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morphosis in the Darkness 어둠속의 변신

Exhibition catalogue
Metamorphosis in the Darkness. Joo Jae Hwan's Works from 1990s-2000s
주재환: 1990-2000년대의 작품
- 글 YOO Hyejong 유혜종
주재환, 아침햇살 Morning Sunglow, 1998
액자에 비닐 끈 Cord on Frame, 118x144cm


2016-3-4 ~ 4-6
Hakgojae Gallery 학고재 갤러리, Seoul

밤'은 주재환의 유화에서 중요한 주제이자 배경, 그리고 세계이다. 짙은 어둠에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과 에너지의 흐름, 기이한 형태의 인물이나 생물체, 신비롭고 침잠하는 분위기의 푸른색에 매혹되다 보면 그의 작품이 밤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밤은 매일 반복되는 순환의 시간 안에서 단순히 어둠의 상태나 물리적 시간을 지시하지 않는다. 그에게 밤은 낮에는 보이지 않고 억눌려 있던 (또는 숨어있던) 타자들이 그들의 참 모습을 발현하는 환경이자 인간 문명의 타자로 상정된 자연이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변신하는 확장된 세계이다. 밤에 대한 그의 이런 접근은 일견 그의 다양한 삶의 경험-특히나 야경꾼과 유년기의 경험-에서 촉발된 듯하다. 

60년대 후반, 서울대학병원 정문 옆 파출소에서 야경꾼으로 일했던 주재환은 그의 경험을 여러 이미지와 소리로 회상한다: 어두운 골목길에 퍼지던 방범용 딱딱이 소리, 적막한 심야를 흔들던 창경원 호랑이의 처연한 울음소리, 새벽 두부집에 비지를 사러 온 극빈층 사람들, 매혈 청년들로 붐빈 서울대병원, 심야에 정처 없이 헤매던 미친 여성들. 이렇듯 밤의 시간에 예술가의 감수성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일깨워진다. 그는 낮이었다면 보지 못하거나 듣지 못했을 것들을 지각하게 되고 그것들에 사로잡히게 된다. 밤은 많은 것들을 잠재우고 지움으로써 우리에게 강렬하게 그리고 새롭게 감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밤의 풍경은 다른 한편으로 주재환의 유년 시절의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24시간 낮인 오늘날과는 달리 그의 어린 시절에는 온전히 밤이 있었다. TV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 아이들에게 밤은 어른들이 들려주던 낯선 세상의 이야기들이 펼쳐지던 공간이었다. 이 밤의 환경 속에서 성장한 그에게 그래서 밤은 이중적이다. 밤은 예술가를 성장시켰던 친숙한 고향, 어머니와 같은 시원의 공간이면서, 일상의 문명적 삶과는 거리가 먼 귀신과 도깨비가 있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친숙하지만 동시에 낯설기에 밤은 우리에게 성찰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에게서 미학적 성찰의 공간으로 밤이 특권화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주재환의 '밤'이 일정 정도 그의 삶과 연결이 되어 있다면, 다른 한편으로 밤은 그의 시적 언어이자 상상력의 바탕이고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자 예술을 보는 철학을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낮'은 밝음, 선, 질서, 의식, 이성과 연결되었다면, '밤'은 어둠, 악, 야만, 무의식과 혼란 등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렇지만 현대의 문학과 예술, 철학과 심리학은 낮이 참된 세계라는 오래된 믿음에서 벗어나 밤이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세계로 이해한다. 보통, 낮이 선명한 또는 하나의 결정된 '형태'를 통해 사람이나 물체의 정체성을 인식하게 한다면, 밤은 이성이 지배하거나 규율하지 못하는 다양한 생성과 변모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우주적 공간이다. 이렇게 밤이 변신의 시공간이라고 할 때, 그 변신은 일차적으로 감각의 차원에서 일어난다. 즉, 낮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으로 시각에 지배적 지위를 주었다면, 밤은 시각의 우위를 중단시키고 청각이나 촉각 등 다른 감각의 활성화를 통해 새로운 인식과 존재방식을 실천하게 한다.
주재환_횡단보도에 자리한 화실_도배지에 아크릴채색, 꼬마신발_가변설치_2000

주재환_물 vs. 물의 사생아들, 2016, 빨래건조대, 음료수, 가변설치

주재환은 일상의 사물들과 현상들을 자신의 미학적 공간인 밤의 세계에 옮겨와 그것들을 새로운 감각적 환경에서 재구성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질서와 논리를 중지시키고 교란시킨다. 그러나 이때 그의 방식은 결코 무겁지가 않다. 거기에는 어떤 경쾌함과 신비스러움이 있다. 이런 유화의 특징은, 매우 상이하다고 평가되는 그의 콜라주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요컨대, '밤의 미학'은 주재환의 작품 세계 전체를 이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1990-2000년대의 유화와 콜라주, 그리고 설치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밤의 미학'이 미술의 소통이라는 과제를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 탐구했는지를 보고자한다.
 주재환_고 박성룡 시 '벌레소리', 1990, 벽지위에 성냥개비, 벌레모형, 228x102cm
주재환_21세기 인간사회, 5대 15대 80, 1998, 147,5x54cm, 종이위에 포스트 잇


주재환의 '밤의 미학'은 문명화된 사회에서 배척되었거나 억눌렸던 존재들에게 눈길을 주며 그들의 낯설지만 의미 있는 삶의 방식과 이야기를 '변신'이라는 미학적 언어를 통해 표현해 낸다. 그는 일상의 재료나 주제를 자신의 미술 세계 안으로 끌고 들어옴으로써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파괴한다. 이 파괴의 작업 속에서 일상의 익숙한 것들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고, 예술은 규범과 제도가 강제하는 제한성에서 벗어나 자신의 표현과 소통의 역량을 확장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만날 때 우리는, 그가 이름 없는 작은 일상의 사물들에 대해서 그렇게 했듯이, 그의 작품을 열린 마음으로 천천히 그리고 세심하게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주재환의 작품은 그의 다양한 삶의 궤적들로 인해 특히나 그의 삶, 그가 살아온 시대와 함께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예술작품이 그의 삶의 역사를 통해서만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방식은 예술가 주재환이 경계하듯 그의 작품을 일의적으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전시가, 주재환의 작품들에 집중하여 그의 미학세계와 그의 미학이 갖는 의미를 재평가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유혜종
https://neolook.com/archives/20160304a
http://www.hakgojae.com/page/1-3-bio.php?exhibition_num=275


photos via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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