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니? 들리니?

드로잉과 회화, 오브제 작업부터 설치, 비디오, 퍼포먼스, 글쓰기, 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진행 중인 김순기가 올가을 서울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을 연다. 그녀와의 대화에서 우리는 예술과 삶이 곧 하나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파리에서 차로 약 1시간을 달린 후 마주한 풍경에 시야가 탁 트인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들판과 구름이 다소 낀 하늘이 만들어낸 긴 지평선 때문이다. 야트막한 농가들이 드문드문 자리한 시골 풍경은 더없이 목가적이다. 이곳, 비엘메종(Viels-maisons)의 스튜디오에서 김순기 작가를 만난 건 약 3개월 전이었다. 김순기 작가는 1793년 처음 비디오 작업을 시작한 이래 설치, 비디오, 멀티미디어 아트, 퍼포먼스, 사진 등 다양한 작업을 통해 불교사상과 노장사상,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 등에 관심을 두고 시간과 언어유희, 그리고 삶과 예술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심층적으로 다루어왔다. 그녀가 올가을 서울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2014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달, 어디에, 시장을 넘어서, 침묵(Lune, Ou, Par-dessus le Marche, Silence)> 이후 3년 만이다. 김순기 작가와 소박한 농가에서 만난 기억을 떠올리며 작품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파리에서 뵌 후 약 3개월이 지났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선생님을 뵈었을 때 식사를 마친 후 장화를 신고 한참을 혼자 산책하시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자주 산책하시는 것 같던데, 그 시간에 주로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별생각 없이 그냥 걷습니다. 항상 변하는 풍경을 보며.

올해 초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소장품전에서 선생님의 작품이 단연 눈에 띄었습니다. 1997년부터 시작한 ‘주식 거래(Stock Exchange)’는 주식 정보의 움직임에 따라 이미지와 각 이미지의 리듬이 달라지는 일종의 인터랙티브 멀티미디어 작품입니다. 선생님은 그게 리얼 타임으로 현실을 반영하는 작품이라고 하셨습니다. 작업을 시작한 지 20년이 흐른 지금, 그 작품의 의미는 어떻게 변화했는지요?
‘주식 거래’는 1990년대, 세계화가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 21세기 풍경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제작한 작품입니다. 1991~1992년에 동남아를 무전여행하면서 구상했고 1997년에 처음 시작했죠. 그동안 여러 번 발표했는데 각 상황에 따라 조금씩 형태나 구조가 달라졌지만 컨셉은 변함없습니다. 1997년 작품은 현대작가도서센터(La Maison du LAC)에서 의뢰받아 1999년에 완성했습니다. 24대의 TV를 사용한 설치와 주식 거래의 데이터 정보를 통한 비디오와 사운드 랜덤 프로그램, 그리고 햇빛이 전시 공간 바닥을 비추는 설치를 함께 했습니다. 이후 2000년 아트선재센터, 2001년 프랑스 살로민(Salaumines) 시에 있는 미술교류센터(La Maison de l’Art ete dla Communication)에서 다시 발표했습니다. 또 2006년에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제가 살로민 시에서 발표한 ‘주식 거래’를 구입해 상설전을 열었죠. 그러나 그간 뉴테크놀로지의 급속한 발전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전부 다시 설치해야 했고, 주식 거래 데이터를 받는 방식도 재구성해야 했죠. 2008년에 서울 갤러리175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주식과 자연을 함께 다루었습니다. 올 초에 열린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도 다시 새롭게 설치했고요. 이번에는 최근에 쓴 시 ‘고향 떠난 지(De Retour)’와 프랑스 철학자 장 뤼크 낭시(Jean Luc Nancy)의 글* 중 가치에 관한 부분을 발췌해 함께 전시했습니다. ‘주식 거래’는 처음 시도한 후 20년이 흐르는 동안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많이 발전, 변형되어 항상 새로운 방법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모양도, 내용도 발전과 불가피한 관계로 함께 발전해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주식 거래’는 설치할 때마다 새롭게 변하니 ‘무형(無形)’이라고 할 수 있어요. 참 재미있죠.

