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MOS LEM

Wir feiern den 100. Geburtstag von Stanisław Lem (1921–2006), dem Großmeister der Zukunftsromane mit einer Auswahl von Werken und Texten aus dem Open Call zum »Kosmos Lem«.

Zu sehen sind 22 Arbeiten, die Lems Literatur und Philosophie in eine Welt geheimnisvoller Bilder und Texte übertragen und den Geist seiner Geschichten einfangen. Seine Gedankengänge sowie die thematischen Inhalte des Mosaiks von Fritz Eisel werden aufgegriffen und künstlerisch reflektiert. So wird eine »Neue Welt« erschaffen, die der uns Umgebenden erstaunlich ähnlich ist.

Lasst Euch in diese »Neue Welt« am Freitag den 10. September 2021 um 17 Uhr entführen: In der Dortustraße am Mosaik mit Musik von Fluke,  Cello & Electronica.

Mit Abbildungen der Werke und Texten von:
Cristian Prieto Ávila (Bogotá, COL), Maxim Brandt (Berlin), Gordon Endt (Leipzig), Robert Estermann (Berlin), Rudi Fischer (Stahnsdorf), Stephan Groß (Berlin), Hiroko Kameda (Hamburg), Ralf Kosmo (Köln), Dawid Królicki (Kraków, PL), Hélène Lindqvist (Augsburg), Dora Lionstone (Amsterdam, NL), Ronny Lischinski (Berlin), Susanne Neuffer (Hamburg), Joanna Oleniuk (Legionowo, PL), Kathlen Pieritz (Potsdam), Angela Regius (Frankfurt am Main), Marike Schreiber (Wesenberg), Luise Schröder (Potsdam), Ulrich Schürhaus (Thuine), Birgitta Volz (Nürnberg), Sadie Weis (Berlin), Mario Wurmitzer (Wien, AT)

Ein Projekt des FÜR e.V.. In Kooperation mit dem Polnischen Institut in Berlin. Realisiert mit freundlicher Unterstützung des MWFK Brandenburg und der Landeshauptstadt Potsdam.

https://rz-potsdam.de/cms/event/kosmos-lem-ausstellungseroeffnung/

긋닛: 뉴 월드 커밍

 


서울국제도서전 주제전시

〈긋닛: 뉴 월드 커밍〉은 지난 70여 년간 끊어지고 또 이어진 서울국제도서전 역사를 최초로 돌아보는 아카이브 전시입니다. 서울국제도서전의 역사는 국내에서 유례없이 긴 역사를 가진 복합 문화 이벤트에 대한 기록이자 ʹ우리에게 책이란 무엇이었는가ʹ라는 질문입니다. 도서전의 여정에 담긴 저자, 독자, 책을 둘러싼 시공간, 그리고 출판문화와 지식 생산의 행위를 넘나드는 개인과 집단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담았습니다.

자료연구: 이상길 채웅준 / 전시기획: 이상길 현시원 / 그래픽디자인: 김성구

일시: 2021년 9월 8일 ~ 9월 12일 / 장소: 에스팩토리 A동 2층

https://sibf.or.kr/2021/exhibition/theme/


https://www.instagram.com/p/CThonKNJ5n_PZnxPe_Sromw4tDbDD_uEpxRaMM0/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 2020 @ 13th DMZ international documentary film festival


아버지의 물방울 그림···깊이를 숨긴 매혹적인 작품
다큐멘터리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DMZ영화제서 국내 첫 공개
둘째 아들 김오안 공동연출 겸 음악
"아버지는 달마대사처럼 평생 수행"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3&oid=025&aid=0003133443&fbclid=IwAR25s2rtO23lqMkgJuZI9Yfp_h3ggiA7Wg3POsCA1op1xLd-a2VSCVkHo7k
이은주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2021.09.08

지난 1월 별세한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1929~2021)을 다룬 다큐멘터리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가 9일 메가박스 백석에서 개막하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9월 12·14일 상영된다. 국내 첫 공개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프랑스·한국 공동제작 다큐멘터리로 지난 5월 세계 3대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캐나다 토론토의 핫독스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선보인 이래 지금까지 유럽 몇몇 영화제에서 소개됐다. 지난 6월 폴란드 크라코우 영화제에서는 예술성이 높은 영화에 주는 실버 혼(Silver Horn)상을 수상했다.
연출을 맡은 사람은 김오안(47)과 브리지트 부이요(65) 감독. 프랑스 국립예술대학(에콜 드 보자르)와 파리국립음악원을 졸업하고 현재 파리에서 사진작가와 영화감독이자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 감독은 김창열 화백의 둘째 아들이다.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연출 뿐 아니라 음악과 내레이션까지 맡은 이 다큐멘터리가 그의 첫 장편 영화가 됐다.
영화는 맑고 투명한 물방울 그리기에 집착한 아버지의 그림을 쏙 빼닮았다. 시적인 영상과 음악, 아버지와의 대화를 공들여 섬세한 작품으로 빚어냈다. 영화엔 1929년 평안도 맹산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고, 뉴욕을 거쳐 프랑스에 정착해 침묵에 들러싸여 산 화가의 뒷모습이 담겼다.
영화는 중년이 된 아들이 수수께끼처럼 비밀에 싸인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떠난 여정의 기록인 동시에 '물방울 그림'의 기원을 파고들어 간 영상 보고서다. 내레이션에서 "아버지를 다 알 것 같으면서도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빈틈이 있었다"고 한 김 감독은 6일 본지와의 영상 인터뷰에서 "우물 바닥으로 내려가듯이 아버지 내면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현재 프랑스에 머무르고 있다.

