‘짜장면 송가’에서도 한결 같이 위트가 넘친다. 2000년대 들어서도 도난을 막기 위해 ‘훔친 수건’이라고 인쇄한 동네 목욕탕 타월을 갖다 쓰기도 했고, 지난해 오브제 작품은 ‘삼포 세대’로 불리는 청년 세대의 좌절을 라면과 커피믹스를 사용해 표현했다.
자본주의 비판, 노동의 소외, 환경파괴, 청년 실업 등 세월이 흘러도 현실을 주제에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여전히 민중미술 작가다. 칠순 중반인 지금까지도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풍자와 위트다.
그런데 유독 회화는 어두우면서도 몽환적이다. 심연의 바다 혹은 밤의 어둠 같은, 짙은 파랑색이 주조색이다. 개막을 하루 앞둔 3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유화만은 무의식에서 나오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성장과정이 밝지 않아 그런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1960년 홍익대 미대를 한 학기 만에 중퇴했다. 신혼의 그는 생업을 위해 통행금지를 알리는 야경꾼 일을 2년간 했다. 1968년 김신조의 청와대 습격 사건을 패러디한 작품은 직업적 경험의 산물이다. 푸른 바다를 유영하는 검은 고래가 신호등으로 바뀌는 ‘신호등’ 같은 회화 작품도 그 때의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녹아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민중미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생계 전선에서 뛴 게 계기가 됐다. 미술사학자 임영방 주간의 ‘미술과 생활’ 잡지 기자로 취직해 기획위원 성완경, 편집위원 윤범모 등 훗날 민중미술 이론가가 된 평론가들과 어울렸다. 그리고 이들이 주축이 돼 출발한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 가담했다. 미대 중퇴 후 20년간 피아노 외판원, 아이스크림 장사 등 미술과는 상관없는 일을 전전하던 그는 그렇게 미술로 돌아왔다. 일부 평론가는 주재환을 개념미술 작가로 부르기도 한다. 회화든, 오브제든 글씨와 설명이 많이 있기 때문일 게다. 그는 “나는 개념미술 작가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외형이 비슷하다고 서양식 개념을 갖다 붙이는 건 서구 추종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작품의 원조를 그림 속에 화제(畵題)를 곁들였던 문인화 전통에서 찾았다. 그는 “옛 그림의 곁들인 글은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 날씨, 당시 상황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냐”며 “현대미술은 너무 난해하다. 관객에게 좀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몸을 낮춰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는 ‘친절한씨’라는 별명이 하나 더 붙어야 할 것 같다.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선에 초청 받은 바 있다.
국민일보 손영옥 선임기자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451519&code=13160000&cp=du
Mar. 2016
Seoul
자본주의 비판, 노동의 소외, 환경파괴, 청년 실업 등 세월이 흘러도 현실을 주제에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여전히 민중미술 작가다. 칠순 중반인 지금까지도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풍자와 위트다.
그런데 유독 회화는 어두우면서도 몽환적이다. 심연의 바다 혹은 밤의 어둠 같은, 짙은 파랑색이 주조색이다. 개막을 하루 앞둔 3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유화만은 무의식에서 나오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성장과정이 밝지 않아 그런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1960년 홍익대 미대를 한 학기 만에 중퇴했다. 신혼의 그는 생업을 위해 통행금지를 알리는 야경꾼 일을 2년간 했다. 1968년 김신조의 청와대 습격 사건을 패러디한 작품은 직업적 경험의 산물이다. 푸른 바다를 유영하는 검은 고래가 신호등으로 바뀌는 ‘신호등’ 같은 회화 작품도 그 때의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녹아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민중미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생계 전선에서 뛴 게 계기가 됐다. 미술사학자 임영방 주간의 ‘미술과 생활’ 잡지 기자로 취직해 기획위원 성완경, 편집위원 윤범모 등 훗날 민중미술 이론가가 된 평론가들과 어울렸다. 그리고 이들이 주축이 돼 출발한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 가담했다. 미대 중퇴 후 20년간 피아노 외판원, 아이스크림 장사 등 미술과는 상관없는 일을 전전하던 그는 그렇게 미술로 돌아왔다. 일부 평론가는 주재환을 개념미술 작가로 부르기도 한다. 회화든, 오브제든 글씨와 설명이 많이 있기 때문일 게다. 그는 “나는 개념미술 작가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외형이 비슷하다고 서양식 개념을 갖다 붙이는 건 서구 추종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작품의 원조를 그림 속에 화제(畵題)를 곁들였던 문인화 전통에서 찾았다. 그는 “옛 그림의 곁들인 글은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 날씨, 당시 상황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냐”며 “현대미술은 너무 난해하다. 관객에게 좀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몸을 낮춰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는 ‘친절한씨’라는 별명이 하나 더 붙어야 할 것 같다.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선에 초청 받은 바 있다.
국민일보 손영옥 선임기자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451519&code=13160000&cp=du
Photos via daum. blog
Mar. 2016
Seoul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