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문화 소통의 공간 (Voice Maker) Space
공간, 2011년 1월호
정서영 인터뷰
http://www.vmspace.com/kor/sub_emagazine_view.asp?category=people&idx=11054&pageNum=1
2011 / 01 / 07
Art Talk_정서영: 세상에서 말해지지 않는 일상의 단면 드러내기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부지인 옛 기무사 터에 핑크빛 아트펜스 속 빛을 향해 질주하는 거대한 토끼가 등장해 걷는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정서영 작가의 ‘네 토끼를 잡아라’라는 작품인데, 작가는 “야생 토끼처럼 길들일 수 없는 미술을 대중이 사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토끼의 힘을 빌렸다”고 말했다. 「공간」은 2011년 신묘년을 맞아 장수와 지혜의 상징인 토끼를 닮은 한 해가 되길 기대하며, 우리에게 친근한 사물이나 일상을 픽션과 논픽션 사이에서 긴장감 있게 변주하는 정서영 작가를 소개한다.
많은 사람이 최근 선생의 작업이 뜸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전시와 작품 발표를 꾸준히 해오고 있는 듯하다. 최근 해외 전시가 더 많았나?
해외 전시는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전시를 많이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전시를 할 때는 온전히 재미있고 밀착감도 강하게 느낀다.
사회생활을 거의 끊다시피 하고 있으니 뜸하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가칭) 아트펜스를 설치했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토끼’를 등장시킨 배경은 무엇인가? 토끼의 상징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셨으면 한다.
요셉 보이스의 작업을 예로 들어 미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토끼들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토끼는 미술, 영화, 만화 등 여러 장르를 아우르며 다양한 역할을 해낸다. 때로는 풍요의 상징이었다가 비밀스러운 존재이기도 하고, 세속적이기도 하고 멍청하기도 하다.
아무튼 예술가들이 이 두려움 많은 토끼가 사람 대신 사람이 하는 일을 하게 하면서 위험하고 짓궂은 속마음을 굴려내는 것이 재미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말 그대로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곳이니 야생 토끼처럼 길들여질 수 없는 미술을 사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토끼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작품에 긴장감이 있다.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는 일상적인 주변 풍경, 사물 안에 엉뚱함과 생경함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일상이지만 평범한 일상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주변에 수많은 사물이 있는데, 어디서 인스퍼레이션을 얻나?
작품에서 일상이 일상적으로 느껴지면 그보다 멍청한 일이 어디 있겠나?
작품 속 일상을 실제 일상과 똑같이 보여주면 징그러워 충격일 것이다.
작품에서 일상을 그냥 일상적으로 느낀다면 겸손이 지나쳐 위선이 아닐까? 일상이 작품에서 평범하지 않은 일상으로 느껴진다는 것은 작품이니까 당연한 거다.
내 작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부분 이렇게들 시작하는데 사실 내 작업에서 보이는 것은 일상이 아니다. 나는 일상의 예기치 않은 단면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말해지지 않는 순간을 구체적으로 느끼는 나의 난감함에 대해 사물의 몸을 빌려 생각하려는 것이다.
작품이 매우 담담하다. 픽션은 픽션인데 논픽션과 픽션의 중간쯤에 있는 것 같다. 예술 같은 예술, 그러니까 흔히 이야기하는 감정에 호소하는 미술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가 있다면?
감정에 호소하는데 어디에 뭘 호소하겠다는건지 모르겠는 형국이면 개인적으로 그저 그렇다. 즉, 매력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미술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대단한 것 같다.
작품이 어렵다.
선생은 사물에 부과된 복잡한 의미의 망들을 걷어내고 단순하게 보려 했다지만, 오히려 작품이 어렵게 다가온다. 그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인식 때문인가?
그것이 개인적인 지적 추구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대중과 소통이 필요한데, 이러한 간극은 어떻게 극복하고자 하나?
나의 그 표현은 어수룩해서 쑥스럽다.
