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IMA

 권선영_이성민_이채원_임시호展

2014_0905 ▶ 2014_1031

키미아트 KIMIARTwww.kimiart.net

가장 짧지도 크지도 않는, 지적 패러다임 속에 숨어있는 현실적 인식의 변화 ● 누구에게나 잊혀질 권리는 존재한다. 자의든 타의든 기억에서 잊혀져 가는 것은 감춤과 동시에 드러남이 표출 되어지는 것일 지도 모른다.『MAXIMA』展은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하고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KiMi For you' 공모작가들로 구성되었다. 공모를 통한 작가의 발굴과 더불어 대중에게 잊혀지지 않는 작가군 형성을 지원하는 전시로, 4인 작가들의 발전된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소통에 주력하고자 한다. 권선영, 이성민, 이채원, 임시호는 키미공간에 대한 물리적 구조이상의 중측적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시각적 변화를 주는 작품을 선보이며 이에 기반하여 키미는 미적관조의 태도로 보다 넓은 의식의 지평에 위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 한다. 무의미한 시간 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의미와 중요성을 놓치고, 공감의 시간을 값 없이 보내는 태도를 성찰해야 하듯이, 높은 역량의 작가들을 지나치지 않고 선별하여 작가의 깊이와 실존에 중점을 두는 전시가 되고자 한다.

임시호_Runner_캔버스에 유채_145×112cm_2014

임시호는 인간의 몸과 심리변화의 상관관계에 주목한다. 

긴 호흡으로 뛰는 Runner를 통해 단순한 몸의 움직임이 내적인 세계의 통로임을 발견하고 그 순간의 체험을 포착한다. 외부의 외침이 격해 질수록 내적인 것들은 텅 비어지고 이성과 감각의 진공상태에 이른다. 이러한 발견들은 현실 속 무한함과 미적 체험을 가능하게 하고 삶에서 잊어버릴 수 있는 깊이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게 한다. ■ 키미아트

■ 네오룩_www.NEOLOOK.com

게으른 구름 (1998)

