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 임영주, 정서영, 조은영 Gim Ikhyun, IM Youngzoo, Chung Seoyoung, Choey Eun Young Cho
2026.6.24.—8.1.
두산갤러리 DOOSAN Gallery
두산인문극장 기획전 DOOSAN Humanities Theater Special Exhibition
Curated by 장혜정 Hyejung Jang
DOOSAN Humanities Theater Special Exhibition: The Multilingual
지난해에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낸 요양병원에서 ‘3개국어 할머니’라는 별칭을 얻었다. 1930년생인 그는 어느 시점부터 조금씩 자신의 현재를 지우고 과거와 가까워져 가더니, 언어와 인지가 유아적 수준에 이르던 어느 날 불현듯 일어, 영어, 한국어를 섞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할머니의 새 별명 이야기를 엄마에게 전해 들으며 감탄인지 탄식인지 알 수 없는 짧은 숨이 입에서 새어 나왔는데, 그 순간 그때까지 내가 안다고 생각한 나의 할머니는 산산조각 나 공기 중에 흩어졌다.
나는 이 파편들을 주워 담을 수 있을까? 어차피 나를 통해 이해되는 할머니는 여러 굴절과 왜곡을 겪는다. 그러므로 아무리 애를 써도 나에게 기억되는 할머니는 새로운 할머니로 향할 것이다. 이 전시는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을 만들어 가고 있었던 나의 할머니와 마찬가지일 모든 개인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기억할 몫을 부여받은 주변인들을 향하는 전시이다. 누구를, 무엇을 떠올리고 어떻게 새길지는 당신의 자유다.
저자도 대상도 없는 조각. 길을 걷다 보면 종종 마주치는 이름 없는 모퉁이 돌처럼, 정서영의 〈떠돌이〉(2022)는 전시장 한복판에 우두커니 있다. 시멘트로 수습하듯 덕지덕지 덧발라진 이 덩어리는 무엇이든 되고 무엇도 아닌, 잠정적인 응결 상태로 있다. 이곳에서 당신이 계속해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떠돌이〉는 아마도 매번 다른 모습일 것이다. 한 사람이 삶을 살아내는 동안 일어나는 숱한 이동과 만남에는 자의와 타의가 하릴없이 뒤섞인다. 그러면서 마주하는 모든 사건과 경험, 정동의 총체인 한 개인은 끝까지 수수께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 유동적 초상에 다가가기 위해 우리가 ‘이해’의 방식으로 주로 익숙하게 거쳐온 경로를 이탈하고, 기꺼이 오해를 받아들이며, 그럼에도 훼손되지 않을 본질에 대한 희미한 믿음을 움켜쥔 채 이곳에 있기를 제안한다.
주인 없는 문장. 조은영의 〈I Ordered a New Body and It Never Came〉(2026)은 여러 번의 번역과 재작성을 거치며 타인의 몸을 통과한 변형된 발화다. 한국인 할머니와 그에 못지않게 각별한 관계를 맺은 미국인 할머니와의 대화는 조은영에 의해 한글에서 영어로 다시 한글로 번역되고 낭독되는 과정에서 원본은 소실된다. 하나의 서사로 통일되지 않을 서로 다른 세대와 언어, 인종적 배경과 역사적 조건을 가진 두 여성의 기억은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한 사람의 입에서 다른 사람의 귀로 건너가는 동안 문장은 조금씩 닳고, 어긋나고, 뜻밖의 리듬을 얻는다. 누구의 기억이 누구의 문장을 빌려 도착했는지 분간할 수 없는 지점에서, 여러 시간과 화자가 동시에 살아 숨 쉬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미래로 향한다. 〈I Ordered a New Body and It Never Came〉에서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다른 입을 빌려 계속 도착하는 시간이다. 미래시제로 말해지는 사건들은 회상이라기보다 예감처럼 들리고, 기억은 소유가 아니라 경유가 된다. 한 사람의 몸에 새겨졌던 시간이 다른 몸으로 이접되는 동안, 언어는 불완전한 매개로 그 사이를 잇는다.
