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의 源流를 지키는 사람들_ 27. 인간문화재 ‘춤꾼’ 이애주 서울대 명예교수

진짜 우리 춤은 보여주는 춤이 아니라 나를 들여다보고 자유롭게 하는 춤입니다.  그런 춤을 우리 후손은 물론이고 세계 사람들도 배우러 오라고 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제대로 교육하는 학교가 있어야 하죠, 바라건대 춤 대학 하나 만들어 정말 제대로 된 춤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숨 쉬는 것부터 회음부 하단전에서 올라오는 깊은 숨을 훈련시키고, 그게 몸을 일렁일렁 움직여 춤으로 이어지다는 걸 가르치는 겁니다.

우리의 전통 춤에는 갈래가 여럿 있다. 불교의식이나 무속의식의 장소에서 추는 주술적인 성격이 다분한 무속춤, 불교춤, 장례춤이 있고, 전문성을 띠지 않고 일반인들이 생활 속에서 여럿이 즐길 수 있는 축제적이며 놀이성이 강한 농악춤, 탈춤, 소리춤, 허튼춤, 모방춤 등의 大同놀이춤이 있다. 또 춤꾼들에 의해서 전문적으로 다듬어져 전승돼 춤 자체의 예능적 성격을 극대화 한 공연의 성격을 띠는 교방춤,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 등이 있다. 구분은 이렇다는 것이지만, 이들 춤들은 서로를 넘나든다.

예컨대 옛 선비들이 공부하다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추는 ‘선비춤’에 어떤 격식이나 기법이 없듯 우리 춤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생활과 삶의 몸짓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춤은 서양 춤처럼 단순한 표현양식이 아니다. 몸에서 저절로 배어 나오면서 몸짓의 구분으로 넘쳐나는 움직임이다. 이를테면 봄 버들가지에 물이 오르듯, 또는 이 골짜기와 저 골짜기에서 흐르던 샘물이 맞부딪쳐 굽이치듯 몸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자연스런 움직임인 것이다.
이애주(67)는 이런 우리 춤의 모든 것을 배우고 익혔다. 다섯 살 때부터 춤을 배우고 췄으니, 자그마치 한 甲, 그러니까 60년을 넘긴 춤 인생이다. 그는 한국 전통춤을 집대성한 한성준과, 그의 손녀이며 수제자인 한영숙(1989년 작고. 승무 인간무형문화재)으로 이어지는 승무의 嫡統을 이은 인간문화재(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다. 이애주는 특히 그의 인간문화재 타이틀에서 보듯 승무의 명인이다. 승무는 우리 춤의 기본이면서 그 안에 모든 것이 수렴돼 있다는 점에서 이애주 춤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애주는 또 살풀이춤(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의 전수자이기도 하다. 아마도 우리 춤에 관한 한 최고로 잘 배웠고 그만한 지위를 꿰차고 있는 춤꾼이요 명인이다.
그런 그의 우리 춤에 대한 정의는 간단명료하다. “삶의 몸짓이지요. 『魏志東夷傳』에 춤과 관련해 踏地低仰(땅을 밟고 하늘을 우러르다) 手足相應(서로 조화되게 손과 발을 놀린다)는 말이 나옵니다. 농경사회에서의 일 동작이 곧 춤인 것입니다. 몸에서 체득돼 생각과 정신으로 이어지는 연결선의 정점이 춤입니다.”