Q : 영화를 구상한 동기는.
A : "아버지는 점점 연로해지고 계셨고, 아버지와 저는 각각 서울과 파리에 살고 있었다. 이 작업으로 아버지와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니 그렇게 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영화를 통해 내가 아버지에게 묻고 싶었던 모든 질문을 다 할 수 있었다."

Q : 내레이션에서 "자라면서 가장 힘든 것은 아버지의 침묵이었다"고 했다.
A : "저는 아버지가 말이 없으셔서 항상 사람들로부터 오해받고 있다고 느꼈다. 특히 침묵은 많은 사람에게 그 속을 짐작할 수 없게 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침묵을 불편해한다. 이 영화로 아버지의 침묵 아래 이야기를 끌어내고 싶었다."

Q : 촬영하며 아버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됐나.
A : "물론이다. 묻고 싶었던 것을 모두 물었고, 아버지 역시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해에는 많은 얘기를 들려주셨다. 이 작업을 안 했다면 정말 큰 후회를 했을 것 같다. 촬영하는 동안 저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는데 지금 보니 아버지가 저와 형을 낳았을 때 지금 저의 나이더라. 그 당시의 아버지와 동질감을 느끼며 아버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영화는 가까이 있는 가족이기에 볼 수 있는 김 화백의 모습을 드러내 준다. 그는 어린 아들들에게 9년 동안 벽을 마주하고 수행해 깨달음을 얻은 달마대사 얘기를 즐겨 들려줬고, 그림을 그릴 때가 아니면 직접 줄을 쳐 칸을 만든 공책에『도덕경(道德經)』을 필사했다. 아들의 눈에 선(禪)과 도교 사상에 심취한 아버지는 '작업실의 수도자' '화실 안의 연금술사'였다.

Q : 달마대사 이야기가 비중 있게 언급됐다.
A : "잠들지 않기 위해 자기의 눈꺼풀을 베어버린 달마대사의 광기 어린 집요함과 완고함이 아버지와 닮았다. 아버지 그림에서 물방울을 지우고 나면 그냥 빈 캔버스가 나오는데, 저는 이게 달마대사가 마주 보던 거친 벽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없는 캔버스를 거친 벽면이라고 생각하고 명상한 게 아니었을까."

영화는 6·25 때 김 화백이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정신적 트라우마도 짚는다. 김 화백은 열다섯 살에 북한에서 도망쳐 남에 왔고, 남한에선 북한 지지자로 오해받아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평생 그를 따라다닌 것은 눈앞에서 숱한 주검을 목격한 충격이었다.

김 감독은 "어머니 말씀으론 아버지에겐 전쟁의 트라우마가 굉장히 컸기 때문에 악몽을 꾸거나 새벽에 비명을 지르며 깨기도 했다"며 "영화를 통해 이 트라우마가 그에게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 화백의 프랑스인 부인 마르틴 김 여사는 "그는 친구들이 다 죽었는데 자신은 살아있다는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았다"고 전했다.

김 화백에게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무엇이었을까. 김 감독은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펼쳐놓는다. 그것은 비극적 역사를 체험한 인간의 소리 없는 비명, 평생 불안을 지우기 위해 반복한 수행, 또는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행위였다는 것. 김 감독은 "아버지는 자신의 화실에서 연금술사처럼 오랜 세월 연구한 끝에 그가 본 모든 피를 마침내 순수한 물의 원천으로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어릴 땐 아버지가 그린 게 물방울이 아니라 오토바이인 줄 알았다"는 그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점점 아버지 작품에 경외심을 갖게 됐다. 아버지의 물방울 그림은 그 안에 굉장한 깊이를 숨기고 있는 매혹적인 작품"이라고 말했다.

Q : 북한에서 촬영하고 싶었다고.
A : "아버지에게 고향은 너무도 큰 의미였다. 평생 두고 온 천국처럼 그곳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할 수 있다면 그 고향을 반드시 영화에 넣고 싶었고, 아버지를 고향 맹산에 모시고 가서 찍고 싶었다. 다양한 채널로 타진했으나 기다리라는 대답만 들으며 시간이 흘렀다.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방울의 의미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저는 물방울에 대해서 질문을 던질 수는 있지만 답할 수 없다"면서 "만약 물방울이 하나의 의미를 갖게 됐을 때 소통은 거기서 닫혀버릴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제가 확신하는 것은 물방울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작은 물방울 안에는 영혼도 담겨 있고, 빛도 담겨 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작은 네다섯 개의 물방울을 그리고서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이다'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아버지에 대한 영화 제작과정 자체가 제겐 치유과정이었다"며 "한국 관객들이 아버지를 새로운 시선으로 발견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France, South Korea202079minColor/B&W

SYNOPSIS: 고 김창열 화백은 물방울이라는 하나의 모티브를 중심으로 그의 깊은 작품 세계를 구축하였습니다. 한 예술가의 불가사의한 세계와 이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그의 아들인 영화감독 사이의 협업으로 이 명상적이면서도 침묵의 소리가 들리는 작품이 만들어졌습니다. 물방울은 한국과 아시아의 슬픈 역사를 응축한 상징이며 그의 평생의 작품들을 통해 또한 그의 가족과의 삶을 통해 조용히 그러나 힘있게 세계를 향한 메아리가 됩니다. 

