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작가: 구민자_김범_신정균_안규철_오재우_이병수_이수영_이준형_장보윤 서울대학교미술관 Seoul National University Museum of Art, Seoulwww.snumoa.org
존재하지 않는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을 제작하거나 가짜 신문, 가짜 웹사이트를 만들어 유포하는 등, 최근 현대미술계에서는 '거짓말'로 인식될 법한 창작 활동이 꾸준히 증가해 왔다. 전시 『거짓말』은 이와 같이 허구의 내러티브를 전제로 다양한 전략을 사용하는 최근 한국미술의 동향을 살핀다. "미술가들이 실제를 가장한 허구를 작업의 방법론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이러한 예술 활동이 일반적인 사기 행위와 다른 점은 무엇인지, 거짓말을 방편으로 삼아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어떠한 성격을 지니는지를 살펴본다. 관객의 입장에서 이러한 작품들은 웃음을 낳기도 하지만 때로는 화를 돋우기도 하며, 작품 속 거짓말을 끝까지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적극적으로 관객을 속이고자 하는 예술 작업의 윤리적 측면은 논쟁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활동이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는 사실은,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정보가 1인 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동시대 사회상이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대변되고 있다고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구민자, 김범, 신정균, 안규철, 오재우, 이병수, 이수영, 이준형, 장보윤 작가의 작업들은 예술적 기만을 방법 삼아 인간의 경험-이성, 감성, 믿음이 어떻게 가공되고 통용되는지에 대한 통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구민자의 「스퀘어 테이블: 예술직 공무원 임용 규정 마련을 위한 공청회」는 공무원직에 예술가 직렬(職列; 직종)을 신설한다는 가정 아래 공무원, 미술대학 교수, 미술전문지 편집장, 미술가, 큐레이터 등이 청중 앞에 모여 임무, 선발 및 자격요건, 근무조건 등을 논의한 퍼포먼스였다. 가정에서 출발한 대담이어서 실제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는 가짜 공청회이고 모든 논의는 큰 틀에서 상상력의 교환이다. 의견들은 하나로 합쳐지기 힘들 만큼 넓은 폭을 갖는데, 이를테면 공무원 임용을 예술 지원으로 보는 시각과 예술 억압으로 보는 시각이 공존하고 이 규정에 사회민주주의 체제로의 변환을 꾀하는 사상이 깔려 있다고 하는 참석자의 발표도 있다. 이렇게 공청회 과정은 정의와 역할이 부단히 변화해온 예술의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하면서, 동시에 참석자와 청중의 발언에는 자신들의 경험과 평소 관심이 여실히 묻어난다. 이에 이 작업은 상상 스토리이면서도 현재 예술계의 구성원의 의식 조사를 겸하며, 기록/상상, 현실/미래 같은 이분법적 고정관념을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구민자_스퀘어테이블: 예술가 공무원 임용을 위한 공청회_비디오 2점_각 01:20:00_2013
Minja Gu, The Square Table: Public hearling of the recruitment requirements for the artist-position government official, 2013, video 2 pieces, each 120 min.
김범의 「변신술」은 인간이 나무, 문, 풀, 바위, 냇물, 사다리, 표범, 에어콘으로 변신할 수 있는 방법을 적어 놓은 지침서이다. '냇물이 되려면 어두운 밤에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비스듬히 몸의 반쯤을 땅에 묻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것과 같은 내용은 피식 웃으면서도 한번은 이를 해보는 모습을 떠올려보게 하는 힘이 있다. 이것이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려면 실제 해보는 것 외에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만약 어떤 이가 실패했다면 곧 이 지침이 거짓이라 고 할 수 있을까? 냇물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이렇듯 작품의 지침을 따르다보면 참과 거짓이 변화와 의지라는 큰 틀에서 어떻게 가려질 수 있는지, 존재를 어떻게 정의할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이 꼬리를 문다. 이 작품은 책으로 출판될 때 앞에서부터는 국문과 영문으로 뒤에서부터는 일본어와 중국어로 편집하여 책의 중간 지점에서는 서로 섞이도록 구성되었다. 가독 가능한 부분과 불가능한 부분이 결합되면서 우리가 사용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해보도록 권유하도록 한 구성은 이번 전시에서 주목하는 상상력 증진의 탁월한 예이다.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빛이 없는 밤 냇가에서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비스듬히, 신체가 반쯤 잠길 만큼 땅을 파고 그 안에 눕되……' '다만 힘을 빼고, 물의 온도와 흐름에 발의 체온과 자세, 움직임 등을 맡긴다'
서울대미술관에 진열된 책 '변신술'에 실린 '냇물이 되는 법'이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책은 태연한 얼굴로 각종 지침을 일러준다.
미술가 김범이 저술한 '변신술'은 인간이 냇물뿐 아니라 나무, 풀, 사다리, 표범, 에어컨 등으로 변신하는 방법을 담았다. 황당무계함을 인내하며 책을 읽다 보면, 지침대로 실행해 참과 거짓을 따지고픈 욕망, 존재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지와 같은 근원적인 물음 등이 꼬리를 문다.
전시는 '미술가들이 실제를 가장한 허구를 작업 방법론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이러한 예술 활동이 일반적인 '사기'와는 어떻게 다른지, 거짓말을 내세워 진정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등을 살펴본다.
김범, 구민자, 신정균, 안규철, 오재우, 이병수, 이수영, 이준형, 장보윤 작가가 회화와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선보인다.
구민자는 영상 '스퀘어 테이블'에서 공무원직에 예술가 직렬을 신설한다는 '가정' 아래 다방면 인사들이 모여 공청회를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를 통해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 등을 살핀다. 정부가 작성한 남파간첩 행동 양식을 일반인이 늦은 밤 공원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담은 신정균 작품은 우리 안에 도사린 불안을 포착한다.
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의 진실성이 의심받고, 저마다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 시대상에 비춰서 곱씹으면 더 좋을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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