우리 춤과 서양 춤과의 대비도 명확하다. “우리 춤은 곡선적이면서도 온몸을 놀리는 몸과 마음, 영혼의 춤입니다. 서양 춤은 직선적이면서 개체 개념의 집합이라는 점에서 건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춤은 내면으로 계속 쌓아가면서 추니까 몸짓 면에서 양의 동서를 다 뛰어넘어 모든 것이 융합된 중심의 몸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僧舞의 嫡統 인간문화재, ‘시국춤꾼’으로도 명성 이 말 속에 우리 춤에 대한 그의 자부심이 배어있다. “김연아, 손연재가 잘 하는 것은 그들의 몸짓에 한민족 역사의 혼이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짧은 동작으로 끝내는 것을 김연아는 길게 늘이지 않습디까. 그건 단지 기교가 아니지요. 영혼의 움직임입니다. 나는 손연재가 체조하는 거 보다가 다른 나라 일등 선수가 하는 것 보면 심심해서 못 보겠습디다. 그들 것은 흐름이 뚝뚝 끊기는데 김연아, 손연재는 손 하나를 뻗더라도 좍 하는 연속적 부드러움이 있습니다. 강수진 같은 발레리나도 마찬가지지요. 긴 호흡으로 유려하게 선을 그리니 유럽 사람들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이지요.”
머스 커닝햄도 나온다. “머스 커닝햄을 서양 현대무용에서 굉장히 쳐주는데, 그 사람 공연을 미국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걷고, 어떻게 뛰고, 어떻게 돌고, 춤 제목이 그거예요. 무슨 내복 같은 걸 입고 무대에서 걷고 뛰고 그래요. 그때 머스 커닝햄이 우리 살풀이춤만 알았으면 저게 달랐을 텐데, 우리 승무를 알았으면 진짜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에 아깝다 싶었어요. 그러니까 우리 춤이 세계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애주는 글을 깨치기 전에 춤부터 깨친 사람이다. 서울 토박이인 이애주는 다섯 살 때 국립국악원 김보남 선생에게서 춤을 배운다. 승무, 춘앵무, 검무 등을 익힌다. 1965년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무용 전공으로 들어간다. 대학원을 거쳐 문리대 국문학과에 편입해 전통 민속춤에 대한 이론도 다진다. 1968년 당시 문화공보부 주최 신인예술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이던 한영숙 명인이 그를 눈여겨보고 제자로 삼았다. 열심히 배웠다. 그런 한편으로 그는 1982년 서울대 교수가 된다. 그리고 1996년 스승의 적통을 이어 인간문화재로 지정된다. 이런 과정이 아니더라도 이애주는 우리 춤에 깃든 정신세계와 역사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춤을 춘다. 의식 있는 춤꾼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그의 춤 인생에 변화를 주는 한 계기가 있었다. 1974년이다. 그 때까지 통용돼 써오던 무용이라는 말 대신 ‘춤’을, 그리고 발표회를 ‘판’으로 바꿔 부른 것이다. 그러니까 무용발표회를 처음으로 ‘춤판’으로 부르면서 그 자신의 것으로 달고 나온 것이다. 그 해 그가 벌인 ‘이애주 춤판’이 그것이다. 학계로부터 비난이 쏟아졌다. “그 당시에는 ‘이애주 무용발표회’라고 해야 했는데, 나는 도저히 그렇게 쓸 수가 없어 ‘이애주 춤판’이라고 했습니다. 왜냐. ‘무용’이란 말은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식민용어로서 그때부터 춤이, 몸짓이 본격적으로 왜곡되고 파괴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 식민용어로 바뀐 우리말을 제대로 회복하려는 사람을 두고 불온한 용어를 쓰는, 색깔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분류했고 국립극장 ‘블랙리스트’ 10명 안에도 포함됐지요.” 기성세력인 이른바 ‘무용계’의 반발은 거셌다. 상스럽고 천민적인 냄새가 난다는 등의 질타가 뒤따랐고, 그때부터 이애주를 운동권, 심지어는 좌익으로까지 몰았다. 그러나 이애주는 꿋꿋했다. 우리 춤을 제대로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옳게 찾아낸 결과라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한다. 오늘 무용이라는 개념과는 별개로 춤과 춤판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우리 춤에 관한 말로 통용되는 것은 이애주의 공로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 시기는 박정희 시대였다. 의식 있는 학생들 간에 군사독재와 유신독재에 관한 저항의식이 팽배해있던 때다. 이애주는 자신이 추는 춤으로 이 시대에 맞선다. 그에게 지금껏 따라붙는 별칭인 ‘민중춤꾼’ ‘시국춤꾼’으로서의 변신이 태동되던 시기다.