Credits

  • ProducerClarisse TUPIN, KIM Young, Martine KIM
  • Cinematography Oan KIM, Brigitte BOUILLOT
  • Editor Oan KIM, Brigitte BOUILLOT, Nassime GORDJI-TEHRANI
  • Music Oan KIM
  • Sound Jules WYSOCKI
  • https://www.dmzdocs.com/kor/addon/00000001/program_view.asp?m_idx=102508&c_idx=199&QueryYear=2021&QueryType=B&QueryStep=2#self



2021 텔레피크닉 프로젝트 <당신의 휴일 Your Holiday> Tele-picnic project

 

 2021. 9. 14.(화) - 11. 14.(일)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프로젝트 갤러리1, 하트탱크, 등나무근린공원
참여 작가: 김나영 & 그레고리 마스, 낸시 베이커 케이힐, 티무르 시친

2021 텔레피크닉 프로젝트 《당신의 휴일》은 서울시립미술관과 레벨나인, 서강대학교 산학협력단이 공동 수행하는 XR(확장현실) 기반의 예술·과학 융합 프로젝트입니다. 본 프로젝트는 문화예술 현장과 가상공간 간의 상호작용이 더욱 확장되는 미술관 경험을 목표로 증강현실 속 관람객과 실시간 상호작용이 가능한 차세대 문화예술 콘텐츠를 창작, 공유하는 플랫폼을 연구, 개발하고 이를 통한 XR 기반의 전시를 선보입니다. 
https://sema.seoul.go.kr/ex/exDetail?currentPage=1&glolangType=KOR&exGr=&museumCd=&targetDate=&searchDateType=SOON&exSearchPlace=&exNo=573379&startDate=&endDate=&searchPlace=&kwd=EXF01&kwdValue=

Miss Shrimp, 2021
Installation in progress
promotional animation video by Rebel9
via instagram

《당신의 휴일》은 여전히 팬데믹 시대의 비현실적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희미해져버린 두 이름, ‘당신(You)’과 ‘휴일(Holiday)’이라는 단어를 통해 현실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합니다. 이 전시가 제안하는 ‘당신의 휴일이라는 확장현실’은 타자와 연결되고, 경험을 공유하며, 새로운 현실을 체험하는 장소이자, 또 다른 사회적 공유지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개별 현실에 발 딛고 있는 우리의 삶이 또 다른 보이지 않는 현실을 공유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확장현실(XR, eXtended Reality)을 기반으로 우리의 미적 경험을 확장하는 새로운 현실을 탐구하는 전시 《당신의 휴일》은 2021 텔레피크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최됩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안과 밖에서 펼쳐지는 관객 참여형 디지털 미술관을 경험해보시기 바랍니다!

Buk Seoul Museum of Art, Seoul
Sep. 2021

Collection: Collector's choice 컬렉션: 취향의 발견

2021. 8. 25 - 9. 2
A-Lounge Gallery, Seoul
#3 컬렉터 장문태
 



정은영, 간밤의 여행자, single channel video, 6:33, 2007
 * 스크립트 / 이주하는 서체 by 조혜진
photos via instagram

10 headed heads, 2021










팔복예술공장 palbok__art
2021 FoCA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기획전

<당신이었군요.>

2021.08.24. ~ 2021.09.22.

팔복예술공장 A동 2F 전시실, B동 이팝나무 홀

https://www.palbokart.kr/main/inner.php?sMenu=B1000&mode=view&no=36

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는 예술가를 대상으로 다양한 예술실천을 지원하며지속적인 실험과 도전적인 작품세계를 조망한다입주작가 기획전은 작가를 소개하고 이전의 작업을 선보이는 프리뷰전팔복예술공장에서의 1년의 연구와 마무리를 담는 결과보고전과는 달리 1년이란 일련의 시간 중 가운데 지점에서 작가 생각의 흐름과 지금현재를 가장 예민하게 가늠해 볼 수 있다팔복예술공장에서의 실험과 연구의 시도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인 본 전시는 기획단계에서부터 입주작가들의 주체적인 참여를 통해작가 특유의 상상력을 현실 세계에 구축한다

<당신이었군요.>라는 제목은 파스칼 키냐르의 심연들에서 입주작가들이 직접 발췌한 것으로우리가 경험했지만 잊힌 무언가를 상기시킨다. <당신이었군요.>는 시간사람환경기억 등 다양한 변주로서의 당신이라는 명사와 이었군요의 과거형과 함께, ‘라는 감탄사로서 지금현재까지의 시간을 내포하며 하나의 문구에서 과거와 현재를 복합적으로 이어준다.

우리가 놓친 무언가는 누구일까혹은 어떤 것일까작가는 작품을 통해 공간으로서 현상으로서 무언가를 현실에 다시 불러낸다관객은 각각의 작품을 들여다보며나와 당신그리고 우리에게서 지워진혹은 잊힌 무언가에 잠시 인사를 건넨다. 이러한 과정은 전시장이 가진 물리적 공간을 관객 개개인이 가진 인식의 장으로 확장한다.

<당신이었군요.>전시가 입주작가에게는 입주에서 보고까지의 중간 지점에 서서 앞으로 지속할 창작활동의 촉매제로서보는 이는 작품 속 다층적인 시간을 느끼며 사물과 사람 혹은 잊힌 기억과 마주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Congoville

 
Douglas Park is living exhibit (reciting Mark Twain's King Leopold 2nd's Soliloquy), for Elisabetta Benassi's M'Fumu artwork, in Congoville group exhibition. @ Braem Pavillion Middelheim Museum.


