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한 기계 아름다움에 매료…몸속에 ‘중공업의 피’ 흐르는 듯

[정명숙의  이슈  인터뷰]
웅장한   기계   아름다움에  매료…몸속에  ‘ 중공업의   피’  흐르는  듯
어린 나이에 현대重서 용접공으로 일해.
용접 잘되면 “이거 예술이다” 말했는데 한발 떨어져 본 철 구조물이 바로 ‘예술’
중동서 생각없이 사온 카메라 인연으로 40대 넘어 늦깎이 대학생으로 사진 전공

20여년 산업사진 고집…여전히 재밌어
부산 프로젝트 7번째 작가로 선정 영광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佛·獨서 초대전

사진가 조춘만(64세·울산시 남구 무거동)씨는 고은사진미술관이 7년전부터 매년 추진하고 있는 ‘부산 프로젝트(부산참견록)’에 7번째 작가로 참여했다. 2007년 문을 연 고은사진미술관은 부산 해운대에 있는 사진전문 미술관으로 고은문화재단이 운영한다. 이 미술관은 10년 장기프로젝트로 매년 국내외 사진작가 가운데 1명을 선정해 부산을 기록하는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내로라는 국내 최고 작가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에 선정돼 1년간의 작업과 석달여간의 전시회, 책 발간까지 마무리하고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조춘만 사진가를 이슈 인터뷰에 초대했다.

-사진작가로서는 더 없이 좋은 기회인 고은사진미술관의 부산프로젝트 작가로 선정됐다. 어떤 작업을 했나.
“작품의 제목은 ‘인더스트리 부산’이다. 부산의 산업을 사진으로 표현한 것이다. 공장과 기계, 항만과 물류 등을 주로 담았다. 개인적으로는 사진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20여년간 계속해온 산업사진의 연장선이다. 고은사진미술관의 부산프로젝트에 선정돼 지난 한해 집중적으로 부산에서 작업을 하기는 했으나 2011년부터 간간이 부산을 찍어왔다. 작업과 전시는 물론이고 30×40㎝ 크기에 204쪽이나 되는 큰 작품집을 발간한 것이 무엇보다 큰 보람이다.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이 무척 영광스럽다.”