잘 보기 위하여
잘 읽기 위하여
잘 생각하기 위하여
잘 하기 위하여
안경을 쓸 필요가 없다
생각도 그림도 다 아니다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는 것도 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은
안에 있는 것도 아니오
밖에 있는 것도 아니오
이쪽도 저쪽도 아니다
그냥 그것이다 그냥 게으른 구름이다
그냥 노닐다가
그냥 모습, 그냥 색깔, 그냥 소리
 (김순기 게으른 구름(1998))
김순기 "강승완이 나를 발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기자
29일 김순기 작가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선보인 미디어아트 작품앞에서 시연하고 있다. 작품앞에 서면 코스닥 나스닥등 주식 관련 문자가 온 몸에 달라붙는 것 같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연못앞에서 붕어를 보고 있을때 였다. "웬일이세요? 놀러오셨어요?" 대학 은사 김윤수 교수도 반색했다. "미술관에 무슨일로 왔냐"고 묻는 은사에게 "큐레이터 강 뭐시기를 만나러 왔는데 이름이 생각이 안난다"고 하자, 은사가 "아, 강승완 큐레이터"라고 했고 그제서야 전화속에서 말하던 그 이름이 떠올랐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은사(김윤수)는 미술관 관장이었다. 2000년대 초반 프랑스 파리에서 잠깐 서울에 온 그는 국내 미술계를 잘 몰랐다. 그 해 아트선재센터에서 '주식거래 II'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지만 서울을 오래 떠나 있었다.(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71년 프랑스 정부 초대로 파리 니스로 도불한 후 그 곳에서 38년간 교수로 활동했다.) 서울에 온 건 집안이 풍비박산 나던 시기였다. 집안 가구에 빨간 딱지가 붙어있고 빚독촉 전화가 이어졌다. 그 전화를 피하던 어느 날 받은 전화는 '구원'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강승완 큐레이터인데 작품을 구입하겠다"는 전화였다. '주식거래' 작품이 미술관에 소장되면서 덕분에 빚을 조금 갚았고, 강승완 큐레이터와 우연한 인연이 이어졌다.
김순기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71년 프랑스 정부 초대로 파리 니스로 도불했다. 어린시절부터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파리로 가겠다고 키웠던 꿈이 이루어진 때다.1986년 우연히 미국 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1912~1992)를 만나면서 예술 활동이 업그레이드 됐다. 인위적인 행위를 최대한 지양하는 김순기의 작업과 자연 그대로의 소리에 귀를 열게 했던 존 케이지의 예술관이 깊이 공명하면서 비디오와 멀티미디어의 세계를 확장했다. 존 케이지의 소개로 뉴욕에 살던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을 만나 같이 활동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비디오아트를 하는 백남준 영향을 받은 것 아니냐고 하지만, 김순기는 강력하게 저항한다. "백남준때문에 비디오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1971년부터 프랑스 니스와 모나코에서 관객과 실시간 연결되는 비디오와 퍼포먼스 작품을 해왔고, 그런 작업이 이어져 1983년 파리에서 백남준과 퍼포먼스를 펼쳤다. 김순기는 "백남준의 '비디오는 비빔밥', '비디오는 색동'이라는 말을 백남준과 대담하면서 한 말"이라면서 '여자 백남준'이라는 시선을 거부했다.실제로 그를 비디오 아티스트로만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3년전, 강승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이 유럽 출장중 김순기 작업실을 찾았다. 파리 시골 농가를 개조한 작업실이었다. 강승완 실장은 "그때 미디어 회화 드로잉등이 모두 따로 분류된 4~5곳 작업실 공간에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했다. "20여년간 알아왔는데 못 본 작품이 너무 많았고, 꼭 미술관에서 제대로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 알고 있었던 건 빙산의 일각이다. 한국에서 제대로 전시를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창고를 뒤져 모든 작품을 정리해 2년간 준비를 마쳤다.
재불 작가 김순기(73) 회고전같은 개인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31일 개막한다. 29일 미술관에서 만난 김순기 작가는 "성격도 다르고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미술관 학예팀이 고생 많이 했다"며 전시 소감을 대신했다. 실제로 6전시실, 7전시실은 다채롭고 수많은 작품들로 어지러울 정도다. 1998년 쓴 시(時) '게으른 구름'을 타이틀로 영상, 설치, 드로잉, 회화, 로봇까지 총 200점이 전시됐다. '김순기 게으른 구름'을 작가가 직접 쓴 붓 글씨를 세로로 크게 써 전시장 문 앞에 달았다. 길쭉하고 날카로운 글자는 작가의 모습과 꼭 닮았다. 국내 화가라면,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었다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은 최고의 영예다. 단색화 거장 박서보(88)화백도 지난 5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열고 감개무량했다. 이런측면에서 '김순기 개인전'은 이례적이다. 파리에서 작업하며 활동한 탓에 국내에는 유명세가 없는 작가이자, 그동안 해외 유명 작가 전시를 해오던 미술관의 파격 대우로 보인다. 김순기는 "강승완이 나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강승완 실장은 "국립현대미술관은 작가들을 통해 미술사를 정립하는데 의미가 있다"면서 "국내 미술사에서 구멍이 나 있는 부분, 그것을 제대로 메우는 역할을 한다. 특히 여성작가들에 대한 연구가 안되어 있다. 한국미술사를 정립하는데 김순기가 필요했다"고 전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50년동안 외지에 계셨지만 한국적인 철학이나 생각이 항상 있었다. 김순기의 작품 세계를 통해 여성 설치미술 비디오아트작가로서 추구해온 한국미술을 새롭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김순기 작가는 "작업실에 박혀있던 스케치와 드로잉을 전시장에 펼쳐놓고 보니 어릴때부터 동양사상에 취해온 흐름이 보여 나도 몰랐던 인식을 할수 있어 새롭다"고 했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은 "하나를 잘하는 것을 반복하기 보다 잘 모르는 것,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는 도전 의식이 작용했다.
 이수정 학예연구사는 "1980년대부터 파리 교외 비엘 메종(Viels-maisons)의 농가를 개조한 작업실에 거주하면서 동·서양의 철학, 시간과 공간 개념에 관한 탐구를 바탕으로 영상, 설치, 드로잉, 회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형화될 수 없는 예술과 삶의 관계를 고찰해왔다"면서 "프랑스에 살았지만 동양의 전통을 살리고 있는 작가로 평소 작업을 하지 않는 순간이 없을 정도로 예술을 삶에서 녹아내는 작가의 작업을 통해 예술이 매일 각자의 순간을 풍요롭게 만는 삶의 일부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우연히 만난 큐레이터와의 인연의 고리는 김순기 작업세계와도 맞닿아있다. '도는 똥과 오줌속에도 있다'는 글귀를 써 전시한 그의 작품은 ‘작위’를 지양한다. '게으른 구름'의 시 처럼 '그냥 그것', 사물과 풍경의 원래 모습을 담으려고 했다. 돌멩이에 글씨를 쓰고, 화선지에 붓으로 삐뚤빼툴 쓴 '바보 서예'도 선보인다. 전혀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는 '무용'이야말로 정말로 '유용'하다는 장자 철학이 엿보인다. 전시는 2020년 1월 27일까지.한편 오는 9월 8일 전시마당에서 무당 김미화, 로봇 영희와 함께 신작 사운드 퍼포먼스를 진행된다. 2019년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고찰한 신작 퍼포먼스 '시간과 공간 2019'를 선보인다. 입력된 명령만 수행하는 로봇과 초자연적인 존재로서 무당이 등장해 게으르고 심심해하는 로봇 ‘영희’가 시를 읊고 무당 김미화의 굿하는 소리, 전시 마당 내 설치된 다양한 기구들이 내는 소리가 서울관을 점령할 예정이다.https://www.msn.com/2019 Seoul

두산인문극장 기획전: 3개국어 The Multilingual

김익현, 임영주, 정서영, 조은영 Gim Ikhyun, IM Youngzoo, Chung Seoyoung, Choey Eun Young Cho

2026.6.24.—8.1.

