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광고




주재환의 2010년작 <책광고>는 화포가 부착된 캔버스 나무틀 뒷면에 하얀색으로 십자가가 그려진 부분이 도드라진다. 왜냐하면 특이하게도 이 십자가에는 못 박힌 예수상이 아니라 삼성의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의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와 삼성을 강도 높게 비판한 김상봉 교수의 외고를 광고 수주 문제에 대한 우려로 누락시킨 것을 사과한 경향신문의 ‘대기업 보도 엄정히 하겠습니다’가 부착되었기 때문이다. 십자가 위에 이러한 부착물들이 있다 보니 캔버스 나무틀 바로 뒤편에 위치한 화포에는 주재환의 도깨비 연작으로 보이는 그림을 바탕삼아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주재환이 옮겨온 목차, 글, 자료 일부가 적혀있기도 하다. 어느 사회에서든 큰 금권을 가진 이들에 대한 고발을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 마련이다. 따라서 김용철이 이건희 일가의 어마어마한 비자금 조성 의혹을 폭로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삼성의 정치, 경제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언론인, 관료, 정치인들은 김용철의 고발을 어렵고 불편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고립의 길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김용철은 다행히도 정석구의 소개로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함세웅 신부와 만나며 활로를 찾게 된다. 그런데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어떻게 모두가 꺼려하던 김용철의 고발과 연대할 수 있었을까. 그 까닭은 당시 김용철의 삼성 비자금 고발과 관련된 함세웅, 정종훈 신부의 발언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창립을 주관했던 함세웅 신부는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1987년 이후 정치적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었지만, 경제 민주화는 아직 요원한데 이렇게 김용철 씨가 찾아오니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겠냐고 이야기했으며 2010년 당시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를 맡았던 전종훈 신부는 "20년 전 독재 정권에 맞섰던 사제단이 이제는 경제 민주주의와 경제 정의를 위해 나섰다. ‘자본 독재’에 맞서기 위함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따라서 함세웅과 전종훈의 이러한 입장은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김용철의 고발을 한국의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 경제 민주화를 위한 중요한 사안으로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사실 정의구현사제단이 이야기 하는 경제 민주화는 헌법 제119조 2항에 포함되어 있으며 2012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 2016년 20대 총선 및 2017년 19대 대선 당시에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공약으로 언급되어왔기에 이제 한국사회에서 꽤 익숙해진 용어다. 경제 민주화는 자본주의 시장체제 구조를 인정한다. 즉 친기업이 아니라 친시장을 추구하는 것으로 시민과 정부가 시장의 독점화와 불공정한 시장을 막아 경제를 활성화하고 노동자의 소득, 사회보장제도를 보완하여 국가의 모든 구성원이 더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연대 덕분에 김용철은 2007년 1월 29일과 동년 11월 5일에 제기동 성당에서 삼성의 불법 비자금 조성에 대한 의혹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폭로는 결국 삼성 비자금 특검으로 이어져 이건희 회장이 배임 및 조세 포탈로 4조 5000억 원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이 세상에 알려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처럼 내부고발로 시작된 삼성 비자금 사건의 궤적을 되뇌어봤을 때 주재환은 아마도 한 명의 작가로서 그리고 한 명의 시민으로서 강력한 금권이 입법, 사법, 행정을 쥐락펴락하는 정의롭지 못한 한국사회의 병폐에 경종을 울리는 김용철과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연대를 <책광고>을 통해서 지지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책광고>는 김용철과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연대에 대한 주재환의 지지표명이라는 측면 외에도 십자가와 관련된 조형적 강조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 지점이 있다. 사실 <책광고>는 조형적 차원에서 보면 김용철의 책에 대한 내용보다는 십자가가 훨씬 두드러진다. 여기서 주재환이 십자가를 조형적으로 강하게 드러낸 것은 그가 평소 신실한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은 아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책광고>에서 십자가가 강하게 드러난 것은 신앙심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고립된 김용철과 연대하는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용기에 대한 감명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재환은 1980년대부터 기독교와 관련된 작업을 종종 제작해왔지만 무신론자인 그가 그러한 작업들에 독실한 신앙심을 투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주재환이 무신론자라고 하여 기독교에 내포된 긍정적인 가치 자체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그는 평소에 자신의 기독교 작업들에 대해서 언급할 때 종종 예수정신의 가치를 강조한 바 있다. 주재환이 말하는 예수정신을 일반화된 담론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정확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본인이 이에 대해서 주재환과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그가 생각하는 예수정신은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배제당하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이자 연대이며 물질주의, 권력주의, 권위주의, 선민의식에 대한 강한 반대와 관계된 것임은 알 수 있었다. 
사실 무신론자인 주재환은 기독교의 교리에서 원죄에 대한 것에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가 이러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기독교가 없던 시대의 사람들이나 기독교를 모르고 살았던 수많은 이들은 원죄 자체를 알 수 없기에 무조건 지옥에 가야하는데 이런 부분을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관련하여 주재환의 이러한 가치관들을 살펴보면 확실히 그는 일종의 종교 무용론자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주재환은 종교 무용론자에 가까울 뿐이지 완벽한 종교 무용론자는 아니며 나아가 종교 유해론자는 더욱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정신을 바탕으로 세속에서 고통받는 민중들의 곁에서 그 고통을 함께 이겨나가는 사회참여적 기독교계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주재환은 예수정신을 망각하고 기득권을 세습하는 권력층을 섬기거나 혹은 스스로 기득권을 세습하는 타락한 기독교에 대해서는 종교 무용론자에 가까워 보이지만,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처럼 예수정신이 깃든 신학을 바탕으로 실천하는 기독교 앞에서는 일면 기독교인에 더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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