CONGOVILLE

CONTEMPORARY ARTISTS TRACING COLONIAL TRACKS

Both the Middelheim Museum and the University of Antwerp are situated where the Colonial College was founded in 1920. A hundred years later, this is the occasion for the Middelheim Museum to examine and unfold the traces of the (post)colonial history of the site.

Participating artists: Sammy Baloji (DRC/BE), Bodys Isek Kingelez (DRC), Maurice Mbikayi (DRC/SA), Jean Katambayi (DRC), KinAct Collective (DRC/BE/FR), Simone Leigh (US), Hank Willis Thomas (US), Zahia Rahmani (FR), Ibrahim Mahama (GH), Ângela Ferreira (PT/MZ/SA), Kapwani Kiwanga (CAN/FR), Sven Augustijnen (BE), Pascale Marthine Tayou (CAM/BE), Elisabetta Benassi (IT), Pélagie Gbaguidi (BEN/BE)

Sandrine Colard (BE/US) is curator and assistant professor of African Art History at Rutgers University, Newark.

“1+1” 소장가의 시선 Collector's View

설원기 컬렉션 전 
참여작가 : 강석호, 고지영, 곤도 유카코, 김근중, 김범, 김정욱, 김지원, 김현정, 김혜영, 권경 환, 나빈, 노은주, 문진영, 민경숙, 박기민, 빈우혁, 서용선, 설원기, 손현선, 안규철, 안창홍, 우정수, 이민정, 이순주, 이우성, 이은새, 이주리, 이준옥, 이호인, 임소담, 표영실, 한성우, 한진, 황지윤, Thomas Nozkowski 

2021년 9월 2일~10월 3일
원앤제이 갤러리 One & J Gallery, Seoul

https://mailchi.mp/1fe6f8251a7f/one-and-j-gallery-kichang-choi-one-kiss-opening-reception-artist-talk-19132956?e=9d35838793


김범, Untitled, 1995. Ink on paper, 33 x 22 cm.

https://blog.naver.com/joimy/222499466606


화산 섬의 오후 An afternoon on a volcanic island_Experimentation

 


Photos by Minja Gu
https://www.facebook.com/photo?fbid=775778879684768&set=pcb.775779036351419

김순기 – 게으른 구름 타고 훨훨

인터뷰 장서윤 기자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프랑스를 무대로 새로운 미술 언어를 실험해온 김순기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 《김순기: 게으른 구름》(2019. 8. 31~2020. 1. 27)이 진행 중이다. 전시 제목 ‘게으른 구름’은 규정된 틀에 갇히지 않고 일상을 유희하며 창조적이고 철학적인 작업을 펼쳐온 작가의 예술세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듯하다. 그만큼 김순기 작가의 작품은 폭넓고도 깊으며, 가벼우면서도 묵직하다. 초기 작업부터 신작 〈시간과 공간 2019〉을 아우르는 200여 점의 작품은 자연과 호흡하며 일상을 오롯이 예술로 채운 결과물들로, 동시대 미술에서 김순기 작가의 작업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여전히 달나라에 가는 것이 꿈이라 말하는, 자유롭고 경계 없는 예술가 김순기 작가를 만나보자.

김순기 작가 ⓒ김흥규.

김순기 작가 ⓒ김흥규.

그간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한국미술 ’95: 질량감》(1995), 《백남준 1주기 추모전: 부퍼탈의 추억》(2007), 《한국현대미술_거대서사 Ⅱ》(2013),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30주년 특별전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2016) 등의 단체전에 참여하신 바 있지만 대규모 개인전은 처음입니다. 전시를 개최하신 소회를 여쭙고 싶습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됐는데, 이번 전시가 우리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요. 함께 전시를 준비한 큐레이터들의 실력도 좋고 합도 좋았지만, 국립기관이다 보니 행정상의 절차가 복잡하고 체제가 견고해서 힘든 부분도 있었죠. 전람회란 공간에 설치하는 방식에 따라 작업의 의미가 달라지는데, 좀 어려운 점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국립현대미술관은 전시 개최 3개월 전에 배치도를 제출해야 하는데, 공간도 제대로 보지 않은 상태에서 배치도에 맞춰 작품을 전시해야 하니 쉽지가 않았습니다. 작업 대부분이 공간과 연결된 것들이기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저는 항상 ‘작품’이란 단어보다는 ‘작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공간에 따라, 그리고 작업을 설치하는 방법에 따라 작업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설치’라는 말도 그런 의미에서 생긴 거잖아요. 작업을 가져다 놓음으로 해서 공간이 변형되고, 그럼으로써 작업의 의미도 바뀌게 됩니다. 전람회를 한다는 자체가 설치작업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미술관의 체제는 좀 더 완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1969년 초기작인 〈색동2〉, 〈색동 그림2〉부터 신작 〈시간과 공간 2019〉까지 작가님의 작업 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작업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연대기적인 방식이 아니라 8개의 주제별 섹션으로 나뉘어 있어 작가님의 작업 세계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논의를 거쳐 나온 구성인가요?

전시 구성은 이수정 학예사의 의견을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큐레이터는 전시를 만드는 사람이잖아요. 전람회라는 건 특정 공간 에서 일정 시간 동안 새로운 의미를 열어주는 것인데, 그걸 하는 사람이 큐레이터라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준비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했어요. 이수정 큐레이터가 고생 좀 했지요(웃음).