두산갤러리 DOOSAN Gallery

두산인문극장 기획전 DOOSAN Humanities Theater Special Exhibition


Curated by 장혜정 Hyejung Jang


정서영 〈떠돌이〉(2022)

  • DOOSAN Humanities Theater Special Exhibition: The Multilingual


지난해에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는 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낸 요양병원에서 ‘3개국어 할머니’라는 별칭을 얻었다. 1930년생인 그는 어느 시점부터 조금씩 자신의 현재를 지우고 과거와 가까워져 가더니, 언어와 인지가 유아적 수준에 이르던 어느 날 불현듯 일어, 영어, 한국어를 섞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할머니의 새 별명 이야기를 엄마에게 전해 들으며 감탄인지 탄식인지 알 수 없는 짧은 숨이 입에서 새어 나왔는데, 그 순간 그때까지 내가 안다고 생각한 나의 할머니는 산산조각 나 공기 중에 흩어졌다.

나는 이 파편들을 주워 담을 수 있을까? 어차피 나를 통해 이해되는 할머니는 여러 굴절과 왜곡을 겪는다. 그러므로 아무리 애를 써도 나에게 기억되는 할머니는 새로운 할머니로 향할 것이다. 이 전시는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을 만들어 가고 있었던 나의 할머니와 마찬가지일 모든 개인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기억할 몫을 부여받은 주변인들을 향하는 전시이다. 누구를, 무엇을 떠올리고 어떻게 새길지는 당신의 자유다.

저자도 대상도 없는 조각. 길을 걷다 보면 종종 마주치는 이름 없는 모퉁이 돌처럼, 정서영의 〈떠돌이〉(2022)는 전시장 한복판에 우두커니 있다. 시멘트로 수습하듯 덕지덕지 덧발라진 이 덩어리는 무엇이든 되고 무엇도 아닌, 잠정적인 응결 상태로 있다. 이곳에서 당신이 계속해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떠돌이〉는 아마도 매번 다른 모습일 것이다. 한 사람이 삶을 살아내는 동안 일어나는 숱한 이동과 만남에는 자의와 타의가 하릴없이 뒤섞인다. 그러면서 마주하는 모든 사건과 경험, 정동의 총체인 한 개인은 끝까지 수수께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 유동적 초상에 다가가기 위해 우리가 ‘이해’의 방식으로 주로 익숙하게 거쳐온 경로를 이탈하고, 기꺼이 오해를 받아들이며, 그럼에도 훼손되지 않을 본질에 대한 희미한 믿음을 움켜쥔 채 이곳에 있기를 제안한다.

주인 없는 문장. 조은영의 〈I Ordered a New Body and It Never Came〉(2026)은 여러 번의 번역과 재작성을 거치며 타인의 몸을 통과한 변형된 발화다. 한국인 할머니와 그에 못지않게 각별한 관계를 맺은 미국인 할머니와의 대화는 조은영에 의해 한글에서 영어로 다시 한글로 번역되고 낭독되는 과정에서 원본은 소실된다. 하나의 서사로 통일되지 않을 서로 다른 세대와 언어, 인종적 배경과 역사적 조건을 가진 두 여성의 기억은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한 사람의 입에서 다른 사람의 귀로 건너가는 동안 문장은 조금씩 닳고, 어긋나고, 뜻밖의 리듬을 얻는다. 누구의 기억이 누구의 문장을 빌려 도착했는지 분간할 수 없는 지점에서, 여러 시간과 화자가 동시에 살아 숨 쉬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미래로 향한다. 〈I Ordered a New Body and It Never Came〉에서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다른 입을 빌려 계속 도착하는 시간이다. 미래시제로 말해지는 사건들은 회상이라기보다 예감처럼 들리고, 기억은 소유가 아니라 경유가 된다. 한 사람의 몸에 새겨졌던 시간이 다른 몸으로 이접되는 동안, 언어는 불완전한 매개로 그 사이를 잇는다.

주워들은 이야기. 언제 어디서부터였는지 알 수 없지만 입안에 남아 계속 불리는 한 유행가의 멜로디처럼, 출처를 알 수 없는 어떤 기억들은 세대를 건너도 여전히 남아있다. 임영주의 〈가쿠메이 鶴鳴〉(2026)는 작가의 고백적 서사를 통해 어떤 말로도 설명되지 않는 유산이 어떻게 끝끝내 다음 세대를 통해 이어지고 변형되는지 살핀다. 임영주는 자신의 기억에 아스라히 남은 할머니의 학 울음 흉내와 암호 같은 일본어, 그리고 학춤을 추는 어머니의 몸짓과 내밀한 고백을 교차시키며, 한 가족 안에 남겨진 무속의 잔여와 흉내, 전승, 거부와 동경이 뒤엉킨 감각을 불러낸다. 시집간 첫날 마루 커튼 뒤에 숨겨진 신당을 보고 한 달간 밥도 못 먹을 만큼 무속을 무서워했던 스물네 살의 어린 며느리는, 세월이 흐른 뒤 딸의 카메라 앞에서 다시 몸을 움직인다. 무당집은 싫어하면서도 굿 춤을 보며 “나도 할 수 있을 텐데”라고 중얼거리는 어머니의 이중성은, 지워졌다고 믿었던 것이 실은 다른 형식으로 몸에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기록과 흉내, 전통과 잔여, 공포와 친밀감의 경계는 느슨하게 멀어지고 여전히 가깝게 붙어있다. 우리는 뜻을 다 잃고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몸짓과 같이 해독되지 않는 것들을 그대로 품고 살아간다.