내가 어떻게 그 복잡한 ‘의미의 망’을 걷어내겠다는 건지, 바보 같은 말을 했다.
대중이 내 작업이 어렵다고 느끼는 걸 탓할 수는 없다. 내가 어려운 문제를 다루니 어렵다고 느낄 수밖에 없겠지만, 내가 이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탓도 있을 것이다.
내 작업이 이런저런 관계를 다 끊어내고 하는 ‘개인적인 지적 추구’가 아니라, 세상의 관계 속에 자꾸 이방인을 들이미는 일이라 갈등도 있고 외면도 따른다. 예술의 덕목은 여러 가지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덕목 중의 덕목은 ‘세상을 섬세하게 분별해 내는 능력’이다.
대중과의 소통보다 이 능력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고 싶다.
전시 제목이나 작품 제목이 매우 의미심장하고 특별하다.
제목과 작품이 서로 무관심한 듯 서로 닮아 있다.
제목 덕분에 작품의 긴장감이 더욱 잘 살아나는 것 같은데, 언어의 유희를 즐기고 있나?
선생의 작업에서 언어의 중요성은 어느 정도인가?
정말 어렵게 겨우겨우 제목을 만든다. 내 작업 태도와 닮은 말과 글의 모습을 찾으려고 애쓴다.
사실 언어가 없이도 세상을 느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말하려는 순간 알던 것도 모르게 된다.
그래도 언어에 좀 집중하다 보면 의외의 재미를 맛보게 된다.
한 비평가는 지난 2000년 선생의 작업에 대해 ‘깊이에의 혐오’, ‘과다한 수식어들’, ‘시각 중심주의의 폭력에 대항하는’ 등등의 성격을 갖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 설명에 동의하나? 그렇다면 지금도 작품에서 그 문맥이 여전히 유효한가?
그분의 표현이 너무 과해서 깜짝 놀랐다.
시각 중심주의의 폭력 (당시 한국 미술에서 왕왕 볼 수 있었던, 그러니까 더 정확히 말해서 ‘무조건적 시각 중심주의’의 무지몽매함)이 싫었던 것은 맞다.
그런 분위기를 당시에 내 작업 태도에서 느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내 작업의 내용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드로잉 작업도 많다.
광주비엔날레 및 최근 개인전인 갤러리 플랜트 전시에 대한 설명을 간략히 부탁한다.
'Monster map, 15min.'이라는 작업을 광주비엔날레, 갤러리 플랜트 개인전, 그리고 LIG 아트홀에서 했던 공연 '미스터 김과 미스터 리의 모험'으로 이어봤다.
시작은 일간지에서 본 ‘괴물의 지도’라는 특집 기사였다.
프랑켄슈타인, 뱀파이어, 지킬 박사와 하이드 등등 유명 괴물들이 전 세계 어디에 분포하고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다룬 재미난 기사였다.
그 신문 기사를 읽으니 잘 모르는 존재를 늘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허접한 작업실 주변을 땅만 보면서 한 바퀴 휙 돌고 온 뒤 그 짧은 15분간의 뭉그러진 기억을 세분화하는 텍스트를 쓰게 됐고, 그것을 바탕으로 드로잉 작업을 연이어 했다.
조각을 덧붙이기도 하면서 전시를 했고, 공연은 그 드로잉들 중 하나를 중심으로 놓고 풀었다.
얼마 전 스페이스 해밀톤 (2010.11.30)에서의 퍼포먼스는 무엇이었나?
'비열한 놈!'이라는 썰렁/무책임 퍼포먼스다.
19금 프로젝트라고 해서 19분간 해야 했는데, 19분은 진짜 진지하게 작업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조건이 안 되고 심심하던 차라 조금 놀고 싶어 5분 겨우 채우고 스윽 도망치고 말았다. 가르치는 학생들을 꼬드겼고, 심지어는 김기범이라는 학생의 아이디어를 빌렸다. 물론 허락을 받았다. 5명이 밤이 되니 요괴의 정체를 드러내고 하루 동안 저지른 비열한 짓에 대해 소심하게 분노하는 꼴이 되었다. 전체적으로는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내심 혼자 재미있어 하는 조각들이 있어 나중에 써먹을 거다.