그는 1970년대 초 서울대 문리대에 다니던 채희완 등이 결성한 ‘탈춤반’을 지도한다. ‘탈춤반’ 지도를 계기로 문리대생들과의 교유가 넓어졌고 이들과 어울리면서 민족과 역사의식의 궤를 넓혀간다. 물론 이애주의 중심에는 춤이 있었다. 1987년 6월 서울대 아크로폴리스와 연세대 이한열 장례식장에서 춘 춤으로 이애주는 운동권 1세대 혹은 ‘민중춤꾼’으로서의 정점을 찍는다. 그때 이애주가 춘 춤은 그 시대 민주화를 위한 민중의 열망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그는 이후 조성만, 문송연, 이석규 등 당시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희생된 원혼들을 살풀이춤으로 달래면서 ‘시국춤꾼’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국립 서울대 교수라는 직위로서 참 부담스런 호칭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1987년 대선 때는 민중후보추대위원장을 맡아 백기완 후보 지지연설도 했으니 오죽했었을까. “당시 상황으로 감옥을 갔어도 여러 번 갔을 텐데 나를 둘러싸고 괜히 건드렸다가 무슨 일 터질지 모른다는 분위기였다. 나중에 동료교수로부터 ‘대학본부에서도 이애주를 건드리면 학생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여론에 밀려 물러섰다’는 말을 들었다. 안기부 같은 데서 협박은 말도 못하게 받았다. 집을 불태워 버리겠다는 것은 약과이고 차마 전할 수 없는 내용을 적은 편지, 전화를 계속 받았다. 아마 내가 정신이 약했으면 돌아버렸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우리 전통춤의 명인이면서 계승자임에도 ‘시국춤꾼’으로 불리고 있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 “시국 춤을 춘 상황, 그것도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전통춤을 쭉 추다가 어느 시기에 첨예한 역사적 진실과 만날 때 내가 나타날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것은 저항적이고 참여적인 사회춤, 현장춤이지요. 내가 운동권이 되고 그런 춤을 춘 것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춤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니 자연, 춤이 시키는 그대로 한 것일 뿐입니다. 아주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15년만의 공연 ‘天命’서 완판승무, “역시 이애주” 절찬
우리 춤이 삶의 몸짓이고 영혼을 달래는 몸짓이기에, 의식이 함께 하는 춤의 정신에 따라 나선 것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우리 춤에 안기기에는 부족한 것이었을까. 이애주는 1988년을 끝으로 현장춤에서 멀어진다. 이 과정에서 그가 주도한 진보예술성향의 민예총과도 결별한다. 대신 침잠하며 우리 춤을 더 파고들어 공부한다. 한성준-한영숙류 승무를 익혀 1996년 인간문화재가 된다. 그리고 우리 춤의 뿌리를 찾아 고조선 강역과 바이칼호수 주변을 섭렵한다. 고구려 벽화에서 우리 춤의 원형을 발견하고 뿌리를 캐 가다 詠歌舞蹈를 접한다. 이애주 춤을 한 단계 높여주는 계기였다. 살풀이, 승무, 태평무 등 전통춤의 형식과 기교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던 그가 기교와 형식의 한계를 뛰어넘은 자연에 가까운 춤의 세계를 형성한 게 그 시기였다. 이애주는 영가무도를 ‘오행소리춤’이라고 말한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아무 생각 없이, 무념무상으로 그러면 비장에서 저절로 소리가 울려 나와요. 음- 음- 이렇게. 우리 몸이 물속에 들어가 있을 때 내는 소리지요. 태아가 양수 안에 있을 때 소리라고도 할 수 있지요. 그 다음은 아- 아- 이것은 폐장에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어, 이, 우 소리가 나오는데 각각 간과 심, 신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길게 숨을 쉬면서 느릿하게 이 소리들을 내면 영이고, 그것이 빨라지면 가, 그러니까 노래가 된다. 그러다가 무아의 경지에 빠져 흥을 느끼면 스스로 춤을 추고 뛰게 된다(舞蹈)”는 것이다. 이애주가 올해 벽두 ‘天命’이란 타이틀로 상서로운 춤판을 서울 한복판에서 펼친 것은 그간 갈고닦아 기예와 의미를 넓힌 우리 춤에 대한 소산이다.