옮겨지는 믿음. 1836년부터 통용된 ‘청동기(Bronze Age)’라는 시대 구분은 뒤섞여 발견되는 유물들의 관계 패턴을 읽어내 특정 시대의 경향을 파악하는 방식이다. 이는 과거가 여러 겹으로 뒤섞인 채 미래로 온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한편, 사진이 객관적 기록의 장치로 신뢰되던 시절, 그 믿음은 실물 캐스팅 의혹에서 오귀스트 로댕을 구해냈다—〈청동 시대〉(1877). 그러나 사진은 언제나 어느 것, 어느 때의 부분일 뿐이다. 로댕이 남긴 수천 개의 분리된 신체 조각—아바티(abattis)와 7천 점이 넘는 〈청동 시대〉의 기록 사진은 영영 전체가 되지 못하는 부분들의 새로운 관계도를 상상케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과 믿음을 경유한 김익현의 〈어느 청동기〉(2026)는 미술사적 재배열을 넘어, 역사와 인물을 기억하는 방식이 얼마나 많은 누락과 이데올로기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지 짚어낸다. 그 시선은 식민지 조선과 전후 한국의 동상 건립 문화로 확장되어 한·일의 근현대 동상을 추적하며, 인물 조각이 근대성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기능했음을 환기한다. 정치와 사회적 신념이 바뀔 때마다 시대의 조각은 파괴되거나 이동하고 다시 세워졌다. 어떤 조각은 녹여져 다른 동상이 되기도 하고, 어느 동상의 저자는 다음 세대에 의해 동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결국 시대를 통과해 지금 우리에게 당도한 현재는 여러 번 해체되고 엉키며 다시 옮겨지는 진실, 또는 믿음의 흔적이다.

한 사람, 사건, 시대는 그것을 기억하는 누군가를 기대어 잔류한다. 그러니 우리가 현재라고 믿는 순간은 실상 과거와 미래의 혼재이며, 발화하자마자 사라지는 목소리처럼 이미 과거로서 새로운 지연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왜곡을 받아들이는 것, 더 다양한 감각을 깨우는 것, 그리하여 정답이라고 착각하는 방향을 비껴가는 경로를 상상할 수 있을까? 정서영의 〈무제–트랙2〉(2012/2026)는 길거리의 지각 경험을 언어와 소리로 치환하며, 소음과 발자국 소리가 뒤섞인 청각적 층위 속에서 보지 않고 듣는 감각을 통해 시각적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오디오속 인물이 주택가와 대로를 걸으며 눈에 보이는 것을 즉흥적으로 묘사할 때, 본 것을 말로 옮기는 찰나의 침묵과 생략, 기억의 간섭은 우리가 익숙하게 지나다니던 일상적 풍경을 낯설게 만든다. 시각이 언어로 번역되며 발생하는 어긋남의 틈 사이 사운드와 언어 사이의 역동이 하나의 조각적 사건이 된다. 어긋남은 규정의 실패가 아니라 다른 읽기와 다른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틈이 된다. 한 개인이 고정된 하나의 문장 안에 담기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그 중에 변치 않을 것도 있다.

* 나의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 강성숙은 1930년 북한 함경도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중 이미 결혼한 언니를 두고 나머지 형제들과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피난와 가정을 꾸렸다. 조금 이르게 남편과 사별 후 홀로 키우던 자녀들이 장성하자, 197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이주한 형제들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 또 다른 10여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자녀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돌보며 살았다. 나는 할머니표 삼겹살 샌드위치 맛을 잊지 못한다.
- 장혜정(큐레이터)

작가 소개
김익현(b.1985)은 사진과 영상 매체를 통해 과거-현재라는 시간과 다양한 단위의 얽힘이 만드는 세계를 상상하고 관찰한다. 시청각 랩(2025, 서울), 경기도미술관(2020, 안산), 산수문화(2017, 서울), 공간 지금여기(2016, 서울)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국립현대미술관(2024, 과천), 웨일리아트(2024, 타이베이, 대만) 등에서 개최한 단체전과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2024, 창원), 2022 부산비엔날레(2022, 부산),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2016, 서울) 등 국제전에 참여했다.

임영주(b.1982)는 영상, 설치, 퍼포먼스, 출판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미신과 신념, 종교적 믿음이 형성되고 작동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스페이스 제로원(2026, 뉴욕, 미국), 페리지 갤러리(2024, 서울), Hall1(2021, 서울)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국립현대미술관(2025, 서울), 서울시립미술관(2025, 서울), 루드비히 미술관(2023, 코블렌츠, 독일), 아트선재센터(2021, 서울), 타이베이 컨템포러리 아트 센터(2019, 타이베이, 대만) 등에서 개최한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으며, 2025년 올해의 작가상 4인으로 선정되었다.

정서영(b.1964)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사물’의 위상과 관계에 주목하며, 조각의 범주를 확장하고 사물과 세계의 연결 방식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제시해왔다. 개러지 갤러리(2026, 도하, 카타르), 티나킴 갤러리(2024, 뉴욕, 미국), 서울시립미술관(2022, 서울)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제59회 카네기 인터내셔널(2026, 피츠버그, 미국),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2024, 창원), 제11회 아시아 퍼시픽 트리엔날레(2024, 브리스번, 호주), 기륭미술관(2024, 기륭, 대만) 등에서 국제적으로 소개되었다.

