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들이 움직이는 세상에 충격_기계와 인문학의 만남, 기계비평가 이영준 교수

계원디자인예술대학 이영준 교수는 기계비평가이다. 보통 비평이라 하면 미술, 문학 등 인문학의 영역이라 여겨져 왔기 때문에 기계비평이란 단어는 아직 낯설다. 이영준 교수를 만나 기계비평이 무엇인지 이모저모에 대해 들어봤다.

– 기계비평이란 무엇인가.
비평이란 가치를 따지는 것이다. 우리는 기계의 도움을 엄청 받는다. 하지만 일반 사용자들은 기능이 중요할 뿐 가치를 따지지는 않는다. 기계비평은 바로 이런 기계의 가치를 따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휴대폰의 경우에 사람들은 인터넷 속도라든지 얼마나 많은 기능들이 탑재되었는지 등에 관심을 가질 뿐이다. 반면 기계비평은 휴대폰의 문명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휴대폰으로 인해 변한 문명 패러다임의 특징은 무엇인지를 따져보게 된다.

– 기계비평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지,라고 설정하고 하지는 않는다. 기계마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소총과 KTX를 예로 들어보자. 군대에서 사용하는 소총의 경우에는 군인의 모자나 얼룩무늬 군복과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평했다. 사실 소총의 기능은 목표물을 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전을 치르지 않은 군인들에게 소총은 너는 군인이니까 군인답게 행동하라는 규율이다.
우리나라 군인들 역시 대부분 전쟁과 같은 실전을 치러보지 않았다. 그래서 사격 연습할 때만 실제 총알을 넣고 사용하고 보통 때는 소총에 총알이 없다. 군인이기 때문에 소총을 갖고 다닌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소총은 군인임을 나타내는 기호인 셈이다.
속도가 미덕인 KTX에서는 지리감각이 추상화되는 사실을 비평한다. 거대한 운송수단인 KTX를 탄 승객들은 서울과 대전까지 한 시간도 안 걸린다는 사실에 ‘정말 빠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솔직히 승객들은 자동차에서 느끼는 속도감을 KTX에서는 느끼지 못한다. 단지 유리창을 통해 지나가는 사물로 인지할 뿐이다. KTX의 속도감은 승객 자신이 아닌 다른 사실이나 자료에 의한 것인 셈이다. 거리감 역시 KTX의 시간으로 규정되고 있다. 즉 기계비평은 인간의 인지능력이 KTX라는 기계를 통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 기계비평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지난 2005년 인천항에 들어가 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 큰 배를 생전 처음 올라가서 보게 됐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광경을 목격했다. 큰 배와 중장비. 특히 올라간 배가 곡물을 수입하던 배였는데, 사료를 담은 버킷이 아주 컸다. 그 안에 초대형 포크레인이 들어가 휘저으며 퍼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포크레인이 장난감 같았다. 인간이 아닌 엄청난 기계들이 움직이는 또 다른 세상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 ‘기계가 주는 이 대단한 광경들을 꼭 비평해야겠다. 필생의 사업으로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 다른 나라에는 기계비평가가 있나.
흡사한 비평가는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의 프레들리 키틀러가 있다. 그의 비평은 기계를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시대마다 새롭게 등장한 매체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축음기, 영화, 타자기’라는 저서에서는 1900년대의 대표적인 이 세 가지 기록 매체가 그 시대의 세계관, 제도, 사회체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 가장 애착이 가는 비평과 해보고 싶은 비평에 대해 말해 달라.

가장 최근에 배를 타고 상하이에서 영국까지 1만 마일 정도 한 달 동안 여행을 하면서 했던 비평이 가장 애착이 간다. 상하이항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물동량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거기서 움직이는 기계들을 보고 있으면 여기가 마치 사이버 세계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아마 인간이 만들어낸 풍경 중에 가장 거대하고 초현실적이지 않을까 싶다. 또한 바다 한가운데서 느끼는 감정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모든 것이 너무 극단적이다. 배는 너무 크고 바다는 너무 넓으며 배 안에 있는 사람은 정말 작다. 그런데 이 기계를 제어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이 또 재미있다.

해보고 싶은 비평은 ‘기계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가. 기계로 표상되는 문명은 무엇인가’ 등 기계가 가지고 있는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면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다. 더불어 기계가 가진 역사와 그 안에 숨어있는 인간의 욕망, 생각들을 깊이 있게 파헤쳐보고 싶다.

– 포부나 앞으로 계획은.
기계비평 전시를 해보고 싶다. 실제 기계를 모아다가 그 중 모양이 특이하거나 재미있는 것을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미적인 기계를 전시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관객들이 ‘이러니까 기계가 멋있구나’하고 반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첨단이라도 평범하면 관객들의 반응이 없지 않을까 쉽다. 예상을 뒤엎는 기계를 보여주는 전시회를 기회가 되면 꼭 열어보고 싶다.

ScienceTimes,  2011.12.27 김연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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