주워들은 이야기. 언제 어디서부터였는지 알 수 없지만 입안에 남아 계속 불리는 한 유행가의 멜로디처럼, 출처를 알 수 없는 어떤 기억들은 세대를 건너도 여전히 남아있다. 임영주의 〈가쿠메이 鶴鳴〉(2026)는 작가의 고백적 서사를 통해 어떤 말로도 설명되지 않는 유산이 어떻게 끝끝내 다음 세대를 통해 이어지고 변형되는지 살핀다. 임영주는 자신의 기억에 아스라히 남은 할머니의 학 울음 흉내와 암호 같은 일본어, 그리고 학춤을 추는 어머니의 몸짓과 내밀한 고백을 교차시키며, 한 가족 안에 남겨진 무속의 잔여와 흉내, 전승, 거부와 동경이 뒤엉킨 감각을 불러낸다. 시집간 첫날 마루 커튼 뒤에 숨겨진 신당을 보고 한 달간 밥도 못 먹을 만큼 무속을 무서워했던 스물네 살의 어린 며느리는, 세월이 흐른 뒤 딸의 카메라 앞에서 다시 몸을 움직인다. 무당집은 싫어하면서도 굿 춤을 보며 “나도 할 수 있을 텐데”라고 중얼거리는 어머니의 이중성은, 지워졌다고 믿었던 것이 실은 다른 형식으로 몸에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기록과 흉내, 전통과 잔여, 공포와 친밀감의 경계는 느슨하게 멀어지고 여전히 가깝게 붙어있다. 우리는 뜻을 다 잃고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몸짓과 같이 해독되지 않는 것들을 그대로 품고 살아간다.
옮겨지는 믿음. 1836년부터 통용된 ‘청동기(Bronze Age)’라는 시대 구분은 뒤섞여 발견되는 유물들의 관계 패턴을 읽어내 특정 시대의 경향을 파악하는 방식이다. 이는 과거가 여러 겹으로 뒤섞인 채 미래로 온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한편, 사진이 객관적 기록의 장치로 신뢰되던 시절, 그 믿음은 실물 캐스팅 의혹에서 오귀스트 로댕을 구해냈다—〈청동 시대〉(1877). 그러나 사진은 언제나 어느 것, 어느 때의 부분일 뿐이다. 로댕이 남긴 수천 개의 분리된 신체 조각—아바티(abattis)와 7천 점이 넘는 〈청동 시대〉의 기록 사진은 영영 전체가 되지 못하는 부분들의 새로운 관계도를 상상케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과 믿음을 경유한 김익현의 〈어느 청동기〉(2026)는 미술사적 재배열을 넘어, 역사와 인물을 기억하는 방식이 얼마나 많은 누락과 이데올로기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지 짚어낸다. 그 시선은 식민지 조선과 전후 한국의 동상 건립 문화로 확장되어 한·일의 근현대 동상을 추적하며, 인물 조각이 근대성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기능했음을 환기한다. 정치와 사회적 신념이 바뀔 때마다 시대의 조각은 파괴되거나 이동하고 다시 세워졌다. 어떤 조각은 녹여져 다른 동상이 되기도 하고, 어느 동상의 저자는 다음 세대에 의해 동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결국 시대를 통과해 지금 우리에게 당도한 현재는 여러 번 해체되고 엉키며 다시 옮겨지는 진실, 또는 믿음의 흔적이다.