조은영(b.1985)은 한국과 미국을 기반으로, 언어, 물질, 기억이 서로에게 가하는 압력과 그 상호작용을 다룬다.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2024, 서울), 홀만 아트&미디어 센터(2023, 인클라인 빌리지, 미국), 선뷰 런쳔(2022, 브루클린, 미국)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루이스 홉킨스 언더우드 아트 센터(2023, 러벅, 미국), 퍼스오프 아티스트 콜렉티브(2022, 밀포드, 미국), 폭시 프로덕션(2022, 뉴욕, 미국) 등에서 개최한 단체전에 참여했다.

https://www.doosangallery.com/en/exhibitions/detail/237



This is (Not) Conceptual Art

 2026-06-19 ~ 2026-10-11

MMCA Seoul B1, Gallery 6. 7 / 1F Museum Madang

“Conceptual art” is generally understood as art that emphasizes the artist’s ideas or concepts over the outward appearance or material form of an artwork. In the mid-1960s, conceptual art reintroduced the element of language, which had largely been excluded from the opticality of modernist painting. It came to be recognized as a form of art that posed fundamental questions about the nature of “art” itself while encouraging linguistic thought and philosophical speculation.


This is (Not) Conceptual Art is an exhibition that explores the conceptual turn in Korean contemporary art, in which the focus of art shifted away from visually perceived objects toward language and thought. In Korea, conceptual art emerged within the context of experimental art in the late 1960s, while the 1970s and 1980s saw the development of intellectual practices that explored the essence and existence of art through linguistic and logical experiments. Around the 1990s, conceptual art or conceptualism was invoked as a methodology and attitude for rethinking reality through the simultaneous engagement of language, concepts, materiality, and form. This transformation coincided with the changing understanding of conceptual art, as its focus shifted beyond North America and western Europe toward a more “global conceptualism” operating within the social, political, and economic contexts of regions such as Latin America, Eastern Europe, and Asia. In this respect, the exhibition offers an opportunity to explore the contemporaneity of Korean conceptual art within a broader process of international diversification.


Indeed, a number of related terms surfaced within the currents of Korean contemporary art, including gaenyeom misul (conceptual art), gaenyeomjeok misul (conceptually oriented art), and gaenyeomjuui (conceptualism). As the title This is (Not) Conceptual Art suggests, the exhibition explores the possibility of interpreting conceptual art not as a single reductive category, but as a broader field encompassing multiple forms manifested across different works. In this context, the four sections of This is (Not) Conceptual Art—“Language, Logic, Performance,” “Objects and Language,” “Mapping and Measuring,” and “Manipulators of Signs”—interpret works of conceptual art not simply as a history of dematerialization, but as complex attempts to consider human beings and the world anew in relation to Korea’s historical contexts. Part of the significance of reexamining Korean conceptual art from today’s vantage point lies in its potential to help the viewers to perceive and contemplate the world differently while examining the essence of art within an era of overabundant capital, markets, and visuality.


  • Artist
    Ahn Kyuchul, Bahc Yiso, Choi Byungso, Chung Seoyoung, Cody Choi, Gimhongsok, Hong Myung-Seop, Inhwan Oh, Jo Kyoungsook, Joo Jaehwan, Kim Beom, Kim Kulim, Kim Sora, Kim Soungui, Kim Tchah-Sup, Kim Yong-ik, Kim Yongchul, Kim Yongmin, Kong Sunghun, Kwak Duckjun, Kyojun Lee, Lee Kun-Yong, Lee Seung-taek, Park Hyunki, Sung Neung Kyung, U Sunok, Yoon Dongchun, Yoon Jin Sup
  • Numbers of artworks
    Approximately 140 works and archival materials
    https://www.mmca.go.kr/eng/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Flag=1

aitho, The burnt face, 2025

 Clay, glaze, oil paint




River Text 강의 언어


<물결 서사>

함께 그리고 만들고 쓰기

2026. 5. 2- 5. 30

Lokaal 01 Antwerpen 2006

Lokaal 01 Antwerpen 2006 
Overzicht van de werkperiodes bij Lokaal 01 Antwerpen in 2006. 
Met : Gregory S. Maass/Mrs. Nayoungim - Tamara Van San - Sabrina Basten - Kim Vandaele - Thomas Olrechts/Jean-Philippe Convert - Andrew Parker - Michiel Alberts/Wouter Messchendorp - Re-enactment. Tekstbijdrage: Edith Doove, Sofie Van Loo, Jan Van Woensel, Tom Iriks.

Never mind island


2011_0917 ▶ 2011_1030 

임시호_radical prescription展_[413]_2011

1부 / 2011_0917 ▶ 2011_10152부 / 2011_1016 ▶ 2011_1030

기획 / Artist run space 413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4가 31-48번지41-3.com

"나는 수영을 못하고 물을 무서워한다. 도시에서 평생을 살아온 나는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자연은 좋지만 벌레가 가득한 자연은 싫다. 여행을 간다면 더운물도 나올 수 있는 시설이 있는 곳이면 좋겠다. 하지만 Never mind은 말 그대로 도시인의 바램 따위에도 never mind였다. 