15년 만에 개인공연을 하면서 ‘天命’으로 화두를 삼은 것은 인간의 本然之性이 천명이고 본래 여여하게 있는 근원적인 진리라는 점에서 이애주와 그의 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계기로 받아들여졌다. 이애주는 이 공연에서 완판승무를 선보여 “역시 이애주”라는 절찬을 받았다. 그는 추기 난해한 이 완판승무를 고집스레 추워왔었다. “승무가 우리 춤의 모든 춤사위가 융합돼 있는 전통춤의 백미로, 우리 삶 속의 모든 것이 응축된 춤이라는 소신의 실현이지요.” 공연 전에 이애주는 “완판 승무는 50분 정도 걸린다. 그 50분 안에 우주만물의 원칙을 보여줘야 한다. 하나도 덜어내지 않는 승무로 이념과 시대의 바람에도 불변하는 한국 춤의 뼈대를 세워 보이겠다”고 말했는데, 그 약속을 지켰다.
이애주의 이런 작업은 언뜻 보기에 그가 우리 전통에만 머물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좀 파격적이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 혹은 전통에 현대적인 것을 가미한 것쯤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애주는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우리 전통에는 현대적인 그런 것까지 포용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즉흥적으로 이렇게 해보니 양의 동서나 시공을 초월해 하나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애주의 춤 세계가 그 기교와 형식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고 있는 것으로 들렸다. 궁극적으로 그의 몸짓 하나하나는 우리 춤 원형의 복원과 창조인 동시에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하는 몸짓이며, 나아가 인간의 삶의 몸짓과 그 본질을 춤으로 형상화해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애주는 2012년 교수직을 정년으로 끝내고 명예교수로 있다. 지금 그는 경기도 과천 관악산 기슭에 산다. 인간문화재니까 전수의 의무가 주어진다. 그의 거처가 전수소 역할도 한다. 그는 여기서 먹고 자며 전수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1월 ‘천명’ 공연을 한 이래로 몇몇 의미 있는 공연을 가졌다. 그 중 하나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 여성 비디오 아티스트 7인의 작품전 개막식에 초대받아 춤을 춘 것이다. 이 작품전에 초대된 한국 작가는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김순기로, 이애주의 친구다. 이애주는 오프닝에서 김순기와 ‘침묵의 소리를 들어라’ 퍼포먼스를 펼쳤다. 음악이 아니라 바람 소리, 주위의 자동차 소리, 관람객의 발자국과 대화 소리가 섞여 크지 않게 들리는 여러 소리들 속에 이애주는 춤을 췄다. 살풀이다. 마침 그때가 세월호 참사로 나라가 비탄에 잠겨있던 시기라 진혼의 의미로 그 춤을 춘 것이다. 이애주는 뭔가 웅얼대고 있었다. 나중에 물었더니 『천부경』이라고 했다. 이애주의 이 춤은 미술관 전시마당 곁 복도에 비디오로 촬영돼 현재도 돌아가고 있다. 이애주와 김순기는 수십 년간을 이어오는 친구사이지만 늘 예술을 통해 전통과 현대를 잇는 작업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였던 존 케이지도 가세한 작품도 있다. 김순기가 4월 19일부터 서울 선재아트센터에서 갖고 있는 개인전에도 이애주가 나온다. 김순기가 영가무도를 하고 있는 이애주의 모습을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이용해 무작위로 편집한 디지털 영상과 합성한 작품이다. 작품 이름이 ‘애-주-애-주(AIE-JOU-AIE-JOU)’다.