《김순기: 게으른 구름》 전시 전경. ⓒ장서윤.

《김순기: 게으른 구름》 전시 전경. ⓒ장서윤.

이번 전시에서는 1975년 미국문화원에서 열린 《김순기 미술제》가 담긴 영상도 설치되어 있어 당시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6일 동안의 달력〉과 〈달력, 물방울〉 등 과정형 작업을 선보이는 한편, 슬라이드 필름이나 영상을 상영하고 토론회를 개최한 것도 흥미로웠고요. A.G나 S.T와 같은 아방가르드 그룹이 활동하던 시기에 여성 작가가 ‘미술제’를 개최한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을 텐데요, ‘미술제’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으셨나요?

대학교 때 은사님이셨던 전성우 교수님께서 저에게 전람회를 제안해주셨고, 그분이 미국문화원장을 만나 문화원에서 전시를 할 수 있게 도움을 주셔서 성사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작업을 전람회에서 단순히 보여주는 것에는 흥미가 없었어요. ‘representation’, 즉 표현/재현이라는 건 전통적인 예술의 관점이고, 저는 그 관점에 반대했기 때문에 ‘미술제’라고 썼던 것입니다. 미술제의 상황이 축제도 되고, 제사도 되고, 사건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미술제에 오시는 관람객들이나 다른 작가들과 대화도 하고 싶었고요. 저는 이 미술제가 스캔들을 일으킬 줄 느낌으로 알고 있었어요. 심지어 윤보선 대통령 영부인까지 왔었으니까요. 토론회 할 때에는 마이크 소리가 길거리까지 들려서 군중들이 지나가다 멈추기도 하고, 전시장 안에는 층계를 올라가지 못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어요. 그때는 군사정권 시기라 말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겁도 없이 그랬던 거죠. S.T에서 활동하던 이건용 작가님이 미술제를 보시고 강의를 제안하셔서 일주일 내내 학교, 화실을 다니며 강의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온 작고 젊은 여자애가 하는 이야기를 감탄하면서 쳐다보더라고요. 그때 했던 강의들이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특히 서울대 미대 학생들의 경우 유화, 석고 데생, 모델 드로잉 등 그림만 그리고 있을 때였거든요.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그때 많은 에너지를 줬다고 해요.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준 거죠. 아방가르드라는 건 어떤 상황에 대해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분석과 비판도 하면서 새로운 걸 제시(proposition)하려고 노력하는 거라 생각해요. 그게 앙가주망(engagement)이지, 단순히 사회적인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앙가주망이 아니에요. 저는 ‘이것이 무엇인가?’보다는 ‘어떻게 이것이 왔나(How have this work arrived)’가 더 중요하다고 항상 이야기해왔습니다. 지금은 제가 많이 얌전해졌죠(웃음).

《김순기: 게으른 구름》 전시 전경.

《김순기: 게으른 구름》 전시 전경.

1971년에 프랑스로 가셨는데, 프랑스를 택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니스에 위치한 국제예술교류센터(Centre Artistique de Rencontre International)의 초청 작가로 선발돼서 간 것이었습니다. 공부하러 프랑스에 간 것은 아니에요.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싫고, 시간 되면 똑같은 거 반복하는 게 지긋지긋해서 학교도 안 가고 교수도 안 한다고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프랑스에 대한 생각은 어렸을 적부터 늘 지니고 있었어요. 초등학교 1, 2학년 때 즈음 제가 그림을 잘 그리니까 선생님께서 “나중에 너는 화가가 되어야겠다.”고 말씀 하셔서 화가가 뭐냐고 물었더니, “프랑스 파리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는 그림 그리는 사람들과 거지들이 같이 산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제 목적이었어요. 거지가 되거나 작가가 되거나(웃음). 그 이 야기를 듣고 집에 와서 프랑스 파리가 어디냐고, 지도책을 사달라고 울면서 보채니까 부모님께서 일본에서 세계 지도를 구해주셨어요. 지도를 보면서 여기 간다, 저기 간다 했죠. 그리고 군사정권 시절이었기 때문에 신나게 구름 타고, 기계 타고 달나라 가지 이런데 갇혀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을 노래처럼 하고 다녔어요.

그러다가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전성우 교수님과 더불어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던 임영방 교수님을 통해서 프랑스 정부에서 주는 장학금 제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문과, 이과, 예술 부문의 학생을 한 명씩 뽑아서 장학금을 주는 제도였는데, 학교에서 추천해줘서 1971년도에 프랑스에 갈 수 있었어요.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미니 스커트 사 입고 뾰족구두도 신고, 너무 신났죠(웃음). 그리고 가자마자 히치하이킹으로 스페인까지 갔다가 두 달 후에 프랑스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돌아와 보니 보르도에서 불어 연수를 해야 하는데 김순기가 안 온다고, 북한에서 잡아간 줄 알고 난리가 났더라고요. 연수 끝나기 이틀 전에 돌아왔는데, 문제는 시험을 봐야 장학금이 나와요. 그래서 이틀 만에 시험을 봤고, 다행히 공부했던 문제가 나와서 통과할 수 있었던 겁니다.