한 사람, 사건, 시대는 그것을 기억하는 누군가를 기대어 잔류한다. 그러니 우리가 현재라고 믿는 순간은 실상 과거와 미래의 혼재이며, 발화하자마자 사라지는 목소리처럼 이미 과거로서 새로운 지연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왜곡을 받아들이는 것, 더 다양한 감각을 깨우는 것, 그리하여 정답이라고 착각하는 방향을 비껴가는 경로를 상상할 수 있을까? 정서영의 〈무제–트랙2〉(2012/2026)는 길거리의 지각 경험을 언어와 소리로 치환하며, 소음과 발자국 소리가 뒤섞인 청각적 층위 속에서 보지 않고 듣는 감각을 통해 시각적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오디오속 인물이 주택가와 대로를 걸으며 눈에 보이는 것을 즉흥적으로 묘사할 때, 본 것을 말로 옮기는 찰나의 침묵과 생략, 기억의 간섭은 우리가 익숙하게 지나다니던 일상적 풍경을 낯설게 만든다. 시각이 언어로 번역되며 발생하는 어긋남의 틈 사이 사운드와 언어 사이의 역동이 하나의 조각적 사건이 된다. 어긋남은 규정의 실패가 아니라 다른 읽기와 다른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틈이 된다. 한 개인이 고정된 하나의 문장 안에 담기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그 중에 변치 않을 것도 있다.
* 나의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 강성숙은 1930년 북한 함경도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중 이미 결혼한 언니를 두고 나머지 형제들과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피난와 가정을 꾸렸다. 조금 이르게 남편과 사별 후 홀로 키우던 자녀들이 장성하자, 197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이주한 형제들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 또 다른 10여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자녀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돌보며 살았다. 나는 할머니표 삼겹살 샌드위치 맛을 잊지 못한다.
- 장혜정(큐레이터)
작가 소개
김익현(b.1985)은 사진과 영상 매체를 통해 과거-현재라는 시간과 다양한 단위의 얽힘이 만드는 세계를 상상하고 관찰한다. 시청각 랩(2025, 서울), 경기도미술관(2020, 안산), 산수문화(2017, 서울), 공간 지금여기(2016, 서울)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국립현대미술관(2024, 과천), 웨일리아트(2024, 타이베이, 대만) 등에서 개최한 단체전과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2024, 창원), 2022 부산비엔날레(2022, 부산),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2016, 서울) 등 국제전에 참여했다.
임영주(b.1982)는 영상, 설치, 퍼포먼스, 출판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미신과 신념, 종교적 믿음이 형성되고 작동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스페이스 제로원(2026, 뉴욕, 미국), 페리지 갤러리(2024, 서울), Hall1(2021, 서울)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국립현대미술관(2025, 서울), 서울시립미술관(2025, 서울), 루드비히 미술관(2023, 코블렌츠, 독일), 아트선재센터(2021, 서울), 타이베이 컨템포러리 아트 센터(2019, 타이베이, 대만) 등에서 개최한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으며, 2025년 올해의 작가상 4인으로 선정되었다.
정서영(b.1964)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사물’의 위상과 관계에 주목하며, 조각의 범주를 확장하고 사물과 세계의 연결 방식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제시해왔다. 개러지 갤러리(2026, 도하, 카타르), 티나킴 갤러리(2024, 뉴욕, 미국), 서울시립미술관(2022, 서울)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제59회 카네기 인터내셔널(2026, 피츠버그, 미국),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2024, 창원), 제11회 아시아 퍼시픽 트리엔날레(2024, 브리스번, 호주), 기륭미술관(2024, 기륭, 대만) 등에서 국제적으로 소개되었다.
조은영(b.1985)은 한국과 미국을 기반으로, 언어, 물질, 기억이 서로에게 가하는 압력과 그 상호작용을 다룬다.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2024, 서울), 홀만 아트&미디어 센터(2023, 인클라인 빌리지, 미국), 선뷰 런쳔(2022, 브루클린, 미국)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루이스 홉킨스 언더우드 아트 센터(2023, 러벅, 미국), 퍼스오프 아티스트 콜렉티브(2022, 밀포드, 미국), 폭시 프로덕션(2022, 뉴욕, 미국) 등에서 개최한 단체전에 참여했다.
https://www.doosangallery.com/en/exhibitions/detail/2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