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커부터 주차장·계단·카페…
미술관엔 미술품이 놓여있다. 거기가 어디든. 非전시공간 25곳에 작품 비치
“보물 찾기하듯 미술관 탐험”
중계동 북서울미술관에 가면, 물품보관함 33번 칸을 들여다보시라. 관람객이 옷가지나 가방 등을 넣어두는 곳이지만, 투명창(窓) 안으로 작은 조각 한 점이 보일 것이다. 이탈리아 설치미술가 루카 부볼리(59)의 작품 ‘거의… 내부의 우주 #1′이다. 우주 미아가 되지 않으려 간신히 뭔가를 붙잡고 있는 우주인의 두 손을 묘사한 것이다. 물론 작품 도난 방지를 위해 라커는 비밀번호로 잠겨 있다.
주차장도 미술관의 일부다. 지하 1층에 차를 대고 내리면, 구석 벽면에 웬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 김범(59)의 ‘검은 테이프 위를 달리는 머리’다. 차를 타고 어두운 2차선 도로 위를 촬영한 2분짜리 영상으로, 비디오 테이프 헤드를 도로 위 차량에 은유해 선적(線的) 기록 매체로서 비디오를 은유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길,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 삽입곡 ‘삶은 계속된다’가 흘러나온다.
전시장 아닌 곳, 이른바 유휴 공간을 살뜰히 활용한 전시 ‘유휴 공간 프로젝트’가 다음 달 29일까지 열린다. 미술관 층계참, 기둥, 천장, 테라스 등 25곳의 “잘 보이지 않는 장소”에 작품을 흩뜨려놨다. 심지어 미술관 내 카페 조리대에도 작품(김범 ‘무제’)이 놓여 있다. 얼핏 전자레인지 같지만, 자세히 보면 통닭 조각이 회전하는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는 TV다. 유민경 학예사는 “곳곳에 작품을 숨겨놓음으로써 그간 쉽게 지나쳤던 미술관 공간의 새로운 인식을 유도하는 일종의 게임”이라고 했다. 이 프로젝트는 2017년 처음 시작됐고, 외국 작가가 참여한 국제 전시는 올해가 처음이다.
그래서 이 전시를 보려면 ‘보물 지도’가 필요하다. 비치된 종이 지도를 들고 동선에 맞춰 걷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작품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를테면 미술관 1층 프로젝트 갤러리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좁은 벽 틈에 웬 하얀 풍선 하나가 끼어 있는데, 영국 조각가 시오번 리들(57)의 설치작 ‘키스’다. 풍선 바로 위에는 담배 한 개비가 닿을듯 말듯 아슬아슬 매달려 있다. 이 작품이 은유하는 접촉과 폭발 직전의 긴장감은, 이 같은 뜻밖의 관람 경험에도 적용된다. 게다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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