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5년 암스테르담 시립 아카이브에서 KLM항공사의 역사에 대한 이미지들을 연구하고 있었다. 역사가 100년이 넘는,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항공사인 KLM은 절대로 외울 수 없는 Koninklijke Luchvaart Maatschappij라는 뜻인데 한국말로 하면 왕립 네덜란드 항공사라는 뜻이다. 암스테르담 시립 아카이브에는 KLM의 이미지들이 잘 정리돼 있어서 한달 내내 들여다 봐도 끝이 없을 정도였다. 그때 다는 암스테르담에서 한 시간 떨어진 우트렉트에서 방을 하나 얻어서 지내고 있었다. 생전 안 가본 영국이나 가보자고 생전 처음 짧은 일정으로 런던을 갔다 오기로 했다. 7월의 런던은 너무 더워서 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어디에도 에어컨이란 것은 없었고 모든 건물과 버스의 창은 열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영국사람들은 긴 팔 옷을 입고 태연히 생활하고 있었다. 유럽 제국들이 쳐들어간 식민지들이 하나 같이 더운 나라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더운 것을 좋아했던 것이다. 프랑스는 베트남을, 영국은 인도를, 포르투갈은 브라질을, 벨기에는 콩고를 쳐들어간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런던에서 공부하고 있던 제자가 잡아준 호텔은 너무 싼 곳이라 에어컨이 없었고 방에는 허술한 열쇠만 있었다. 나갔다 들어와 보니 카메라 가방이 사라졌는데 마침 카메라 바디와 렌즈는 둘 다 고장나 있었기에 그 도둑은 낭패라고 쌍욕을 했을 것이다. 문제는 우트렉트에 있는 숙소의 열쇠까지 같이 도둑맞은 것이다. 그 점이 제일 난감했다. 비행기 시간 때문에 우트렉트에 돌아온 것은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한 밤 중에 사람들을 깨우기는 미안했지만 문을 두드려 현관 문을 열어달라고 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결코 좋지 않았다. 전화번호를 찾아서 열쇠 따는 사람을 불러다가 문을 따기는 했는데 무려 100유로를 받는 것이었다. 방문을 너무 쉽게 땄기 때문에 좀 깎아달라고 했으나 그는 한밤중에 열쇠 따준게 어디냐며 한 푼도 깎아주지 않았다.
정서영의 <검붉은색, 그것> (2020, 철에 도색, 왁스종이, 스테인레스 철사)은 절대로 다시는 열쇠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왁스를 입힌 종이봉투에 꼭꼭 넣어놨다. 그리고 열쇠를 훔쳐가는 사람은 교수형에 처해버리겠다는 듯이 그 봉투를 검붉은색의 철제 프레임에 철사로 매달아놨다. 검붉은색이라고 하니까 말라붙은 피떡이 연상되지만 이 작업의 색깔은 버건디, 즉 진한 와인색에 가깝다. 그것은 신뢰의 색이다. 붉은색 자체는 불, 위험, 피, 정열 등 온갖 위험하고 아찔한 것들을 표상하지만 버건디는 검은 색과 섞어 무겁게 만들어 놨기 때문에 불과 위험과 피와 정열의 부정적인 기운은 착 가라앉아서 잘 활용하면 거꾸로 인생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버건디는 공무원들이 잘 안 쓰는 색이다. 동사무소에서부터 청와대까지 어떤 관청에서도 봉투나 표지판 등에 버건디색을 쓴 곳은 절대로 없다. 왜냐면 버건디는 신뢰의 색이니까. 그래서 이 열쇠는 절대로 잃어버릴 수가 없다. 열쇠는 독일어로 Schlüssel인데 닫는다를 뜻하는 동사 schließen과 어원이 통한다고 하이데거가 말했던 것 같다. 한국말로는 열어준다고 해서 열쇠지만 독일사람들은 열쇠를 닫음쇠로 생각한 것이다. 이 열쇠는 왁스를 입힌 봉투에 넣어둔 덕에 절대로 녹이 슬지 않을 것 같다. 어차피 열쇠는 스테인레스 스틸이나 황동 같이 녹이 잘 안 스는 재료로 만들어져 있긴 하지만 열쇠로 이어져 있는 인간관계는 쉽게 녹이 슬 수 있으니 왁스로 습기의 침투를 막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방법이다. 또한 왁스의 기름기 덕에 열쇠는 항상 윤활이 된 상태로 있기 때문에 오래 닫아둔 문을 열 때 쉽게 열릴 것이다. 그것은 열쇠를 쓸 때 확률론에 의거해야 하는 피로를 덜어준다. 다시 우트렉트 얘기로 돌아가자면, 앞서 그 집의 열쇠를 받아서 처음 열고 들어가려는데 아무리 넣고 돌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이 집 주인은 이 열쇠로 무수히 문을 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열쇠가 딱 맞아서 문이 열리는 특정한 각도가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못 찾아낸 것일 뿐이다’라는 생각으로 온갖 시도를 하여 가까스로 열 수가 있었다. ‘어딘가에 가능성이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문을 열게 한 것이다. 그때 만약 그 열쇠의 주인이 정서영이 했듯이 열쇠를 왁스 봉투에 보관했더라면 나는 문을 훨씬 쉽게 열 수 있었을 것이다. 정서영의 작업은 물질로 말 한다. 물질은 물질 끼리 통하기 때문에 생각이나 관념과 상관 없이 시공간을 가로질러 2020년의 열쇠가 2005년의 열쇠와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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