● ... 카누에 누워 조용히 물결치는 파도를 바라본다. '카누가 뒤집히기라도 한다면..' 이란 생각에 온 몸이 얼어붙어 꼼작하지 못한다. 이런 내 몸을 휘감고 있는 나의 긴장과 달리 물결은 하염없이 햇빛에 반짝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서서히 극도의 긴장감과 공포, 극도의 평화로움 사이에 어쩔 줄 몰라하는 나의 몸이 존재함을 느낀다." (작가노트) 

● 기획전시 'Never mind island'는 임시호 작가가 어느 섬에서의 기억을 413 공간 안에 끝을 가늠하기 힘든 크기의 캔버스 천을 설치하고서 한 달여 동안 한 가지 표현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과 그를 통한 결과물을 관객과 공유하는 전시이다. 

● Never mind는 어느 작은 섬 안의 마을 이름인데, 그녀는 이 마을의 이름을 따 'Never mind'란 섬을 탄생시켰다. 과거 그녀가 한시적으로 체류한 섬은 정글을 가로 질러야 ATM기계를 찾을 수 있고 화장실에서는 뱀이 튀어 나오는 문명과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곳이었다. 이 곳에서 그녀는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보다는 두려움을, 치유보다는 거리감을 먼저 느꼈다. 그녀는 이를 문명사회 안에서 살면서 잊혀지고 퇴화된 어떤 감각들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퇴화된 감각이 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자연의 경이로움과 두려움사이에서 충만해지는 감각, 예상치 못한 또 다른 감각들을 발견하였다. 이 전시에서 그녀는 퇴화된 감각과 발달된 감각은 무엇이며, 이러한 감각들이 살아가는 데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그 감각들에 대한 기억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려 나간다. 

● 섬을 그려나가는 방법에 있어서 그녀는 일종의 실험을 한다. 이것은 섬을 그리는 일에서 확대되어 작가 스스로 그림을 그리며 고민하고 갈등했던 문제들에 대한 실험이 되기도 한다. 

● 임시호 작가는 어느 날 자신의 그림 그리기 방식이 여러 가지로 산재되어 있다는 걸 발견하였다. 작가는 자신의 다양한 직업, 작업 공간, 환경에 따라 변화해왔던 그림 그리는 방식에서 탈피하고자 한 가지 방식을 정하여 그리기로 결심하였지만, 그녀의 결심은 오히려 자유로웠던 그녀와 그림과의 영역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았다. 자유로움을 침해받지 않으면서도 상황에 맞추어 그려진 그림이 아닌 그녀에게 맞는 그림이 무엇인지 그 방법을 찾고 있던 중 그녀는 413과 만났다.

One canvas painting. 

● [413] 공간 안에서 그녀는 이 모든 것들을 펼쳐놓고 확인하고 질문할 수 있는 Never mind island라는 실험의 장을 펼친다. 설치된 하나의 천은 그림의 크기, 화면 안 조형성이 작가 스스로에게 주는 강박과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대한 테이다. 약 한달 여 동안 작가는 제약에서 벗어나 보고 마음껏 실험해 볼 수 있는 과정과 가능성의 장 속으로 들어간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흩어져 있던 그녀의 그림들에 대해 '하나의 방식을 정하겠다.' 라고 생각한 그 생각 자체에서 탈피한다. 그녀는 어떤 방식이 그녀의 자유로움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표현에 적절한 것인지를 의식이 아닌 무의식에게 질문하며 Never mind island를 그려간다. 무엇이 그녀를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 집중되고 희열을 가져다주는지 그녀와 관객들 모두가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 작가는 이렇게 그려진 'Never mind island'의 전체 화면 중 부분을 하나의 그림으로 선택할 것을 관객들에게 제안한다. 이 제안은 전시장에 설치된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관객들이 전체 중 부분을 찍는 것으로 이루어지며 사진은 전시장 한편에 설치된다. 같은 사건이라도 저마다 다르게 기억하듯이, 그녀의 기억이 보는 이의 시각에 의해 어떻게 남는지 그 과정까지도 알아보려는 것이다.

전시는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에서는 작가가 작업하는 과정 그 모습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전시 공간 입구에서는 작가의 작업하는 환경을 계속해서 상영한다. 이것은 작가와 관객사이 일종의 거리 둔 퍼포먼스와도 같다. 관객은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작업하는 모습을 전시장 밖 CCTV를 통해 볼 수 있다. 카메라는 작가가 작업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약속한 시간에만 작동되며 한정된 시야를 제공한다. 

