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서양철학가, 왜 한국작가 만났나


'달, 어디에, 시장을 넘어서, 침묵(Lune, Où, par-dessus, le marché, Silence)'이라는 제목으로 비디오아티스트 김순기(1946-) 개인전이 종로구 율곡로에 있는 아트선재센터(3층)에서 2000년 '주식거래'에 이어 두 번째로 2014년 6월 1일까지 열린다.

김순기 작가는 1970년부터 프랑스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뉴미디어 작가로 "예술은 저항이다"라는 기치아래 실험적 작업을 해왔고 '장자'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과 '침묵·혼란·부재' 등 시간의 확장과 언어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근거로 작업을 해 왔다. 그는 자신의 작품 활동을 "내가 없어지는(無我) 행위"라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자본의 지배와 시장의 원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창작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게 요즘 작가들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이번 김순기 개인전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철학자와 인터뷰를 통해 예술과 자본의 갈등관계를 주제로 그에 대한 대안을 사유하고 탐구하게 한다. 그 밖에도 비디오작품, 서화 및 사진 등이 전시된다.
김 작가는 구석기시대보다 더 구석기시대 같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만큼 고전에 관심 높다는 건데 고교시절부터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아 딴 공부한다는 소리 듣기 싫어 이불 속에 숨어 '주역'을 공부했고, 1960년대 대학시절 우리 것에 심취하자 친구들이 자신을 미쳤다고 놀렸단다. 서울대 동기인 춤꾼 이애주와 친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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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케이지 I '말의 신기루(Mirage Verbal)' 2TV 22분 1986. 1986년 김 작가가 주관한 '마르세유 비디오와 멀티미디어 페스티벌'에 존 케이지가 초대받아 발표한 작품으로, 케이지가 뒤샹의 글을 임의로 발췌해 거기에 주역(周易)을 대입시켜 작곡된 것이다 

김순기 작가를 더 소개하면 1970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재학 중 국비장학생으로 프랑스에 유학해 1970년대부터 유럽철학자들과 교류했고, 1980년대 '존 케이지'를 만나 소리가 미술임을 터득하고 색채와 형태가 없는 미술작업을 해왔다.
'침묵'을 예술의 주제로 삼아온 그녀가 존 케이지를 만난 것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90년대 세계화시대에 들어와서는 예술의 방향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고민해왔다. 작년에 미국 필라델피아 슬라우트재단의 초대를 받아 전시회를 열었고, 이번 전시도 그 전시의 연장선상에 있다. 60대 후반이지만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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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기 I '컴컴한 동쪽바다에' 종이위에 먹 230×304cm 1998. 코카콜라라는 단어가 이곳저곳 보인다. ⓒ 김형순

기자간담회에서 김순기 작가는 요즘 프랑스에 유학 온 학생들 정말 한국적인 걸 너무 모른다며 우스갯소리로 길 '도(道)'자를 '돈'으로 해석하다니 놀랍고, 젊은이들 김치도 잊어버리고 콜라만 즐기는 것 같아 아쉽단다. 그래서 작가는 낙서 일기 같이 적은 글을 서예로 옮긴 '컴컴한 동쪽바다에'라는 작품에서는 이런 점도 꼬집는다.
그러면서 1967년에 있었던 어처구니없는 사건 하나 들려준다. 당시 민속에 열을 올려 굿이란 굿을 다 쫓아다니고 비원 앞에 있는 국립국악원에서 단소도 배우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불도저가 와 그걸 다 부숴 이유를 물으니 미군용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서란 말에 크게 충격을 받았던 기억도 난다며 그게 당시 박정희식 개발이었단다.
이번 전시에 2002년에 성사된 자크 데리다(J. Derrida 1930~2004)와 장-뤽 낭시(J.-L. Nancy 1940~)의 인터뷰를 담은 작품이 소개된다. 작가의 최고 취미가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는데 하긴 질문을 잘 던지는 사람은 어느 정도 그 해답도 아는 사람이다. 하여간 여기서 질문은 하나의 예술사건이 될 수 있음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때가 IMF외환위기를 넘기고 세계화가 지구촌을 휩쓸어 신자유주의가 일어날 때라, 21세기 넘어가는 과도기에 예술가도 위기감이 높아졌고 이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 없는 때였다. 대자연을 지배하려다 실패한 서양철학도 '데리다'가 해체로 출구를 텄고, 죽음의 고비를 두 번이나 넘긴 철학자 '낭시'와 김순기와 만남도 숙명적인 것 같다.