프랑스 파리가 아니라 니스나 마르세유, 디종 등 남프랑스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신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임영방 교수님께서 남프랑스에 아방가르드 그룹들이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리고 니스 국제예술교류센터가 생긴 게 1970년대 초반인데, 미술센터라는 이름의 현대미술관이 프랑스에 처음으로 생긴 게 니스였습니다. 플럭서스(Fluxus) 멤버였던 벤 보티에 (Ben Vautier)의 작업실도 니스에 있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작가들을 초청해서 토론회를 열면 파리에 있는 작가들이 오토바이 타거나 히치하이킹으로 남쪽으로 내려와서 함께 토론을 했어요. 다니엘 뷔랑(Daniel Buren)이 속해있던 중요한 그룹 ‘B.M.P.T’ 멤버들도 남쪽에 내려와서 발표를 했고요. 그만큼 1970년대에 아방가르드 분위기는 남프랑스에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파리는 아카데믹하고 구닥다리의 답답한 장소처럼 느껴졌고요.


회화과를 졸업하셨고, 초기 작업인 〈색동2〉, 〈색동 그림2〉에서도 동양적인 색채를 사용하여 추상 회화를 그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고민은 무엇이었나요? 이후 〈소리〉나 〈조형상황〉과 같이 설치,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기록하는 비디오와 핀홀 사진 등 다양한 매체로 확장된 것도 회화 작업 당시의 고민과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캔버스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전통에 관심이 많으셨던 전성우 교수님의 영향을 받아 원색을 작업에 활용했고, 색의 의미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하면서 색 자체가 사각형을 뛰어 넘는 작업을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원래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림을 오래 그렸기에 자연스럽게 나온 질문이었다고 봐요. 영상 작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해체하고, 거기서 나오는 것들에 대해 질문하고. 그렇기 때문에 결국 데리다(Jacques Derrida)를 만날 수밖에 없던 것 같아요. 1975년도에 저에 대해 글을 썼던 한 철학자도 제 작업이 시간과 공간을 ‘해체(Deconstruction)’하는 것이라 언급했으니까요.

왼쪽부터 김순기, 〈색동 2〉(1969), 〈색동 그림〉(1969) 설치 전경. ⓒ장서윤.

왼쪽부터 김순기, 〈색동 2〉(1969), 〈색동 그림〉(1969) 설치 전경. ⓒ장서윤.

〈조형상황〉 시리즈는 상황의 우연성, 우발성, 유동성 등을 작업의 구성 요소로 삼고 있어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탐구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변모하는 ‘상황’ 속에서 ‘조형’을 이끌어내는 것도 흥미롭게 살펴볼 지점인데요, ‘상황’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고 작품을 구상하게 된 것인지요?

상황에 대한 개념이 선행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작업을 하다 보니 상황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이것을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죠. 대학원 시절 학교에서 〈소리〉를 작업하는데, 하루는 헝겊에 물을 들인 후 바깥에 걸어 놓고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나가보니 작품이 기가 막히게 보이는 거예요. 바람에 날린 천의 색들이 다 해체돼서 서로 만나고, 거리 풍경도 있고, 먼지도 있고, 하늘도 있고, 바람도 있고, 사람도 있고, 새도 있고. 진짜 ‘상황’이 된 거죠. 그림에 틀이 있다면, 〈소리〉에서의 틀은 바로 우리 삶이었어요. 열린 공간. 어떻게 제목을 지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소리’라고 지었더니 작업의 맥락과 의미가 그 안에다 들어가더라고요. 소리는 경계가 없으니까요. ‘소리’라는 것은 제목이고, 그러면 내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어떻게 부를까 생각하다가 ‘상황’이 나왔던 겁니다. 상황이라는 말을 사용한 건 프랑스에서부터였어요. 니스 국제예술교류센터에서 〈소리〉를 발표했을 때,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했던 프랑스 예술운동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s/Surfaces)’를 이론적으로 지지했던 비평가 자끄 르빠주(Jacques Lepage)와 그의 동료들이 제 전시를 보고는 그들의 작업과 비슷하다며 함께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쉬포르 쉬르파스의 경우 캔버스의 요소들을 분석한 후 사각형 틀이나 색만 가지고 작업을 하는 등 캔버스 안에만 머물렀다면, 저는 삶으로 나아간다는 차이가 있어요. 그 이후에 플럭서스 작가들을 만나게 된 거죠. 그들 역시 삶에 대해 이야기했으니까요.


작가님의 작업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나 늘 사용하는 언어를 가지고 놀이를 하시는 듯 보이지만, 단순히 즐겁다는 개념의 유희라기보다는 본래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나 사유의 틀이 작품을 통해 깨어지는 순간 쾌감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거든요. 작가님의 작업에서 유희가 지니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지금 이야기 다 한 거예요 (일동 웃음). 저는 사람들이 제 전시를 보고 나오면서 ‘아, 즐거웠다.’ 하면 좋겠어요. 어린 아이들이 고맙다고 인사하더라고요. 왜 고맙냐고 물었더니, 재미있었다는 거예요. “행복했어요.”라는 말이 제일 좋습니다. 논다는 것 안에는 행복이 들어있어요. 행복은 아름다움을 포함하지만, 아름다운 것이 반드시 행복을 포함하지는 않죠. 저는 장자(莊子)나 노자(老子) 같은 도가 사상을 좋아했는데,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을 읽는 순간 장자가 보이더라고요. 장자에게서 ‘유희’ 개념이 나옵니다. 유유히 강을 건너가면서 논다는 ‘유(遊)’인데, 그것은 ‘천락(天樂)’, 즉 하늘의 기쁨이에요. 그게 예술의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자를 통해 동양미술의 근본을 배울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장자의 철학은 경계를 터놓는 게 있어요. 무식(無識), 무위(無爲)가 그렇죠. 비트겐슈타인은 ‘Jeu de Language(언어 놀이)’를 통해 일상생활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단어들을 가지고 노는(game) 것이 언어유희라고 하잖아요. 거기서 장자와 비트겐슈타인이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작가님의 작업에서 ‘무(無)’나 ‘무위(無爲)’도 중요하게 보입니다. 이러한 개념들은 작업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작업이라는 것은 그 과정에서 자신을 찾아가고 발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르는 것, 무식(無識)이 유식(有識)의 근본이 되는 것이죠. 자신이 공부한 것을 차근차근 깨나가면서 밑바닥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식(有識)을 통해서 무식(無識)에 도달하는 것. 무식하다, 식이 없다는 것은 깨달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고, 식이 없다는 건 무엇이든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에요. 꽉 차면 아무 것도 안 보이잖아요. 비우면 이것도 보이고 저것도 보여요. 그릇에 물이 꽉 차있으면 더 이상 넣을 수 없지만, 비어 있으면 아무거나 다 넣을 수 있죠. 그걸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릇의 의미가 달라지는 겁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바로 삶이고요.