● 2부에서는 작가가 그려낸 'Never mind island'를 전시로 공개한다. 그녀가 보낸 한 달 여 동안의 시간을 공개하고 그 결과물을 공유한다. 관객은 전시장에 놓인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전체 그림 중 일부를 선택하여 한 장의 사진을 찍어 남겨 달라는 그녀의 제안을 받는다. 남겨진 사진은 전시장 한편에 설치되며 또 다른 'Never mind island'로 구성된다. ■ 김꽃_임시호

■ 네오룩_www.NEOLOOK.com

김순기 작가 퐁피두 센터 X 어웨어 명예상 수상 Kim Soun Gui, lauréate du Prix AWARE 2026

 Soun Gui Kim, a Korean Artist in France: Art as a Form of Resistance — AWARE Archives of Women Artists, Research and Exhibitions

프랑스 AWARE 명예상 거머쥔 1946년생 예술가

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 김순기가 2026 AWARE Prize 명예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상은 프랑스 퐁피두 센터가 함께 수여하는 상으로, 2016년부터 여성 작가의 예술적 성취를 조명하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centrepompidou @awarewomenart

김순기는 설치, 비디오, 멀티미디어 아트, 퍼포먼스 등 장르를 넘나들며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작품에 담는 작가입니다. 1980년대부터 존 케이지, 백남준, 이라 슈나이더 등과 교류하며 동양철학과 과학을 예술과 접목하는 실험적인 시도를 해왔죠. 대표적인 시리즈 중 하나는 바늘구멍 카메라를 사용해 풍경과 사물을 담은 ‘바보 사진’ 연작! 느리고 어수룩한 작업 과정을 바보라고 표현하여 붙은 제목이라고 해요. 이번 수상은 한국과 프랑스, 미국, 독일을 오가며 작업했던 작가의 국제적 영향력이 인정받는 결과입니다.


에디터 제리

프랑스 AWARE 명예상 거머쥔 1946년생 예술가|예술을 산책하듯 가볍게 즐기는 아트 정보 큐레이션 서비스


Soun Gui Kim is a French artist, born in South Korea, who has lived in France since 1971. Born in 1946, a year after Japanese decolonisation, she attended a special primary school that valued extracurricular activities, founded by the UN on the rubble of a country devastated by the Korean War (1950-1953). Over the course of her studies, the young girl revealed her talent for painting and when her art teacher told her about Paris, “a city where the homeless and the painters live together”,1 she immediately saw herself as an artist working there. From then on, she began to train avidly, acquiring a knowledge of both artistic techniques and theory, and setting out to learn French before going to university. At the end of her master’s studie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she became keen to break out of the two-dimensional framework in order to open up the visual field and give more space to temporality in her art. She made the most of an opportunity to secure an international scholarship offered by the French Ministry of Culture. S. G. Kim’s rebellious spirit led her to find Paris too conventional, so in 1971 she decided to stay at the Centre Artistique des Rencontres Internationales (currently known as the Villa Arson) in Nice as a guest artist. She quickly caught the attention of her fellow artists and professors. Critic Jacques Lepage discovered her outdoor installation Situation Plastique I, noting the affinities between her work and the productions of the group Supports/Surfaces, to which he then introduced her. She started to spend time with members of the avant-garde movement, particularly Claude Viallat (born 1936), Vincent Bioulès (born 1938), Patrick Saytour (born 1935), Jean-Pierre Pincemin (1944-2005) and Ben Vautier (born 1935). J. Lepage’s house became, according to her, “the heart of the Niçois avant-garde”. Encouraged by Alain Hiéronimus, the director of the École Nationale d’Art Décoratif in Nice, she passed a teacher’s degree and started teaching after only three years living in France. As an artist and teacher, she developed close intellectual relationships with some of her peers, such as C. Viallat, Christian Jaccard (born 1939) and Toni Grand (1935-2005), and experimented with new techniques.

Soun Gui Kim, a Korean Artist in France: Art as a Form of Resistance - AWARE Artistes femmes / women artists

S. G. Kim’s work is mainly based on metaphysical thinking. A lover of philosophy, she studied Eastern classics in Korea, particularly the Taoist writings of Zhuangzi (c. fourth century BCE). The core concept of Taoism, non-action (wu wei) – that is, acting with natural spontaneity, free from any norm – later became a major theoretical focus in her art. Her pinhole works, such as Forêt I and II , now kept at the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 Centre Pompidou, and calligraphy works play on the collaboration between the contingencies of the actions of nature and those of the artist. According to Taoism, the natural realm is clouded by all that is artificial and therefore human (notions, ideas, language, etc.). S. G. Kim gave herself free rein to choose the mediums best adapted to her thinking, so as to break the codes that she felt were holding her back. This led her to exhibit in more experimental spaces, such as the J. & J. Donguy and Lara Vincy galleries in Paris.

Soun Gui Kim, a Korean Artist in France: Art as a Form of Resistance - AWARE Artistes femmes / women artists