60대 후반에 들어선 이애주가 이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우리 춤을 내가 어려서부터 해온 만큼 제대로 정리를 해 잘 맥을 이어 나보다 나은 후학들이 나왔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대로 교육하는 학교가 있어야 하는데 그 게 없어 안타깝습니다. 바라건대 춤 대학 하나 만들어 정말 제대로 된 춤을 가르치고 싶지요. 숨 쉬는 것부터 회음부 하단전에서 올라오는 깊은 숨을 훈련시키고 그게 몸을 일렁일렁 움직여 춤으로 이어진다는 걸 가르치는 거지요. 진짜 우리 춤은 보여주는 춤이 아니라 나를 들여다보고 자유롭게 하는 춤입니다. 그런 춤을 우리 후손은 물론이고 세계 사람들도 배우러 오라고 하고 싶지요.” 
교수신문 김영철 편집위원
http://m.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8988
May 2014
Seoul

올해의 작가상 2019


김아영
이주요박혜수홍영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9-10-12 ~ 2020-03-01

이주요: 유예와 지속, 그리고 창작을 위한 어떤 곳
이주요(1971~)는 대표작 <나이트 스튜디오>, , 등의 작업을 통해 가변적이고, 임시적인 그리고 견고하지 않은 일상 재료들의 심리적, 물리적 조합들로 사적인 경계와 공적인 경계가 교차되는 지점에서 사회와 그 주변부에 존재하는 것들에 가치를 담는 작업을 해왔다. 작가는 국내외를 오가며 전시뿐만 아니라, 공연, 출판 등 폭 넓은 행보를 보이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이주요는 이번 전시에서 향후 작가가 실제로 구현하고자 하는 창고 시스템에 대한 제안이자, 하나의 프로토타입(prototype)이 되는 신작 를 선보인다. 전시장은 크게 작품창고, 랩(Lab), 그리고 팀 디포(Team depot)로 불리는 컨텐츠 연구소로 구성된다. 이곳에는 이주요의 작품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이 보관되는데 이것은 전시기간 동안 전시장에 상주하는 참여자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되고 기록된다. 동시에 현장에서 생성된 컨텐츠를 온라인으로 송출할 수 있는 플랫폼이 운영되면서 살아있는 커뮤니케이션 허브(hub)가 구축된다. 이로써 전시장은 작품보관 창고이자 다양한 창작이 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공간으로 거듭난다. 비평가 찰스 에셔가 이주요의 작업에 대해 “미술적 시스템에 전적으로 의지 않고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짓는다”1 라고 표현한 바 있는 것처럼 작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고안한 이 실험적 시스템은 ‘예술가에 의해 창작된 작품의 소멸을 유예시키고, 예술의 공유를 위한 방식’을 찾아가는 대안적인 제안이다.
http://koreaartistprize.org/project/2019/

Nov. 2019
Seoul

Was ist Das?



Photos by Cho Yonghae
June 2019
4A Centre for Contemporary Asian Art, Sydney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컨템포러리 아트 저널
CONTEMPORARY ART JOURNAL 2013년 겨울 / 16호 Winter 2013 Vol.16
발행인_김경희 || 편집인_심상용 || 편집장_정형탁 || 잡지(계간) || 210×287mm, 100쪽 || 2013년 12월 31일 발행 || ISSN_2092-8610 || 10,000원
컨템포러리아트 저널 16호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특집으로 다룬다. 이번 서울관 개관전은 현대미술관학이 처한 상황과 그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 목차

Editorial South Korea의 디렉터들_정형탁People : 강선학 작가는 저항의 비합리성으로 세계와 대면하는 자_정형탁Special Feature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전으로 읽는 현대미술관학의 표류기_심상용작동 불능의 전시, 미술관, 시대의 정신_현지연인터뷰 : 임옥상 작가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전 소회_민병직왜곡된 도시 근대화의 새로운 퍼즐 맞추기_이상헌미술관을 따져 묻기_권범철단상들_김장언, 김진주, 채은영, 안소현, 이선영, 박재용, 류성현, 조주현, 성원선
Artist
하스와 한-벌거숭이 달동네에 색채의 옷을 입히다_이태호태이-유랑하는 침대, 전이하는 의미, 생성하는 기억의 성좌_김영옥
Review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줘 : 전도와 트랜스의 21세기 여성주의 예술_조혜영애니미즘, 긍정의 공동체_임국화불편한 풍경의 귀환_이보나말하지 않고 말하기_정형탁기억의 장소_김혜경들숨과 날숨_김혜경누구의 영자씨_이빛나속도의 법칙_이빛나과거의 기억을 위한 현재의 기록_김미정
Series92 동아시아의 현대미술은 어디로 가는가? 02-니폰 팝의 성황 뒤에서 울려퍼지는 플라자 예술Plaza Art의 비가悲歌_심상용

성곡 내일의 작가들 1998-2007 '33 Awardees'

