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ving〉(2024)은 성낙영이 직접 작곡한 음악의 믹스, 온라인 문화와 지루한 현실 세계 간의 연결을 시도하며 연결과 고립이라는 모순된 키워드를 표현하는 포스터 시리즈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서브컬처와 소셜 미디어의 영향을 받은 〈Raving〉은 마치 작업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무작위적으로 만드는 이미지의 모음인 무드보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성낙영은 과잉된 요소들이 순간순간 스쳐지나가는 인터넷의 흐름과 유사한 방식으로 빠르게 작업하는데, 포스터 이미지는 확대된 밈(meme)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패션 광고 같이 보이기도 한다. 뻔해 보이면서도 지루함을 느끼는 듯한 외로운 인물 주변에는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받은 작은 사진이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되며 어두우면서도 무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음악은 특유의 유머러스함을 통해 이 공허함을 증폭시키며 공격적이면서도 빠르게 전환된다.
성낙영은 나키온(Nakio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서브컬처의 영향을 받은 음악과 미술작품을 제작해왔다. 그의 작품은 매 순간 작가가 겪는 상황과 기분을 가볍지만 동시에 진지하게 고찰하고 반영하며,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일상적인 디지털 세계와 물리적인 현실 세계 안에서 경험하는 정신적인 소란스러움과 혼란에 진입하게끔 한다.
성낙희
2005년 제51회 참여 작가
아크릴 회화와 벽화를 주 매체로 활용하는 성낙희는 즉흥적이고 직관적인 선과 형태, 색의 선택을 통해 자유로움을 견지하는 동시에 조직적이고 구성적인 추상화 작업을 해왔다. 최근에는 한 화면 안에서 중심적인 색조의 활용과 그 변주, 그라데이션과 보색을 활용하여 색면 간의 경계가 또렷이 드러나면서도 유동적인 느낌을 담은 구축적인 회화를 제작하고 있다.
벽화의 형태로 선보이는 〈Cozy Cardio〉(2023)는 굽이치는 유동적인 선과 면, 두드러지는 노란색과 보라색 등 서로 대비를 이루지만 반복적인 색의 활용을 통해 성낙희 작품에서 고유하게 드러나는 음악적인 리듬감을 담아낸다. 작품의 제목인 ‘Cozy Cardio’는 틱톡 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유행하는 용어로, 편안한 상태에 머물면서 하는 유산소 운동을 의미한다. 하지만 작품의 제목은 이 용어가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상황과 관계가 있기보다는 작가가 작업을 하면서 가진 느낌을 적절히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을 직관적으로 선택함으로써 붙여졌다. 추상적인 형상들과 과슈, 색연필, 오일파스텔 등 다양한 재료를 그라데이션, 뿌리기 등을 통해 종이의 표면과 맞닿게 하면서 나타나는 다양하고 독특한 질감은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내면의 율동감을 풍부히 드러낸다.
정서영
2003년 제50회 참여 작가
정서영의 작품은 작가의 내면과 사물이 일시적으로 공명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주로 일상적인 사물이나 재료를 사용하지만, 작품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재료의 재질과 외관이 부여하는 형태 자체뿐만 아니라 작가가 사물과 총체적, 직관적으로 관계 맺는 방식이다. 따라서 정서영의 작품은 상징적인 의미작용을 비껴가는 존재로서 관람객에게 말을 걸어 온다.
〈증거〉(2014)는 사람의 손이 두 자루의 펜과 구겨진 종이 조각, 나뭇잎과 가지를 한 번에 움켜쥐고 있는 모습을 전면적으로 포착한 사진이다. 일상적이거나 인공적인 사물, 식물 등의 자연물, 인간의 신체와 같이 서로 낯선 사물들이 하나의 견고한 덩어리가 되었지만 동시에 그것들 간에 길항하고 있는 힘이 정지된 장면 속에서도 보인다. 이 특수한 모습의 근거나 배경을 이루는 외부적인 서사나 이야기에 대한 추측은 가능할 수 있으나, 이 장면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을 요청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모습뿐만 아니라 세상 속에 뒤엉켜 있는 모든 사물들의 모습 그 자체가 실은 그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족적인 증거임을 암시한다.
김범, 〈켄타우루스와 미노타우루스>, 2020, 단채널 비디오, 57초, 반복재생
김범
2015년 제51회 참여 작가
김범은 회화, 드로잉, 조각, 비디오, 아티스트 북에 이르는 다양한 작업을 통해, 인간의 지각이 근본적으로 의심되는 세계를 다루어 왔다. 관습을 뒤집는 진지한 유머와 부조리한 제안이 특징인 그의 시각언어는 실재하는 대상에 대한 인식과 지식의 체계가 얼마나 허술하고 관념적인지를 해학적으로 드러내왔다.