[자크 데리다와 대화(2002)] - 침묵이야말로 타자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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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월 7일 철학자 데리다와 김순기 작가가 파리근교 리조랑지(Ris Orangis)에 있는 데리다 자택에서 대담하는 모습이다. 45분.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영상작품으로 소개되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김순기의 친구인 프랑스철학자 '낭시'의 소개로 이루어졌는데 산업이 예술을 통제하려드는 비상구 없는 시대로 들어서자 서양철학자과 동양작가가 운명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는지 모른다. 때로 백 권의 책보다 한 번의 대담이 더 낫다는 말이 있는데 이 두 지성인의 대담이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예술마저도 자본화 되어가는 시대, 이를 헤쳐 나갈 길을 모색 중이던 김 작가가 던진 질문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자본이 미술시장을 잠식하는 세계화시대에 예술가의 미래가 있는가"였고 둘째는 "침묵이 진정한 예술의 통로가 될 수 있느냐"였다.
데리다는 미술에선 '고유성·희귀성·유일성'이 가장 중요한데 자본의 압력으로 이것이 박탈되고 예술이 '동질화·빈곤화·저급화'를 초래한다면 그런 미술시장은 경계해야 하고, 문화투자가 아니라 과잉투기로 왜곡될 수 있기에 저항해야 하고, 이를 막는 데는 작가만 아니라 수집가, 애호가, 전문가도 다 같이 동참해야 한단다.
동양에선 "의미 있는 말이 침묵을 만든다"는 말도 있고, 존 케이지는 침묵도 음악이라 했지만 침묵에 대한 김 작가 질문에 데리다는 "말의 손실을 막기 위해 침묵이 필요하다", "전문가는 침묵이 뭔지 안다"는 말로 침묵의 예술적 가능성과 그 가치를 평가했다. 결론으로 침묵이야말로 타자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라는 말한다. 
좀 더 덧붙이면 수사적이고 웅변적인 세계화가 난무하는 시대에 더 많은 소리를 듣기 위해선 침묵이 필요하고 침묵이 보호돼야 한다고, 그리고 이는 또 하나의 저항일 수 있다고 해석한다. 그도 중국의 북경, 남경, 상하이 등을 여행한 경험담을 꺼내면서 서양보다 동양이 침묵을 더 중시하는 문화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장-뤽 낭시와 대화(2002)] - 예술이란 물러나면서 흔적을 남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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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낭시와 김순기 작가가 2002년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서 위성으로 이루어진 대담이 영상작품으로 재탄생되다 

또한 2002년 광주비엔날레 김순기 작가와 위성대담 상대자는 철학자 '낭시'였다. 
사진과 회화의 구분이 없고, 주류와 비주류가 혼재되고, 오브제와 콘텐츠마저 사라진 포스트모던시대, 서양예술의 본질이 뭔가라는 질문에 낭시는 유럽의 예술역사는 기껏해야 600년, '예술(Fine Art)'이란 말이 생긴 것도 18세기로 그 역사가 짧단다. 
그러면서 서양미술은 신의 찬미, 쾌락과 욕망, 자연의 숭고함 등을 주제로 삼았고 그 나름의 독자성을 추구했으나 딱 부러지게 예술을 규정할 수 없었고, 헤겔도 예술이 끝난 것이 아니냐며 서구에선 일찍부터 회화의 종말에 관련된 논쟁도 벌어졌단다. 
그런 상황 속에서 19세기말 아프리카예술이 서구의 미적 기준을 흔들었고, 유럽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래서 피카소도 서양미술의 대안으로 아프리카원시미술을 도입해 이를 대체했단다. 또한 서구미술에 일본과 중국의 영향도 있었단다.
낭시는 '부재'와 관련한 김 작가의 질문에 대해 "예술이란 물러나면서 흔적을 남기는 것", "창조는 보이지 않은 걸 현시하는 행위", "예술은 자연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부재와 침묵을 드러나는 것"이라는 다소 시적이고 은유적인 말로 결론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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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기 I '달들(Lunes)' 연작 중 하나. C-Print 흑백 12개 사진, 83×60cm, 2003 

그 밖에도 위 '달들' 연작은 첨단기술을 갖춘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것과 다르게 손수 만든 핀홀(바늘구멍) 카메라로 존 케이지가 말하는 예측불허의 우연성을 도입해 자유롭게 변화하는 12점 달을 30분 노출로 찍어 그 생성 과정을 시간차로 보여준다.
지금까지 김순기 작가의 예술적 사유를 정리해보면 진정한 대화란 '침묵'에서, 진정한 존재란 '부재'에서, 진정한 창조란 '혼돈(무질서)'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역설적 진리는 서양에서 플라톤 이래 철학과 예술을 이원론으로 분리시켰는데 이를 동양의 일원론으로 합쳐보려는 시도에서 나온 반어법이 아닌가싶다.

김순기 사운드아트,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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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기 I '침묵의 소리를 들어라'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마당 사운드 설치 2014 ⓒ 김형순

아트선재센터 바로 옆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에서는 4월 29일부터 7월 13일까지 '끝없는 도전_뉴미디어아트를 선도하는 아시아 여성작가 7인전'이 열리고 있는데  여기서도 김 작가의 비디오작품과 사운드작품을 선보인다. 
위 '침묵의 소리를 들어라'는 2014년 작으로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전시마당 여러 곳에 마이크를 설치해 바람 소리, 주변의 자동차소리, 관객의 발자국소리, 대화소리 등이 뒤섞여 내는 변주곡 같은 아름다움을 체험하게 하는 소리설치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동양에서는 마음이 비우는 허심이 중요하고, 마음을 비우고 그 문을 열어놓으면 자연의 소리가 저절로 들어오고, 소리가 받아들여진다는 것"이고 또 "풀밭을 가만히 쳐다보면 너무 아름답고 거기서 소리가 들려오고, 아무 것도 없는데 뭔가 보이게 되고 여기서는 특별한 장비 없이도 그림이 된다"는 설명이다.
왜 회화를 전공하고도 70년대부터 당시는 아무도 하지 않는 미디어아트를 했냐고 물으니 '형태'와 '색채'로 하는 회화가 지겨워져 '움직임'과 '소리'로 하는 쪽을 하게 됐다며 그게 자신의 체질에 맞는단다. 그녀에게 음악은 음악만이 아니고 미술은 미술만이 아니고 둘은 언제나 만날 수 있듯 동서예술도 다 만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May 2014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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