2008_0411 ▶︎ 0525
김태헌_김남진_김지현_강운_이상희_김용윤_김상숙윤동천_유재흥_조은영_김형기_김근태_신영옥_김성남이정임_전준호_김건주_박기복_신미경_임만혁_윤정희유국일_김오안_박도철_정혜련_윤유진_배정완_황은정
성곡미술관_SUNGKOK ART MUSEUM, Seoulwww.sungkokmuseum.com
한국 근대화의 주역이신 故 성곡 선생은 인재 양성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실천 정신을 가지셨다. 특히 인재 양성이 나라 발전의 밑거름임을 강조하신 선생의 뜻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창립된 성곡미술관은 1998년 이래 지금까지 한국의 젊은 작가들을 위한 특별 프로젝트「성곡 내일의 작가들」을 이어오고 있다. 그래서 본 전시는 내일을 향해 열린 이상과 전통의 메아리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미술관의 사회적 역할은 사회적 변화를 감지하고 예측하는 지진계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문화적 쓰나미를 예측하고 대비하게 할 수도 있고, 폭발 직전의 사회 문화적 욕구를 분출하는 해방구의 역할을 담당할 수도 있다. 21세기는 문화세기라고 한다. 다시 말해 문화는 단순한 유흥이나 소일거리를 넘어서서 정치나 경제 이상의 질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역동적인 분야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조용한 선구자이며 첨병인 미술관들이 한 도시와 국가의 대변인으로서 우후죽순처럼 부상하여 자신의 명성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서로 경쟁을 하고 있다. 성곡미술관은 이러한 시대와 국가적 요구에 부응하여 예술가들과 대중들이 교류하고 창출하는 특별한 장이 되고자 한다.
예술가들은 작품 속에 자신의 혼을 불어 넣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혼은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에 의해 깨어나기 전까지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 관객에 의해 마술에서 풀리는 순간 예술가의 혼이나 상상력은 자신의 비밀을 말해주고, 춤추고 노래하며 사랑과 삶의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혼이 들어간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맞바꾼 특이한 순교자들이다. 예술가의 혼이 사로잡힌 그 자리에서 그것을 해방시키는 것은 순전히 관객의 몫이다. 관객은 예술가의 작업이 끝난 그 순간부터 그 뒤를 잇는 또 다른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훌륭한 예술가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뿐만 아니라 관객의 열정과 후원, 아울러 제도적 뒷받침도 필수적이다. 예술가란 사회적 제도의 산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사회적 위치는 중요하다. 저무는 태양처럼 구시대의 주류였지만 이제는 역사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예술가, 지금 한창 중천에 떠 있는 태양처럼 패권을 휘두르는 예술가,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하지만 아직은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예술가,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고 산화해버리는 불운한 예술가 등등 예술가가 제도 속에서 차지할 수 있는 위치는 다양하고 난해하기까지 하다.
성곡미술관은 항상 미래의 훌륭한 예술가로서 그 가능성이 반짝이는 젊은 예술가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려고 한다. 미술관이란 예술제도의 구체적인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물론 1998년 이래 2007년 까지 모두 33인의 성곡 내일의 작가들은 이미 한국의 중견으로 그리고 세계의 작가로 성장해 있다. 그 동안 성곡미술관과 함께 해 주신 작가들과 관객들, 특히 이번 전시에 참여해 주신 작가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성곡미술관https://neolook.com/archives/20080412e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展>
(서울=연합뉴스) 경수현 기자 
성곡미술관은 1998년부터 '내일의 작가'라는 이름으로 신진 작가들을 뽑아 지원해왔다.
역대 '내일의 작가'는 김태헌(43), 김남진(49), 김지현(40), 김용윤(58), 김상숙(54), 윤동천(51), 조은영(38), 김형기(48), 신영옥(59), 김성남(39), 이정임(37), 전준호(39), 박기복(44), 신미경(41), 임만혁(40), 유국일(43), 김오안(34), 윤유진(34), 배정완(34), 황은정(37) 등 33명이다.
성곡미술관은 33명중 개인 사정으로 불참한 강진모(52), 이용백(42), 우징(38), 정영진(34), 이형구(39) 등 5명을 뺀 28명의 최근 작품들로 11일부터 5월 25일까지 본관에서 '성곡 내일의 작가들 33인'전을 연다.

Stefan Ettlinger wikipedia page

Stefan Ettlinger, Atlantik, 2006, 200 cm x 320 cm, oil and egg tempera on canvas

Biography

Stefan Ettlinger studied from 1980 to 1988 at the Kunstakademie Düsseldorf at Alfonso Hüppi. He finished the Academy time in 1985 as a master student. As a result, he created his first films. He also staged performances at this time, composed music and was among others Member of AGZ (Anarchist padded cell). Other members of the (APC) are Thorsten Ebeling, Heinz Hausmann, Bertram Jesdinsky, Otto Müller, Ulrich Sappok.
In 2008 he was appointed Visiting Professor of Painting at the College Of Fine Art from Kyung -Hee University in Seoul, Korea. In the winter semester 2010/2011, he took a temporary professorship (Free graphic design and painting, Class Alexander Roob) at the State Academy of Fine Arts in Stuttgart, Germany. In 2012, he participated in a two-month stay in Chongqing, China in the context of an artist's exchange program of the city of Düsseldorf. In 2013 he traveled again for several months to Chengdu (exchange program DCKD Düsseldorf) and Chongqing (China), to work artistically. There arose a variety of drawings on paper and hardboard.