김범의 작업에서 인간이 도구 혹은 수단의 대상과 결합하는 상황은 큰 관심사로 등장해왔다. 영상 작업 〈켄타우루스와 미노타우루스(원형 버전)〉(2020)에는 로데오 경기에서 야생성을 정복하고자 하는 인간과 이에 저항하는 동물, 그 둘 사이에서 주종 관계를 둘러싼 격렬한 긴장 상태가 담긴다. 하나가 된 상태에서 두 가지 다른 본능과 영혼이 격렬하게 다투는 과정은 고대 신화에서 흔하게 등장해온 반인반수 혹은 괴물의 서사까지 거슬러 올라가, 문명의 전개 속 인간과 도구과 정복자와 피정복자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에 대한 성찰을 불러 일으킨다. 4점의 연속사진 작품에서 모든 장면을 이어 제작한 이 영상은 초기 사진기법에 따라 인화된 청사진 프린트(cyanotype)와 반다이크 프린트(vandyke print)의 푸른색과 갈색을 따른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기념전 《모든 섬은 산이다》를 기획하며
19.4 – 8.9, 2024
Palazzo Malta – Ordine di Malta, Venise
임근혜(예술감독, 아르코미술관 관장)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기간 중 몰타기사단 수도원에서 열리는《모든 섬은 산이다》는 자르디니 공원의 마지막 국가관인 한국관의 건립 30주년을 한해 앞두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전시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이 전시는 역대 참여 작가 중 36명을 한자리에 초대하여 한국미술이 베니스비엔날레를 통해 세계와 접촉하며 국제성과 동시대성을 획득해 온 지난 30년간의 여정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한국미술 세계화의 교두보 역할을 해온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이 국가주의와 국제주의의 긴장과 충돌 속에서 분투하며 글로벌 예술 생태계의 다양성과 역동성에 기여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전시 제목 ‘모든 섬은 산이다’는 ‘예술을 통한 시간과 공간의 연결’을 상징하며, 섬과 섬이 바다 속 깊은 곳에서 해저 지형과 해양 생태계로 산맥처럼 연결되듯이 고립된 개인의 삶과 예술이 결국 역사와 사회적 맥락에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전시를 통해 서구 중심적인 사고가 갈라놓은 유라시아 연속체에 대한 상상과 초연결의 미디어 기술을 통해 분열된 세상을 다시 연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 백남준의 예술이 이번 전시의 개념적 출발점이다.
또한, 최근의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관심이 높아진 기후위기와 생태에 대한 작가와의 대화, 생명의 순환으로서의 섬에 대한 상징과 은유를 담은 작품, 베니스 지역 해양 생태학자 및 활동가와의 교류 그리고 비위계적이고 탈중심적인 에두아르도 글리상의 ‘군도적 사고’의 개념이 전시 구성의 기본 바탕이 되었다.
《모든 섬은 산이다》는 과거-현재-미래, 개인과 공동체, 지역과 글로벌,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예술적 사유와 실천에 주목하며 1995년 한국관 개관 당시 선보인 작품부터 최근의 신작까지 지난 30년간 생산된 작품 82점을 아우른다.
작가 개인의 예술 작업이 다양한 감각과 서사를 통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예술적 비전으로 연결되며 섬과 산을 넘나드는 상상적 풍경으로 펼쳐진다
도입부에는 아르코예술기록원이 수집한 한국관 관련 자료를 차세대 작가들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도큐멘터리 영상이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소환한다. 전시는 작은 방이 밀집한 수도원의 실내와 고즈넉한 중정 그리고 탁 트인 야외 정원으로 펼쳐지며 베니스의 중세와 한국 동시대의 시간이 서로 겹쳐진다.
그리고, 중간 지대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사운드 아트는 군도처럼 존재하는 개별 작품을 바다처럼 둘러싼다.
자르디니 공원에 위치한 한국관의 아웃라인을 본떠 만든 야외 정원의 ‘투명한 파빌리온’은 수도원의 이웃과 비엔날레 방문객에게 열린 휴식의 장소이자 지역에서 활동하는 연구기관 및 예술단체와의 협업으로 진행될 공공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공유의 장소이다.
한국 미술계에 마지막 국가관을 선물한 백남준을 기념하는 라이브 퍼포먼스 <굿모닝 미스터 백>으로 시작하는 수도원 야외 공간의 다양한 행사는 로컬과 글로벌이 조우하고 교감하며 연결되는 또 하나의 섬이자 산이 될 것이다.
https://www.venicebiennal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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