Video quickly became her preferred medium, which prompts the question of her link, as a Korean-born artist, to her fellow countryman Nam June Paik (1932-2006), who is considered a pioneer of the technique. But while N. J. Paik’s original approach to the television set mainly dealt with the manipulation of pictures on screen and the transcription of sound into visuals, S. G. Kim’s works were instead the result of her obsessional quest for a liberating medium or, to be more precise, an “empty vessel woven by time and light”.2 Following several attempts with photography and film, she was encouraged by her peers in the Niçois avant-garde to try her hand at video art and became acquainted with members of the group Signe (1971-1974) in Monaco. She created her first video work in 1973, using a camera she borrowed from the group: participants in the piece were invited to make kites and fly them. The process was simultaneously filmed and screened thanks to a monitor set up on site in which the event was held. In this case, the artist, the public, their surroundings, nature and the resulting visual work were all equal. She named this type of series Situation plastique II and III. In 1977 S. G. Kim met John Cage during a festival at the Sainte-Baume monastery, then, the following year, N. J. Paik at a performance at the 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These encounters led to exchanges and collaborations between the three artists.3 As a teacher, S. G. Kim was convinced of the necessity to supply art schools with video equipment and to raise awareness of the then little-known medium among students. To this end, she persistently appealed to the French Ministry of Culture to implement a dedicated training course. After being awarded the first grant for this project, N. J. Paik invited her to New York, where she created the piece Bonjour Nam June Paik I (1982), a filmed conversation with the artist. She presented her fellow countryman’s work in France in the magazine Revue d’esthétique in 19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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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addition to these artists, S. G. Kim most often kept the company of thinkers like Jacques Derrida, Jérôme Sans, Yves Michaud, Marc Froment Meurice, Jean-Michel Rabaté and Jean-Luc Nancy, with whom she was in regular contact and who wrote about her work several times. In France her passion for philosophy led her to take up studies in semiology and aesthetics, which in turn led her to take an interest in the analogies between Zhuangzi’s Taoism and the philosophy of Ludwig Wittgenstein. Lectures and conversations also made up a large part of her activity. It was in fact during a round table at the Slought Foundation in Philadelphia in 2013, with Thierry de Duve and Jean-Michel Rabaté, that the artist and philosopher said that “one of the most important things about art is resistance”.5 However, she clarified that Taoist anarchism as a form of resistance is not meant to “negate otherness, but instead to listen to it and to make it happen, to finally be reborn in the thing; hence the absence of obstruction in interpretation”.6 Her mission as a creator was, therefore, in her eyes, to open up new paths.

Soun Gui Kim, a Korean Artist in France: Art as a Form of Resistance - AWARE Artistes femmes / women artists

S. G. Kim never adhered to feminist movements, in line with her refusal to be confined to any specific domain. This includes her gender identity, which becomes irrelevant in the context of Taoism, which encourages a merging of the self with the world. While some women chose to join forces to improve their visibility and out of solidarity, others, such as S. G. Kim, worried that this would lead to a potential ghettoisation or victimisation and chose instead to seek recognition beyond their gender. For instance, S. G. Kim cites the example of a period of Korean history based on the coexistence of matriarchy and patriarchy, which she says is still embedded in the minds of Korean people, whose ancestors prior to the Confucian doctrine of the Joseon dynasty (1392-1897) enthroned several sovereign queens between the seventh and ninth centuries, giving rise to a more egalitarian culture. Moreover, the belated birth of the Republic of Korea systematically granted women the right to vote and work. When asked during a recent interview why she does not associate with feminist artists, S. G. Kim replied that she is a humanist rather than a feminist, if not an anarchist rather than a humanist.7

Soun Gui Kim, a Korean Artist in France: Art as a Form of Resistance - AWARE Artistes femmes / women artists

The fact remains that S. G. Kim was indeed faced with gender-related obstacles. Despite Korea’s establishment of liberal democracy in 1948, the country still remains steeped in five hundred years of deeply Confucianist customs characterised by strict hierarchy and entrenched patriarchy. Few students move away from the traditional arts, and even fewer female students. When she decided to leave her country as a young woman, the artist faced strong opposition and physical violence from her family, who wanted her to marry after her studies. She also spoke of the difficulties she encountered in France: the persistent stereotypes associated with Asian women, the reluctance of dealers to work with a woman artist whose practice drew from philosophical theory, and the dearth of female teachers in art schools. S. G. Kim now admits that it took great strength of character as a woman to keep her independence without giving in to societal expectations.

Soun Gui Kim, a Korean Artist in France: Art as a Form of Resistance - AWARE Artistes femmes / women artists

It is easy to imagine how difficult it must have been for S. G. Kim to develop an artistic career as an Asian woman in a Western country. By proclaiming herself an anarchist, she not only refused to rely on any form of solidarity or sisterhood, but she also did not make compromises with her career. Nevertheless, France provided her with the opportunity for emancipation, shelter, and resistance. In fact, S. G. Kim was able to gain institutional support, and some of her works are now in high-profile collections, including the MNAM, the Maison Européenne de la Photographie and the FRAC Franche-Comté. Choosing to live in France and to work in the country as an artist was in itself an act of resistance for her, showing that her will is not to resist through the arts, but to prove that making art is, in and of itself, a form of resistance.8

Translated from French by Lucy Pons.


2026년 5월 12일, 재불 작가 김순기가 AWARE(Archives of Women Artists, Research and Exhibitions) 명예상을 수상했다. AWARE는 미술사학자이자 큐레이터인 카미유 모리노가 2014년에 여성 작가들의 가시성을 높이려는 취지로 설립한 연구 기반 비영리단체로, 그 공로와 중요성을 인정받아 올해 1월부터 퐁피두 센터의 공식 부서로 편입되었다.

어웨어 상은 매년 미드커리어 작가 한 명과 40년 이상의 커리어를 지닌 작가 한 명을 선정해 각각 '새로운 시선' 상(prix nouveau regard)과 명예상(prix d'honneur)을 수여한다. 수상자의 작품은 퐁피두 센터-국립현대미술관(Centre Pompidou-MNAM) 컬렉션에 소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