Work

Since the 1980s, Stefan Etllinger painted many pictures with egg tempera. They show mostly sketchy, figurative or representational events. The image space is perceived as a dynamic whole in which can be several events from different time periods combined with each other on a surface. In the representation they act interlocking and overlapping. His templates are mostly film stills, photographs and self-made sketches. This he puts together a collage and edited the picturesque divergent perspectives and compares them with each other. The action levels are thereby horizontally or vertically separated from each other, but partly also provided in a common landscape context.

The scene -like moments can not decrypt the content. They remain open to interpretation and must be assembled by the viewer itself to narrative elements. In his way of working video clips, sound collages, performances, theatrical actions are included as well as his films. This reflects, inter alia, to including his experiences contradict with the Düsseldorf artist group Anarchist padded cell.

제2회 제주비엔날레 사전행사

두 번째  제주비엔날레  주제는  제주 여신  '할망'

내년 5월에 개최될 두 번째 제주비엔날레의 주제는 제주 여신 ‘할망’이 될 전망이다.
제주도립미술관(관장 최정주)은 내년 5∼8월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 등 도 일원에서 대형미술제인 제2회 제주비엔날레를 선뵈는 가운데 오는 21, 22일 사전 행사로 그 윤곽을 드러낸다.
‘할망은 너무 크고 너무 많고 너무 세다’를 가주제로 준비 중인 제2회 제주비엔날레에는 국내‧외 작가 50여 명(팀)이 참여해 할망을 파생시킨 다양한 소재를 활용‧연계한 작품으로 제주 중심 할망 콘텐츠의 세계적 확장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번 축제의 주요 특징으로 ▲국내 참여 작가 확대 ▲제주 여신 콘텐츠의 세계적 확장 시도 ▲작가별 신작 제작과정 교육‧영상화로 공유 ▲제주다움 살린 전시공간 활용 등이 있다.
이에 앞서 사전행사로 오는 21일 오후 1시 제주도립미술관에서는 ‘지역성과 동시대 미술현장’을 주제로 콜로키움(전문가 회담)이 열린다. 이날 행사에서는 제주‧서울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제주 신화와 구전 이야기, 지역성, 동시대 예술 등에 대해 토의한다.

또 다음 날 오후 1시 미술관에서 제2회 제주비엔날레에 참여하는 구민자 퍼포먼스 작가가 제주 식물과 다양한 식재료로 우려낸 차‧다과를 도민과 즐기는 티 퍼포먼스 ‘토킹 티(Talking Tea)’를 선보인다.

김인선 제2회 제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은 “이번 비엔날레가 제주 문화 자산을 예술과 결합해 도내 문화예술 생태를 논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정주 관장은 “제주비엔날레에 대한 많은 우려와 염려를 걷어내고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의지를 표방한만큼 예술감독과 힘을 합해 2020제주비엔날레의 성공적 개최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출처 : 제주일보(http://www.jejuilbo.net)


제주도립미술관, 제주비엔날레 사전행사 21~22일 개최

제주도립미술관(관장 최정주)은 내년 5월 개최되는 제2회 2020 제주비엔날레를 앞두고, 오는 21일부터 22일까지 2일간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사전행사를 개최한다. 
오는 21일 진행되는 콜로키움 '어루만지는 시간들:지역성과 동시대 미술현장'은 제주와 서울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계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제주의 신화, 구전된 이야기와 역사, 지역성과 동시대 예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오는 22일에는 이번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구민자 작가가 직접 '티 퍼포먼스: 토킹-티'를 통해 제주의 식물과 다양한 식재료로 우려낸 차를 제주도민과 함께 즐기는 자리가 마련될 예정이다.