동양에서의 ‘혼돈’은 단순히 무질서함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 라, 음(陰)과 양(陽),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전의 가능성, 만 개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 즉 최초의 가능성을 뜻합니다. 혼돈 자체는 굉장히 원시적인(primitive) 조건이죠. 최초의 조건인데, 항상 혼돈이 있어야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저는 ‘창조’라는 단어를 사용 하지 않습니다. 동양에서의 창조는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고 그렇지’의 개념에 가깝습니다. 그걸 잘 표현한 것이 바로 『주역(周易)』이에요. 『주역』에 보면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고, 계속해서 갈라지잖아요. 하나라는 것은 하늘과 땅의 만남인데, 만남의 상태가 바로 혼돈인 것이죠. 그게 갈라지면서 세계가 생성되는 겁니다. 장자에게는 그 상태에 도달하는 게 천락이에요. 그리고 그 천락은 유유히 했을 때에 찾을 수 있어요. 그걸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무식의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고요. 식이 오기 전의 상태, 이름이 오기 전의 상태,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전의 상태, 모든 것을 포함하는 상태, 빈 그릇인 것이죠.


작가님의 작업에서 비디오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회화 작업을 하시다가 비디오를 작업에 도입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더불어 비디오가 작업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소리〉 작업 당시 작품이 밖에서 펄럭이는데, 찍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움직이는 상황을 잡아야 하잖아요. 비디오 작업은 프랑스에 가서 본격적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업을 기록으로 남기는 도큐망(Document)도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찰나의 상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가 왜 기록해야 하는가를 많이 고민했죠. 대신 카메라로 찍는 걸 작품의 요소로 동등하게 생각하고, 기록이 아닌 작품으로 비디오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진이나 슬라이드, 필름처럼 네거티브 필름에서 포지티브로 인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빛을 가지고 직접 작업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다 보니 비디오가 생각난 것입니다. 예전에 이영철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비디오라는 것은 빛과 시간을 가지고 짜낸 빈 그릇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빛과 시간으로 짠 이미지를 담되,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의미에도 열려 있는 그릇인 것이죠. 기록도 할 수 있고, 리얼 타임을 보여줄 수도 있고, 백남준 작가처럼 비디오로 조각을 만들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가지는 빈 그릇이 비디오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작업을 했던 것이고요.

김순기, 〈주식 거래〉, 2005. ⓒ장서윤.

김순기, 〈주식 거래〉, 2005. ⓒ장서윤.

김순기, 〈일기〉, 1971-1973. 단채널 비디오(4:3), 13분 33초. ⓒ장서윤.

김순기, 〈일기〉, 1971-1973. 단채널 비디오(4:3), 13분 33초. ⓒ장서윤.

작가님의 경우 정치적이거나 특정한 사회적 사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주식 거래〉(2005)나 ‘위안부’ 문제를 다룬 〈무명〉(1995), 서예로 작업한 〈편지-컴컴한 동쪽 바다에〉(1997-2005), 〈편지-슬슬슬 안개 소리에〉(1997) 등은 당시 변화하고 있는 사회 모습을 은유적으로 담는 한편 신자유주의 시대 예술이 나아갈 길을 묻는 등 사회적으로 확장된 시선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변화의 계기가 있으셨나요?