1970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당시 발표한 작품 ‘소리(Sori)’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작업하신 대부분이 설치 작품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당시 기록은 하되 지난 모습을 재현하는 기록이 아니라 리얼 타임을 표현하는 언어를 생각해야 했고, 이것이 비디오라는 매체와의 첫 만남이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비디오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비디오(video)의 어원은 라틴어 ‘videre(나는 본다)’입니다. 아니, ‘멀리 본다’는 뜻이죠. 한마디로 비디오는 한계를 모릅니다. 빛으로 짠 빈 그릇이고, 마치 초고속 빛으로 짠 블랙홀과 같다고 할까요. 이 빈 공간에는 빛으로 짠 오방색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음향도 작곡할 수 있습니다. ‘멀리 본다’는 한계가 없고 틀도 없으므로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물의 흐름과 같아서 노장이 말하는 도(道)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려 있는 삶이죠. 전 비디오(video)라는 단어를 가지고 장난하기를 좋아해요. 비디오는 ‘vide(비어 있음, emptiness) &o’ 혹은 ‘vide(비어 있음, emptiness) & eau(물, water)’ 또는 ‘vie(삶, life) & eu(나, I)’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선생님의 작업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공간에 대한 탐구는 인터랙티브한 설치 작품으로 구현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앞서 언급한 ‘주식 거래’나 ‘Station O Time’(1997년)과 같은 작품 말이죠. 멀티프로젝션 모니터에서 표출하는 비디오와 3차원 이미지, TV 채널 이미지, 인터넷 이미지, 건물 내 인포메이션 정보는 모두 그날그날의 온도와 도습, 세계 시간에 따라 조정된 프로그램에 의해 랜덤하게 작동합니다. 나아가 건물 외부에 세운 시계탑의 프로그램도 서로 작동의 조건에 영향을 미치죠.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서로에게 미치는 작용’이라고 하셨습니다. 우연성을 만들어내는 인터랙션이 오늘날엔 좀 더 직접적이고 광범위하게 작용하는 듯 보여요.우연은 제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컨셉이에요. 동양사상에서 우연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우연은 우리 삶의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정해진 법이나 규율을 넘어 열린 가능성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창작의 씨앗이 되기도 하죠. 대부분의 발명은 정확한 연구 결과가 아니라 우연한 기회와 상황에서 시작되곤 합니다. 수학, 천문학 등 현대 과학이 이를 잘 설명해주죠. 우연은 무아(無我)로서 가능합니다. 집착이 아닌 ‘내버려둠’에서만 가능하죠. 무아, 즉 그냥 내버려둔다는 것은 열린 마음으로 무엇을 받아들일 수도, 들을 수도 있는 마음가짐입니다.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이죠. 예를 들면 비디오 작품 ‘그래-그래(Gre-Gre)’(1997년)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파일들을 주워 랜덤 프로그램을 사용해 제작한 것입니다.