-지난해 울산에서 독일 폴클링겐제철소(Volklingen Ironworks) 사진으로 전시회를 개최, 스펙타클한 작품으로 주목을 끌었다. 독일에서 사진작업을 한 이유는.
“아주 묘한 인연으로 프랑스 포르바슈에서 활동하는 공연예술가인 알리살미(Ali Salmi)를 알게돼 제철소를 소재로 한 퍼포먼스 작품인 ‘철의 대성당’에 용접공 역할로 참여하게 됐다. 그 공연을 위해 독일에 갔다가 폴클링겐제철소를 보게됐다. 산업사진을 하던 내게 그곳은 그야말로 매혹적이었다. 지금은 문을 닫았으나 한때 독일 최대 철재생산 회사였던 폴클링겐은 199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다. 나무·풀과 뒤섞여 ‘기계숲’을 이루고 있는 그 곳을 스무번이나 방문했다.”
-거대한 배관과 탱크, 크레인, 셀수 없이 많은 콘테이너 등을, 그것도 1m가 넘는 큰 사진으로 표현하고 있다. 기계와 공장은 사진작품의 흔한 소재가 아니다. 왜 산업사진을 고집하는가.
“어린 나이에 현대중공업에서 용접공으로 일을 했다. 그 속에서 나는 파이프 하나 보다 작은 노동자에 불과했으나 한발 떨어져서 본 거대한 철구조물은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웠다. 용접공으로 일할 때 동료들끼리 기포하나 없이 깔끔하게 용접이 잘 되면 “야, 이거 예술이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기능까지 갖춘 예술 같은 기계를 정말 제대로 표현해내고 싶었다. 소형 카메라에서 큰 카메라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산업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경북 달성의 산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8세에 현대중공업에 용접기능공으로 취직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쉬는 짬짬이 배관 용접을 열심히 배워 중동으로 일하러 갔다. 다시 중공업으로 돌아왔다가 1985년 그만두고 자영업을 시작했다. 중동에서 들어올 때 남들 따라 아무 생각없이 카메라를 하나 사왔다. 그런데 어느날 지인이 사진공부를 한다고 하더라. 그를 따라 1994년 근로복지회관에서 열리는 권일 사진가 강의에 수강생으로 들어갔다. 수강생들로 구성된 갈티사진동우회에서 철거지역을 찍는 작업을 함께 하면서 풍경이나 인물이 아닌 사회 현상에 눈을 돌리게 됐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나.
“40대 중반에 아내가 검정고시를 하겠다고 해서 함께 공부를 시작했다. 학벌 콤플렉스를 벗어나고 싶은 단순한 욕심에 시작했는데 중·고등학교 졸업자격을 1년만에 마치고 나니 학원에서 대학을 가라고 권유를 하더라. 그래서 전공을 뭘할까 하다가 사진을 선택했다. 준비기간이 짧아 원하는 대학에 바로 못가고 전문대학을 졸업한 후 경일대 사진학과에 편입했다. 늦깎이 학생이라 힘들었지만 4년내내 결석 한번 안 하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산업사진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언제인가.
“2002년 졸업작품전을 하고 작품집을 만들었다. 예전에 울산박물관에 근무했던 이선종씨가 학교 동기다. 그가 기계비평가 이영준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에게 내 작품집을 소개해준 것이 인연이 돼 2004년 서울시립미술관 다큐먼트전부터 많은 기획전에 초대해주었다. 그 후 독일 폴클링겐제철소 작업으로 함께 책도 내고 전시도 했다. 또 부산프로젝트를 할 때도 부산에서 싱가포르까지 배를 타고 가며 공동작업을 했다.”

-앞으로 전시계획은.
“내년에 프랑스에서 초대개인전이 두차례 계획돼 있다. 2020년 3월5일~4월19일 프랑스 동북부 뤼네빌(Luneville)과 2020년 5월~9월 갤러리 프리미에르 뤼(Premiere Rue)에서 전시회를 갖는다. 또 독일 폴클링겐 제철소 전시장에서 2020년 가을 전시회도 추진 중에 있다. 그때는 전시회 오프닝으로 ‘철의 대성당’ 퍼포먼스도 할 계획이다.”

-늦은 나이에 사진을 시작해 이제 20년 정도 지났다. 사진을 잘 했다고 생각하는가.
“아직도 여전히 사진작업이 재미있다. 풍경이나 인물 등 잘 팔리는 예쁜 사진을 찍었더라면 아마 오늘의 내가 없었을 것이다.”

-산업사진을 계속할 생각인가.
“지난 20여년 거의 산업사진만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울산에서 작업을 할 때는 주로 조선과 석유화학 등 중후장대한 제조업체가 소재였다. 워낙 거대한 규모이니까 한발 떨어져서 표현을 해왔다면 이번 부산프로젝트에서는 공장 안으로 들어가 기계의 소음과 떨림, 열기 등을 담아냈다.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사진에서 공장설비의 웅장함과 함께 색과 선의 섬세함을 느끼게 된다. 회화적 느낌을 고려하는가.
“사진은 시각예술이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 사진예술이지만 작가는 일정한 프레임 안에 풍경을 선택해 담아낸다. 색의 배치에 따라 흘러가기도 하고 머물기도 한다. 흑백 사진을 하기도 했는데 다시 컬러로 돌아온 것도 그 때문이다.”

-사진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특별한 메시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업의 역사나 노동의 기록, 그런 것도 목표가 아니다. 이영준 교수 말대로 몸속에 중공업의 피가 흐르는지 웅장한 기계를 보면 그것을 찍고 싶다. 내가 너를 예술로 표현해 주리라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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