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밑 풍경'에 시대정신 담아

 

환갑에 첫 개인전 여는 서양화가 주재환씨

“나이 육십에 첫 개인전을 하려니까 자신이 없어요. 깔아놓구 봐야지. 누가 욕 하겠어요? 죽을 때 다 됐는데.” 지난 26일 밤, 서울 사간동 아트선재센터 마당이 사람들로 그들먹해졌다. 11월25일부터 열리는 화가 주재환씨 개인전 준비팀이 얼굴을 맞댄 자리는 주인공 만담에 웃음이 그칠 새가 없었다. “내가 `장로'잖아. 장시간 노는 사람. 시간이 많으니까 그림 생각도 많아지고. 종일 그림 그리고 살아요. 어찌 보면 너무 늦은 것 같지만…작품이 좀 팔리면 소주값이라도 해야지.” 자진해서 전시 총감독을 맡은 건축가 조건영씨가 한마디 거든다. “작가는 전시를 해야 변비에 안 걸려요.”

주재환씨는 평생 화가였지만 환갑 되도록 개인전 한 번 열지 못했다. 73년 광화문에 있는 한 술집에 아는 이들 모아놓고 포토콜라주(사진붙이기) 50여점 보여주고는 시치미 뚝 떼고 딴 동네에서 살았다. 1960년 홍익대 서양화과를 중퇴하고 그가 떠돈 곳은 야경꾼, 행상, 외판원, 출판 편집인 세계였다. 그는 “다리 밑에서 놀았는데 그 `사회 사람들' 사귈 때 세상 보는 눈이 확 깨면서 체질이 미술판과는 크게 달라져버렸다”고 했다. 그가 80년대 민중미술판 현장 중심에 있으면서도 또한 변방에 서서 늘 비판과 풍자와 자기경계의 칼날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이 `다리 밑 풍경'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어둠의 세월이 각인돼서 이제야 붓끝에 풀려나와요. 다리 한 쪽이 없는 지게꾼, 상상이 되세요? 통금이 풀린 새벽에 야경 일을 끝내고 집으로 가다보면 원남동 근처가 두 번 붐벼요. 비지 사러 나오는 아낙들 때문에 한 번, 서울대 병원에 피 팔러 가는 사내들 때문에 한 번. 그런 기억을 반추하다보면 썩은 물을 채로 받쳐 맑은 물 걸러내는 것 같아. 거기서 우리가 지금 얼마나 멀리 온 것 같소?”

이번 개인전에는 그가 `현실과 발언' 창립동인으로 활동하던 80년부터 2000년까지 삶과 착 달라붙은 20년 작품 세계가 펼쳐진다. 분리수거장에서 주워온 갖가지 생활폐품으로 만들어 `1000원 예술'이라 부르는 인쇄물 콜라주로부터 만화, 사진, 개념적 드로잉, 오브제, 유화까지 값싼 재료를 지지고 볶은 솜씨가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다. <몬드리안 호텔>이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가 보여준 그 도발적 `현실 뒤집기'를 전설처럼 기억하는 이들에게 그가 던지는 한마디는 여전히 울림이 크다. “시대 흐름 같기도 한데 지금은 다들 밀실에 숨어버렸어요. 스스로를 가둬놓고 소외와 고독 어쩌구 하면서 자기 중얼거림에 빠져있는 것 말야. 소통을 거부해서 되갔어. 몽상과 공상과 자기 얘기뿐이야. `나'보다는 `왜'를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최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과 성완경 인하대 교수, 정지창 영남대 교수, 그가 `젊은 친구들'이라고 부르는 미술평론가 백지숙·황세준씨가 글을 쓰고 이기웅 열화당 사장이 단행본처럼 도록을 만들어주는 것은 전시제목처럼 `이 유쾌한 씨를 보라'는 지인들 바람이다. 서울전이 끝나면 내년 3월 대구 솔화랑에서 전시가 이어져 해질녘에 꿈틀하는 것 같아 쑥스럽다던 그는 말했다. “어쨌든 이것 하나만은 자신있어요. 내 개인전은 장터마냥 시끌시끌 끈적끈적 할거요. 다리 밑에서 뒹굴던 시절이 어디 가겠소?”

한계레 문화생활 2000년10월29일

글 정재숙 기자 사진 장철규 기자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9100008/2000/009100008200010291804003.html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