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_화가 주재환

순수든 현실참여든 남는 것은 오직 작품뿐 

“시민 여러분, 날 찍어요.”
카메라 앞에서 밝게 웃으며 화가 주재환 선생이 말한다. 

서울 삼청동의 트렁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하는 그를 만난 것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이틀 앞둔 날이었다. 
‘찍는다’는 동사의 중의성을 빗댄 농담으로 사진 촬영에 어색해하던 주재환 선생이 스스로 유쾌한 분위기를 만든다. 기지와 유머 감각은 주재환의 키워드 중 하나다. 
“우리나라 미술은 유머가 약하다”고 그는 말한다. 2001년 선재아트센터에서 있었던 개인전 제목도 〈이 유쾌한 씨를 보라〉였다. 평론가 김광우는 “그의 미술의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의 미술에는 자유가 있다”고 말한다. 사람을 향한 주재환 특유의 유머와 날카로운 통찰은 작품의 체온을 더 높인다.


고희에 이른 주재환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컴퓨터 이미지를 활용한 최첨단(?) 작품이다이전에도 각종 플라스틱 제품, 잡지, 광고, 사진, 인쇄물, 못 쓰는 장난감, 인형 등 비미술적 일상품을 이용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왔다
이번엔 인터넷 속에 사장되어 있던 이미지들이 그의 작품을 통해 “다시 햇빛을 보게” 되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거리 위로 파고다 공원 주변에 즐비한 포장마차형 점집 사진이 오버랩되어 있다.

 “물론 나는 점집에는 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세계 보편적 상황이다. 
전쟁과 자연 재앙 등으로 끊임없이 미래가 불안하다. 시스템은 방대하지만 순조롭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점점 이런 것에 의존한다. 이것은 단순한 물리적 폐허의 모습이 아니라 현대인의 정신적 폐허의한 장면이다.”
1961년 홍익대 미대에 입학한 그는 ‘학비가 없어서’ 한 학기 만에 학교를 그만둔다. 
그 후 여러 가지 인생 경험을 쌓는다. 
행상, 외판원, 방범대원, ‘아이스케키’ 장사, 민속가면 제작자, 고등공민학교 미술 강사, 누드미술학원 경영, 민속극회 남사당, 한국민속연구소 연구원, 월간 〈미술과 생활〉 기자, 월간 〈독서생활〉 편집장, 한국자수박물관 연구원, 도서출판 미진사 주간 등. 먹고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이 모든 체험을 작품으로 수렴시키는, 궁극적으로는 작가다. 주재환을 언급하지 않고는 한국 미술계의 모습이 온전히 잡히지 않는다. 
그를 수식하는 첫번째 말은 민중미술가다. 1979년에 결성되었던 〈현실과 발언〉 동인 활동은 당시 화단을 지배하던 추상화 계열의 모노크롬 회화에 대한 저항이자 단절된 대중과의 소통을 꿈꾸는 미술가들의 모임이었다. 1980년대 아르코미술관에서 첫 전시를 열 때는 개관 직전 전시가 불온하다며 미술관에서 반대했다. 그러나 이미 초대장을 보낸 상태여서 전시는 취소할 수 없었다. 타협안으로 소등을 하고 촛불을 들고 전시를 관람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고 불온하지도 않았다”고 그는 회상한다.

민중미술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쇠퇴했으나 주재환을 우리 곁에 계속 묶어놓는 큰 이유는 바로 그의 ‘도깨비 정신’이다. 우리나라의 도깨비는 일반적인 귀신과는 다르다. 악인에게는 벌을 주는 존재이지만, 착한 사람에게는 복을 주는 존재다. 초월적인 힘을 가졌지만 한편으로는 엉뚱하고 어리석은 존재다. 주재환의 작품은 바로 그러하다. 현실을 통찰하는 날카로운 힘을 가져 위정자들을 불쾌하게 하지만, 약자의 입장에서는 즐거운 해학의 대상이 된다. 그의 유명한 대표작 중 하나인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는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작품에서 봄비는 정확하게 위의 계단에 서 있는 사람의 오줌이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오줌발이 굵어지듯이, 불합리가 하층으로 쌓이는 세태를 풍자했다. 실제로 그는 도깨비를 주제로 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보수적인 평론계가 그의 작품을 주목하지 않는 동안 오히려 외국 미술계가 그의 작품에 주목해서 2003년 제50회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에 초대되기도 했다. 해학과 웃음의 도깨비 정신은 그를 늙지 않는 청년으로 만든다. 그는 판에 박힌 원로를 자처하지도 않는다. 인터뷰하는 동안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노인과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매우 어리석은 질문을 던져본다. “어떻게 그렇게 기발할 수 있어요?” 그가 대답한다.