2020 제주비엔날레의 주제는 '할망은 너무 크고 너무 많고 너무 세다(가주제)'이며, 생명과 포용을 상징하는 '할망'이라는 창조자이자 예술가를 통해 세계적인 콘텐츠로의 확장 가능성을 살핀다. 무한한 이야기와 가능성을 품고 있는 제주비엔날레는 여성, 지역성, 구전된 이야기를 통해 여성 작가와 제주 작가를 포함한 국내 작가의 참여 비율을 높임으로써 기존의 비엔날레와 차별성을 가진다. 특히, 국내 작가들의 다양한 신작 제작을 통해 제주의 역사와 가치,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이밖에도 제주를 잘 아는 관람객부터 처음 방문한 관람객들까지 모두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과 워크숍, 영상 자료 및 작가들의 자료를 살펴볼 수 있는 키오스크 공간도 제공된다. 
최정주 제주도립미술관장은 "이번 사전행사는 2020 제주비엔날레 출범의 사실상의 신호탄이므로 제주도민과 미술계 관계자, 관람객들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바란다"고 밝혔다. 

출처 : 헤드라인제주(http://www.headlinejeju.co.kr)
2019.11.18

In the Food for Love_Gu Minja Label Design drafts

Finger in Every Pie by Kim Kim Gallery





Oct. 2019
Seojong

In the Food for Love_Gu Minja 레시피 북 Recipe Book

언리미티드 에디션11 
북서울 시립미술관 2층  Booth: H4

루시와 라이후엉의 손글씨.
1년전 루시와 라이후엉을 만나 5 가지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 음식을 배웠는데, 당시 두 사람이 쓴 수기 레시피로 요리책을 만들었습니다. 두 사람의 손글씨체와 크기를 바탕으로 한 책이라서 모양이 독특합니다.
사진의 그릇은, 1년전 두 사람에게 배운 요리를 구민자가 요리해 나눠 먹는 오픈 키친을 했는데, 그 날을 위해 두사람의  손글씨체를 그릇에 전사해서만들었습니다. 이 식기를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판매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p/B4810BIJPKQ/
Photos and text by Minja Gu

In the Food for Love_Gu Minja 른당 조리법 How to cook Rendang

 
언리미티드 에디션 11 
북서울 미술관 2층 Booth H 4 

인도네시아에서 온 루시에게 1년전 처음 배운 요리는 ‘른당’ 입니다. 
당시 루시가 쓴 레시피로 작은 요리책을 만들어 언리미티드 에디션11에 나왔습니다.







요리책에 나오는 식재료도 판매합니다.  그리고 ‘른당’맛 ‘인도미’도 준비했습니다. ‘인도미’는 인도푸드라는 인도네시아의 유명 식품회사 제품인데, 인스턴트 라면의 대명사라고 합니다. 전설적인 미 고랭 (볶음국수) 시리즈들 중 른당 맛은 제법 제맛이 납니다. 소고기와 특유의 양념- 매콤하고 약간의 레몬그라스 향(시큼하지 않은 정도)입니다. 라면 스프는 네 종류가 들어있는데, 짜파게티 류를 조리하듯 하면 됩니다.
Photos and text by Minja Gu
https://www.instagram.com/p/B48r926pnrb/
Nov. 2019
Seoul

In the Food for Love_Gu Minja @ UE11


루시 사비트리, 오엠 라이후엉에게 배워 구민자가 요리한 블라부한 라투와 껀달 음식, 그 음식을 위한 식기





루시 사비트리는 인도네시아 블라부한 라투, 오엠 라이후엉은 캄보디아 껀달에서 경기도 양평으로 결혼 이주를 했다. 1년 전 구민자는 이들에게서 5가지 요리를 배웠는데, 가도가도, 른당, 뇨암 땅 혼, 꺼꼬, 고렝 템페 등 한국에서는 자주 못 먹는 그리운 고향 음식이다.
작가는 이들과 대화를 통해, 결혼 이주의 여정과 모국에서의 경험과 문화도 추적하였고, 그 후, 오픈 키친 형식으로 양평 주말 시장인 문호 리버 마켓과 서울 갤러리 팩토리에서 이 음식들을 조리해 방문객들과 나누었다. 이번 언리미티드 에디션에는 당시 그들이 손으로 적어준 조리법을 새겨 사용한 식기와 레시피북을 선보인다.
Nov. 2019
Seoul
Photos by Minja Gu & via instagram

In the Food for Love_Gu Minja Booth Design

Oct. 2019
Seoul



Nov. 2019
Ubud


Nov. 2019
Yogyakar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