최근에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특별히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나?
수년간 완성하지 못한 채 끌고 다니는 시시한 작업이 있다.
이번에 이사한 작업실이 너무 작아 조각은 꿈도 못 꾸고 사색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이것의 덩치가 커서 빨리 해치우고 좀 감상한 뒤 옆으로 밀어놓고 싶다.
제목은 무작정 정했는데, ‘뾰족한 것에는 탑이 마땅하다’이다.
그리고 이번 겨울에 수개월 전에 했던 공연 '미스터 김과 미스터 리의 모험'을 영상 작업으로 마무리하고 책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 여름에 해야 했는데 병이 좀 심해져서 엎드려 있었다.
내가 뭘 했는지 까먹기 전에 마무리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예술가란 어떤 존재여야 한다는 개인적인 정의를 듣고 싶다.
예술가를 어떻게 정의하나? 생각해보자.
이 작업은 이래서 좋고 저 작업은 저래서 좋다. 그리고 이 작업은 이래서 싫고 저 작업은 저래서 싫다. 그런데 나를 포함해 예술가들은 삶을 과장해서 사는 사람들이다.
그게 그들의 현실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예술가들이 좋다.
그 신문 기사를 읽으니 잘 모르는 존재를 늘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허접한 작업실 주변을 땅만 보면서 한 바퀴 휙 돌고 온 뒤 그 짧은 15분간의 뭉그러진 기억을 세분화하는 텍스트를 쓰게 됐고, 그것을 바탕으로 드로잉 작업을 연이어 했다.
조각을 덧붙이기도 하면서 전시를 했고, 공연은 그 드로잉들 중 하나를 중심으로 놓고 풀었다.
얼마 전 스페이스 해밀톤 (2010.11.30)에서의 퍼포먼스는 무엇이었나?
'비열한 놈!'이라는 썰렁/무책임 퍼포먼스다.
19금 프로젝트라고 해서 19분간 해야 했는데, 19분은 진짜 진지하게 작업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조건이 안 되고 심심하던 차라 조금 놀고 싶어 5분 겨우 채우고 스윽 도망치고 말았다. 가르치는 학생들을 꼬드겼고, 심지어는 김기범이라는 학생의 아이디어를 빌렸다. 물론 허락을 받았다. 5명이 밤이 되니 요괴의 정체를 드러내고 하루 동안 저지른 비열한 짓에 대해 소심하게 분노하는 꼴이 되었다. 전체적으로는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내심 혼자 재미있어 하는 조각들이 있어 나중에 써먹을 거다.
최근에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특별히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나?
수년간 완성하지 못한 채 끌고 다니는 시시한 작업이 있다.
이번에 이사한 작업실이 너무 작아 조각은 꿈도 못 꾸고 사색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이것의 덩치가 커서 빨리 해치우고 좀 감상한 뒤 옆으로 밀어놓고 싶다.
제목은 무작정 정했는데, ‘뾰족한 것에는 탑이 마땅하다’이다.
그리고 이번 겨울에 수개월 전에 했던 공연 '미스터 김과 미스터 리의 모험'을 영상 작업으로 마무리하고 책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 여름에 해야 했는데 병이 좀 심해져서 엎드려 있었다.
내가 뭘 했는지 까먹기 전에 마무리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예술가란 어떤 존재여야 한다는 개인적인 정의를 듣고 싶다.
예술가를 어떻게 정의하나? 생각해보자.
이 작업은 이래서 좋고 저 작업은 저래서 좋다. 그리고 이 작업은 이래서 싫고 저 작업은 저래서 싫다. 그런데 나를 포함해 예술가들은 삶을 과장해서 사는 사람들이다.
그게 그들의 현실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예술가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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