그 당시에 저도 모르게 잔소리가 하고 싶더라고요. 자본주의가 돈으로 인간들의 마음을 도망가게 만들었잖아요. 그게 그렇게 싫었어요. 텅 비어있는 자신의 마음을 찾을 때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데 말입니다. 1991년도에 프랑스 정부 연구 장학금을 받고 작업을 위해 배낭에 비디오 카메라만 짊어지고 중국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어요. 한국에 왔다가 일본에 가서 전람회 하고, 중국에 가서 한 3개월 돌아다니다가 태국, 인도에 갔다 다시 중국으로 오는 6개월의 시간 동안 완전히 자본주의로 탈바꿈한 동양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걸 주제로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얌전하게 노는 방식이 아니라 욕을 하고 때려주고 싶다는 감정을 절실하게 느꼈던 것 같아요. 장 뤽 낭시 (Jean Luc Nancy)와 편지로 왕래할 때였는데, 낭시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럼 주식에 관한 작품을 해야겠구먼.”이라고 농담한 이야기를 듣고 이거다 싶어서 작업을 했죠. 그래서 〈주식 거래 (Stock Exchange)〉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편지-슬슬슬 안개 소리에〉 마지막에 ‘똥강아지가 멍멍멍 울고 있을 적에 조카들이 달려 와서 요즘 달라가 올라서 피씨(PC) 가격이 반으로 떨어졌다는데 포터블 하나 사왔느냐 하길래 내가 가지고 온 건 마음뿐’이라고 했어요. 그런 말이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작업을 하셨던 1990년대 초반 이후 근 3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자본이 삶의 모든 가치를 잠식하고 있는 작금의 시대에 예술의 의미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그 질문은 데리다와 대화했던 주제이기도 해요. 저는 유럽이 통일(EU)되는 것, 그리고 세계가 글로벌화되는 것에 대해 반대했던 사람입니다. 문화 때문도 아니고, 정치 때문도 아니고, 돈이나 경제 때문에 통합되는 거잖아요. 중요한 건 만남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만나기 위해서는 다름이 있어야 하고, 다르기 위해서는 존중이 필요합니다. 차이를 없애버린 채 모든 것이 비슷하게 되어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한국에 와서 작가들의 작업을 좀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예전보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겨서 해외여행도 많이 하고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빨리 습득하다보니 비슷비슷한 작품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주목받는 것에 초점을 맞춰 작업하면 인기도 얻을 수 있죠. 이 역시 돈과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라는 틀 자체가 작품을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너무 싫어서 도망가고 싶을 정도에요. 시장화된 작품들이 양산되는 지금 시대에는 빈 마음을 다시 찾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태도에서 작업이 나오는 것 같아요.

김순기, 〈편지-컴컴한 동쪽 바다에〉, 1997. 한지에 먹과 붓, 152×232cm. ⓒ장서윤.

김순기, 〈편지-컴컴한 동쪽 바다에〉, 1997. 한지에 먹과 붓, 152×232cm. ⓒ장서윤.

이번 신작 〈시간과 공간 2019〉에서는 과학 기술의 요체인 로봇과 과학의 정반대편에 위치하는 초자연적인 존재인 무당이 등장하여 다른 영역의 이질적인 것들이 교차하는 모습을 선보이셨습니다.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으셨나요? 로봇 ‘심심바보 영희’가 작가님 자신의 페르소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옛날부터 ‘바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어요. ‘심심바보 영희’에 나온 글을 다시 읽어보니 저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일동 웃음). 어찌 되었든 ‘심심바보 영희’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친구입니 다. 평소 AI 같은 뉴 테크놀로지에 관심도 많고, 그런 것들이 가져올 미래의 가능성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로봇을 만들어 낸 이유는 인간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인간이 절대적인 힘을 얻기 위해서잖아요. 그걸 거꾸로 사용하고 싶었어요. 바보같이 시나 읽고, 경치도 바라보고. 그런 로봇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미래의 언어와 무당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봇과 무당,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서 교환하는 게 참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자가발전 자전거에서는 숲속의 벌레 소리나 아마존 인디언들이 제사를 지내는 사운드가 흘러나오죠. 제가 생각하는 훌륭한 우주의 모습을 만들고자 한 작업이었어요. 그 우주에는 무당도 있고, 과학기술의 총체인 로봇도 있는 등 생태, 전통이 다 담겨있습니다.

신작 퍼포먼스 〈시간과 공간 2019〉 현장.

신작 퍼포먼스 〈시간과 공간 2019〉 현장.

지난번 프로필 사진 촬영을 할 때 관객이 참여할 수 있도록 마련한 〈오늘〉(1975, 1998)을 가리키시면서 의도한 바와 결과가 다르다며, 작가님의 작품이 아니라고 하신 말이 뇌리에 남아서 생각한 질문입니다. 불확실하고 다양한 세계를 드러낼 수 있는 인터랙티브 작업에서 그렇게 의도하지 않은 상황도 작업의 의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나 고정되지 않고 항시 열린 의미를 지향하는 작업을 해오신 작가님이시니까요.

그래서 굳이 다시 제작하지 않고 내버려 둔 거예요. 2008년에 예맥 갤러리에서 개인전 《김순기, 2008 Platform Seoul》을 진행할 때에도 이 작업을 열심히 손으로 그려서 만들었는데, 그 다음날 되니 사람들이 설명서와 상관없이 자기 이름이나 낙서를 해놓았더라고요. 그때는 글자가 많지 않아서 다시 흰색으로 칠했는데, 이번에는 생각해봤더니 사람들 낙서하는 장소를 하나 마련해준 것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내버려 두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얼마 전에 지인으로부터 전시 잘 봤다고, 자신이 쓴 글씨를 봤냐고 연락이 왔었어요. 무슨 글씨냐고 물었더니, ‘내일은 뭐하지’라고 썼다는 거예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간단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전 원래 계획을 세우지 않아요(일동 웃음). 그런데, 며칠 후에 프랑스로 돌아가는데 친구한테 전화해보니 텃밭에서 기르는 야채들이 쑥대밭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비가 안 와서 연못이 마르고 진흙도 갈라졌다는 거예요. 잡초도 무성하게 자라고 과일도 말라서 썩어 있고. 집으로 돌아가면 이제 그런 것들을 돌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거의 먹을 것도 없대요(웃음). 그리고 내년에 미국에서 책이 나올 예정인데, 번역도 해야 하고 할 일은 아직 많이 있습니다.


미술세계 2019년 10월호
https://www.theartro.kr:440/kor/features/features_view.asp?idx=2604&b_code=31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