지난해에 시화집 <보이니?(Entends-tu?)>를 출간하셨습니다. 그간 작업한 서예 작품과 드로잉, 한글과 프랑스어로 쓴 시를 수록하셨죠. 무엇보다 책 속의 소제목들이 재미있었습니다. ‘보이니?(Entends-tu?)>’, ‘어떻게?(Comment?)’, ‘풍경(Paysage)’ 등 총 6개의 소제목이 서로 질문하고 답하는 듯 보였습니다. 저는 특히 ‘풍경’과 ‘글쎄요(Peut-etre)’에 수록된 시들이 좋았습니다. 제목 ‘보이니?’가 질문하듯 독자들이 시화집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작년에 발간한 시화집의 제목을 프랑스어로는 ‘Entends-tu?(들리니?)’라고 붙였고, 한글로는 ‘보이니?’라고 했습니다. 번역 아닌 번역으로 한글과 프랑스어를 자유롭게 썼어요. 서예와 그림도 글 중간중간에 섞어서 재미있게 언어유희를 즐겨봤습니다. 여러 언어가 섞여 다양한 음향과 음률을 이루고 여러 가지 뜻(sens)을 내포할 수 있도록 구상한것이죠. 소리 내어 읽으면 단어의 음률과 내용이 함께 춤추며 노닐도록 장난해봤습니다. 프랑스어 ‘Entends-tu?(들리니?)’와 한국어 ‘보이니?’를 결합한 책 제목이 흥미롭습니다. 독자들도 따라 읽으면서 충분히 들리고 보이는 자유로운 과정을 함께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선생님은 작업에서 항상 일상과 무위를 강조하십니다. 일상과 무위는 우연, 언어유희, 패러독스 등 선생님의 작업에서 중요한 개념을 설명해주죠. 특히 글과 서예 작품을 보면 선생님이 작업하고 계시는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지속적인 글쓰기와 서예, 드로잉이 선생님 작업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인가요?제 모든 작업은 서로 연결되고 함께 구상됩니다. 예전에 ‘멀티미디어’에 대해 장 뤼크 낭시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저에게 멀티미디어는 열린 행위고 규정되지 않은 장입니다. 그것은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방식, 즉 장소, 관점, 언어, 기술의 복수화에 기반을 둔 비형식적 접근 방식입니다. 생각의 움직임, 혹은 그냥 움직임, 움직임의 자취, 한 번 그은 붓 자국, 발걸음, 형식은 없지만 끝없이 변모해서 모든 시간을 껴안을 수 있으므로 저는 그것을 ‘오픈 미디어’라고 부릅니다.”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무위’는 열린 태도이며 새로운 길을 열어줍니다. ‘무위’, ‘아무것도 안함’은 무용(無用), 쓸모없음과 함께합니다. 이 뜻을 잘 반영한 작업이 제 사진 작품 ‘달(Lunes)’(200~32005년)이에요. 전 핀홀 카메라를 이용한 사진 작업을 즐기는데 이를 ‘바보 사진’ 시리즈라고 부릅니다. 무식하고 게으르게 작업한 것이죠. 검은 상자에 바늘구멍 하나를 뚫고 달을 향해 놓은 후 기다리다 적당한 때에 눈을 감아주면 카메라는 달의 움직임을 그려줍니다. 붓을 따라 천천히 긋는 일획(一劃)과도 흡사해요. 마치 주역의 기호 같아서 신기하죠. 사진 또한 비디오와 마찬가지로 시간 예술이에요. 눈으로 보지 않고 몸으로 느껴야 하죠. 즉 서화(書畵) 또한 시간 예술이고 몸짓 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가을 서울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이 열립니다. 준비하고 계신 작업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려요.
올가을에 열릴 개인전에서는 예전부터 해온 활쏘기 작업을 통해 제작한 과녁 그림과 비디오 작품을 선보입니다. 저는 고등학생 시절 동양사상에 관심이 많아 책도 찾아 읽고 단소도 배우고 서울 황학정에서 활쏘기도 배웠어요. 프랑스에 온 후엔 작업실 외부에 공간이 많아서 생트빅투아르 산(Montagne Sainte-Victoire) 중턱에서 활쏘기를 계속했어요. 처음엔 마음과 몸을 다스리기 위해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술 행위가 되었죠. 전 스스로 “삶과 예술은 같은 길”이라고 말해왔어요. 활쏘기를 꾸준히 하면서 동시에 과녁을 그려야 했는데, 과녁은 그렇게 그림이 되었고, 그림은 과녁이 되었죠. 과녁의 색은 오방색인데, 이는 곧 만다라 색입니다. 만다라의 오방색은 비디오의 원시적 주파수색이기도 하죠. 1973년 즈음부터 비디오 작업을 하기 시작했는데 활쏘기와 과녁 그림, 비디오 작업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함께 나아가고 있습니다.과녁 그림과 비디오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는 개인전이 기대됩니다. 앞으로는 좀 더 자주 한국에서 선생님 작품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에디터 김이신
글 류정화  사진 제공 김순기
http://www.noblesse.com/home/news/magazine/detail.php?no=5810
June 2017,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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