“기발함은 타고난 것 같다. 나의 성격이 그렇다. 나는 타고난 낙관주의자다.”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모든 것, 일상생활의 모든 일이 주재환에게 오면 작품이 된다. 
그의 작품은 농담으로 버무려진 ‘한국판 개념미술, 일상적인 오브제의 사회적인 재발견’, 
또는 여러 가지 일상 용품을 재활용하는 ‘초저예산 미술’, 혹은 재미있는 ‘사건으로서의 작품’이라 칭해진다. 2007년 미술시장이 뜨겁던 시절 대안공간 사루비아 다방에서 열린 개인전 〈CCTV작동 중-잃어버린 밤〉은 지극히 주재환다운 전시였다. 작가는 전시실 문을 잠그고, 작품 공개를 거부했다. ‘작품을 공개하지 않는 전시’라는 형용모순적인 해프닝이었다. 미술시장의 과열 속에서 작품성은 뒷전이고 가격만 중시되는 상황에 대한 풍자였다. 
어떤 작품을 하건 그는 한순간도 자신이 디디고 있는 현실에서 발을 뗀 적이 없다. 
그는 늘 일상의 삶을 바라보고 거기서 작품을 시작한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주목한 것은 과학이 발달할수록 현대사회의 불안정성이 커져간다는 사실이다. 이 사태를 주재환은 〈현기증〉이라는 전시 제목으로 요약했다.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연극의 한 장면을 캡처해 만든 두 사람의 말풍선에는 여러 가지 말들이 담겨 있을 수 있다. 연극 속의 두 인물 사이, 현대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간다. 연극 속의 두 인물이 애타게 기다리는 고도는 자신의 출연료로 1000억조를 요구한다. “이 별의 이름은 지구가 아니라 ‘문제’”라며 작가는 너털웃음을 짓는다.
민중미술이 시작된 지 벌써 30년이 되었고 한 세대가 지나간 소회를 물어본다. “모노크롬이건, 민중미술이건 중요한 것은 작품성이다. 결국 남는 것은 작품이 아니겠는가. 8000m 넘는 죽음의 산을 통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8000m를 넘어가면 순수, 참여 따위가 중요하지 않다. 결국 그 지점을 통과하고 남는 것은 작품뿐이다. 죽음의 지대를 넘어서 살아남느냐 아니냐가 중요할 뿐이다. 나 자신은 3000m 정도 오지 않았나 싶다”고 그는 말한다.


작품 하나하나를 뜯어볼수록 재미있고, 연륜에서 묻어나오는 지혜가 있다. 
하얀 눈을 덩그러니 찍은 사진이 있다. 몇 해 전 서울에 폭설이 내렸을 때 찍은 사진이란다.

“가장 밝은 구멍과 어둔 구멍을/ 가장 좋은 구멍과 싫은 구멍을/ 가장 예쁜 구멍과 미운 구멍을/ 가장 강한 구멍과 약한 구멍을/ 가장 잘난 구멍과 못난 구멍을/ 구별할 수 있을까?”라고 적혀 있다. “순백의 눈에도 여러 구멍이 있다. 인생사도 마찬가지다. 여러 개의 구멍이 있다. 그런데 이들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언젠가는 녹아서 없어질 뿐인데.”

대립과 갈등을 넘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릴 수 있는 고희의 나이에 이른 사람의 지혜다.

사진 : 김선아

http://topclass.chosun.com/board/view.asp?catecode=J&tnu=201112100012
#20_ pigment print, 33×22c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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